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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h bin Femi.nistin.
Für die Niederlage des Androzentrismus.
Amen.
여성들이 어째서 미러링을 하는 것인지 충분히 이해는 가나,
우리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탈레반을 도입하자는 여성 억압 주의의 남성연대를 답습하면
머잖아 똑같이 쇠락할 수밖에 없다.
자신을 안티 페미니스트라 칭하는 한국 여성은 노골적인 노출을 하고,
남성들에게 사랑받고, 다른 여성들과 달리 개념적인 나, 라는 것을
과시하는 것이 안티 페미니즘 사상이라고 생각했었고,
그들의 무지몽매함에 경악하고 말았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한국이 세계 주요국에 비해 사상 진척이 백여 년 가량 뒤쳐졌음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제도적으로, 정책적으로 구조적 평등을 이뤘다 한들,
예수님께서 출현한 2,000년 전 그를 박해한 유다인과 본디오 빌라도와
서기 2000년 이후가 다를 바 없듯이
아직도 나의 생각과 이율배반이 되는 가치관은 피아식별하고
나와 다른 것을 박해하는 사람들 뿐이라.
하지만 그들이 핍박하여 압제하여도
하나 변치 않는 것이 있는데,
'머리 위에는 별이 반짝이는 하늘, 내 마음에는 도덕률'이다.
예수님이 2,000년 전 설하신 말씀이
우리 안에는 살아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서로 곁하여 일어나지 않는
내 마음을 반영할 뿐입니다.
"개념화를 위해서는 일람을 거쳐야 하지 않습니까?"
알력다툼이 어떻게 끝이 나는 줄 아십니까?
"한 쪽이 패배해야겠지요."
서로 곁하여 일어나는 감각들에 대한 반응이
나의 마음을 박해하였으나
나는 아직 정초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예비하였습니다.
나는 완전히 드러났으며,
감각들의 공리계로부터
실로 완전함을 외연합니다.
실로 그렇다.
대한민국의 안티 페미니즘을 가장한
래디컬 매스큘리즘(남성주의) 렉스는
그 완전성의 이념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필연적으로 발가벗겨진 후 패망할 것이다.
그런 남성 우월주의를 모방하는
래디컬 페미니즘도
필요악의 필요로서 발생했다가
더 빠르게 사상누각할 것이다.
쇠락이 더 빠른 까닭은
그들의 본성 자체가 악함이 아니고,
레지스탕스와 같이
악함에 대한 저항과 분노에 대한 의협심을
투사하는 것이 그것의 최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자는 있어도,
대한민국의 남성우월주의, 안티 페미니즘 집단을 비판하는 자는 없다.
과연 그것이 정의로워서일까?
비난과 희롱을 '비판'하는 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 의미 내용이 성립되는 '기초'가 없으므로
개선의 여지도, 타당성도 없다.
대한민국의 안티 페미니즘 집단의 방향성은
'권위적 폭력성'
'전체주의적인 악의적 험담과 비난과 희롱'이다.
그래서 반조하는 것이 한국의 남성 우월주의에 비해 쉽다.
이미 변하고 있고.
한국 남성은 매스큘리즘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그것을 변질시켰다.
한국 남성은 여성의 복속과 남성의 가부장적 권위의 존속을 말하는데,
그것은 오히려 남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악화시킬 뿐이다.
그것을 가지고 남성은 남성도 차별받는데 왜 여성만 우대하느냐.
여성만 차별받느냐, 우리 남성이 더 힘들다.
라는 정말 아이러니한 탄식을 하는 것이다.
진정한 남성주의란, 그 마초적 가부장제의 존속을 제거하는 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한국 남성은 남성 우월주의의 피상적 특권만을 보고
남성 우월주의적 사상이 가져오는
남성에 대한 편견과 폭력을 없앨 것을 강력히 요구하면서도,
남성 우월주의를 지지하는 격이다.
그러면서 남성들이 여성 보고 하는 말이 있다.
"특혜는 누리고 싶고, 힘든 일은 기피하고."
