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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강도 높은 검찰 개혁에 검사들 반발 전혀 없어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줄리 무혐의 처분했던 검레기 새끼들 꼬무룩 클라스 보소ㅋㅋㅋㅋㅋ- 검찰 쓰나미 앞 반성문 쓴 검사장들 "변해야한다"…내부비판도(종합신주류' 임은정 "우리 모두 잘못"…정진우 "고칠 건 고쳐야"·김태훈 "국민 신뢰 잃어"형사사법 틀 대수술…"국민 고통받은 수사·기소 분리에 침묵" 임은정 입장촉구 비판글서울=연합뉴스) 김다혜 홍준석 최원정 기자 = 이재명 정부의 고강도 검찰 개혁이 가시화하는 가운데 새로 취임한 주요 지검장이 일제히 "자성해야 한다", "변해야 한다"는 일성을 밝혔다.수사·기소 분리를 뼈대로 한 정부의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 속에 지난 과오를 돌아보고 인정하면서 변화에 발맞춰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취지다.여권에서 분출하는 검찰청 폐지, 검찰 권한 축소 등에 반발하기보다는 개혁 필요성에 공감하는 듯한 입장을 낸 것이어서 이들의 목소리가 검찰 조직 전반에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주목된다.새 정부의 검찰 운용에서 핵심 역할을 할 '신주류'로 떠오른 주요 검사장인 점에서 공통점을 갖지만 이들의 입장은 큰 틀의 총론에서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면서도 구체적 방법론이나 강조점, 발언 수위 등 각론에서는 조금씩 결이 다른 모습을 보였다.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의 정진우(사법연수원 29기) 신임 지검장은 4일 취임사에서 "검찰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활발한 개혁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개혁 논의의 출발점이 된 우리의 검찰권 행사에 대해 스스로 솔직하게 되돌아보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하며, 국민들의 시각에서 검찰이 변해야 할 것은 변하고 고쳐야 할 것은 고쳐야 할 것"이라고 했다.검찰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자는 일반론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검찰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그러면서도 "반면에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과 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정확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과오 반성'을 꺼내 들면서도 검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할 부분도 언급해 '검찰 미래' 쪽에도 상당한 비중을 할애했다.봉욱 민정수석이 대검찰청 기획과장이던 시절에 기획조정부 소속 검찰연구관으로 일하고 법무부 검찰국에서 국제형사과장·공안기획과장을 맡는 등 기획 분야에 밝은 정 지검장의 스타일도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특정 수사를 맡아 특별히 강한 인상을 남겼다기보다는 무색무취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기획통의 경우 검찰의 중립성을 강조하고 조직의 미래를 다루는 업무를 많이 맡아왔다는 점에서 이날 발언에도 그런 스타일이 녹아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전임자들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해 이끌어줬다"는 정도로 언급했고, '공정한 검찰'을 지적하면서도 특정 사건을 거론하기보다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정확히 판단하고, 그 판단을 명확히 선언해 줘야 한다", "'진실의 힘'을 믿고 '법과 원칙'에 따라 자신 있게 결정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는 것이 검찰 역할" 등 원칙은 명확히 밝히면서도 절제된 톤으로 입장을 개진했다.