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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잼 시골섬을 왜 감? 쓰시마 2박3일 여행기 (2)
1편 링크 - 노잼 시골섬을 왜 감? 쓰시마 2박3일 여행기 (1) - 일본여행 - 관동이외 마이너 갤러리아 디씨 ㅅㅂ 글 날아갔네전날 술을 왕창 먹고 8시반인가 겨우 일어나서 찍은 이즈하라 풍경일본을 많이 가본건 아니지만 토요코인은 어딜가도 있고 어딜가도 평타는 치는 듯잘놀고 푹 잘잤음 ㅋㅋ나는 해장 버거파라 ㅋㅋ토요코인 앞 티아라몰에 있는 모스버거 먹으러 옴모닝 세트 시켰는데 맛있게 먹음 감튀도 맛있더라 지방충이라 모스버거는 처음이었어 ㅋㅋ해장하고 간단하게 티아라 몰좀 둘러보고 본격 관광하러 떠남티아라몰에 뭐 이것 저것 있긴 했는데 남자놈들이 막상 살건 없었고 둘러보다 가챠? 뽑기? 있길래 그나마 익숙한 포켓몬스터 상품 300엔 넣고 뽑음처음엔 이미지 보고 몬스터 볼안에 피규어가 있는 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포켓몬 라이트가 나오는거 ㅋㅋㅋㅋ이 친구가 뭐 하는 포켓몬인지 아는 사람은 알려주라 아직도 정체를 모름 ㅋㅋ아는게 피카츄 라이츄 꼬북이에서 끝이다티아라 몰에서 좀 올라가면 나오는 가네이시성문물론 성은 진작 다 박살나서 성터만 있고 성문만 복원한거라 들었는데 먼가 잘어울려서 찍어둠 ㅋㅋㅋ성문을 지나서 쭉 올라가면 나오는 덕혜옹주결혼봉축비내가 사실 뭐 역사 의식이 개쩔거나 하진 않지만 역사가 담긴 비석이라 보러 옴고종의 딸인 덕혜 옹주는 그 당시 조선황족이 그렇듯 볼모 비슷하게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가서 가족과 떨어져 가벼운 정신병 증세가 있었는데유학중에 병세가 약간 호전되어서 당시 쓰시마 번주? 영주와 결혼했다고 해그때 쓰시마 번주와 덕혜 옹주의 결혼을 기념하여 비석을 세웠다가 이혼 후에 철거 했는데 쓰시마에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니 비석을 다시 세웠다고 하더라둘 사이에 딸도 하나 있었다고 하는데 덕혜 옹주가 조현병이 심해져 이혼했다고 들었음솔직히 고종은 잘한거 없다고 생각하는데 옹주는 좀 안타깝게 느껴졋다그리고 더 올라가면 나오는 가이네이시 성 정원사실 매우 작은데 300엔이나 받아서 다국적으로 창렬이다 리뷰가 많이 달린 정원임 ㅋㅋ관리인분이 혼자라 매표소는 비우고 정원내에서 청소 중이셨는데 우리가 문 앞에서 서성이니까 가격 들으면 안들어올거라 생각 하셨는지 유료정원 입니다 적힌 안내문구 보여주시더라 ㅋㅋㅋㅋㅋ혹시 반쇼인을 갈거면 160엔으로 할인 받을 수 있다 길래 고민 없이 결제하고 들어감 걸어서 한 5분 정도면 쭉 둘러보고 나갈 수 있게 길이 이어져 있는데 아담하고 나름 이쁘게 되어 있어정원 출구로 빠져나오니까 바로 반쇼인이 눈앞에 있더라작은 사찰하고 역대 쓰시마 번주들의 무덤이 있는 곳인데 풍경이 이쁜걸로 유명해서 들어갔어입장료는 여기도 300엔임사찰 정문은 잠겨있고 옆에 있는 매표소에서 300엔 내면 옆 길을 따라 들어가게 되어 있어사찰 내부는 이렇게사찰은 잘은 모르겠는데 아는건 이 유물들이 조선 시대때 인조가 선물 한거라고 알고 있음사찰을 보고 더 들어가면 이렇게 석등이 계단따라 쭉 이어지는데 진짜 여긴 실물로 꼭 봐야함 캬 ㅋㅋ1600년쯤 되었다는데 나무들도 진짜 무슨 빌딩 만함 ㅋㅋㅋ 캬계단 따라 올라가면 계속 역대 쓰시마 번주들 무덤 비석이 쭉 나오는데 석등이 만들다 남았는지 끝에는 도배를 해놨더라 ㅋㅋ반쇼인을 보고 나와서는 아까 가이네이시 성터 옆에 있는 쓰시마 박물관을 갔어정면 올라가는 슬로프는 막혀 있어서 안하는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입구가 뒤쪽이더라처음엔 근처에 있는 작은 조선통신사 역사관이 무료라 갈까 하다가 여기가 생긴지도 얼마 안되었다고 하고 건물도 이뻐서 그냥 가봄 ㅋㅋ당연히 이곳도 한글로 