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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살 유부남인데 설거지론을 접하고 눈물이 났다.

저금통(61.80) 2021.10.24 14:37:05
조회 8465 추천 293 댓글 165

난 어릴때부터 못생겼다고 놀림을 받았어.


찌그러진 깡통같다느니 어디 높은데서 떨어진 메주같다느니...


게다가 체격도 작고 운동도 못해서 항상 괴롭힘 당하기 일쑤.


내가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모습을 본 아버지께서


그애들 쫓아내면서 날 꼭 안고 하셨던 말씀이


"나중에 커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그러면 오늘같은일 없을거다."


이렇게 말씀했거든?



초등학교 저학년 아주 어릴적 기억인데


그 훌륭한 사람이라는 키워드에 꽂혀서


공부를 그때부터 열심히 했어.



어린 마음에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은 공부잘해서 성공한


판사 변호사 검사 의사 이런 사람들이였거든.



그뒤로 초중고 전교 10등안에서 벗어나본적 없고


의대는 못갔지만 소위 말하는 명문대 수석입학해서


졸업도 수석으로 졸업했고


학기 내내 장학금으로 다녔었어.



대학생활때도 공부만 했다.


남들 연애하는 모습보며 조금만 기다려라...


'훌륭한 사람'이 되면 곧 내 세상이 올것이다... 이런 자기 최면에 빠져있었던거같네.




진짜 대학교 와서도 고등학교때와 별반 다를바 없이 새벽6시에 기상해서


취침하기전 11시까지 계속 공부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



평생을 공부해서인지 직장도 사실 대학교 졸업전


대기업 내정자로 프리패스 입사했어.


대기업 입사조건으로 학비지원, 생활지원금까지 받고 입사한 케이스.



그렇게해서 이래저래 직장생활 2년차, 연차 쌓이고 나니


연봉도 평범한 직장인들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까지 도달했고


주변 사람 모두가 그동안 고생했다, 잘됬다, 성공할줄 알았다... 이렇게 치켜세워줬던 것 같네.



이정도면 내 스스로도 어디가서 꿀리지 않는 '훌륭한 사람'이 된거같아서


엄청 만족스러워하고 있었지.


그시점이 되어서야 이제 나도 슬슬 연애라는걸 해보고싶었는데


마침 유부남 직장 동료가 자기 와이프 친구한번 만나보라고 소개팅을 주선했어.



어머님도와서 꽃집한다는 아가씨였는데


근데 꽃집을 해서인지 정말 꽃처럼 이뻤어.


내가 이렇게 이쁜 여자랑 같이 겸상하고 있어도 되나 싶어서


말도 못하고 딱 얼어있는데 여자가 먼저 서글서글 말 걸어주고


적극적으로 2차도 가자고 하고


애프터도 신청하니까 그저 좋았어.


그때부터 결혼은 뭐 일사천리 6개월안에 끝나버린거같아.



아내가 먼저 사람이 참 좋아보인다, 호감이다 이러면서


그 이쁜 얼굴 생글생글 들이대는데 무슨 마약한것마냥


빠져들었고 6개월만에 결혼하고싶다는 아내말에


흔쾌히 그럼 하자... 해서 바로 식 올려버렸네.



부모님은 반대하지 않으셨어. 왜냐면 그동안 내가 열심히 살아온걸 아니까


최대한 너가 하고싶은 걸 하며 살라고 응원해주셨고


양가반대없이 결혼도 순탄하게 했고


지금까지도 행복하게 결혼생활 잘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설거지론이라는 이야기르 듣고 내 머리를 스치는 많은 장면들이 떠올라 괴로웠어.




1. 아내가 버리지 못한 전남친의 편지들.


버리면 안될까라는 말에 전남친이 좋아서가 아니라

젊은날 그시절의 내가 좋아서 못버리겠다는 말에 묵인.



2. 우연히 알게 된 아내의 전남친.