내부비판자'로서 검찰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임은정(30기) 신임 서울동부지검장은 직설적이고 강한 어조로 자성을 촉구했다.임 지검장은 이날 취임사에서 "대개의 검찰 구성원이 감당하기 버거운 업무를 감당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특정인과 특정 집단에 대한 표적 수사가 거침없이 자행됐고, 특정인과 특정 집단에 대한 봐주기가 노골적으로 자행된 것 역시 사실"이라고 말했다.그간의 표적·선택적 수사, 제 식구 감싸기와 봐주기 수사를 인정하자면서 "우리는 검찰권을 사수할 때 집단행동도 불사했고 검찰의 잘못에는 침묵했다. 불의 앞에서의 침묵과 방관은 불의에의 동조"라며 "우리 모두 잘못했다"라고 하기도 했다.김학의 전 법무차관 긴급 출국금지 사건과 검찰 내 성추행 진상규명 조사, 심우정 검찰총장의 퇴임사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출근길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시절을 지적하고 월성원전 수사, 통계조작 의혹 수사 등을 거명했다.임 검사장은 재판 담당 공판검사 시절 주요 사건 구형에서 소신 행동해 주목받았고, 문재인 정부 때 법무부 감찰담당관을 지냈다.김태훈(30기) 신임 남부지검장도 이날 취임사에서 "무엇보다 아픈 부분은 국민에게서 중립, 공정한 기관이라는 신뢰를 잃었다는 지적"이라며 "신뢰를 되찾는 첫걸음은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라고 말했다.기획통인 김 지검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대검 기획과장, 법무부 검찰과장 등 요직을 거쳐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중앙지검 4차장까지 맡기도 했으나 윤석열 정부에선 고검 검사로 전보돼 한직을 걸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던 이력도 알려져있다.그는 "국민 신뢰를 되찾기 위해 성찰하는 자세로 검찰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아픈 부분은 국민들로부터 중립, 공정한 기관이라는 신뢰를 잃었다는 지적"이라며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 소임을 다하는 것 외에 신뢰를 되찾는 지름길은 없다. 어렵고 먼 길이고 험난하고 오래 걸리겠지만 다른 방법은 없어 보인다"고 했다.김 지검장은 "검찰력은 범죄로부터 피해자 인권을 보호하고 수사 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탄생했다"며 검찰 제도의 태동 배경을 언급하면서 인권보호 관점에서 업무를 해달라고 당부했다.프랑스에서 탄생한 검찰 제도는 기소하는 소추권자가 재판까지 맡는 규문주의 형사소송 구조의 폐해를 극복하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에서 도입됐다. 경찰을 통제하고 법원의 권한 집중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아 검찰권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수사와 기소 권한을 모두 가진 검찰의 기소권 남용, 부실·편파 수사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이들은 새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토대로 구성원을 설득하는 목소리를 낸 것으로 해석된다.