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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가 특이한 체스선수들에 대해 알아보자
[시리즈] 체스사 시리즈 · 국내 첫 체스 역사 책 출간 떴냐??????????????????? · 체스는 어디에서 기원했을까? · 중국 장기는 중국인이 발명했는가? · 쇼기는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 체스 유럽 전파 초기의 무서운 이야기 · 1000년 전의 이슬람 체스 퍼즐, 만수바(مَنصوبة) · 15세기의 체스 대격변 패치, "여왕의 체스" · 대수기보법과 오스만제국 출신 체스마스터 이야기 · 벤저민 프랭클린, 체스의 교훈 · 1824년, 런던 - 에든버러 클럽 서신체스 매치 · 에반스 갬빗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 · 인디언 오프닝과 어느 시골 브라만의 이야기 · 러시아 체스 기물의 역사 · 19세기의 체스계 슈퍼스타, 하워드 스턴튼 上 - 영웅편 - · 19세기의 체스계 슈퍼스타, 하워드 스턴튼 下 - 악귀편 - · 윌리엄 슈타이니츠 : 세계 체스 챔피언의 탄생 · 엠마누엘 라스커와 지크베르트 타라쉬, 두 독일 유대인 체스마스터의 삶 · 에드워드 라스커, 엠마누엘 라스커와 바둑 · 예술운동으로서의 하이퍼모더니즘 · 식민지인이었던 내가 대영제국의 체스 챔피언?! · 알렉산더 알레킨 1부 - 제국의 총아 · 알렉산더 알레킨 2부 - 카파블랑카와의 결전 · 알렉산더 알레킨 3부 - 추락과 부활 · 알렉산더 알레킨 4부 - 한 시대의 끝 · 알레킨이 주인공이었던 소련 영화 · 1933년, 체스 최강자와 쇼기 최강자의 만남 · 체스 선수는 기보 저작권의 꿈을 꾸는가? · 카르포프와 카스파로프가 월챔 48게임을 뛰게 된 배경 · 미국체스협회 레이팅 2위를 달성한 살인범의 이야기 · 체스 역사 속의 TMI들 · 체스를 주요 모티프로 삼은 유명 문학작품들 · 체스사 시리즈 완결(?) 후기 및 신규 소식 · 체스 역사에 길이 남을 리버스 명경기 3선 예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체스계에는 전업으로 안하고 직업 따로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제법 많음특히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학계에 몸담으신 분들도 많고ex) 4대 챔피언 막스 오이베(수학자), 5대 챔피언 미하일 보트비닉(공학자), 저번에 소개한 휘브너랑 로고프그리고 19세기까지는 딱 옛날 프로게이머랑 인식이 똑같아서"직업이 뭔가요?""체스선수입니다"이렇게 바로 미친 사람 취급 당해서 오히려 직업 가지고있는게 당연한 시절도 있었음ex) 아돌프 안데르센(수학 교사), 폴 모피(변호사), 지크베르트 타라쉬(의사)이번 글에서는그런 체스 선수들의 별도 커리어 중에진짜 유별나게 특이한 사람들을 소개해보고자 함1. 프랑수아 앙드레 다니캉 필리도르 (1726-1795)첫 타자는 체스계 최초의 슈퍼스타로 불리는 필리도르임명실상부 18세기의 체스 세계 최강자고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 궁정에도 초청받은 적 있는 파리 사교계의 탑스타였음필리도어 디펜스 때문에 오늘날에도 체스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름이고 ㅇㅇ"19세기까지는 별도 직업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하다면서 18세기 인물을 왜 가져옴?" 