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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24년 8월 스기타 日本橋蛎殻町 すぎた 후기
24년 8월 런치로 방문한 스기타 런치로 방문해 템포도 느긋하니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자질구레한 설명은 필요 없는 곳이니 바로 스타트 우부스나 호마세 4농양 자리에 앉으면 음료/주류 주문을 받는데 니혼슈 청하니 한국인 맞춤(?)일까 우부스나가 나온다 박과류, 참외의 녹진한 단맛과 경쾌한 탄산이 느껴지면서도 끝은 깔끔하게 떨어진다 복잡한 맛은 없지만 식중주로 좋고 컨디션도 굿 밖에 노출되어있는 시간이 짧고 오스스메로 빠르게 회전하니 바틀 컨디션이 상당히 좋을 수밖에 없는듯 에다마메 스기타라고 에다마메가 크게 다른 건 아닌데 간이 좋고 촉촉하니 자연스레 안주가 된다 아와비 (아오모리산) 부드러운데 씹는 맛도 적당히 있는 야들한 식감 전복맛과 함께 게우소스를 발라먹는듯 내장향이 굉장히 강하게 난다 전복에서 압도 당하는 건 처음 미루가이 부드럽게 사각거리는 식감이면서 은은한듯 선명한 단맛 가츠오 (홋카이도산) 두툼하게 보이는 지방층에서 알수 있듯 산미는 강하지 않고 지방의 풍미가 상당했다 이소지만 준긴55 이소지만은 드라이하다는 선입견이 있어 찾아마시진 않지만 나왔으면 마셔야지 이소지만이라길래 흠칫했지만 단맛도 있고 오히려 좋아!? 카기 (미에산) 우유맛, 내장맛 녹진하고 짭짤하면서도 야쿠미 때문에 스파이시 맛도 약간 비싼 물은 아니지만 오가타도 그렇고 고오급 식당들은 후지 미네랄워터 쓰는듯!? 호타테 이소베마끼 결대로 찢어지는 호타테도 단맛이 출중하지만 그보다 김이 너무 맛있다 김맛이 강한가 싶다가도 밸런스를 찾아가니 균형감도 좋다 차완무시 차갑게 서브하고 안에는 앞서 나왔던 무시아와비의 자투리가 들어있다 여름이라 차갑게 서브한듯 한데 에어컨 바람도 나오는 실내에서 차갑게 서브하는 건 글쎄... 안에 있던 전복은 역시나 맛있었지만 차가운 계란찜을 먹는 건 약간은 고역이었다 갈치 절묘하게 구워낸 갈치는 이렇게 기름이 많은 생선이었나 싶을 정도로 기름이 축축하게 흐르면서 단맛도 훌륭. (이 아래부터는 추가한 츠마미) 엔피라 카스즈케 식감은 오독과 서걱 사이인데 맛이 그냥 설탕 뿌린 버터 사실 그냥 엔가와가 더 궁금하긴 했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 홋키가이 패류는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편 간도 적당하고 바다맛도 잘 느껴지고... 안키모 / 우니 츠쿠다니 / 아와비 키모 미소즈께 / 카즈노코 안키모 외 모듬은 굳이 주문해야하나...싶은 것들이지만 초행이니 전부 주문 간이 세다는 말들도 있는데 술안주하기 좋은 간 정도... 우니 츠쿠다니는 바나나맛이 인상적이었고 전복 내장 미소절임은 쓴맛 없고 짠맛도 적은 무난한 맛 안키모, 아라마사 히노토리 호평이 워낙 많은 안키모지만 완전히 다른 안키모는 아니고 소스와 함께 단맛이 매우 강한 편 안키모의 녹진한 맛이 히노토리에 약간 있는 산미를 눌러주면서 서로 단맛이 시너지를 내며 폭발한다 가리는 가리고... 니치니치 아키츠 야마다니시키 니치니치는 아워라이스필드 외엔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식중주로는 너무 넓은 범용성을 보여주니 미워할 수가 없다 싱코 싱코가 나오는 시즌엔 고하다보다 싱코가 먼저 살이 얇으니 부드러우면서 시메한 초맛이 직선적으로 느껴지고 감칠맛이 터진다 그보다 샤리가 고점의 샤리인가... 고하다 살이 두꺼워지니 초와 함께 살맛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굉장히 쥬시하고 촉촉하며 싱코와는 다른 결로 임팩트가 있다 이게 스기타의 고하다구나... 