다만 내부에는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검찰 개혁에 우려와 반발도 적지 않아 호응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한편 임 지검장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검찰 내부에서 나왔다.장진영(36기) 수원지검 부장검사는 이날 내부망 이프로스에서 "국민의 과반 상당이 임 검사장님을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정의로운 검사로 알고 있는 듯하다. 저 역시 그리 믿고 싶다"며 "그러나 근래 수년간의 행보와 행적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다"고 지적했다.그러면서 "2020년 수사권 조정 이후 수많은 피해자가 '사건 지연'과 '불편하고 복잡한 절차'들로 불편을 겪고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이에 대해 단 한마디의 의미 있는 발언을 한 바가 없고, 오히려 국민들의 불편과 고통이 더욱 심해질 수 있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찬성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그는 "민생범죄로 피해를 입은 무수히 많은 국민이 현실의 수사절차에서 더 불편해지고 더 고통받게 될 수사와 기소의 분리 법안에 검사로서 침묵하거나 앞장서 '국민을 위하는 법안'이라며 호도하고 국민을 속이는 모습 또한 참담한 후배가 한두 명이 아닐 것"이라며 검찰개혁 방향 등에 분명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이날 임 지검장은 첫 출근길에 윤석열 전 대통령을 겨냥해 "한때 존경했던 검찰 선배가 내란 수괴로 조사받는 모습이 참담한 후배가 한두 명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는데, 이 표현을 가져와 비판한 것이다.검찰 쓰나미 앞 반성문 쓴 검사장들 "변해야한다"…내부비판도(종합) |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50704076051004 검찰 쓰나미 앞 반성문 쓴 검사장들 "변해야한다"…내부비판도(종합) | 연합뉴스(서울=연합뉴스) 김다혜 홍준석 최원정 기자 = 이재명 정부의 고강도 검찰 개혁이 가시화하는 가운데 새로 취임한 주요 지검장이 일제히 "자성해야...www.yna.co.kr실베NONO
작성자 : ㅇㅇ고정닉
F1 엔진의 역사에 대해서 시기별로 알아보자 Part 1
꺼무위키 F1 레이스카 문서 수정하다보니까 글로 쓸만한 분량이 나와버려서 정보글로 써봄레퍼런스로는 영문 위키랑 각 시즌 기록들, 제조사 홈페이지 글 일부 참고했음1950-1951F1 월드 챔피언십이 최초로 발족되었던 이 시기에는 2차 세계대전이 열리기 직전 시기인 1931년부터 1939년에 존재했던 F1의 전신 격 쯤 되는 AIACR 유로피언 챔피언십에서 사용하던 "voiturette" 라고 부르는 규정을 그대로 사용했음voiturette는 프랑스어로 소형 자동차라는 뜻인데, 유로피언 챔피언십에서 달리던 최상위 클래스인 그랑프리 차들보다 한 단계 낮은 등급이었음. 지금의 F1-F2 관계보다는 하이퍼카, LMP1-LMP2 간 관계에 더 가까운 족보임4.5L 자연흡기 엔진과 1.5L 슈퍼차저 엔진이 허용됐는데 두 시즌 모두 1.5L 직렬 8기통 슈퍼차저 엔진을 단 알파로메오 158, 159 알페타와 주세페 파리나가 1950, 후안 마누엘 판지오가 51년에 우승함1952-1953그런데 이 당시 F1은 전쟁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았던 시기였고 아무리 전쟁 이전 voiturette 규격의 차라고는 하지만 접근성이 좋지 않아서 참가율이 낮았음. 