할 수 있는데필리도르는 그중에서도 많이 특이한 편임얘는 체스로도 세계 최강이었지만당대 유명 오페라 작곡가이기도 했음https://youtu.be/fiK1P_e0wKk유튜브에 검색해보면 이 사람이 작곡한 오페라 곡들 아직도 제법 올라와있음사실 필리도르는 출신 가문 자체가 프랑스 궁정음악가 집안임그래서 필리도르 가문에 대한 위키 문서가 따로 있을 정도고악기 오보에를 발명한 가문이 이 집안임음악가 집안에서 음악도 잘하고 체스도 잘하는 특급 천재가 탄생했던 케이스물론?프랑스혁명으로 집안이 날라갔습니다2. 조지 앨런 토마스 (1881-1972)이분 누구임? 할 수도 있는데체붕이라면 이 선수 게임을 못봤을 수가 없음체스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경기 중 하나인이 전설적인 체크메이트의주인공(백)은 아니고피해자(흑)임(Edward Lasker vs George Thomas 1912)1923년, 1934년 영국 챔피언 자리를 두 차례 먹었고1934/35 헤이스팅스에서 오이베, 플로르와 공동우승을 차지했던 영국 체스 최강자 중 한 명이었음영국 귀족 출신인데 어머니부터가 제법 특이함엄마 에디스 마거릿 토머스는무려 1895년 헤이스팅스 대회 여성부문 우승자였음!그래서 어릴때부터 엄마한테 체스를 배웠다고 함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조기교육을 받더니아들이 버그캐릭이 되어버렸는데영국 체스 챔피언이자영국 배드민턴 챔피언이 됨(1923년에는 아예 두 타이틀 동시 보유)심지어 테니스에서도 윔블던 단식 8강까지 가본 ㅈㄴ 강한 아마추어였음...체스에서도 이름을 날렸지만 배드민턴에선 아예 전설격인데 전영 오픈에서 단식 4번 남자복식 9번 혼합복식 8번 우승으로 타이틀만 21번을 해먹음...나중에는 세계배드민턴연맹 초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음배드민턴의 세계남자단체챔피언십을 토마스컵이라 부르는데이것도 이 선수가 만들어서 이 선수 이름이 박혀있는거임체스계에서도 신사적인 품행으로 유명했고한평생 취미에 미쳐살아서 그런지 결혼도 안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다 갔다함3. 미겔 나이도프 (1910-1997)시실리안 나이도프의 그 나이도프 맞음 ㅇㅇchessmetrics상 세계 챔피언 보트비닉에 이어 한때 세계 랭킹 2위로 평가받았고캔디데이트도 두차례 나가봄폴란드 유대인 출신인데(알레킨편에서도 언급된) 1939년 올림피아드 당시 폴란드 국가대표로 출전했다가유럽에서 2차대전이 터져버렸음...그래서 폴란드로 못돌아가고 아르헨티나에 남았는데홀로코스트 때문에 부모 형제 아내 딸이 다 죽었고 결국 그대로 아르헨티나에 정착해서 살게 됨(이때 유대인식 이름 모이셰 멘델 나이도프에서 미겔 나이도프가 됨)가난한 유대인 이민자로 처음엔 넥타이 팔러다니고 그랬다는데보험 세일즈맨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둬서나중에는 자기 회사도 차리고 투자도 대박나고 해서 말년에는 엄청난 부자가 됐다고 함물론 이걸 다 체스커리어도 병행하면서 해낸거라 더 대단한 사람인듯아르헨티나 챔피언 8번을 해먹었고 심지어 1975년에도 우승함 (65살에;;)4. 