혼아라 (노토산) 코탄에서 워낙 맛있게 먹었던 지라 기대를 했지만 계절의 차이일까 상대적으로 덜 기름졌다 하지만 스시는 샤리놀음이라는 말이 있듯 오늘 샤리와 궁합은 아주 훌륭 가츠오 와라야끼 (고치산) 가츠오를 약하게 와라야끼해서 카라시 없이 내었다 훈연향은 강하지 않고 지방, 감칠맛 모두 훌륭 무엇보다 샤리 온도감이 좋아서 지방맛을 잘 느끼게 해줬다 카스고 (야마구치산) 약간의 시트러스한 터치도 좋고 무엇보다 살이 이렇게 두툼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스기타의 카스고가 유독 혹평이 많은데 이게 왜?? 아카미 즈께했다는데 즈케느낌이 강하진 않고 젤리 같은 식감과 2겹으로 풍부한 살맛이 느껴지고 산미는 없다시피 시모후리 참치에 힘을 주는 곳은 아니지만 가격 인상 후 참치도 나쁘지 않다고 들었는데 숙성취처럼 뭔가 튀는 맛이 있었다 기름맛이 엄청 녹진하지도 않고... 계절적인 한계도 있었는듯 아지 (야마구치산) 기름이 살짝 부족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샤리 온도가 살짝 내려갔 그래도 지방맛 충분하고 무엇보다 오늘 샤리가... 구루마에비 단맛은 살짝 약하다고 느껴지지만 안쪽에서 내장맛도 충분히 느껴지고, 익힘 정도가 절묘해서 결대로 찢어지는 새우살의 식감이 매우 인상적 킨메다이 (쵸시산) 부위가 부위인지라 기름은 다소 부족했지만 지방맛 단맛 다 녹진하게 느껴지면서도 깔끔한 뒷맛 시그니처처럼 유명한 킨메다이지만 기름이 적어 감동까지는 글쎄 바훈우니 (홋카이도산) 지명까지 듣긴 했는데 지도에서 크로스체크가 어려워서 패스 달디 단데 단맛 말고는 우니의 부정적인 맛이나 잡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계절도 좋고 가격 인상의 영향이 큰듯 아사리 스이모노 오챠 (이제부터 추차) 하마구리 쯔메소스가 살짝 쿰쿰하니 매력적이고 쫄깃함 사이로 은은하게 계속 나오는 단맛이 인상적 홋키가이 샤리 온도감이 살짝 낮아지면서 조개맛은 오히려 잘 느껴지고 오늘 패류들이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맛도 훌륭 이사키 지방이 좀 더 낀 고소한 참돔 느낌 아마에미 코부지메 안그래도 녹진한 아마에비를 코부지메까지해서 쫀득거리면서 단맛이 나오고 무던한 감칠맛까지 싱코 정규 싱코보다 더 시고 더 쥬시하고 더 자극적 아까우니 오렌지향와 꽃향이 입에서 팡팡 터진다 단맛도 단맛이지만 향에 압도 당해서 살짝 어안이 벙벙 바로 인생 no.1 우니로 등극 아나고 - 쯔메 흔히 밤맛이라고 하지만 고구마맛도 느껴지는 게 좋았지만 샤리가 살짝 딱딱해졌다 마지막 니기리라 그런가... 교꾸 아주 촉촉하고 익힘도 약한 편 스시 끈이 그리 길지는 않으니 스기타상의 스시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는 없고 그냥 맛있었다는 말밖에... 츠마미 전복은 정말 압도적이었고 고하다와 싱코는 아직도 생각하면 침이 나온다 아까우니도 향수를 뿌렸나 싶을 정도로 강렬 고점의 샤리에 아나고를 빼면 시모후리가 워스트였을 정도로 빠지는 피스도 없었다 초행이라 술을 자제한 것이 유일한 아쉬움일 정도 츠마미야라는 말도 간혹 있던데 고점의 샤리를 만나서 그런지 츠마미보다 니기리가 좀 더 좋았다 이 날 기본 가격 자체가 좀 높았던 것 같고, 츠마미 안 나온 것들 전부 추차 니기리 안 나온 것들 전부 추차 + 싱코 추차 술 3종 이치고 반반해서 79,300엔(오마카세인 O, 테이블올 X) 싱코 추차해서 많이 나올 줄은 알았지만 술을 적게 마셔서 이리 많이 나올줄은... 한 3초 스턴 맞았음 ㅋㅋ 다음이 있다면 아마 츠마미 추차는 안키모 외에는 좀 자제하고 니기리와 술을 좀 더 먹지 않을까...
