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LGBT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추가한 갤러리가 없습니다.
0/0
타 갤러리 LGBT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보잉 또 사고쳤다 ㅇㅇ
- 난카이 대지진시 우리나라가 입는 피해.jpg ㅇㅇ
- 정보사령부 특수부사관(HID, UDU) 모집 ㅇㅇ
- 민생지원금 지급 첫 날부터⋯"15만원짜리 13만원에 팝니다" ㅇㅇ
- 나는 솔로 24기 영식이 옥순에게 친 회심의 드립 ㅇㅇ
- 프로틴 파우더 리뷰 치킨머신
- [금주의 신상] 7월 3주차 신제품 먹거리 모음.jpg dd
- 오싹오싹 뽕쟁이들의 성지가 된 강남 피부과 ㅇㅇ
- '여러분' 이 말이 반말인가요...?.blind ㅇㅇ
- 현재 증언 쏟아지는 한국살이 후 외모 변화.JPG ㄷ 구너
- '미국 911처럼'…이 대통령, 각종 신고번호 통합 검토 지시 ㅇㅇ
- 훌쩍훌쩍 우주생활 803일.jpg Chart_Manager
- 요즘 반응 뜨겁다는 국립중앙박물관 굿즈 신작.jpg ㅇㅇ
- 영국 토트넘 근황 뽕탐
- 나 좋아하지?.manhwa 가량
매와 관련된 이야기.jpg
우리나라에서는 백제 시대 때부터 매(鷹, 매사냥에 쓰이는 맹금류)를 기르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나 여러 사서에 따르면, 왕실과 귀족 사이에서 매를 사육하고 사냥에 활용하는 문화가 자리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매사냥은 단순한 취미나 유희를 넘어서 지배계층의 권위와 지위를 상징하는 활동이었다.고려 시대에는 매를 기르고 매사냥을 즐기는 것이 상류층 사이에서 큰 유행이었다. 왕실은 물론 귀족과 무신들까지 매사냥을 권위와 용맹의 상징으로 여겼고, 실제로 왕들은 직접 나서서 매사냥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풍습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사회적 신분과 권력을 드러내는 하나의 문화 코드로 자리잡았다.이처럼 매와 깊이 관련된 생활문화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우리말에는 매와 매사냥에 관련된 어휘들이 현재까지도 풍부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매는 본디 야생성이 매우 강한 맹금류이기 때문에, 아무리 훈련을 시켜도 사냥 도중 도망가거나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매가 도망쳤을 때 다시 돌려받을 수 있도록 매 주인의 이름과 주소를 적은 표식을 매의 꼬리에 달았는데, 이 표식을 ‘시치미(矢䎎尾)’라고 불렀다.원 간섭기에 접어들면서 고려는 훈련된 매를 원(몽골) 황실에 조공으로 바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잘 길들여진 매는 매우 귀하고 값비싼 물건이 되었다. 그만큼 훈련된 매 한 마리의 가치가 수 마리 말이나 값진 비단에 해당될 정도로 높아졌으며, 매매와 밀수가 성행하기도 했다.이런 상황에서 타인의 매를 훔쳐 자기 것처럼 속이는 사례도 잦았고, 그 수법 중 하나가 바로 꼬리에 달린 ‘시치미’를 몰래 떼는 행위였다. 시치미가 없으면 주인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도둑이 시치미만 떼면 “내 매다”라고 주장해도 입증이 어려운 것이다.이처럼 ‘시치미를 떼다’는 말은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자기가 해 놓고도 “내가 안 했어”라며 딱 잡아떼는 태도를 뜻하는 관용어로 자리 잡았다.‘매섭다’(또는 옛말 ‘매스럽다’)라는 표현은 매의 눈빛처럼 날카롭고 사나운 인상이나 성격을 빗댄 말에서 유래했다. 매는 사냥할 때 목표물을 응시하는 눈빛이 매우 예리하고 위협적이어서, 고대부터 맹수 못지않은 존재감을 지닌 동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매의 특성은 인간의 언어 속으로 스며들며, 날카롭고 위압적인 태도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자리잡았다.‘매몰차다’라는 말은 “매가 꿩을 몰아 끝내 냉혹하게 차버린다”는 데서 유래한 표현으로, 인정머리 없고 매우 쌀쌀맞으며 냉정한 태도를 의미한다. 