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반년 전. 아니, 여름이 시작할 때 있었던 일이니까 6월달 중순. 그 즈음부터 시작된 일이다.
나는 어플을 켜고 번개를 구한다는 짧은 상태창을 올려놓고 메시지가 올 때마다 애들을 걸러 그 중 한 명과 관계를 갖곤 했다.
내 외모나 체형이 그리 우월하다는 뜻은 아니다.
난 그저 평범한 체형을 갖추고, 어디 내놔도 얼굴이 평범하다 소리는 들을 만한, 그런 사람이다.
그렇게 단발적인 관계를 맺다가, 나는 나뭇잎이 서서히 붉어지듯 느릿느릿하게 번개에 대해 회의감을 갖게 되었고, 예전에 만난 그 아이를 마지막으로 어플 자체를 지워버렸다.
그 아이는 내 번호를 악착같이 따간 다음 시도때도 없이 문자를 보냈다.
\'오늘 시간 돼?\' 라던가, \'내일 시간 돼?\' 이런 직설적이고 외설적인 문자들이었다.
나는 아예 관심을 끄고 살았다.
가끔가다 오는 문자였기에 굳이 차단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보내는 문자들은 단발적인 것이기는 해도 항상 일정 주기마다 나를 찾아오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더러운 말로만 차 있던 문자들은 점점 이상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형, 제발 연락좀 받아줘.\' \'나 차단했어?\'
분명 나를 도구로만 보는 태도는 아니었다.
뜬금없는 문자에 뭔가 가슴 한 켠이 찝찝하긴 했지만, 내 감정을 뒤흔들기에는 한참 모자란 것이었다.
그리고 한 달 뒤, 다시 문자가 왔다.
이제는 번호를 외우고 있을 정도로 자주 보아온 번호가 스크린에 뜨는 순간, 나는 문득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황급히 잠금을 풀고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나는 바위에 얻어맞은 것처럼 벙찐 표정으로 도로 핸드폰을 덮었다.
\'형도 결국 날 도구로 생각했구나? 그런거지?\'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이 애가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경험이 없어서 번개의 개념을 모르는 걸까?
그 날 서글서글하게 아이를 대해주고 밥이라도 먹여 학원까지 바래다 준 것이 지나친 호의가 된 것일까?
나에 대한 연심을 품게 될 정도로?
나는 그 날 일정을 완전히 망쳤다.
하루 종일 죄를 지은 것만 같아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애한테 분노를 실어 문자를 보내고 싶기도 하였고, 아예 욕을 한 바가지 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난 원인 모를 분노를 삭히고 아이를 완전히 잊는 길을 택했다.
가슴이 울렁거리던 충격은 몇 주 뒤에는 수면 위에 떨어진 작은 돌멩이만큼의 파문도 일으키지 못했다.
나는 바빴고 잘못한 것은 (혹은 잘못된 것은) 그 아이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지나, 폭탄과도 같은 메시지가 나를 찾아왔다.
본문에 게시한 것이 바로 그 아이가 보내온 메시지다.
문자를 받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 때 즈음, 이번엔 전화가 왔다.
울려퍼지는 전화 소리를 들으며 어머니가 물었다.
"누구냐? 왜 안받아?"
"과, 광고에요 그냥."
"그럼 그냥 거절 눌러."
"아뇨, 그냥 받았다가 끊을게요."
"귀찮게 뭘 그리 하냐."
전화를 거절한다면 아이가 더더욱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달려들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침실로 들어가 이불을 덮고 웅웅 울리는 핸드폰 소리를 가슴으로 삭혔다.
몇 번 반복되던 전화는 어느새 끊겼고, 나는 죄인마냥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5개월동안 계속되는 이 아이의 돌진을 망설임 없이 쳐낼 기력이 나에게는 없다
그렇다고 관대한 척 두 팔을 벌려 받아들이기에도 나 자신의 행동이 너무나도 부끄럽다.
동성애자인 나로서 도저히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을 일이 아니었다.
친구들에게도, 평생을 함께 갈 가족들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곳 저곳 치이다가 찾아온 곳이 생판 모르는 남들로만 가득한 여기다.
이제 나는 기나긴 이야기를 끝맺고 앞서 물은 질문의 해답을 요구하고 싶다.
당신들이라면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할 지, 객관적으로 평가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조작이다, 소설을 썼다, 관심병이다. 이런 말은 정말 듣고싶지 않다.
나는 충분히 혼란스럽고 괴롭다.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만 가득한 인터넷 상이지만, 여러분들이 제발 올바른 조언으로 나를 구제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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