작성자 : 배나온옴린이고정닉
19세기의 체스계 슈퍼스타, 하워드 스턴튼 上 - 영웅편 -
하워드 스턴튼(Howard Staunton, 1810-1874)19세기 영국의 체스 마스터.체스의 역사나 옛날 체스선수들에 그리 관심을 갖지 않는 체갤러들도 그의 이름은 한번쯤 들어보았을 법하다.체갤 스크롤만 잠깐 내려도 끝없이 언급되는 그 이름.바로 House of Staunton 할 때 나오는 그 Staunton이다.그런데 왜 체스 기물 세트에 이 사람 이름이 박혀있을까?이유는 간단하다. 오늘날의 체스 기물들의 표준 디자인이 된 Staunton Chess Set이 처음 출시될 때, 스턴튼이 이름을 빌려주었기 때문이다.말하자면, 김창렬 도시락처럼 유명인의 이름을 빌린 마케팅이었다.그런데 그가 대체 어떤 인물이었기에?그가 이름을 빌려준 것만으로 그 체스 세트가 엄청난 인기를 끌어모아 체스 세계의 표준이 될 정도였단 말인가?이는, 하워드 스턴튼이 19세기 체스 세계를 휘어잡았던 진정한 슈퍼스타였기 때문이다.이번 시리즈에서는 그가 어떻게 후대의 역사가들까지도 매혹시킨, 체스 세계의 영원한 호감고닉이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우선, 하워드 스턴튼이 가진 유명세에 비해 그의 체스 입문 이전의 삶에 대한 정보는 극히 드물다.젊을 적 극단에서 배우 생활을 하기도 했다는 정보 정도가 그의 체스 입문 전의 확실한 행적으로 보인다.스턴튼은 한때 자기가 옥스퍼드에서 공부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젊은 시절에 옥스퍼드 대학 교구에서 활동한 이력이 확인되며(공식적인 재학생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임),셰익스피어에 대한 높은 이해도로 나중에 학계에서 인정받기도 하는 등, 분명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았으며 평범한 집안 출신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그런데 그는 평생동안 자신의 출생에 대해 침묵하거나 거짓말을 해왔다. 어떤 이유에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수많은 체스 역사가들이 이 가십거리에 달려들었지만 여전히 오늘날에도 그의 출생에 대한 정보는 정확히 알려져있지 않은데, 가장 널리 퍼져있는 가설은 하워드 스턴튼이 어느 귀족의 숨겨진 사생아라는 것이다. (이 또한 증명되지는 않았다.)아무튼 벌써 주인공 냄새가 솔솔 나는 캐릭터임은 분명하다.하워드 스턴튼은 1836년, 26세에 돌연 런던 체스세계에 모습을 드러낸다.당시에 스턴튼은 체스를 전혀 모르는 쌩 뉴비였고, 웨스트민스터 체스 클럽에서 비서 일을 하며, 또 간간히 체스와 셰익스피어에 대한 글을 쓰며 밥벌이를 했다고 한다.(에반스 선장 이야기 때 올렸던 당대의 신문 자료인데, 잘 읽어보면 에반스 선장의 상대가 뉴비 시절의 스턴튼임을 알 수 있음)그러나 여느 재능충들이 그렇듯, 그는 쳐맞으면서도 엄청난 속도로 실력을 쌓아올려가는데, 5년이 지난 1841년쯤에는 이미 런던 최고봉의 체스 플레이어들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한다.여기까지는 그래도, 런던에서 체스 좀 잘 두는 선수 한 명, 정도로 남게 될 운명이었을지도 모르나,얼마 안 가 그를 런던의 슈퍼스타로 등극시킨 사건이 있었으니...우선 사건의 맥락을 알기 위해, 당대 체스 세계의 분위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17세기경까지, 체스 세계의 중심지는 원래 이베리아 반도와 이탈리아였다.루이 로페즈 오프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16세기 중엽의 체스 최강자 루이 로페즈 데 세구라(Ruy López de Segura)도 스페인 출신.이슬람 세계와 가까워 체스의 전파와 유행이 빨랐던 만큼, 스페인과 이탈리아에는 강력한 플레이어들이 많았고, 다미아노(Pedro Damiano)나 루세나(Luis Ramírez de Lucena), 루이 로페즈,와 같은 선구적인 체스 분석가들이 나오기도 했다.그러나 그러한 분석가들은 정작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는 그리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오히려 북유럽에서 이뤄진 인쇄술의 발전 덕분에,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체스 텍스트들은 프랑스, 특히 파리에서 많이 읽혀 체스 플레이어들의 수준을 끌어올렸다.