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사정사 vs 애널리스트

서울 중심부의 대형 빌딩.
손해사정사 강태주는 빽빽이 채워진 서류를 한쪽으로 밀어두고 자리에 깊숙이 기대 앉았다. 끊임없이 터지는 사고와 분쟁 속에서 손해사정을 담당하는 그의 삶은 언제나 복잡했다. 하지만 그 복잡함의 정점은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사람 덕분이었다.

“김민재 씨, 이건 단순히 금융 데이터를 분석할 문제가 아니라고요.”

태주의 앞에는 금융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애널리스트 김민재가 서 있었다. 그런데 민재는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그래서 강태주 씨의 ‘사정 능력’을 믿고 의지하고 있는 거죠. 하지만… 제가 가진 데이터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태주는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데이터를 들여다본다니, 그건 무슨 의미입니까?”

민재는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대답했다.
“저는 애널리스트니까요. 데이터를 분석하는 게 제 일이죠. 그런데, 강태주 씨 같은 사람을 볼 때마다 제가 꼭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주는 순간 그의 말 속에서 어딘가 이상한 뉘앙스를 느꼈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러니까, 단순히 사고의 원인과 손해액만 산출하면 됩니다. 쓸데없는 농담은 삼가주시죠.”

그러나 민재는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농담이라니요? 저는 진지합니다. 강태주 씨의 ‘사정 능력’을 보는 것도 제 업무에 포함된다고요. 그게 제가 애널리스트로서 이 사건에 참여한 이유 아닐까요?”

태주는 그의 말을 흘려듣고 싶었지만, 민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사실, ‘애널리스트’라는 단어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이죠…”
민재는 일부러 말을 끊으며 태주의 반응을 살폈다.
“…‘애널’이라는 부분이 특히 중요하지 않나요? 데이터를 깊숙이 파고들어야만 본질을 알 수 있잖아요.”

태주는 민재의 뻔뻔한 태도에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김민재 씨, 그만 좀 하시죠.”

그러나 민재는 물러서지 않았다.
“강태주 씨, 이건 단순히 데이터를 들여다보는 게 아닙니다. 저는 강태주 씨라는 사람을 깊이 분석하고,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음, 파악하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