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화에 대해서는 다들 들어보았을 것이다.
새끼 코끼리를 말뚝에 묶어놓으면 새끼때는 열심히 말뚝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힘이 부족해서 포기하게 되고,
그것을 자신의 한계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인 코끼리가 되면 그까짓 말뚝은 가볍게 뽑아버릴 수 있지만 새끼 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결국은 말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한계로 설정하게 된다.
인간 사회에서도 그것과 비슷한 일은 많이 일어난다.
내가 예전에도 글을 몇번 쓴적 있지만, 사회에서 특정 집단이 아닌 다수에게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은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유영철이나 정남규 강호순과 같은 연쇄살인 범죄를 보자.
이런 문제는 사이코패스라는 특정 집단에서만 가끔씩 발생하는 현상이므로 사회보다는 개인의 문제에 훨씬 가깝다.
그리고 이런 연쇄살인범들은 사회 제도가 잘 갖추어진 나라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하는 만큼 더더욱 사회에 무거운 책임을 돌리기는 어려워진다.
반면에 베네수엘라에 매춘부가 매우 많은 것이나 소말리아에 해적이 많은 것을 보자.
이것은 국민 전체에 만연한 현상이고, 매우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문제이다.
베네수엘라 매춘부에게 "너는 게으르고 의지가 없어서 매춘을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대다수의 매춘부들은 경제가 파탄나서 마땅히 할 일이 없고 외국으로 나갈 능력도 되지 않기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려서 매춘업을 한다.
따라서 이것은 개인의 문제보다는 사회의 문제로 보는 것이 옳다.
한국의 경우에는 이렇게 사회적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이 있을까?
내가 외국에서 산 기간은 인생의 10%를 조금 넘을 뿐이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기간이기 때문이고
몇 년 전 대학생 시절부터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외국인과 이야기한 적이 많기 때문에 나는 이런 문제들을 어느 정도 발견했다.
여러 개의 사례들이 있지만 현재 글에서 다 다루지는 못할 것 같고, 하나만 사례를 들자면 바로 "갑질"이다.
물론 갑질이 없는 나라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살인이 없는 나라는 없지만 중남미의 살인 범죄의 빈도와 일본 대만의 그것은 매우 유의적 차이를 보이듯이,
서양에도 갑을관계라는 것은 있겠지만 한국은 유달리 그것이 두드러진다.
2014년에 대한항공에서 일어난 갑질을 생각해보자. 너무 극단적인 사례라고? 단지 하나의 사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심지어 동종업계인 아시아나에서도 비슷한 갑질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 신입 여승무원들에게 낯뜨거운 회장 찬양 노래를 하게 한 사례는 바로 대한항공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아시아나의 갑질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어쩌다 한번도 아니고, 정말 한국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최근만 해도 셀 수 없이 많다.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응급구조사 폭행치사 사건, 양진호 갑질사건 등등
열심히 뒤져보면 1년에 수십건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뉴스에 나오지 않은 사례는 훨씬 많을 것이니 갑질 문제는 한국에서 특정 집단이 아닌 다수에게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고 보는 것이 맞고,
따라서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는 사회적 문제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문제에는 단순히 개인을 처벌하는 데에서 끝나서는 안된다.
잘못을 저지르는 개인을 처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앞서서 말한 연쇄살인 같은 개인적 범죄야 개인을 법적으로 처벌하고 재발을 방지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문제는 그런 식으로 했다가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철저한 원인 분석이 후행되어야 한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사회탓'이라고 하면서 금기시하지만
이런 문제해결 과정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한국 군대가 병신인 이유도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작정 금지와 통제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서 한국의 갑질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도대체 왜 갑질은 일어날까?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는 갑질의 빈도가 왜 한국에 비해 적을까?
나는 유럽국가에서 조현아나 양진호 등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그런 짓을 했다가는 먼저 법에 의해서 처벌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진호가 뺨을 때려도 가만히 맞아주는 부하직원은 유럽에서 그렇게 흔하지 않다.
여기에서 유럽 현지인에게 그런 짓을 했다가는 다음날 바로 변호사를 대동해서 고소장이 날아올 것이고,
아랍 이민자들이나 러시아계 이민자들에게 그런 짓을 했다가는 양진호의 머리가 다음날 하수도에서 발견될지도 모른다.
한국 사람들과 달리 외국인들은 그런 부당한 괴롭힘에 대해 훨씬 호전적이고 심지어 물리적인 해결책이 나간다.
물리적으로 두들겨 패는 것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행위조차도 부당한 갑질을 막는 데에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분석해보면 왜 이들은 이렇게 부당한 갑질에 대항하는데, 한국인들은 그러지 못할까?
잡소리가 엄청 길었지만, 결론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것이 어렸을 때부터 주입된 '학습된 무력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심지어 유치원부터 누가 싸웠다고 하면 잘잘못을 가릴 생각은 하지 않고 무작정 싸운 당사자들을 처벌하기 바쁘다.
옳고 그름을 가리기보다는 집단에 '분란'을 일으킨 죄를 훨씬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대우가 정말 씹창이다.
자신은 정의롭고 중립적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조차 은연중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니, 남의 죄를 촉새처럼 일러바치는 것을 보면 당연히 안좋게 생각하지 않겠나? 어떻게 윗사람이 잘못 좀 했기로서니 그런걸 고발해?"
이게 굉장히 관계지향적인 한국식 사고방식의 특징이다.
내가 예전에도 말했지만 서양인과 한국인은 같은 호모 사피엔스인만큼 대부분 유사하지만
일부 부문에서 정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차이를 느끼는데, 내가 느낀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것이다.
서양인들은 저런 사고방식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본 사람들은.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 내부고발이 정당한지 아닌지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의견을 내지 못하도록 교육받는다.
한국에서 이상적이라고 그려지는 아동은 일명 '예스맨'이다.
어른이 하는 말에 아무것도 반항하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는 아동이 예의가 바르다며 칭찬받는 경우가 많다.
앞의 내부고발자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어린이가 어른에게 반박한다면 그 내용에 상관없이 감히 윗사람을 거스른 죄로 처벌부터 받고 본다.
마찬가지로 서양에서는 그 내용이 옳은지가 중요하지 윗사람을 거스른 죄 따위는 없다(말투나 태도 등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서양 언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버르장머리', '말대꾸'등의 용어가 한국어에 존재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사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자신의 의견이 아무리 옳을지라도 어린이는 어른에게 '말대꾸'라는 것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린 것이 버르장머리없다" 라고 말하는 순간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일정 수준의 잘못을 어린이가 무조건 떠안게 되는 불공평한 구조 때문이다.
새끼 코끼리가 말뚝에 묶이듯 어릴 때부터 무작정 부조리에 순응하는 교육만 받아왔으니,
어른이 되어서도 부당한 갑질에 대항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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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 어릴때부터 존나 억압 당하며 자람
2. 공권력이 상대가 아무리 먼저 개지랄해도 조금 물리력 사용하면 가혹하게 처벌함
3. 이 두가지에 의해 상대가 개지랄해도 거의 반격을 못하는게 한국인들
4. 이래서 온갖 개지랄들이 일상적으로 판치는 사회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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