또한 17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카페 문화의 번성 덕분에, 파리의 여러 카페들에서 체스를 두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파리는 확고하게 체스 세계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그리고, 18세기 중엽부터 그 경쟁자로 급부상한 것이,당연하게도, 영원한 라이벌, 런던이었다.영국은 줄곧 체스 세계의 변방이었지만, 산업혁명기의 경제 발전과 함께 여가활동의 여유가 생긴 새로운 중산층들이 대거 체스에 유입되면서,체스 세계에서 가장 두터운 플레이어층을 가지며 조직화된 체스클럽들을 가진 도시로 자리잡게 되었다.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체스 중심지로서의 파리의 위상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이전 세기, 파리의 전설적인 체스마스터 프랑수아 앙드레 다니캉 필리도어(François-André Danican Philidor, 1726-1795)가 쌓아올린 업적은 너무나도 위대했다.그는 언제나 파리와 런던의 사교계의 중심에 있었고, 루소와 디드로를 비롯한 당대의 유명 학자들과도 친분이 있었으며,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의 궁정에 초대받기까지 했던 체스계의 신화적인 인물이었다.여전히 런던의 체스 플레이어들도 필리도어의 책으로 체스를 공부하고 있었다.파리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잠시 주춤하기는 하였지만 19세기에도 여전히 뛰어난 체스 마스터들을 배출하고 있었다.알렉상드르 데샤펠(Alexandre Deschapelles)와 그의 제자 라 부르도네(La Bourdonnais)가 그 중심격 인물이었다.런던의 최정상급 체스 플레이어들은 계속 파리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물먹기 일쑤였다.윌리엄 루이스(William Lewis)와 존 코크란(John Cochrane)이 데샤펠에게 도전했으나 좀 둬보니 아예 수준이 안 맞았는지 데샤펠이 폰을 하나 빼주고 맞붙었으며,알렉산더 맥도넬(Alexander McDonell)은 라 부르도네에게 졌잘싸를 거두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했다.(참고로 코크란은 인디언 디펜스 편, 맥도넬은 에반스 갬빗 편에서 이미 출연한 바 있음)이러한 경기들의 결과로 인해, 체스의 인프라가 런던이 더 우수할지언정, 여전히 체스 최강은 파리다, 라는 지워낼 수 없는 인식이 1830년대까지만 해도 여전히 남아있었던 것이다.그러던 중, 1843년, 한 가지 사건이 터진다. 이때에는 이전 파리 최강자 라 부르도네가 죽어, 생아망(Pierre Charles Fournier de Saint-Amant)이 파리의 체스 최강자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었다.그는 파리의 체스 잡지 Le Palamède의 발행인이었고, 본업은 와인 판매업자였다.와인 판매업 때문에 정기적으로 런던을 방문하던 중, 그는 우리의 주인공 하워드 스턴튼과 비공식적으로 대국을 벌일 기회를 갖게 됐는데, 스턴튼이 2.5-3.5(2승 3패 1무)로 아쉽게 패배했다.신이 난 생아망은 자신의 잡지 Le Palamède를 통해, 자기가 스턴튼을 이겼노라고 자랑을 했는데,자존심이 강했던 하워드 스턴튼은 여기에 매우 크게 긁혀서, 생아망에게 공식적인 매치를 신청한다.내가 파리로 찾아가겠다. 훨씬 큰 상금을 걸고, 나랑 한판 제대로 붙자.생아망은 매치를 수락했고, 이 소식이 파리와 런던의 체스 플레이어들에게 널리 알려지자,졸지에, 이 대국은 양국과 양 도시의 자존심을 건 국제매치의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런던의 신진 체스 선수 vs 파리의 체스 최강자.스턴튼은 칼을 갈았고, 1843년 11월, 대국이 막을 올리자, 생아망을 상대로 자신이 준비해온 새로운 오프닝을 선보였다.1. c4. 이때가 바로 잉글리시 오프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스턴튼은 결국 생아망을 11-6으로 꺾었다.이날부로 세계 체스의 중심지는 확고부동하게 파리에서 런던으로 이동했으며, 스턴튼은 런던의 영웅이 되어 돌아온다.우리식으로 치면 대충 80년대 축구 한일전에서 혼자 세 골을 터뜨려 일본을 침몰시킨 축구영웅 정도를 상상해봐도 되지 않을까.