스튜어트 밀너배리 (1906-1995) + 코넬 휴 오도넬 알렉산더 (1909-1974)밀너배리는 프렌치 디펜스 밀너배리 갬빗의 그 밀너배리 ㅇㅇ코넬 휴 오도넬 알렉산더는 "C.H.O'D. Alexander" 라는 이름으로 기보에도 제법 등장하고 1938, 1956 영국 챔피언임둘다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으로체스 같이 두느라 대학에서부터 친했다고 함영국 최강 레벨이었던 두 체스광은 국가대표로 1939 올림피아드에 출전했는데2차 대전이 터짐영국팀은 즉시 귀국을 택했고귀국 뒤 밀너배리와 알렉산더는 블레츨리 파크, 즉 에니그마 해독팀에 합류함영국이 나치 독일 암호 해독하려고 만든 조직임밀너배리는 육군 암호 해독팀알렉산더는 해군 암호 해독팀에 배정됐는데해군 암호 해독팀에는 그 유명한 컴퓨터과학의 선구자 앨런 튜링이 같이 있었고그래서 앨런 튜링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 CHOD 알렉산더가 조연으로 등장함(경고하는데 요거 쓰레기영화니까 보지마셈 ㅇㅇ 이딴 영화에 based on true story 붙여놓는거 볼때마다 열받음) 두 사람 모두 블레츨리 파크에서 큰 공헌을 남겨서 종전 후에는 그대로 공직에 눌러앉았는데밀너배리는 훗날 영국 재무부 고위관료(대충 차관보)까지 올라갔고알렉산더는 GCHQ(영국 정보기관) 암호분석 부문 총책임자를 역임함두 사람은 평생 절친으로 남았다고 함5. 니콜라스 로쏠리모 (1910-1975)시실리안 로쏠리모의 그 로쏠리모임이쪽은 특이한 커리어(절망편) 인데원래 러시아제국에서 태어났다가 러시아혁명이 터졌고1929년에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그리스 국적 덕에 소련을 빠져나와 프랑스로 이주함프랑스에서 체스에 두각을 보여서 여러 차례 파리 챔피언을 따냈고,특히 2차 대전 후에는 프랑스 챔피언도 먹고 헤이스팅스도 우승함그래서 전세계에 그랜드마스터가 40명도 안 되던 1953년에 그랜드마스터 타이틀을 얻었음 (지금은 한 2000명 됨)그니까 진짜 체스 세계의 극소수의 정점 중 하나였던 거지근데 이 사람의 커리어는 무슨 화려한 직업이 아니라웨이터택시기사아코디언 연주가이런거임...그냥 생계를 위해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일하며 살아야했음1952년에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유럽에는 그래도 제법 대회가 있었지만 미국에는 진짜 대회가 졸라게 없어서 체스로는 생계 지탱이 아예 안됐다고 함전세계 top 40인데도 그랬던 거임..체스로 먹고 사는게 이렇게 어렵습니다 (단, 소련인은 제외)5. 마크 타이마노프 (1926-2016)시실리안 타이마노프의 그 타이마노프임소련인이쪽은 특이한 커리어(희망)편인데소련은 사실 딱히 체스로 겸직할 필요가 없는 나라였음특히 최정상급이면 국가에서 그냥 돈을 퍼줌형식적인 직함만 뭐 하나 달아놓고 체스만 열심히 두면 되는 식임괜히 소련 체스가 날아다녔던 게 아니지근데 타이마노프는 그냥 형식상으로만 직업을 가진 게 아니라세계 최고의 체스선수 중 하나면서동시에 세계 최고의 듀오 피아니스트 중 하나였음https://youtu.be/ncSI0b1CsXI마크 타이마노프와 아내 류보프 브루크는 당시 국제적으로 가장 유명한 피아노 듀오 중 하나였고음반도 엄청 많이 남겼고 해외공연도 다니고 그랬다함사실 타이마노프는 체스에 본격 데뷔한 계기부터 제법 특이한데원래 집안이 음악하던 집안이라 어릴때부터 음악교육 받았고 음악에 재능을 보였는데그 덕분에 우연히 어떤 소련 영화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아역을 맡았다고 함그 영화가 히트를 친 덕분에11세의 타이마노프는 레닌그라드 소년궁전 개관식 행사에 초대받았고 (소년궁전 = 사회주의 국가들의 엘리트용 방과후 문화교육시설 같은거)"하고 싶은거 하나 골라봐라" 했을 때 체스반을 골랐다함여기 체스반 교장이 보트비닉이었고 그래서 보트비닉한테 체스를 배웠음음악이 영화로 연결되고 영화가 또 체스로 연결된 기묘한 케이스근데 다 대박남 ㅋㅋ타이마노프는 바비 피셔의 전성기 1971년 캔디데이트에서 6대0으로 처참하게 깨진 걸로도 유명한데진 다음에"그래도 내겐 음악이 있어.." 