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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감명깊게 읽은 레즈비언 이야기

ㅇㅇ(118.176) 2015.06.25 01:22:50
조회 206 추천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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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를 만난지 9년입니다..

뭐 공식처럼 느껴지는 경로를 탔죠... 우정에서 사랑으로..

고등학교 2학년때 처음 만났구요. 이내 둘도 없는 친구가 됐어요. 

진짜 아이러니한게, 정말 그냥 친구였는데 찌는듯이 더웠던 고 3 여름 어느날 국어시간에..

수업을 듣고 있는 그 애를 보다가 갑자기 느꼈어요. 내가 쟤를 좋아하는구나.....

 

 

사실 저도 아직까지 이해가 안갑니다... 왜 갑자기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 날 이후로 진짜 혼자 앓았습니다. 그냥 끙끙댔죠. 미친거 아닐까.. 너무 더워 더위를 먹었나..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근데 진짜 한번 깨닫고 나니까 정말 거짓말같이 사랑하게 되더라구요...

그냥 다 좋은거에요.. 황당하기도 하고 그냥 좋기도 하고 미치겠고 나만 이런거 같아서 서럽기도 하고..

진짜 가만히 걔만 보고 있어도 울컥울컥 하는게 진짜 컨트롤 하기 힘들더라구요...

 

 

그냥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거나 하는게 안되는 거에요..

그럴수록 더 걔한테 틱틱대고 툴툴대고 그랬구요. 진짜 정말로 끔찍스런 하루하루였습니다.

그런 이유때문에 제 고3 생활은 다른 사람보다 유난스레 힘들었던거 같아요.

 

어쨌거나, 진짜 정신적으로 황폐해져 갔던 고3이 끝나고 대학 생활을 하니까 괜찮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뭐 같은 학교 같은 과를 갔다.. 이런 얘기는 정말 소설 속에나 등장할 법한 얘기더라구요ㅋㅋ

대학에 처음 입학하고 처음 두 세달은 정말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그래서 거의 연락도 못했구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고 하잖아요.. 진짜 그 말에 희망을 걸었던 몇 달의 기간이었습니다.

정말 성공한거 같았어요. 아.. 여자는 친구한테 한번쯤 그런 감정 가진다고 하더니 나도 그런거였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다행이라고 몇 번을 안도했는지 모릅니다.

 

뭐.... 세달만에 만난 그애는 그런 제 마음을 또 와장창 부서뜨렸죠.

별다방 안으로 스윽 들어오는 그 애를 보는 순간, 아.......... 진짜.......... 미쳤구나......

억지로 지우고 달래고 애써서 비우려고 했던 제 마음이 스윽 그 애의 잔상으로 물드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진짜 맥이 탁 풀리더라구요. 어쩔 수 없구나. 난 얘한테 이미 잡혔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요...

 

 

그냥 인정하기로 했어요. 내가 여자를 좋아하는구나 하는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요..

그냥 얘가 좋아서, 사랑스러워서, 이뻐서 심장이 뛰는걸 그냥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절대로 말할 수는 없었죠. 고3때도 대학 다닐 떄도 걔는 남자친구가 있었거든요.

 

 

한번은 둘이서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그 전날 과제 때문에 밤을 새서 피곤했는지 꾸벅꾸벅 조는겁니다.

졸다가 놀래서 눈 뜨고 미안하다고 사과해놓고서 또 졸다가 깨고.. 

안쓰러워서 별로 재미없으니까 그냥 자라고 했어요. 나도 잘 거 같다고..

말 끝나기가 무섭게 제 어깨에 기대서 자더라구요... 아.. 진짜 그 때 기분은 절대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아요.

창피할 정도로 가슴이 뛰더라구요. 눈을 감고 자는 걸 보고 있으려니까.. 

그때가 제일 고비였어요. 자고 있는 애를 깨워서 내가 너를 진짜 좋아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걸 참느라..