그래서 52, 53 F1 시즌은 F2 차량 규격으로 레이스를 치르게 됨지금으로 따지면 WEC에서 하이퍼카가 전면 폐지되고 LMP2가 최상위 클래스가 되어버린 느낌 (근데 오레카 독점은 아니고 제조사는 좀 많은)당시 F2 엔진 규정으로는 2리터 자연흡기 엔진이랑 500cc 슈퍼차저 엔진이 허용됐는데 당연히 500cc 슈퍼차저 엔진을 만든 제조사는 거의 없었음이건 52, 53년에 압도적으로 챔피언에 오른 알베르토 아스카리가 몰았던 페라리 500 F2도 예외는 아니어서 2.0 직렬 4기통 엔진을 달고 있었음참고로 53년 최종전 이탈리아에서는 553 F2라는 신차를 몰았는데 걔도 2.0 4기통이었음 (사진은 500 F2)1954-1960F1 기술 규정을 대폭 수정해서 다시 부활시킨 54년임자연흡기 엔진의 최대 배기량이 2.5L까지 확 줄어들고 슈퍼차저는 750cc가 최대였으며, 슈퍼차저 엔진을 만든 제조사는 단 하나도 없었음. 차들의 최대 출력은 290마력 내외 수준메르세데스가 그랑프리 시대 이후로 F1에는 처음 참가했던 때도 54시즌인데, 압도적인 성능의 W196에 판지오까지 태워서 55년까지 내리 우승함. 물론 6월 르망 참사 때문에 이후로 F1에 다시 복귀하기까지는 55년이나 걸렸음1961-1965과급기가 전면 금지되고 1.5L 자연흡기 엔진만이 허용되면서 엔진이 작아지자 리어 엔진 레볼루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엔진이 작아지고 출력이 낮아지니까 경량 소형 포뮬러 차들에 익숙하던 영국 중소 팀들이 알파로메오나 페라리한테 덤비던 시절도 이 때임샤크 노즈로 유명한 페라리 156 F1이 이 규정이 도입된 첫 해인 1961년에 압도적으로 컨챔을 땄음 (드챔은 필 힐)1966-1988근데 이때쯤 되니까 좀 문제가 생김당시 기술 규정이 엄청나게 느슨했던 스포츠 프로토타입들이 3리터 V12, 5리터 V8같은 엔진을 등에 업고 F1의 속도를 능가하기 시작했음하이 난 7리터상황이 이러니까 FIA는"야 100미터 스프린트 선수가 마라톤 선수보다 느린게 말이 됨?"을 시전하면서 F1 차들의 속도를 일부러 증속시키기 위해 엔진 배기량을 3.0L까지 확 늘려버리고 1.5L 과급 엔진까지 부활시키는데이건 2017년에 이뤄졌던 공기역학 기술 규정 개정과 더불어서 FIA가 F1의 속도를 일부러 빠르게 하려고 했던 단 두개의 사례 중 하나임하여튼 이 규정에 힘입어서 많은 제조사들이 3리터급 엔진 개발을 시도했는데 마냥 순조롭진 않아서 처음엔 코벤트리-클라이막스의 2.0 V8 엔진이 널리 사용되던 중,1967년에 갑자기 대박 히트 상품이 나옴포드-코스워스 DFV라고 하는 3.0 V8 자연흡기 엔진은 진짜 미친 가성비로 나왔고 60년대 후반에는 페라리를 제외한 모든 팀이 이 엔진을 썼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음이 엔진은 아직도 F1 엔진 우승 횟수 3위에 랭크되어 있을 정도로 널리 쓰였고 승률도 엄청 높음그런데 이놈의 터보 엔진은 어디로 사라졌냐?60년대에는 기술이 딸려서 터보 엔진에 투자할 만한 이유도 관심도 재정도 없었음터보 엔진이 F1에서 첫 선을 보인건 1977년의 일임르노가 V6 터보 엔진을 데뷔시키고도 한동안은 터보랙과 신뢰성 이슈에 시달리면서 자흡 엔진들한테 따잇 당하고 노란 찻주전자라며 놀림받는 날들이 한동안 이어졌지만1979 프랑스 그랑프리에서의 첫 우승을 시작으로 다른 제조사들도 터보 엔진의 가능성을 서서히 알아보기 시작했음페라리는 1981년에 터보 엔진을 데뷔시켰고, 당시 브라밤의 오너였던 버니 에클스톤은 BMW를 설득해서 터보 엔진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까지 하면서 82년을 시작으로 엔진을 공급받기 시작함이후 83년에는 알파 로메오와 포르쉐, 심지어는 DFV 엔진으로 최전성기를 달리던 코스워스까지 터보엔진 개발 열차에 탑승하면서 터보 유행은 급물살을 탔음급기야 83시즌, 터보 엔진을 장착한 브라밤의 넬슨 피케가 드챔, 페라리가 컨챔을 하면서 터보 엔진이 양대 챔피언십을 모두 석권해버림. 