안내는 거의 안되어 있지만 그냥 박물관을 좋아해서 들어갔어 쓰시마 위치상 조선 유물도 많은데 그쪽은 한국어로 최소한의 정보라도 표기 해놨고 파파고 동원해서 둘러봄ㅋㅋ 입장료는 아마 600엔인가 그럼사진도 리뷰는 안된다고 봤는데 직원한테 파파고로 물어보니 플래쉬 키고 촬영하는건 금지지만 그냥 사진 찍는건 다행히 자유래이렇게 영상물은 그래도 한글 자막 있어서 보고감 ㅋㅋ 쓰시마에서 보관하고 있던 조선 지도ㅋㅋㅋ이건 재밌어서 사진 남겨 놨는데 쓰시마가 위치상 조선과 왜의 교두보이다 보니 어떻게든 교역으로 먹고 살려고 대대로 똥꼬쇼를 열심히 했더라아무래도 사이가 좋진 않던 시절이라 양쪽 비위 맞출려고 노오력을 꽤 했음조선과 왜 양국에 전달되는 서신도 조작해서 우호적이거나 굴종하는 내용으로 서로 바꾸고 양 국의 인장까지 위조해놨음 ㅋㅋㅋㅋ참고로 쓰시마 번주? 영주 가문 성이 소씨 임저 조선통신사 행렬 그림은 테이프로 굿즈화 해서 팔더라물론 안쓸거 같아서 사진 않음 ㅋㅋㅋ화려한 외관 만큼 실내도 멋지긴 했는데 역시 주제가 대마도의 역사에 한정되다 보니 컨텐츠 양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은 들긴 했음그리고 특정 기간 마다 바뀌는 특별 전시관도 따로 있긴 한데 현재는 전시가 없음 ㅠㅠ건축과 나와서 건물 구경하고 싶은 마음도 컸는데 사진에 다 못담아서 그렇지 다른건 몰라도 건물은 참 이쁨디자인 맘에 들어서 쓸데 없이 굿즈도 두개나 사버렷음 ㅋㅋ해외갈때 마다 머그컵은 기억 하기 쉬우니 기념으로 사는 편임쓰시마 자석은 관광 안내소에서 샀는데 냉장고에 붙이려고 하니까 요즘 냉장고는 문짝이 쇳덩어리가 아니라 안붙네 ㅅㅂ요건 자석삿던 관광안내소에서 본 고스트 오브 쓰시마 입간판 ㅋㅋㅋ배경이 쓰시마라 그런가 고오쓰 굿즈를 팔더라나는 이겜 안해봐서 잘몰라서 사진 않았다박물관을 둘러보고 이즈하라를 떠나기 전에 남쪽으로 더 내려가서 아유모도시 자연공원에 들렸음 ㅋㅋ여긴 진짜 주차장에 차 대고 나오니까 바로 다리랑 공원이 있어서 걸을 필요도 없음리뷰 보니까 여름에는 계곡 물놀이도 한다고 해서 호기롭게 수영할 준비해서 갔는데 ㄹㅇ 물이 얼음장이라 존나 추워서 사진이나 몇번 찍고 호다닥 나옴진짜 놀기는 딱 좋을거 같음 수심이 얕은 곳도 있고 깊은 곳은 성인이 다이빙해도 될 정도 잡고 뛰라고 줄도 달아 놨던데 심장마비 올거 같아서 점프는 안해봄 ㅋㅋ여름에 간다면 물놀이 하기 좋을거 같어그리고 자연공원 근처에 한국 방송에도 나온 유명한 식당 있다고 해서 바로 들렸는데여기는 고구마면?으로 만든 국수가 유명하다는데 친구는 그거 시키고 나는 안전빵으로 소고기 덮밥이랑 궁금해서 온소바도 시켜봤는데소바가 따뜻하니까 면이 다 부스러져서 식감이 솔직하게 내 스타일은 아니 었음 고구마면도 호불호가 있을거 같긴함가게 사진을 못찍어서 가게사진은 구글 리뷰 퍼옴 ㅠㅠ음식 사진은 내가 찍은거식당 이름은 <란테이>그러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오는 미친짓을 해서 히타카츠항 근처 미우다 해변으로 왔음 ㅋㅋ숙소가 근처라 겸사겸사 들렸는데일본의 몇?대 해변이라 부를만한 경관이었다 캬 ㅋㅋ시간도 늦기도 했고 이미 자연 공원에서 나름 물놀이?를 해서 들어가진 않음숙소는 미우다해변 바로 건너편에 있는 미우다 펜션여기도 초 가성비 숙소인데 깔끔하고 사장님이 진짜 매우매우매우 친절함 ㅋㅋ여긴 구글맵 개 병신이 입구 안내를 제대로 못해줘서 살짝 헤맸는데 알고 보니 진짜 걍 해변에서 반대편으로 쭉 들어가니 나오더라 ㅋㅋㅋ 숙소에 짐 풀고 해변 위에 있는 나기사노유 온천도 들렸어숙소를 여기로 고른 이유중에 하나 였는데 온천은 하고 싶은데 친구가 문신충이라 미리 찾아보니 그나마 문신컷?