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등 시민의 탄생: 남자답게 산 대가
자조와 추락
최근 젊은 남자들은 스스로를 ‘7등 시민’이라 부른다. 2등이나 3등도 아니고, 무려 7등이다. 누군가는 지나친 비약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눈사람보다 아래에 있는 것은 명백하고, 남은 다섯 자리도 어렵지 않게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계급과 서열을 따진다는 것이 참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자조에 누구도 선뜻 아니라고 하지 못한다는 건 훨씬 더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다 남자들은 여기까지 추락했을까? 도대체 누가 남자들을 여기까지 끌어내렸을까?
슬프게도, 남자들 스스로 그 자리에 안착했다. 분명 스스로 뛰어내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굴러떨어지는 와중에도 ‘설마 여기보다 더 떨어지겠어.’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벌레잡이풀에 빠진 날벌레 주제에 이성과 합리를 부르짖었다. 날개와 다리가 녹기 전에 사력을 다해 기어오르고 날갯짓해도 빠져나올까 말까 한 마당에, 소화액에 둥둥 떠선 대화와 타협을 청하며 언젠가 자신을 꺼내주기를 바랐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면, 이 벌레잡이풀은 단 한 번도 벌레를 실수로 집어삼킨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잡아먹힌다는 현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보다 벽을 기어오르기를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청년들은 스스로 손발을 묶고 입에 재갈을 채우도록 세뇌되었기 때문이다.
남자다움이라는 족쇄
그들 머릿속의 밑바닥까지 잠식한 것은 다름 아닌 ‘남자다움’이라는 개념이다. 사나이라면 당연히 희생하고, 양보하고, 배려하고, 감수하고, 인내해야 한다는 남자다움. 이것을 수십 년간 진리처럼 받아들인 청년들은 스스로 불평불만하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여 끝내 불평을 말하지 못하고 부당을 감내하는 것을 선행으로 여기게 되고 말았다. 심지어 보상이 없을 것을 알면서 자신의 몫을 먼저 갖다 바치는 노예와 같은 행위조차도 ‘남자다운’ 행동으로 간주하는 패배의식의 결정체로 거듭나게 되었다.
예로부터 소인, 소인배라는 말은 큰 욕설로 쓰였고, 쥐뿔도 없지만 자존심은 있는 남자들은 좀생이, 쪼다, 찌질이 소리 듣기를 죽기보다 싫어한다. 누구도 이를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남자들의 이러한 점을 파고든 ‘남자답게 세뇌교육’은 남자로 하여금 일정의 손해를 감수하고 양보하는 행위와, 일정의 부당에 사사건건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고 부당을 넓은 아량으로 포용하는 행위를 미덕으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이는 장대한 성공을 거두었고, 결국 “남자가 찌질하게.” 한 마디에 청년들은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분간조차 하지 못한 채, 혹은 속으로는 잘못됐다고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저 ‘남자답기’ 위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었다. 문득 정신 차릴 즈음에는 이미 늦었다. 세상을 둘러보아라. 이것이 남자답게 산 결과다. 우리는 왜 남자다워야 했을까? 그리고 무엇을, 누구를 위해 남자다워야 했을까?
세뇌의 결과
이러한 세뇌는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의 삶을 옭아맸고, 우리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스며들었다. 일부 의구심을 품은 이들이 있었으나 곧 실패자나 패배자, ‘남자답지 못한 찌질이’ 취급을 받으며 스러져 갔다. 우리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교육을 받아 왔다. 우리 7등 시민의 9할 이상이 받았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마 기억나는 사례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결국 이로 말미암아 우리 7등 시민들은 스스로를 죽이게 되었다. 찌질이 소리가 듣기 싫어 스스로 모난 부분을 도려내고 용기를 거세했다. 이로써 기득권 입에 이보다 달콤할 수 없는, 반항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는 가장 우수한 노예이자 가장 열등한 인간이 만들어졌다.
침묵과 무기
하지만 최근 남자들은 정신 차리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숨 막히는 현실에 전 세계에서 가장 순종적인 종자들조차도 회의감을 품는다. 말 잘 듣는 착한 종놈으로 살라고 해서 그렇게 살아왔는데 매번 채찍질은 자기만 당한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손해 볼 일이 너무나도 많다. 슬슬 세상에 환멸이 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이제 더 이상 뜯어먹힐 게 없음에도 이빨을 드러내고 눈알을 부라리는 포식자들에게 넌덜머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남자들의 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 이제 남자들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 광장에 모여 시위라도 해야 할까? 길거리에서 분노를 드러내야 할까?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시위? 나갈 필요 없다. 모일 필요도 뭉칠 필요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남자는 침묵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남자다움을 거부하라
이제, 남자들은 ‘남자답지 않게’ 살아야 한다. 기득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남자다움을 거부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찌질하게 살아야 한다. 즉 너를 뜯어먹고자 눈을 부라리는 포식자들이 바라는 대로 살지 않아야 한다. 희생과 양보, 배려라는 개념을 잊어버려야 한다. 누구보다 계산적이고, 누구보다 이해타산적이며, 그리고 누구보다 찌질하게 온전히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 그들이 만들어 낸 남자다움은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한 여행길에 올라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남자가 세상에 던질 수 있는 가장 큰 반항이며, 수년 안에 사회가 남자들 앞에 납작 엎드리도록 만들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파업이다.
7등 시민아, 찌질하게 살아라.
너는 웃을 것이다.
7등 시민아, 희생하며 살아라.
너만 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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