저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 좋아하는 사람을 안아보고 싶고 입도 맞춰보고 싶고 그런거에요..

장난으로 그럴수도 있었지만 제 감정의 깊이를 저도 잘 모르겠으니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거...

 

 

말하고 싶었습니다... 진짜 너무너무 말하고 싶었어요.. 그 애를 볼 때마다 커지는 거 같은 제 마음이,

저도 감당이 안돼서.. 이미 저는 그 애로 가득 차서 이제 더 이상 감정을 채울 공간도 안 남아있어서,

그냥 말하고 싶었어요... 근데 진짜 사람이 간사한게, 그것보다 두려운 마음이 더 큰 거에요.

나는 사실 너를 이렇게 사랑한다. 라고 내 심장을 꺼내서 보여줄 수 있지만,

그애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은 절대 나와 같지 않다는 걸, 그애가 받아주지 않을걸 빤히 알고 있으니까..

그게 두려웠어요. 막상 그 사실을 확인당해버리면 알고있었는데도 너무 아플 거 같아서...

그래서 그저 옆에 있었어요. 친한 친구로.. 애인이랑 무슨 일 생기면 조언해주고 하는 그런 친구로요.

 

 

졸업을 하고... 저는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어요. 그냥 모른 척 대쉬해오는 사람과 사귀었으면 될텐데.

성격이 지랄맞아서 정말 사랑하는 사람 아니면 안되겠더라구요. 제 마음을 배신하는거 같아서요..

그 기지배는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사람도 많은데 진짜 억울했습니다.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 내 청춘을 쟤한테 다 쏟아야 되나... 그것도 당사자는 전혀 모르게....

진짜 허무한 생각도 많이 들었죠. 근데 또 막상 만나면 그런 생각은 사라졌어요. 정말 억울하게도요.

뒤돌아서서 집에 들어가서 씻고 누우면 이런 내 자신이 너무너무 한심하고 서러워서 눈물이 나올 정돈데,

막상 만나면 그냥 좋다고 웃으면서 받아주고 잘해주고 했어요.. 제가 생각해도 등신같을 정도로요.

 

 

그 애를 알고 4번째로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던 날, 걔가 참 많이 울었습니다.

덩달아 저도 많이 울었구요. 좋아하는 사람이 애인하고 헤어졌다고 우는데 왜 그렇게 울었는지.. 참.

그냥 눈물이 나오는거에요.. 차라리 그 사람이랑 너무 잘풀려서 확 결혼이라도 해버리지..

그래서 지긋지긋한 내 마음 밟아서 묻어버릴 수 있게라도 해주지..

왜 4명이나 만나고 헤어져서.. 내 마음을 8번이나 뒤집어서 흔들고 아프게 만드는지...

그렇게 원망하는 마음때문에 헤어진 당사자인 그 애보다 더 서럽게 울었던거 같아요.

 

 

 

4번째 사람과 헤어진 후에 거의 1년 동안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더군요.

전 한편으론 좋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슬펐습니다. 4번째 사람이 그토록 큰 의미였었나.. 하는 생각 때문에요.

그날은 그냥 아무 약속도 없던 토요일 밤이었습니다. 비디오 하나를 빌려서 집에 왔더라구요.

브로크백 마운틴이었습니다. 마침 저도 무척이나 보고싶던 영화였기에 플레이를 하고 소파에 앉았어요.

2시간 동안 푹 빠져서 봤습니다.. 마지막 대사와 여운이 참 좋은 영화였구요.

훌쩍훌쩍 울면서 눈물닦고 있는데 그 애가 말하더라구요. 넌 언제 얘기할 생각이냐고. 

밑도 끝도 없이 언제 얘기할 생각이냐니.. 되물었습니다. 솔직히 좀 떨었어요.. 아니 사실 엄청 당황했죠.

다른 영화도 아니고 브로크백 마운틴이었으니까요. 정말 당황했었어요.

