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해 말 AI 고도화의 관건인 슈퍼컴퓨터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일본 이화학연구소와 후지쓰가 함께 개발한 ‘후가쿠’가 세계 슈퍼컴퓨터 500대 순위(톱 500)에서 그동안 부동의 1위였던 미국 IBM의 ‘서밋’을 제치고 선두로 올라선 것이다
가까스로 이긴 게 아니다. 실측 성능 442페타플롭스(초당 44경2000조 번 연산)로 서밋(148.6페타플롭스)의 세 배에 달하는 성능을 구현하며 미국을 속된 말로 완전히 ‘밟아버렸다’. 체면을 구긴 미국은 내년 초당 100경 번 연산이 가능한 엑사플롭스급 슈퍼컴퓨터 ‘프런티어’를 선보이겠다고 공언했다. 유럽연합(EU)도 후가쿠를 뛰어넘는 엑사급 슈퍼컴을 2022~2023년께 선보이겠다고 했다
한국은 어떨까. 이런 슈퍼컴퓨터 성능 경쟁에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보유한 국내 최고 슈퍼컴퓨터 누리온(13.9페타플롭스) 순위는 지난해 11월 기준 21위에 머물렀다. 지난해 6월 17위에서 5개월 만에 네 계단 더 하락했다. 정치 지도층이 나서서 극일, AI 강국을 외치고 있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각국 슈퍼컴퓨터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지대한 역할을 했다. AI 기반 연산 능력은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후보물질 탐색 시간 단축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계산 현미경’으로 불리는 슈퍼컴 시뮬레이션은 바이러스와 약물의 상호작용을 원자 단위로 추적한다
IBM을 비롯해 미 항공우주국(NASA), 인류 최초 원자폭탄의 산실인 로스앨러모스국립연구소(LANL), 매사추세츠공대(MIT) 등이 참여하는 코로나19 컴퓨팅 컨소시엄은 이 같은 성과를 토대로 지난해 말 “앞으로 반년간 환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운영에 집중한다”고 발표했다
홍태영 KISTI 슈퍼컴퓨팅인프라센터장은 “누리온 능력의 40%를 분자동력학 등 화학, 바이오 분야에 사용하고 있다”며 “노벨화학상 단골 수상국인 일본의 저력은 결국 1위로 올라선 슈퍼컴퓨팅 인프라와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파괴적 과학기술의 기본이 되는 기초과학 분야 투자는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2019년 정부 연구개발(R&D) 통계를 보면 수학 물리 화학 등 5대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액은 2조3774억원으로 5년 전인 2015년(2조4738억원)보다 오히려 4%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R&D 투자액이 17조5199억원에서 19조2597억원으로 10% 증가한 것과 대비된다.
선택과 집중 없이 ‘소액 과제 나눠먹기’ 구조가 심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2019년 정부 R&D 과제 한 개당 연구비는 3억1214만원으로 5년 전(3억7272만원)보다 17%가량 감소했다. 반면 과제 수는 같은 기간 4만7005개에서 6만1701개로 31% 늘었다. 내년 사상 최대로 편성된 정부 R&D 예산 27조원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쓰이지도 않을 기술을 개발하는 현재 정부 R&D 구조는 문제가 있다”며 “핵심특허 창출 등을 평가해 예산을 차등 배분하는 성과 중심 모델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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