이ㅋㅋ 관대한 곳이더라심각한 전신 문신급 아니면 받아주시는 듯동네 목욕탕 느낌이었는데 물 만큼은 진짜 온천수인지 미끈미끈 하고 너무 좋았음 ㅋㅋ아쉽게도 노천탕은 아직 운영 전이 었지만 탕 앞으로 해변이 바로 보여서 뷰도 맛도리임참고로 월요일 휴관이다 ㅠㅠ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 가려던거 미리 땡겨서옴목욕하고 나선 역시 근본 있게 병우유 싹 조져주고 ㅋㅋㅋㅋㅋㅋㅋ캬배고픈 상태로 숙소 복귀했더니 사장님이 약속시간에 맞추서 bbq 셋팅 다 해두셔서 바로 술이랑 고기 때려박음 ㅋㅋㅋ여기 숙소를 고른 가장 큰 이유인데 미리 예약하면 4400엔에 바베큐장이랑 화로랑 자리 다 셋팅 해주셔서 미리 올라 오는길에 장봐서 옴 ㅋㅋㅋ 돈이 아깝지 않음 ㄹㅇ 장소도 좋고 바베큐장내에 냉장고도 있어서 술 싹다 넣어두고 시원하게 때렷다 캬우리가 좀 늦게 시작해서 2시간 뒤에 마무리 시간이라 숙소 들어가서 남은 고기 구워서 마저 즐김 저 이름 모를 리치맛 츄하이 존나 맛있더라...이렇게 이틀날 마저 술로 때려버렸다그리고 일어나서 마지막날 ㅠㅠ한국 가져갈 물건들 쇼핑 싹 하고 히타카츠 돌아가서 차 반납하고 아점 먹으러 <카이칸>식당옴 ㅋㅋ와 근데 양이 ㅋㅋ 식고문 수준이야 가격도 싼데 양은 존나 푸짐하고 맛도리임 ㅋㅋㅋ이런 식당은 왜 우리 회사 주변엔 없을까 ㅠㅠ진짜 겨우 겨우 다 먹었다가는 길에 군것질 거리를 좀 했더니 힘들었음그러고도 시간 남아서 항구 바로 옆에 있던 의문의 토리이 따라서 올라 가봣는데 아주 작은 사당 건물? 하나만 있고 뭐 없긴 했음그러고도 시간이 남아서 항구와서 해상자위대 배 들어와 있길래 구경하면서 시원하게 담배 한대 때리고 귀국했다 3일차가 다소 찍싼 느낌이 나는건 차를 애매하게 반납해서 할게 없기도 했고 글쓰다가 날아감유식아 ㅅㅂ<총평>진짜 2박3일 동안 진짜 너무 즐거웠음 친구랑 여행 성향이 맞기도 하고사전에 알아 볼때도 내심 노잼일거 감안 하고 온 쓰시마 였는데 와보니까 정말 좋은 여행지라 느껴졌음사실 가본 곳 말고도 갈데가 더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쓰시마 북쪽에서 최남단 근처까지 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루트로 여행을 해서 ㅋㅋㅋ한국에는 잘 안 알려진 숨겨진 명소들이 꽤 있더라 그 카약 타는 곳도 30분에 300엔인가 저렴하던데 거기도 못 가봤고 한국인들이 불상 도둑질 해가서 한국의 부석사랑 반환 소송했던 작은 사찰에 돌려받은 불상 구경도 하고 싶었는데 못 봄다음에 또 올일이 있을까 싶긴한데 다시 온다면 재방문 하고 싶은곳도 많고 즐거웠다...단점이라면1. 패키지 관광 아지매 아저씨들 진짜 존나 많음 ㅇㅇ 우리는 운좋게 패키지 관광객들 다 피해 다녔는데 월요일 귀국 일정이었음에도 배탈때 되니까 좁은 히타카츠 항 터미널이 꽉참 ㅋㅋㅋㅋ 근데 거기서도 술판 벌이고 떠드는거 보니까 급 현타 오더라쓰시마에서 제일 유명한 그 바다속에 토리이가 잠기는 와타즈미 신사도 패지키 관광객들 진상 떨어서 한국인 출입 금지됨ㅅㅂ내가 눈으로 직접 꼬라지 보니까 이해가 간다... ㅋㅋㅋ2. 차 없이는 관광하기 힘듬 버스가 있긴 한데 텀도 길고 각 마을을 다 거쳐서 2시간 넘게 걸린다고 하더라대신 시골답게 차도 적고 운전 난이도도 초 이지 모드라 좌측 통행 익히기에는 딱임 ㅋㅋㅋ 나도 여기서 마스터하고 오키나와 가서 내가 운전할거임 ㅋㅋ
작성자 : ㅇㅇ고정닉
솔져 오브 포츈 : 콩고 - 1, 2
[시리즈] 솔져 오브 포춘 : 콩고 - 1 · 솔져 오브 포춘 : 콩고 - 1 https://youtu.be/_7PUPNxsRQ0?si=Jfaa0UhAah7NzHQf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 Run Through The Jungle#CCR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is undeniably one of the greatest rock bands of all time, with an instantly recognizable, raw, bayou sound, popularized in ...youtu.be 브금 CCR - Run through the jungle 두 개의 연설, 두 개의 세계 1960년 6월 30일, 아프리카 심장부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벨기에 국왕 보두앵 1세(Baudouin I)가 백색 정장과 반짝이는 훈장을 달고 콩고의 수도 레오폴드빌(현 킨샤사)에 서 있었다.