남성이 차별받는 것은 반발하여 변혁하고 싶고,
남성우월주의 사회는 유지하고 싶고.
남성에 대한 차별이 여성 우월주의 사상으로 초래됐다는
대단한 착각을 하고 사시는 분들이다.
자세한 내용은 맨 얼라이브 서적을 참고하라.
아마, 매스큘리즘과 리버럴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사회가 같다는 걸 알게 된다면,
한국 남성은 젖 먹던 힘을 다해 저항할 것이다.
그들은 언제까지나 남성이 우위에 있기를 바라며,
경쟁하고, 분열하고, 자신의 위대함을 입증하는 것이
진정한 남성성이라 굳건히 믿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리버럴 페미니스트인 까닭은 내가 여성이라서가 아니고,
그것이 매스큘리즘의 실현보다, 정말 쉽기 때문이다.
성경 마태복음 19장 24절에 이런 참조 구절이 있다.
"내가 거듭 말한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 구멍을 빠져 나오는 것이 더 쉽다."
내적인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외양적으로 유리한 성질을 최대한 보존하고자 하지,
노력없이 가진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목숨만큼 버리기 힘든 것이다.
구조적 평등을 이뤘다 한들, 은연 중에 남성성의 권위는 아직 유효하다.
남성은 대체로 능력주의이며, 여성의 사랑을 쟁취하고,
남자 측에서 결혼예물을 해 가며,
자유로운 복장과 민낯의 얼굴에도 외압과 시선 의식을 덜 느끼는 등.
가부장이 뭐가 유효하느냐 따져 물을 분들을 위해 나열해봤다.
여성과 남성은 선천적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나는 그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 차이로 한 성별이 갑이 되고 혹은, 을이 되는 것이
합당한 준거틀이 되는 보편타당한 합리성은 성립될 수 없다.
하지만, 그 성별의 기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별을 넘어선 개개인의 정서와 가치관이다.
특정 성별은 특정 분야를 더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한들,
개개인의 특정 관심사보다 선재할 수는 없다.
젠더 역할과 상성이 맞지 않는 관심사를 가졌다 하여,
성별에 입각해 자기확장에 제약이 되는 일은 있어선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성별을 넘어서서 보는
매스큘리스트이자 리버럴 페미니스트다.
선진국의 저명한 교수와 저널리스트, 학자가 모여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해 반조하는 쟁점 평론을 듣고,
경험적으로 직관되고, 범주에서 사고되는 대상 인식이
이성의 세계에서도 타당할 수 있는가,
혹은, 계몽 사상의 비판적인 대안책이 될 수 있는가의 합목적성을 고려해 보고,
한국의 안티 페미니즘과 남성 우월주의가
변질시켜 놓은 페미니즘과 여성의 섬멸을 모의하는
현 시대를 역행하는 단일 사상은
갈등을 심화할 뿐이며,
선진국에서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페미니즘과 안티 페미니즘과 매스큘리즘의 이데올로기가
일정한 관점에서는 다 같이 참일 수 있음을 존중하고
서로의 비판을 수용하고 보완해 나가는 선진국처럼
대한민국도 향후 백여 년 뒤쯤에는
상호존중의 문제가 조금은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을
낙관적으로 해본다.
과도기적 래디컬 페미니즘 사상이 종래 끝에 저물면,
그것을 대한민국 남성 우월주의 집단과 안티 페미니스트는 사실상 '페미니즘의 패배'라고 부르며
자신의 승리에 기뻐하겠으나,
그 완전성의 이념을 리버럴 페미니즘에 내어주기 위한
일련의 주체성 확립의 계보 과정이었음을
그들은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페미니스트는
시대적 본질의 선험이 되어
올바르게 사고하는 자는
후험적으로 후속할 것이다.
정확한 지적과 정직한 비판을 수용하는 페미니즘은
곧 한국의 래디컬 매스큘리즘과 안티 페미니즘의
극단적 사상이 페미니즘을 박해하기 전에
먼저 파훼된다.
빛은 어둠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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