역시나 맞더라구요. 제 감정 언제 얘기할거냐고 물어왔습니다.

 

 

그냥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진짜 등신처럼 덜덜 떨었어요.

뭐라고 둘러대지도 못하고 능수능란하게 넘어가지도 못하고 장난스럽게 받아치지도 못하고...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어요. 그저 그 순간 들던 생각은 전부 도망가고 싶단 거 뿐이었습니다.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는데, 아니 사실은 심장이 너무 뛰어서 손까지 덜덜 떨고 있는데..

그 애가 그러더라구요. 너 되게 서투른거 아냐고.. 사실 자기는 둔해서 그런거 잘모르는데도,

너는 숨기는게 너무 어설퍼서 티가 났다고.. 처음에는 그냥 그런거지 하고 넘어갔지만 한번 눈치를 채고 나니까 

제가 하는 모든 행동, 말투, 표정 모든것에 감정이 드러나보여서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를 정도였답니다..

 

 

정말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답니다. 처음 눈치챘을 때는 좀 껄끄러웠지만, 

어차피 나도 절대 드러내지 않으려는 눈치고 자신도 모른척 하면 괜찮겠지란 생각에 

그냥 지금까지 두고 봤었답니다. 그런데 4번째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던 날 제가 우는 모습이 마음에 남았다네요.. 

그 이후로 괜히 마음이 이상해지더랍니다. 좀 배신감이 들었다고도 하더라구요. 자신이 지금까지 착실하게 우정으로 쌓아왔던 시간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구요.

 

 

그 얘기를 하면서 울더군요. 그때까지도 전 그냥 얼어있는 상태였어요.

대체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전혀 갈피도 못잡고 있었죠. 그냥 뿅 하고 사라지고 싶단 생각 뿐이었어요.

아... 지금 생각해도 진짜 바보같았어요. 창피하기 이를데 없네요.

전 가만히 그 애를 보고 있었고 그애는 그냥 울다가 갑자기 일어나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놀래서 일단 잡았죠. 그랬더니 저한테 안겨서 더 심하게 펑펑 울었어요.

가만히 토닥이고 있자니 저도 눈물이 막 나오는거에요. 그냥 지금까지 마음고생하던게 떠오르고 그래서요..

그렇게 둘이 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근데 그거 아실까 모르겠어요. 한참 울다가 눈물이 그치고 났을 때 그 민망하고 뻘쭘한 시간......

물론 전 좋았어요. 어쨌거나 걔를 안고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그 민망한 시간.....

아, 어쨌든 그 시간도 끝나고.. 드디어 제가 말해야 되는 타이밍이 왔죠.

인생을 사는 가운데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그 타이밍... 그 타이밍이 제게도 드디어 오더라구요.

살짝 그 애를 떼어놓고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고 싶냐고... 어떻게 해주면 좋겠냐고..

그 애가 말했습니다. 모르겠다고.. 그래서 살짝 입을 맞췄습니다.

 

 

어땠을거 같으세요? 진짜 딱 그 순간 심장이 펑 터져서 죽어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7년이 넘도록 담고 살았던 사람과 내가 하나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

진짜 거짓말 하나도 안보태구요. 정말 온몸에 열이 올라서 타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살짝 입술을 떼고 말했습니다.. 느낌이 오냐고요. 그러자 다시 입을 맞춥니다. 그때 처음으로 키스를 했습니다. 

그 날이 바로 2년전 오늘이에요. 2006년 12월 22일.. 제 7년의 시간을 보상받던 날입니다.

그 애를 만난지 9년이 되었고, 사랑한지 8년이 되었고, 사랑받은지 2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하지 못할테구요.. 얼마나 힘들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전 지금 정말 행복해요... 제 옆에 그 애가 있어서요.

 

그냥 말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보답하는 순간은 꼭 찾아올거라는 것을요.

지루하고 긴 얘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읽고나니 따스해지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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