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극복의 해법으로 선택한 IT 산업

물론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사업의 실행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어요.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에도 불구하고 당시 민간 통신사들은 기존에 자사의 비용으로 구축한 종합정보통신망(ISDN)이나 전화망 인터넷 서비스를 최대한 유지하려 했어요. 초고속통신망의 구축을 통해 저렴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가 제공되는 경우 민간 기업의 기존 서비스들이 경쟁력을 잃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에요.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도 사업 추진에 큰 걸림돌이 되었어요. 바닥난 국고와 어려워진 국민의 살림살이에서 초고속인터넷망 구축에 투자할 국가 예산도 충분하지 않았고, 이를 사용할 이용자 수요가 생길지도 불확실했어요. 당시로서는 걸음마 단계였던 인터넷 관련 서비스는 경제성을 확보할 만한 통신망 이용 수요를 발생시킬 것이라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어요.

그러나 외환위기 극복의 해법으로 정보기술(IT) 산업을 선택한 당시 김대중 정부는 온 힘을 모아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어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국책연구원들의 기술 개발을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디지털 인프라의 실제 구축 시 한국전력, 송유관공사, 도로공사 등의 인프라 공사와 병행함으로써 소요되는 예산을 최소화했어요.

기업들 역시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 화답해 과감한 투자를 시행했어요. 결국 사업을 통해 1960년대 이후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성장하던 국내 대기업들의 주력 사업은 무선통신 사업과 휴대전화, 반도체 사업 등으로 재편되었어요. 이렇게 효율적으로 전국 구축이 진행된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은 우리나라를 2001년 초고속인터넷 이용자 수 13.9명으로 세계 최고의 인터넷 보급 국가로 재탄생시켰어요.

이렇게 국난의 상황 속에서 추진된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사업은 결국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인 대한민국을 재탄생시킬 수 있었던 기초 자산이 되었어요. 초고속통신망을 통해 인터넷 쇼핑몰, 게임산업, 인터넷 기반의 토착형 메일과 포털 서비스가 속속 등장해 지금의 네이버와 같은 인터넷 기업을 만들어냈고, 세계 최초의 누리소통망인 싸이월드까지 등장해 현재 ‘국민 SNS’라 불리는 카카오가 등장하는 기초가 되었어요.

1960년대 시작된 산업화와 고속성장 시대의 종언을 알렸던 외환위기 이전에 초고속정보통신망 마스터PLAN을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나라의 핵심 동력인 ICT 산업과 인터넷, 플랫폼 산업은 현재의 위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에요.

국가 성장 동력 한 단계 발전시킨 전환점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사업이 우리 역사에서 갖는 의미는 2차 산업혁명으로 등장한 제조업을 통해 성장한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산업인 정보통신을 주력산업으로 확보해 국가의 성장 동력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는 점이에요.

특히 외환위기라는 국가부도 상황에서 이러한 대전환을 이룬 우리의 역사는 미국 뉴딜과 루스벨트 대통령을 떠올리게 해요. 대공황으로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에 나앉은 미국 근로자들의 사진에서 외환위기로 정리 해고를 당하고 공원 벤치에서 시간을 보내던 그 시절 우리나라의 근로자들 모습이 겹쳐 보여요. 당시 우리나라 상황은 1920년대 말 미국의 공황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당시 정부는 국가 주도로 대대적인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사업을 지속했고, 결국 이 인프라는 공공재로서 수많은 벤처 기업의 기반이 되어 이후 우리나라 IT 1세대를 성공시킨 자산이 돼요.

마치 미국 뉴딜의 테네시강 유역 개발과 같이 인터넷망의 개발사업이 국가 전체를 재생시킨 것이에요. 이렇게 만들어진 IT 강국으로 변신한 2000년대의 대한민국이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에서 이야기한 새판이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성공의 이면에는 어려울수록 힘을 결집하고 하나로 뜻을 모은 우리나라 국민의 저력이 있었어요. 국가는 국책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저렴한 비용으로 민간 기업들이 이용하게 했으며, 민간 기업들과 학교들은 활발한 협력으로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정보통신기술을 발전시켰어요. 이렇게 만들어진 기술과 양성된 고급 인력은 우리나라 ICT 산업의 성장을 이끈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당시 우리나라의 새판에 아쉬운 점은 없었을까요? 먼저 가장 아쉬운 점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추진된 사업이었지만 모든 국민에게 혜택이 균형 있게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에요. 당시 해고되거나 계약직으로 전환된 타 업종의 근로자들은 IT 열풍에서 소외되어 성장의 수혜를 누리지 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