이때의 ‘차다’는 발로 걷어찬다는 뜻으로, 매가 사냥감인 꿩을 거침없이 제압하는 모습에서 감정 없이 모질게 대하는 태도를 빗댄 것이다.‘매달다’와 ‘매달리다’라는 말은 본래 매를 길들이는 과정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매는 사냥에 앞서 인간에게 조련되기 위해 일정 기간 구속되는 훈련을 받는다. 이때 조련사는 가느다란 줄(다리끈)을 매의 발에 묶어, 함부로 날지 못하게 하며 인간의 존재에 익숙해지도록 한다.하지만 매는 야생성이 매우 강한 맹금류이기 때문에, 줄에 묶인 채 가만히 있지 않고 발버둥치며 하늘로 날아가려 안간힘을 쓴다. 이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 바로 무언가에 붙들려 떠나지 못하는 상태, 혹은 구속된 채 애달프게 매여 있는 상황을 뜻하는 ‘매달다’, ‘매달리다’라는 말이다.매는 야생성이 강해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새였다. 조련사의 인내와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매는 사람의 뜻대로 움직이기보단 스스로의 본능에 충실하려는 성향을 끝까지 고집스럽게 드러내곤 했다.이런 특성 때문에 예로부터 사람들은 매처럼 말을 안 듣고 자기 고집만 부리는 사람을 빗대어, ‘응고집(鷹固執)’, 즉 매처럼 완고한 고집이라 불렀다. 여기서 ‘응(鷹)’은 매, ‘고집’은 굳게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는 성질을 뜻한다.시간이 흐르면서 이 말은 소리 나는 대로 변화하여 ‘옹고집’이라는 말로 굳어졌고, 자기 의견만을 고수하며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오늘날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다매를 길들일 때 조련사는 단지 먹이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매의 깃털을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서서히 신뢰를 쌓아간다. 이때의 손길은 거칠지 않고 매우 섬세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이렇게 매를 다루는 섬세한 행위를 표현한 것이 바로 ‘매만지다’라는 말의 유래다. 여기서 ‘매’는 맹금류인 매(鷹)를 뜻하고, ‘만지다’는 조심스러운 접촉을 의미한다.또한 매의 성질은 날카롭고 사나우나, 그와 대조적으로 깃털은 유난히 보드랍고 매끈하다. 이 부드러운 촉감에 대한 인상이 언어에 반영되어, 거칠거나 울퉁불퉁하지 않고 매끈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매끄럽다’는 표현이 생겨났다.매가 사냥에 실패했을 때, 먹잇감을 놓친 뒤 하늘에서 바람을 맞으며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묘사해 바람맞다 바람맞았다라고한다일상에서 ‘바람맞다’는 기대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헛수고를 했을 때 느끼는 허탈감과 실망감을 뜻하는데, 이는 매가 사냥 실패 후 바람을 맞으며 재도전하는 모습과 인간의 좌절과 재기를 은유적으로 연결한 것이다‘시큰둥하다’라는 말이 조련된 매가 꿩을 앞에 두고도 별다른 관심이나 행동을 보이지 않는 모습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는 정말 흥미롲다이 표현은 본래 ‘매가 사냥감 앞에서 시큰둥한 태도’를 묘사하는 말에서 시작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무심하고 냉담한 태도를 나타내는 관용어로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또한 이 표현은 단순히 무심한 태도를 넘어서, 내면의 냉담함이나 관심 부족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데 사용되며, 상대방의 기대에 못 미치는 반응을 비판하거나 실망감을 표현하는 데도 쓰인다- dc official App
작성자 : 네거티장애고정닉
카이진 신사(사세보) 방문기
