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일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로 9명이 사망했고,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3일에는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로 택시가 돌진해 3명이 다쳤다.
운전자들이 하나같이 급발진을 주장한 가운데 명확한 원인 규명과 함께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원인 규명에 의견 갈려…'페달 블랙박스' 제안도
시청역 사고 이후 원인을 놓고 전문가의 의견과 여론은 엇갈린다. 운전자 차모씨의 주장처럼 차가 급발진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과 페달을 오조작했을 것이란 추측으로 나뉜다.
경찰은 차씨가 사고 당시 몰았던 제네시스 G80의 사고기록장치(EDR) 자료 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외부 전문기관에 보내 정밀 감식·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하지만 전문가 사이에선 실제 급발진이 발생하더라도 EDR 자료가 이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7일 "차량이 정상적일 때는 EDR 데이터가 의미가 있지만, 급발진이 일어났다면 자동차의 ECU(전자제어장치)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이 '먹통'이 된다"며 "EDR은 ECU를 통해 나오는 기록인데 어떻게 맹신할 수 있겠나"라고 주장했다.
박진혁 서정대 자동차과 교수도 EDR 기록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EDR만으로는 급발진 여부를 규명할 수 없고 (자동차) 제작사의 자기진단 장비 데이터 등을 함께 기록해 체계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그러면서 제도적으로 '페달 블랙박스' 설치 의무화가 책임 소재를 확실히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페달 오조작 사고도 많은데 페달 블랙박스가 있다면 누구 책임인지 힘겹게 따져볼 필요가 없다. '빌트인'으로 설치하도록 의무화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페달 블랙박스 설치를 의무화하면 제조사는 데이터 신뢰성 등을 확보하기 위해 좋은 부품이나 장치를 넣으려고 할 텐데 그러면 소비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며 실현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교수는 또 "EDR이 의심스럽다고는 하지만 데이터가 부정확하거나 오류가 있다고 할만한 명백한 증거는 없다"며 "일단 EDR 데이터를 믿을 수밖에 없고 사고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와 다른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브레이크등 점등 여부 등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상제동장치 설치 확대…고령자 지원 필요"
시청역 사고 운전자는 68세, 국립중앙의료원 사고 택시 운전자 A씨는 70세로 밝혀지면서 '고령 운전자' 논란이 재점화되기도 했다.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고령 운전을 탓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고령자의 운전 면허를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돼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고령자 면허 제한과 같은 사후 제재 방식에 집중하기보다 전방 차량이나 사람을 감지해 자동 제동하는 비상자동제동장치(AEBS) 등 장착을 확대하는 사전 예방 대책이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았다.
자동차규칙 개정에 따라 지난해 1월부터 초소형 자동차와 경형 승합차를 제외한 자동차에 AEBS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이전에 출시된 자동차에는 해당 장치가 없는 사례가 많다.
김 교수는 "일본의 경우 '서포트카'라고 해서 AEBS,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등 설치가 잘 돼 있다"며 "우리도 신차에는 AEBS가 장착되고 있지만 고령자들은 노후한 차를 운전하는 경우가 많아 별도로 장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도 "긴급제동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차들은 별도로 이를 장착할 수 있도록 하고 고령 운전자의 경우 정부가 일부 비용을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며 AEBS를 달았을 때 고령 운전자의 보험료 할인은 물론 보험 갱신기간 연장 등의 조치도 고민해 볼 사안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이어 "10년 뒤면 고령 운전자의 비중이 매우 높아질 텐데 나이 제한으로 운전을 못 하게 하는 해결책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경우 면허 갱신 기간을 늘려주는 등의 유연성이 있어야 하고 개인 건강 상태에 따라 운전 조건을 달리하는 쪽으로 검토하는 것이 낫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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