라는 말을 남겼다 함근데 결과 보고 빡친 소련이 징계 내려서 공개연주까지 일시금지당함덤으로 동시기 인물인 7대 세계챔피언 바실리 스미슬로프 (1921-2010)이분은 특이한 커리어(낭만편)이라 할 수 있는데어릴때부터 체스도 사랑하고 성악도 사랑했다고 함체스로 일단 인생 대박을 터뜨려버렸지만 오페라 가수로서의 꿈도 버리지 않았고그래서 이미 그랜드마스터 달고 있었던 30살에 무려 볼쇼이 극장 솔리스트에 지원하기도 함2차에서 아쉽게 떨어졌지만...근데?그 애정이 식질 않음이미 체스인으로 자리잡았고심지어 세계챔피언까지 한번 해봤지만마음 한켠에서 그냥 평생 성악을 사랑함그렇게 성악을계속 갈고닦고 갈고닦고 갈고닦아서https://youtu.be/IAvrT52VXOI75살에 첫 앨범을 냄....같이 음악을 했던 타이마노프랑 죽이 잘 맞았는지둘이 같이 나온 행사장에서는 둘이서 즉석 리사이틀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고 함7. 볼프강 운치커 (1925-2006)뭐 이세상 어느 분야나 그렇지만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게 다 전문화되어가고체스계도 최정상 레벨에서 순수 아마추어라는 건 좀처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음그래서 이 사람이 특이케이스임서독 챔피언 6차례서독 국가대표로 올림피아드 13차례 출전, 1번 보드만 10번서독 최강자를 거의 20년간 해먹은 선수인데,본직은 법조인이고 ㄹㅇ 순수 아마추어임법률공무원으로 일하다 판사가 됐고, 나중엔 행정법원 부장판사까지 올라갔는데휴가를 내고 체스대회를 나가는 식으로 체스활동을 이어갔다고 함본업이 아예 따로있는 순수 아마추어가 저 레벨에서 안 밀리고 싸운거니까 진짜 미친거지판사 퇴직하고나서도 지역 클럽 소속으로 계속 리그전 뛰면서 죽기 전까지 계속 체스를 뒀고경력을 살려 독일체스연맹 법률고문을 맡기도 했다 함인품도 좋아서 인기가 많았고 80세 기념행사에는 무려 코르치노이 스파스키 카로프포가 참석했다고 함8. 우툿 아디안토(1965-) + 빅토리야 츠밀리테-닐센(1983-)진종오 선수도 그렇고 스포츠스타가 정치계에 영입되는 일을 종종 봤을 텐데같은 케이스로 바둑계에서도 조훈현 9단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바 있음 (한번 하고 내려오심)해외 체스 = 한국 바둑 포지션이니당연히 해외에서도 이런 식으로 체스계에서 정계 진출하신 분들이 있는데그중에서도 좀... 많이 높이 올라가신 분들이 있음인도네시아의 그랜드마스터 우툿 아디안토인도네시아에서 나온 3번째 GM이자 한때 인도네시아 체스 간판스타였는데2009년에 투쟁민주당 소속으로 하원의원에 선출되었고정계 활동을 지금까지도 이어가서하원부의장도 맡아봤고현재 투쟁민주당 원내대표이자 제1위원회(외교 국방 정보통신 등 소관하는 상임위) 위원장으로 있음리투아니아의 그랜드마스터 빅토리야 츠밀리테-닐센리투아니아 최초 여성 GM임 (WGM 아님!)여자 세계랭킹 5위까지 올랐던 리투아니아의 스포츠 스타였고 그걸 계기로 정계에 입문했는데37살에 리투아니아 국회의장이 됨;;;;;;;;;;;;지금도 국회부의장 하고있다함9. 