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벨기에는 여러분에게 문명이라는 선물을 주었습니다." 국왕의 말에 연단 아래 백인들은 박수를 쳤지만, 콩고의 흑인 신임 총리 파트리스 루뭄바(Patrice Lumumba)는 웃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땀에 젖었고,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잠시 후 루뭄바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설을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날카롭게 갈라졌다. "우리는 고문당했고, 굶주렸으며, 끊임없이 착취당했습니다. 이 모든 고통과 학대에 맞서 싸웠고, 마침내 오늘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그 순간 국왕의 얼굴은 굳어졌고, 벨기에 언론은 이 연설을 '국왕에 대한 모욕'이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루뭄바는 더 이상 굴복할 수도, 침묵할 수도 없었다. I. 제국의 유산 – 부유하지만 주인이 없는 땅 벨기에령 콩고는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땅이었다. 코발트, 구리, 우라늄, 고무, 석유가 넘쳐났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리틀 보이'의 우라늄도 이곳에서 왔다. 그러나 그 자원의 진짜 주인은 없었다. 벨기에는 콩고를 식민지로 다스릴 계획도 없었고, 레오폴드 1세에게 인계 받으면서 현지 엘리트를 키우지 않았다. 학교는 극소수였고, 대학은 전혀 없었다. 군대의 지휘관도, 정부 관리도 모두 벨기에인들이었다. 콩고의 흑인들은 지배자가 아닌, 단지 지배받는 존재였다. 독립은 너무 빨리 찾아왔고, 그 땅은 국가를 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레오폴드빌 (현 킨사샤)의 소요를 진압하는 헌병대) II. 준비되지 않은 독립 – 곧바로 찾아온 혼란 "이러지 마십시오! 저희는 벨기에인이 아닙니다!" 독립 다음 날, 폭발은 시작되었다. 콩고군의 흑인 병사들은 분노로 가득 찼고, 자신들을 억압해온 백인 장교들을 쫓아냈다. 장교들은 두들겨 맞고, 몇몇은 처형됐다. 벨기에인 수천 명은 공포에 떨며 본국으로 급히 도망쳤다. 순식간에 군대는 무너졌다. 정부 기능도 마비됐다. 어제 독립한 국가는 오늘 사라지고 없었다. 벨기에는 떠났고, 남은 것은 혼돈과 분열뿐이었다. III. 찢겨진 나라 – 분리의 불씨, 솜베의 카탕가 콩고는 너무나 거대했다. 백여 개의 민족이 뒤섞였고, 언어와 문화는 서로 달랐다. 그 중에서도 남동부의 광물 부국 카탕가(Katanga)는 이 혼란을 틈타 독립을 선언했다. (모이즈 솜베) 카탕가의 중심엔 자칭 대통령이자 기업가, 군벌이었던 모이즈 솜베(Moise Tshombe)가 있었다. 그는 외쳤다. "카탕가는 이제 독립한다!" 솜베는 벨기에 대기업과 손을 잡았고, 외국 용병을 고용해 자신만의 국가를 세웠다. 카탕가는 국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기업이었고, 그 통치방식은 오로지 돈과 총으로 운영됐다. 이곳의 실질적 지도자는 모이즈 솜베(Moise Tshombe). 벨기에의 기업 자본과 깊게 연결된 인물이었다. 솜베는 반군 진압을 명분으로 콩고 정부에 복귀했고, 그 대가로 자신의 지역 군벌과 외국 용병을 정규군처럼 운영할 권한을 얻었다. 그는 군을 이끌지 않았다. 