정말 누가봐도 호감을 가질만큼 잘생긴 남자.

이젠 나이가 먹었는데도 훤칠한 키에 탄탄해보이는 몸매까지.

키 165 짜리몽땅한 나와 다르게 훤칠하고 덩치도 있어보이더라.



3. 내게 지어보였던 아내의 공허한 미소.


아내는 내게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뭔가 서비스직 미소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 내가 좋아서 웃는게 아니라

고객응대를 하는 느낌..? 그치만 결과적으론 내게 잘해주니

나는 행복해...하고 말았던 거같다.



4. 아내가 전남친과 카페에서 이야기하는 모습.


우연히 만나서 이야기했고 별일 없었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생각날때마다 마음이 괴로움.

내게 보여준적 없는 정말 밝고 환한 모습으로

전남친과 크게 웃고 떠들던 모습이 머리속에서 안잊혀짐.


정말 우연히 전남친과 마주한건데


나랑 원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전남친도 그 카페를 운명처럼

지나간 거였나봄. 그래서 아내는


"예전에 알던 친구.. 이쪽은 내 남편.." 이러고 서로 소개까지하는

드라마장면이 연출됬는데 그때 처음본 아내의 들뜬 모습, 환한 표정이 가슴을 콕콕 찌른다.



5. 소극적인 잠자리.


아내는 내게 친절했지만 잠자리할때만큼은 예민하고 날카로웠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오늘은 피곤하다...


내가 싫어서 그런거냐고 물으면 애써 웃으면서

그런게 아니고 난 원래 성욕이 별로 없는편이다...요즘 몸이 안좋다..이런말 들었는데

정말 그게 사실일까? 하는 의구심이 또 날 언짢게 했지만


그래도 평소 내게 친절한 아내모습 떠올리며 잠자리 많이 패스하곤 했어.



6. 친구들에게 남편인 나를 소개할 때.


어느날 아내와 같이 길을 가고 있는데

아내 동창을 우연히 만났나봐.


아내는 친구를 보자마자 뭔가 자신을 변호하는 것마냥..


"아! 이쪽은 내 남편이고 xx에서 팀장으로 있어." 이렇게 날 소개했는데


이게 자꾸만 마음에 걸렸어.


나처럼 못생기고 키작은 남자랑 같이 다니는거 오랜만에 만난 동창에게 보이니까


내 남편은 못난 사람이 아니라는거 어필하기 위해서 화들짝 놀라며


내 직업을 말했던거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었는데 그냥 넘겼어.




아무튼 여러가지로 난 지금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있고 아이도 있어.


아내는 내게 잘해주고 가사에도 열심히야.


그래서 설거지론을 오늘 접했을 때 정말 부정하고 싶고


아내는 내게 충실하기 떄문에 설거지론을 개소리로 치부하고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이유없이 눈물이 나더라.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


그냥 조건이 좋아 나랑 결혼했다는 생각.


나라는 사람이 남성으로서 매력이 없다는 생각.



이런게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서


결국엔 난 나를 사랑하지도 않은 여자인생을 책임지게 된, 설거지한 남자가 되고 만건가...하는


자조가 가슴깊이 스며들더라.



그냥 내 넋두리였어.



오늘 휴일인데 일이 있어 외근 나왔거든?


설거지론 접하고 나서 아내에게 카톡으로



"여보. 나 사랑해?" 라고 진지하게 메세지 보내봤는데


"응. 사랑하지." 이렇게 답장이 왔는데도


그 사랑하지라는 대답이 왜이렇게 무미건조하게 들리는건지 모르겠다.



난 태어날때부터 매력없이 태어났는데... 그냥 설거지할 운명이었을까?


내가 설거지할 능력이라도 갖춰서


지금 아내와 함꼐하고 있는건가?


만약 내가 능력이 없었더라면 지금 아내는 나와 같이 살아주지 않았던걸까?



설거지론은 참 내마음을 아프게 하는 단어인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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