https://www.google.com/maps/d/edit?mid=19Q5FxfS-G9BuISggoe2tstCptRM7r6M&usp=sharing 힙스팟 찾는 여행기 모음 - Google 내 지도규슈의 힙하고 재밌는 곳을 찾아다니는 여행기입니다. 유명한 곳이라도 힙하기만 하면 만사 OK.www.google.comhttps://gall.dcinside.com/m/nokanto/559994 가라쓰군치(가라쓰) 방문기② - 일본여행 - 관동이외 마이너 갤러리 재밌게 마츠리 첫날을 보낸 뒤, 후쿠요시의 숙소에서 일어났다. 생각있으면 아래 글 읽고 이 숙소 가보삼. 저한테는 정말 좋은 추억밖에 없는 곳임. 나갈 때도 마츠리 구경 잘하라는 주인장의 격려를 받으며 나가니깐 ㄹㅇgall.dcinside.com가라쓰군치를 즐긴 다음날... 숙소 때문에 무려 일주일 동안 3번이나 이마리를 재방문하게 됐다. 원래는 사세보까지 내려가서 숙박을 해볼 생각이었는데, 축제가 끝나고 막바지 기차를 타고 거기까지 가기엔 마츠우라 반도의 교통망은 너무 복잡하게 엉켜 있어서 환승만 하다가 중간에 막차가 끊길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냥 익숙한 중간 지점에서 밤을 보내고 첫차를 타고 내려가기로 한 것. (이마리에는 사세보까지 내려가는 시내버스가 있다) 터널 시장. 나도 처음엔 왜 터널(방공호) 시장인지를 몰랐어서 그 느낌이 잘 드러나는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는데, 사진에 보이는 시장 한칸 한칸이 전부 방공호였다고 한다. 직접 가보면 시장 블럭이 언덕 비탈로부터 돌출되어 있는 것도 보여서 이해하기 쉬울 것... 시장이 열려서 내부가 보일 때 이런 면을 관찰하기 좀 더 쉬운데, 내부가 동굴 같이 비좁고, 터널 같이 동그랗다. 소박한 느낌은 좋은데 호불호는 갈릴만한 느낌이다. 히라도의 도주가 에도로 올라갈 때 지났다던 '히라도자카'. 사세보가 중간에 배경으로 나온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습격!! 외계인 덩덩이>의 성지순례로 나름 유명한 듯? 사세보는 여러모로 나가사키랑 비슷한 면이 많은데, 경치도 비슷하다. 언덕에 빼곡히 박힌 건물들... 가끔씩 보이는 천주교 교회들,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항구, 바쁘게 지나다니는 군함들... 두 도시 간의 주요한 차이는; 주일미군의 주둔 vs 원폭의 피폭 여부인데, 이것 때문에 도시의 성향이 살짝 다르다는 것도 재밌는 점. 찰나의 사세보 관광도 끝났겠다 목적지로 이동해보자. 하우스텐보스가 강 건너에서 보이는 하에노사키역. 여기서 (포장해둔 사세보 버거를 점심으로 먹고) 30분 정도 걸어가면... 무큐도(무궁동)가 있다. 이 여행 동안 틈틈히 규슈 전역의 동굴들을 들리게 됐는데? 이곳도 그 중 하나. 이곳의 정체는 방공호다. 인근 미야 소학교에서 지은 건데, 1943년부터 전황이 악화되면서 교장의 독단으로 교직원들과 학생(동향의 중고등생들도 일부 참여)들을 동원해 파낸 방공호다. 일제 주요 군항인 사세보에 대한 공습이 시작되면서 실제로 병원/피난처로도 사용됐다고. 방공호에는 지하수, 환기구, 부엌, 강당, 어진영의 자리 등등 당시 학교로서 필요한 기능이 모두 갖추어져 있음. 학교 건물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유사시에도 교육을 진행하겠다는 교장의 의지와 학생들의 노력이 빛난다...고 설명은 하지만... 어떤 한편으로는 그 시대 파시즘의 일면을 무시할 수가 없던 곳임. 막상 얘기를 들어보면 교장이 순수히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한 느낌도 아니고, 아이들도 (전쟁에 대한 공포도 있겠지만) '의무적으로' 방공호를 파냈다는 점이, 그 시대만의 모순이 설명 속에 침전되어 있는 게 느껴졌다. 지금은 '전쟁 때문에 초등학생들이 이런 시설을 만들어야 했다니!'나 '민간에서 만들었음에도 생존을 위한 시설이 모두 갖추어진 방공호! 대단하다!' 같은 느낌에 초점이 잡혀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뭔가 중요한 걸 빼먹은게 아닌가 싶은 그런 느낌. 종전까지도 방공호의 확장은 계속 됐다. 사진은 2층을 파내던 흔적. 방공호는 곡괭이와 수레만으로 파냈기 때문에 곳곳에는 '찍혀있는' 자국이 눈에 띄기도 한다. 당시 공사에 참여했던 초등학생분들은 이제 졸수가 됐다. 일부는 무큐도에 상주하며 무료 가이드도 하고 계시니 관심이 있다면 방문해보자. 길 건너 보이는 미야 소학교. 버스를 타고 오늘의 진짜 목적지로 가보자. https://m.dcinside.com/board/nokanto/435945 나가사키 반수중신사 방문기 - 일본여행 - 관동이외 마이너 갤러리https://m.dcinside.com/board/nokanto/421997 하우스텐보스 근?