이 사건으로 인해 런던 체스계에서는 스턴튼의 광신도들이 무수히 양산되었는데,하워드 스턴튼의 이름을 내걸었다는 이유로 체스 세트가 무수히 팔린 나머지, 결국에는 체스 세계의 표준이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워드 스턴튼은 런던 체스계에서 제일 가는 유명인사가 되어,Chess Player's Chronicle이라는 체스 잡지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체스 칼럼 작가 겸 편집자로 활동한다.그가 자신의 잡지와 The Illustrated London News에서 연재한 칼럼들은 이후 수십 년간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체스 칼럼의 지위를 누리게 된다.그런데, 생아망이 정말로 뛰어난 체스 플레이어였을까?당대인들이 그렇게 받아들이긴 했지만, 그가 남긴 기보들을 분석해본 오늘날의 연구가들은 대부분 생아망이 그렇게 뛰어난 플레이어가 아니었다고 평가한다.잘나갔던 선배들의 후광, 그리고 국가간 경쟁의 열기에 휩싸여 잠시 고평가받았을 뿐, 결코 정상급의 선수는 아니었다는 것이다.그런데 그런 생아망을 이긴 것이 하워드 스턴튼 체스인생의 최고 업적이었다.엥? 그러면 스턴튼 이 새끼도 물로켓 아닌가요?그렇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스턴튼의 기보도 여럿 남아있기 때문에 그의 실력 또한 후대 연구가들이 평가해볼 수 있는데,확실히, 그의 실력은 진짜였다.기물을 마구 꼬라박으며 전술각 하나로 게임을 이기려 들었던 낭만주의 체스 속에서,하워드 스턴튼은 독보적으로 뛰어난 포지션 이해도를 보여줬다.전술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분석력이 남달랐고, 이로 인해 그가 집필한 The Chess Player's Handbook은 반세기동안 영미권의 체스 교과서로 여겨지기도 했다.후대의 그랜드마스터들 중에서도 그를 극찬한 인물들이 있는데,사비엘리 타르타코워는 그가 이미 중앙 확장 지연, 피앙케토 등의 초현대적 아이디어를 알고 있었노라고 평가했으며,바비 피셔도 하워드 스턴튼이 동시대인들과 비견될 수 없는 포지션 이해력을 갖추었고, 그를 최초의 현대적 체스 선수로 간주해야 한다는 극찬을 남긴 바 있다.https://youtu.be/z2DHpW79w0Y?si=FkV3v The history of the top chess players over time Note: The y-axis is a rating of how well chess players compete against each other. This rating varies over time, from EDO to CMR to ELO, because different d...youtu.be실제로 기보 분석을 통해 레이팅을 추정하여 시기별 체스 세계 최강자를 가려놓은 영상들을 보면,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하워드 스턴튼은 분명히 세계 최강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다만, 그는 안타깝게도 심장병을 앓고 있어, 컨디션 문제로 실제 경기에서는 자신의 분석력만큼의 퍼포먼스를 내기 어려워 했고, 진지한 경쟁 체스에 자주 참가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는 1843-1851년 사이 8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만 세계 체스 최강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그러나, 하워드 스턴튼의 체스인생 행적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사실, 그를 체스 역사상 제일 가는 레전드 호감고닉으로 만든 행보는, 이 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그는 이제 체스계에서 제일 가는 인플루언서가 되었고,가장 영향력 있는 체스계 언론사를 손에 넣게 되었으며,휘하에 무수한 광신도들을 거느리게 되었다.그렇다. 이로써 그는,그가 결코 가져서는 안 됐던"좌표의 능력"을 손에 넣고 만 것이었다.- 하워드 스턴튼 下 악귀편에서 계속 -
작성자 : 김첨G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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