시먼 아그데스타인 (1967-)노르웨이 최초의 그랜드마스터 시먼 아그데스타인이분이 또 졸라 이상한 케이스인데이 사람은노르웨이 체스 국가대표임과 동시에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였음그것도 어디 벤치 선수도 아니고스트라이커로 월드컵 예선까지 나갔을 정도시기가 갈리는 것도 아님축구 국가대표로 출전했다가 곧바로 며칠 뒤에 체스 올림피아드 뛰러갔다가 이러고 살았음;;;;딱 축구 국대로 뛸 때가 체스에서도 전성기라 세계랭킹 16위까지 올라감안타깝게도 심각한 무릎 부상을 겪어 축구에서 은퇴해야 했고이때 엄청 큰 슬럼프가 찾아와서 체스에서도 부상 이전 폼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함그래도 체스는 계속 이어나갔고훗날세계 챔피언 마그너스 칼슨의 초기 코치가 되었음칼슨한테 노르웨이 레이팅 1위자리 뺏겼다 함 ㅋㅋㅋ그래도 2023년에 노르웨이 챔피언십 우승하기도 하고선수로서나 교육자로서나 아직 정정하신듯함https://airbridge.tumblbug.com/2faq5i대한민국 최초의 체스 역사책 펀딩중너만 오면 고
작성자 : 김첨G고정닉
나치독일 국민수신기 'VOLKSEMPFÄNGER'
이베이에서 구매한 독일의 '국민수신기/국민라디오' 뭔 물품 이름이 이러겠냐 싶겠지만 공식명칭이 국민라디오 맞음. '폴크스엠팽어(Volksempfanger)'가 공식명칭이고 Ve301로 불리기도 했는데 Volks Empfanger의 약자+나치당이 정권을 잡은 1933년 3월 1일을 뜻함. 히틀러와 나치당은 1933년에 완전하게 독일의 의석 과반석을 차지하며 정권을 잡게 됨. 바이마르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나치독일이 성립되었지만 국민의 지지가 있다고 해도 그 지지율을 확고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음. 언제든 불빛이 희미해지고 어둠이 내리면 펜 대신 총을 잡고 전 국민이 독일을 위해 전선으로 뛰어들 준비가 될 정도로 사상까지 무장시켜야 했기에 끊임없는 교육과 사상검증으로 국민들이 자신들의 의견에 동조하는지 확인해야 했지. [국민라디오 등장 이전 초저가 라디오 NORA의 E82W] 때문에 나치당은 1920년대부터 급속히 발전한 라디오라는 매체에 주목했음. 전파를 이용해서 전국에 목소리를 송출한다는 점은 어마무시한 선전 효과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다만 아무리 싸도 150제국마르크에 해당하는 라디오 값이 문제였음. 당시 노동자들 월급이 120에서 150제국마르크였는데 수치상으로는 한달 치 월급이지만 지금과 구매력도 다르고 사회복지도 전무하던 때라 최소 2배에서 3배는 비싸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 참고로 당시 1933년 나치독일 물가 기준은 1. 호밀빵 한 덩어리는 0.3 제국마르크 2. 우유 1리터에 0.2 제국마르크 3. 계란한개 0.1 제국마르크 4. 감자 1kg에 0.06 제국마르크 이런 상황에서 150제국마르크를 국민들이 사게끔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음. 때문에 나치당은 위 사진의 NORA사의 E82w라는 1929년에 출시한 굉장히 값싸고 단순한 라디오에 주목했음. 수신기와 스피커가 분리된, 배터리로 작동되는 단순한 장치였는데 이는 라디오를 굉장히 싸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는 것. 때문에 나치당은 설계자 오토 그리싱에게 다음과 같은 제원을 요구함 1. 중파am와 장파lw 수신이 가능할것 2. 스피커와 본체가 같이 붙어있을 것 3. 수신률은 독일 어느 곳에서든 수신이 가능할것 4. 그러면서 가격은 80제국마르크를 넘지 않을 것 쉽게 말해 오토바이 만들 돈으로 경차 만들라 뭐 이런 거 [크기비교로 보드마카 둠. 