처 힙한 장소 모음 - 일본여행 - 관동이외 마이너 갤러리https://maps.app.goo.gl/rp1dkQzyqE7zm.dcinside.com오늘의 목적지는 바로 이 여행기에서 소개된 가와타나조 미쓰고의 '카타지마 어뢰 발사시험장 터'와 '카이진 신사'를 가보는 것. 이번 탐험의 주요 관건은 카이진 신사로 들어갈 수 있는 '간조'에 맞추는 것. 16시가 간조였기 때문에 오후까지 시간을 떼워온 것이다. 이런 길가의 조그마한 신사들이 제일 좋음 ㄹㅇ루다가... 오무라만 특유의 어수선함에 취한다... 20분 정도 걸어가니 보이기 시작한 목적지. 저곳이 '어뢰 발사시험장 터'다. 이 날은 문화의 날(11월 4일)이었기 때문에 방문객이 좀 있었다. 본관. 내부에는 나무 한 그루가 건물을 꽉 채우며 자라고 있어서 폐허 덕후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시설 근처에서 눈에 띄던 해파리들. 곧 바다에 들어가야 하는데 해파리가 보이니 조금 불안했었음... 콘크리트칠도 벗겨져 가는 헐벗은 건물이 자연과의 묘한 불일치를 보이는 덕에 멋진 사진이 나오는 곳이다. 사실 좀 더 구경하고 싶었는데 관광하러 온 부자가 첨탑에 완전히 눌러앉은 데다가 간조까지 시간도 얼마 없었기 때문에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물이 아무리 얕아도 1km 정도를 수중보행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간조 전후로 1시간 정도는 여유를 잡아놓는게 맞기 때문. (이때는 조금이라서 대부분의 구간의 물이 무릎까지 올라왔지만, 사리에 가면 수위가 발목까지 젖는 정도로 내려간다. 맞춰서 가는 걸 추천) 다시 마을 입구로 와서 마지막 목적지인 카이진 신사로 향하기 시작했다. 진입부터 쉽지 않음... 이렇게 중간중간에 쉴 수 있는 뭍도 있지만, 무너져내린 길도 있어서 하반신이 젖는 건 불가피했음. 은근 힘들었다. 저기 좌측 수평선에 작은 구조물이 보이는가? 여기가 중간 지점 쯤이고, 저기까지 더 걸어가야 한다. 마지막 고개. 계획을 짤 때는 이 방파제 위에 있는 오사키 반도의 캠핑장이나 공원 등이 있어서 길을 억지로 이어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틀린 생각이었음. 아래에서는 가파른 절벽에 숲만 무성했고 아무 것도 안 보였다. 어느덧 어뢰 발사시험장이 정면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만(湾)을 아치 모양으로 둘러서 기어코 반대편에 온 것. 이때 ㄹㅇ힘들었음ㅠㅠ... 어뢰 발사시험장에 있던 사람들한테는 내가 보였을까? 지나가던 낚시배는 나를 보았을까? 내가 보였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드디어 도착한 카이진 신사... 상상한 그대로의 모습이라서 너무 좋았음. 보통은 만조에 이런 구도로 배를 타고 들어오는 신사다. 이런 유형의 신사는 해안이 굴곡진 곳의 어촌이라면 생각보다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간조 때 절묘하게 얕아져서 도보로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곳의 특징이라면 특징인 것. 신사라기 보다는 암굴에 가까운 형태. 신체나 신상이 별도의 사당도 없이 모셔진 형태는 일단 현재까지 규슈에서는 본 적이 없음. '신사'에는 신상이 모셔져 있다. 자세한 연원은 알려진 바 없지만, 오무라 만에서 하리오세토 해협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선박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신사라고 함. 오묘한 접근 방법, 독특한 형태 때문에 기억에 깊히 남은 신사다. 추억은 고생스러울수록 잘 남는다 했던가? 공교롭게도 이 신사 너머로는 수심이 급격히 깊어져서 해안선을 더 따라가볼 수는 없다. 돌아가는 길. 이제 막 간조 최저치를 찍었기 때문에 아직 물이 차려면 멀었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은 여유로웠다. 미끄러운 바위가 많아서 넘어질 뻔한 적이 많았으니 조심할 것. 그렇게 오구시고역까지 무사히 도달! 이 다음 날은 배를 3번이나 타야 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숙소에 일찍 들었다.
작성자 : 엉겅쿤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