그는 ‘군대를 빌려오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돈 받고 싸우는 군대", 다시 말해 용병이 콩고 땅을 밟기 시작한 시점이. (레오폴드빌 외곽에서 체포된 루뭄바) IV. 제거된 루뭄바 – 국제정치가 지워버린 남자 루뭄바는 혼돈을 수습하기 위해 유엔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유엔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루뭄바는 다급한 마음에 모스크바로 손을 내밀었다. 그는 사회주의자였고, 이는 미국과 벨기에에겐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61년 1월, 그는 정적인 솜베의 군대에 체포됐다. 구타당하고 모욕당한 뒤, 결국 처형됐다. 그의 시신은 토막 난 채 황산에 녹아버렸다. 그의 시신은 흔적도없이 사라져, 확인할수있는건 금니 뿐이었다. 그를 죽인 자는 콩고인이었지만, 암살을 명령한 것은 외부의 그림자들이었다. (모부투 조세프. 훗날 모부투 세세 세코가 된다.) V. 권력 공백, 서방의 그림자들 모부투 조제프. 젊고, 야심만만하고, 무엇보다 CIA의 남자였다. 그는 군부 쿠데타로 루뭄바를 몰아낸 뒤, 정부의 핵심을 장악했다. 겉으로는 총리와 대통령이 있었지만, 실제 결정은 모부투의 전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미국은 모부투에게 돈을 줬고, 벨기에는 그에게 외교를 맡겼다. 하지만 모부투의 군대는 훈련받지 않았고, 지휘 체계는 붕괴되어 있었다. 도심은 군화로 통제했지만, 국토의 80%는 반군의 손에 있었다. 루뭄바가 죽자 권력은 허공에 붕 떴다. 그 공백을 재빠르게 채운 건, 젊은 장교 모부투(Mobutu)였다. 그는 서방 정보기관(CIA)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모부투 뒤에는 더욱 위험한 그림자들이 미소 짓고 있었다. 그들은 기업가였고, 정보요원이었고, 용병 브로커였으며, 냉전의 전략가들이었다. 이들은 땅과 자원의 냄새를 맡고 돈을 쫓았다. 그들이 선택한 무기는 전투기나 탱크가 아니었다. 그들의 무기는 바로 돈을 받고 싸우는 '사람'이었다. 용병들이었다. (사진관에서 포즈를 취하는 심바 반군) VI. 심바 반군, 그리고 세 남자. 1964년, 콩고는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이번엔 '심바(Simba)'라는 이름의 반군이 무기를 들었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외쳤고, 토착 신앙과 주술을 믿으며 도시를 점령하고 대학살을 자행했다. ‘심바(Simba)’는 스와힐리어로 “사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자처럼 싸우지 않았다. 그들은 도시를 점령했고, 공무원을 죽였으며, 백인들을 사냥하듯 찾았다. 마르크스주의와 아프리카 민족주의가 뒤섞인 슬로건을 외치며, 한 손에는 총을, 다른 손에는 부적을 들고 다녔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미친 자들이라고 불렀고, 어떤 이들은 그들을 진정한 해방자라고 불렀다. "심바는 총알로 죽지 않는다." — 반군 병사들이 몸에 바른 진흙을 두고 한 말 실제로, 심바 반군은 종종 총에 맞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들은 약을 복용했고, 집단 최면에 가까운 광신 상태로 싸웠다. 이념은 있었지만, 조직은 없었다. 이에 맞서기 위해, 세 명의 외국인 지휘관들이 콩고로 향했다. 지크프리트 '콩고' 뮐러 (Siegfried 'Congo' Müller) 나치 독일 국방군 대위 출신. 동부전선에서 철십자를 받았고, 전쟁이 끝난 후엔 남아공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는 술과 총, 그리고 반공 이데올로기에 중독된 사내였다. 전투복 가슴팍에 독일군시절 수여받은 철십자훈장을 달고 다녔다. 