이후 85년에는 모든 팀이 터보 엔진을 장착하면서 대 터보 시대가 열렸고여기서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86년까지는 과급압에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내구성만 확보하면 그만인 퀄리파잉 세션에서는 연료에 톨루엔까지 첨가한 일명 핫랩 전용 수류탄 엔진으로 모든 제조사가 1000마력을 넘기면서 출력 무한경쟁이 시작됨BMW는 자기들의 직렬 4기통 엔진에 부스트를 5.5바 씩 걸어서 1400마력, 혼다는 V6로 1200마력을 넘기는 등 전례 없는 수준으로 평균 출력이 올라갔고, 어느정도 내구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레이스 트림에서도 당시 잘나가던 혼다나 포르쉐같은 제조사들은 거의 1000마력을 뽑아내고 있었음 (물론 BMW같은 애들은 뻥뻥 터져나감)브라밤 B186. BMW M13 엔진을 달고 퀄리파잉에서 1400마력을 냈음이런 출력 무한 경쟁에 팀들의 연간 예산까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고 있었고 자연흡기 엔진의 경쟁력은 완전히 빈사 상태가 됐음그래서 이듬해 87년부터는 터보 엔진의 과급압은 4바, 연료 탱크 크기는 150L로 제한해버리고 자연흡기 엔진의 배기량은 3.5L까지 키우면서 자흡 버프를 해줬고포드-코스워스는 자신들의 황금기를 재연해보겠다면서 DFV를 기반으로 3.5 DFZ V8을 출시했는데DFZ의 최고 출력은 600마력이 채 안되는 수준이었고, 혼다와 포르쉐 엔진, 윌리엄스와 맥라렌의 터보엔진 쌍두마차 체제는 지속되었음88년에는 터보 엔진의 과급압을 2.5바까지 제한하면서 이젠 진짜 터보 엔진과 자흡 엔진의 비대칭 대결을 만들어보고자 했던 FIA였지만혼다는 이걸 비웃기라도 하듯이 터보 시대의 마지막 해를 터보 시대 중 가장 지배적인 해로 만들어버림많이들 알다시피 혼다 RA168E가 달려있는 맥라렌 MP4/4는 프로스트와 세나를 태우고 88시즌 16개 그랑프리 중 15번 우승했고 컨챔은 당연히 맥라렌, 드챔도 역시 맥라렌을 타는 세나가 가져감심지어는 맥라렌이 유일하게 우승하지 못한 이탈리아 그랑프리의 우승도 터보 엔진을 쓰는 페라리가 차지해버림과급압을 2.5바까지 낮춰버렸음에도 터보 엔진들의 최고 출력은 여전히 700마력에 달했고, 자연흡기 엔진들의 출력 상승은 지지부진했음이 22년간은 자연흡기, 터보 엔진을 모두 허용했던 시기임에도 시간이 흐름에 따른 기술의 발전이 유행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시임1989-1994혼다와 맥라렌의 독주, 끊임없는 개발비 상승으로 인해 FIA는 89년부터 터보 엔진을 전면 금지하고 자연흡기 시대를 다시 열었음이후 2014년에 V6 터보 하이브리드가 도입될 때까지 26년간 터보차저는 사용되지 않았고혼다는 여전히 압도적이었음같은 엔진을 다양한 컨셉트로 튜닝하여 여러 개 만든 후, 그 중에 가장 우월한 놈을 골라 차량에 장착했던 진정한 쇼 미 더 머니를 선보였던 혼다는 역시나 89년에도 RA109E V10을 맥라렌 MP4/5에 장착해 컨챔, 프로스트가 드챔을 땄고,르노의 RS1 V10, 페라리의 035/5 V12가 그 뒤를 달리며 상위권 그룹이 형성됨중, 하위권에는 주로 포드-코스워스 DFR V8이 자리했는데 혼다, 르노, 페라리와 비교해 2,000rpm가량 낮은 회전수, 거의 100마력이 후달리는 출력 차이로 인해 그들을 넘는 건 마이 힘들었음이외 저드, 람보르기니, 야마하 역시 하위권을 형성하는 제조사들이었고,1991년에 들어서자 상위권 제조사들은 슬슬 700마력을 넘겨가는데 중하위권의 엔진들은 600마력 중반을 찍는 것도 힘겨워하고 있었음특히 혼다의 RA121E V12는 예선 버전은 거의 780마력을 뽑아내면서 여전히 르노, 페라리보다 확실히 앞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1992년에는 혼다의 경쟁력이 하락하기 시작하더니 신기술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르노와 윌리엄스에게 양대 타이틀을 모두 넘겨주게 됨1992년을 시작으로 1993, 1994년까지 르노의 V10은 800마력을 넘기면서 3.5L 자연흡기 시대가 끝날 때까지 3연챔을 달성했음한편 중하위권에서 점차 경쟁력을 확대해가던 포드는 신형 EC 제텍-R V8을 베네통에게 공급하며 슈마허가 본인의 첫 드챔을 달성하는 데 일조함파트 2에서 계소크
작성자 : 유대인방역담당자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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