이 시대 라디오들 특성상 크기는 거대함] 그래서 오토 그리싱은 과감한 원가절감으로 라디오 설계를 해냄 1. 외장은 손이 많이 가는 목재 형식 대신 틀로 빠르게 찍어낼 수 있는 베이클라이트(초기형 플라스틱)로 만든다 2. 슈퍼헤테로타인 방식 대신 TRF방식 사용. 노브를 돌려 주파수를 맞추는 방식이 아닌, 더 구형의 방식인데, 원하는 주파수대역으로 노브를 돌려 신호를 잡고 정밀조정 노브로 한번 더 감도를 맞추는 방식임 3. 단파 수신기능을 제거한다 4. 내장안테나도 꺼져 5. 스피커도 음량조절기능도 없이 소리만 나오게 하면 됨 그리고 이 제품을 '제 10회 대독일 라디오 박람회'에 시연하였음 1933년 8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린, 목조건물로 된 '그로스도이체 풍커슈텔룽' 즉 대독일 라디오박람회 베를린 전시장에 총 59가지의 라디오들이 전시되었는데 그 중 위 사진과 같이 초기형 Ve301 몇대가 전시되었음. 전시회의 주인공은 VE301이라는 듯이 거대한 대형 글자판이 세워졌고 제작에 참여할 28개 회사 중 몇몇 회사의 간부들이 출시를 발표함. 독일을 대표하는 라디오답게 전면에는 제국수리가, 이후 모델에는 하켄크로이츠도 들어갔음. '제국의 국민은 모두 총통의 소리를 듣는다' 이후 판매되기 한달 전부터 독일 전역 전자제품 상점마다 포스터가 나붙었고 판촉 사원들까지 사전판매를 시도했음. 이 방식은 제대로 먹혀들었는데, 출시 당일 초도생산물량 10만대가 완판되어버림. 그리고 추가 생산한 20만대도 며칠만에 매진되었고. [성탄시즌 연말연시. 독일 주파수 설명서 N.S FUNK의 표지를 장식한 VOLKSEMPFANGER] 연말에는 30만대가 추가 생산되었는데 이 또한 크리스마스 기간에 완판됨. 이렇게 된 이유는 독일 정부가 국민 대상으로 보증을 서줬기 때문인데 76제국마르크를 한번에 쓰기 힘든 국민들을 고려해서 할부판매를 계획함. 나치독일에서 유일하게 시행했던 이 라디오 할부판매는 라디오 상점에서 VE301을 구입하면서 동봉된 서류에 서명하면 정부가 구입자를 대신해서 라디오 값을 즉시 전기회사에 대납하고 이후 구매자가 전기 요금과 함께 요금을 정부에 납부했는데 7.25 제국마르크씩 18개월 할부와 함께 4.40제국마르크가 추가된 형식으로 실제로 총 소모되는 비용은 86.45 제국마르크였음. 현금 지불 가격보다 14% 높았지만 구매율은 떨어질 줄 몰랐다고 [후면 모습. 구멍은 진공관이 내뿜는 열을 환기시키기위해 뚫어놨고 내부에는 마그네틱 라우드 스피커가 보임. 규정규격이 있기에 28개 전기회사에서 만든 라디오들은 모두 품질,생김새,재질이 동일했음] "라디오를 구입한 첫날 저녁에 내가 얼마나 놀라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매우 원시적인 실내 안테나가 있어도 쾨니히스베르크, 비엔나, 슈튜트가르트, 그리고 여러 외국 방송들을 매우 강한 수신률로 청취할 수 있었습니 다. 그리고 지붕 높은 곳에 안테나를 장착한 지금, 국민라디오에는 거의 모든 원하는 방송을 저녁 시 간에 청취할수 있습니다." -기술 컬럼 N.S FUNK의 소비자 평가 [내부모습. 맨 위에는 마그네틱 라우드 스피커, 밑에는 정류관,증폭관 등의 진공관과 배선판, 전압선택판, 커패시터 등이 보임. 구조가 굉장히 단순함] '정부에서 선전목적으로 발행했고 해외방송을 듣지 못하기 위해 감도를 의도적으로 낮추었다'라는 말이 있는데, 실상은 단순히 해외방송국의 안테나 출력이 생각보다 낮은데다 VE301 가격 특성상 고수신율을 발휘할 성능이 안되었기 때문에 생긴 오해. 선동방송을 위해 라디오를 전국에 배포했듯이 독일 라디오 방송은 20퍼센트를 선동, 80퍼센트를 오락/음악/뉴스로 채웠음. 