기자 앞에서 “나는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고, 그의 손은 민간인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었다.마이크 '매드 마이크' 호어 (Mike 'Mad mike' Hoare) 영국계 아일랜드인. 전직 왕립기갑군단 제 2 정찰대 소령, ‘프로페셔널’의 얼굴을 한 용병 대장. 그는 ‘5 Commando’를 지휘했다. 엄격했고, 냉정했고, 살육을 효율적으로 수행했다. 그는 자기 부대에 사적 복수나 강탈을 금지시켰고, 규율을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은 그렇게 고상하지 않았다. “나는 병사였고, 병사로서의 명예를 지키려 했다. 하지만 이곳엔 명예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 호어, 회고록 中 장 '블랙 잭' 슈람 (Jean 'Black jack' Schramme) 벨기에계 콩고인. 전직 플랜테이션 소유주이자 민병대 리더. 그는 자신의 사병으로 무장단체를 만들었고, 그 무력으로 정권과 협상을 시도했다. 그에겐 이념도, 명분도 없었다. 다만, “콩고는 내 땅”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슈람은 외국 용병과 현지 병사를 섞어 작은 왕국을 만들었고, 그 왕국의 법은 총구에서 나왔다. 세 사람 모두 악명 높은 용병대장이었다. 그들은 '돈으로 고용된' 전문 전사였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악명 높은 전투 전문가들이었다. VII. UN – 방관자 혹은 침묵자 국제연합은 있었다. 파란 헬멧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보았고, 무전했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중립"이라는 이름 아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심바가 백인 선교사를 죽이고 정부군이 민간인을 처형할 때, 카탕가에서 벨기에계 기업이 현지인을 쫓아낼 때 — 그들은 기록만 남겼다. 콩고에서, 중립과 권위는 무기였다. 콩고는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벨기에가 급하게 떠나고, 루뭄바가 사라지고, 카탕가가 독립을 선언한 뒤 남은 건 피와 혼란뿐이었다. 독립은 준비되지 않은 채 왔다. 그리고 그 대가는 너무나 잔혹했고, 오랫동안 끝나지 않을, '아프리카의 베트남 전쟁'이라고 불릴 전쟁과 비극의 서막이었다. 2편에서 계속- 솔져 오브 포츈 : 콩고 - 2 [시리즈] 솔져 오브 포츈 : 콩고 - 3 · 솔져 오브 포츈 : 콩고 - 1 · 솔져 오브 포츈 : 콩고 - 2 · 솔져 오브 포츈 : 콩고 - 3 · 솔져 오브 포츈 : 콩고 - 4 · 솔져 오브 포츈 : 콩고 - 5 · 솔저 오브 포츈 : 콩고 - 6(完) https://youtu.be/1v4twH9KbnU?si=HeRkuihj6IORGD94 브금 The four tops - Reach out, Ill be there Reach Out I'll Be ThereProvided to YouTube by Universal Music GroupReach Out I'll Be There · Four TopsThe Ultimate Collection: Four Tops℗ 1966 Motown Records, a Division of UMG Rec...youtu.be 웃는 남자 1960년대 중반 어느 날, 독일의 젊은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카메라와 녹음기를 챙겨 콩고로 향했다. 그들의 목적은 단지 전쟁을 기록하는 게 아니었다. 감독들은 전투가 아닌 한 남자를 인터뷰하기 위해 먼 아프리카까지 날아간 것이었다. 그 남자는 인터뷰 내내 웃었다. 자신의 나치 장교 시절을 이야기하며 웃었고, 사람을 고문했던 기억을 회상하면서도 웃었으며, 심지어 감독이 "당신은 무고한 사람도 죽였느냐"고 묻자,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되물었다. "무고한 사람? 그게 누굴 말하는 거지?" 이 다큐멘터리는 훗날 독일 전역에서 논란과 충격을 불러일으켰고, 그 제목은 아주 단순했다. 《Der lachende Mann》 (웃는 남자) I. 나치, 군인, 그리고 방황의 시작 지크프리트 뮐러(Siegfried Müller)는 1920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군인에 대한 동경과 군사적 영웅주의에 심취해 있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독일국방군에 포병 소위로 자원입대했다. 그는 동부전선으로 향했고, 러시아 평원을 전차와 함께 누비며 싸웠다. 그는 빨갱이와 용맹하게 싸웠다는 이유로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생각했고, 그것이 자신의 가장 큰 자부심이자 명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독일은 패전했고, 뮐러는 미군의 전쟁 포로가 되었다. 그 순간 그가 가진 명예는 철조망 뒤에서 빛을 잃었다. 석방 후, 그는 폐허가 된 독일에서 방황했다. 군인의 명예를 찾을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공장 노동자, 일용직, 트럭 운전사까지 전전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전쟁이 끝났을 때, 나는 끝나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군인의 본능과 욕망을 찾아 남아프리카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총을 들었다. II. HEIA SAFARI 1964년, 콩고는 피로 물들고 있었다. 심바(Simba)라는 마르크스주의 반군이 나라를 찢고 있었고, 카탕가와 중앙정부는 급히 외국 용병을 모집했다. 뮐러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콩고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과거 나치 장교였던 그의 이력은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콩고에 필요한 건 오직 두 가지였다. 공산주의에 맞서 싸울 반공 전사, 그리고 돈만 있으면 언제든 죽일 준비가 된 용병. 뮐러는 중앙정부 산하의 외국인 용병부대인 '5 Commando'에 배속되어 자신만의 소대를 이끌고 정글 깊숙이 들어갔다. III. 선글라스와 철십자 뮐러는 전쟁터에서도 장교다운 외모를 잃지 않았다. 그는 대부분 검은 선글라스를 썼고, 콩고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도 옷깃까지 단정히 다린 제복을 입었다. 그리고 그의 왼쪽 가슴에는 항상 나치 독일군 시절의 철십자 훈장이 빛나고 있었다. 기자들이 그 훈장을 지적하면, 뮐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나를 상징하는 것이지.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야." 뮐러는 자신이 나치 독일군에 부역하였다는 것을 숨기지도 않았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그렇지만 그는 나치즘을 우상화하거나 하진 않았던 이중적인 인물이다. 콩고에선 그 누구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 싸울 의지와 능력뿐이었기 때문이다. IV. 뮐러의 작전 – 공포라는 무기 군사 지휘관으로서 뮐러는 별다른 재능이 없었다. 