음악은 주로 히틀러가 좋아했던 바그너의 클래식이 연주되거나 행진곡, 장엄한 곡들이 연주되었음. 다만 교묘하게 중간중간 선동방송을 배치해서 라디오를 들을 때 선동방송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서서히 독일 국민의 사고방식까지 잠식해 나감 [배신자!!] 런던, 모스까우 등 독일의 적국방송을 듣는 것은 전쟁이 터지고 나서 불법이 됨. 독일 라디오들은 전쟁이 터지자 모든 라디오 주파수 선택노브에 아래와 같은 살벌한 경고문을 달았음 "주의! 외국 방송을 청취하는 행위는 우리 민족의 국가 안보에 대한 범죄이다. 이는 총통의 명령에 따라 중형으로 처벌받으며 교도소형으로 처벌된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연합군의 폭격이 늘어나며 승리가 불확실해지자 독일국민들은 해외방송에 귀를 기울였는데 1944년부터 독일국민들이 국방군방송을 믿지 않는 편이었다고. 영국의 BBC는 이때다 하고 출력을 올려 전황을 발표했는데 이거 몰래 듣다가 걸리면 눕히고 개밟힌다음에 감방에 끌려갔음. 나중에는 하도 방송에서 구라만 치니까 아예 선전부장관 이름을 따서 '괴벨스의 주둥아리'라는 별명까지 생김. 독일 선전부 장관 생일에 극빈자 대상으로 실시한 라디오 배포식. 총 500여대가 무료로 배포되었음. 해당 라디오는 VE301의 염가판 DKE38인데 35제국마르크라는 싼 가격에 할부판매도 진행되었고 수백만대가 팔렸지만 성능이 똥오줌이고 독일제답지 않게 내구성도 오리같아서 몇년안가서 죄다 망가졌다고. 전쟁이 장기화되고 정보통제가 강해졌는데 안네프랑크의 일기에서도 아래층 창고의 라디오가 BBC로 맞춰놓은 채로 숨은 일이 나오는데 이때 주파수를 바꿔놓고 올라올걸 하고 후회하는 대면이 나옴. 실제로 처벌받은 경우도 있는데 대다수는 훈방으로 끝났지만 800여명 정도는 중형으로 처벌받았고 그들 중 총살당한 사람들도 있었음. 처벌 강도는 전쟁전에는 훈방수준에서 끝났지만 전쟁이 격해질수록 처벌의 강도는 커졌는데 중형선고자들이 이 시기에 많이 나왔다고함. [전쟁의 크리스마스] 전장에서도 폴크스앰펭어를 썼는데 배터리로 구동되는 'VE301B' 형식도 있었음. 노잼 클래식만 나온다는 불평이 받아들여져 한동안 금지되었던 미국풍 재즈음악도 방송되었음. 정권에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음악방송은 대체로 청취자의 의견이 많이 받아들여졌다고. [연합군 폭격기를 향해 발사되는 독일공군의 대공기관포] 폭격이 있을 때는 독일의 방송국들이 일제히 침묵에 들어갔는데, 방송국 또한 연합군에게는 주요 타격 시설이라서, 연합군이 이쪽을 폭격했는데 방송국이 갑자기 멈춘다=경로에 방송국이 있다 라는 결과가 나와버려서 파괴를 대비해서 방송은 공습경보가 울릴 때는 멈췄음. 폴크스앰펭어로 방송된 나치 독일의 마지막 방송은 히틀러가 국민돌격대와 같이 소련군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고 모든 독일군은 현 시간부로 적대행위를 중단하라는 최고사령부의 방송이었다고 함.(실상은 히틀러는 자살했지) 선전목적으로 만들어진 라디오였지만 수백만대 만들어졌고, 전쟁전에 만들어진 고품질의 ve301들은 이후로도 수십년간 사용되다 현재는 박물관에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음. 우리나라에선 ㅆ노잼 KBS1만 잡힘. 그럼 20000 - dc official App
작성자 : 카를라우퍼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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