그는 포병장교 출신이었고, 군사전략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고, 지형과 병참을 무시했다. 그의 소대원들 사이에서도 그의 전략적 능력은 형편없다는 평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한 가지 면에서는 탁월했다. 바로 '공포를 이용한 민간인 통제'였다. 그는 마을을 점령하면 마을의 어른이나 족장을 끌어내 공개적으로 폭행하거나 사살했고, 주민들에게 그 모습을 직접 보게 했다. 그러면 겁에 질린 주민들은 반군 정보를 알아서 가져왔다. 그는 가끔 기자들 앞에서 직접 고문을 하며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잔혹성은 악명이 높았지만, 뮐러는 개의치 않고 늘 웃고 있었다. 공포는 그의 진짜 무기이자 유일한 언어였다. V. 《웃는 남자》 – 가장 섬뜩한 인터뷰 다큐멘터리에서 감독이 뮐러에게 물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인 적이 있습니까?" 뮐러는 잠시 생각하다, 다시 웃으며 답했다. "무고한 사람이라… 대체 그게 누굴 말하는 거지?" 그 직후, 그는 고문하는 방법과 반군 포로에게 거짓 정보를 심는 법, 심지어 반군 내부의 갈등을 조장해 서로 싸우게 만드는 심리전 방법까지 아무렇지 않게 설명했다. 카메라는 그의 웃는 얼굴을 클로즈업했고, 감독들은 깨달았다. 이 남자의 웃음이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고. VI. 전쟁 후의 어둠 – 침묵 속으로 콩고 작전이 끝난 후, 뮐러는 다시 독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독일 언론은 그를 '전범 용병'이라 비난했고, 국제사회 역시 그를 외면했다. 그는 조용히 남아프리카로 돌아가 은둔 생활을 했다. 1970~80년대 남아공 극우 민병대와의 연관성이 있었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확실하지 않았다. 그리고 1983년, 그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의 묘비엔 군번도, 훈장도 없었다. 그저 이름만 새겨졌다. VII. 왜 뮐러는 중요했는가 지크프리트 뮐러는 단지 미친 용병이 아니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의 뒤안길에서 태어난 유령이었다. 나치는 패망했지만, 그들의 전술과 기술, 그리고 무자비한 공포는 살아남아 새로운 전쟁에서 되살아났다. CIA 분석관은 콩고 내전 관련 기록에서 이렇게 정리했다. "뮐러는 이유를 묻기 전에 총을 먼저 들었다." 그는 총을 사랑했고, 전쟁을 갈망했으며,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그 느낌을 즐겼던 자였다. 그는 전쟁속에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으며, 오직 전쟁 속에서만 살아있을수 있었다. 3편에서 계속 https://youtu.be/NB9gyyVrbxk?si=mtPkhcLxKyAOFN2E Der lachende Mann/The Laughing Man – Bekenntnisse eines Mörders (GDR, 1966 - ENGLISH SUBTITLES)Der lachende Mann – Bekenntnisse eines Mörders (DDR, 1966 - ENGLISH SUBTITLES)The Laughing Man - Confessions of a Murderer (GDR, 1996 - ENGLISH SUBTITLES)(Se...youtu.be 웃는남자 다큐멘터리 전편. ㅡ동독 제작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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