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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조선의 신분제는 어땠을까?
보통 제식갤 등의 영향을 받아서조선은 확고한 신분제 사회라는 인식이 꽤 박혀 있는데의외로 조선 전기 기준으로는조선의 신분제는 상당히 진보적이었음법적으로 노비나 백정 같은 천민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양민으로 똑같이 취급받았거든동시대 서유럽에서는 '자유민' 이라는 개념이 전체 인구의 소수였지만조선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민이었었음물론, 이건 법적으로 그렇고사실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서열이 있기 마련이라실제 생활에서는 양민이라고 다 똑같이 취급받진 않았지이렇게 우리가 잘 아는양반-중인-상민-노비 계층으로 분화되긴 했는데,그렇다고 해서 조선을 신분제 사회로 규정하기는 애매한게왜냐하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도노비나 백정을 일컫는 천민 개념만 없어졌을 뿐이지자본가와-정치인-관료-관리자-일반 시민이런 식으로 사실상의 계층 구조로 돌아가는 건 똑같잖아?막말로 우리 같은 싱붕이들이나 이재용이나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해서법 앞에서 평등하다곤 하지만실제 사회적 지위가 같은 건 아니라고 해서대한민국은 신분제 국가다 라고 하면 이상한 것처럼 말이야게다가 조선은 '교화'를 국시로 하는 나라였던 만큼관료계층인 양반을 가장 우대했던 나라지만그렇다고 해서 양반은 서유럽의 귀족과 달리혈통으로 계승되는 게 전혀 아니었어법적으로 4대조 조상 중 천민만 없었다면모든 양민은 과거에 응시할 권리가 있었거든물론 밥만 먹고 공부만 한 명문가 자제들이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긴 했지만조선시대 보면 은근히 흙수저 출신 양민이 과거 문 뿌수고 급제한개천에서 난 용 같은 인간 승리 사례가 꽤 있었거든물론 당대에 이렇게 인간승리를 한 케이스 말고도일반 상민이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자식 농사 잘 지어서과거에 나가 양반이 된 케이스들 같은 건 셀 수도 없을 정도니까그런면에서 조선은 은근히 계층이동이 있던 나라였어애초에 양반의 정의가 4대조 이내에 관료가 있는 집안을 의미하는 건데그런 점에서 4대조를 넘어서 관직에 오르지 못했다면아무리 집안이 잘났다고 해도 양반이 아니었던 것인만큼나라 꼬라지가 막장으로 치닫은 조선 후기 전에는그래도 신분제 측면에서는 꽤나 열린 나라였어애초에 미국의 공무원 시험이청나라에서 과거 제도가 시행되는 걸 보고'이렇게 공평하게 공무원을 임용할 수 있구나' 라고 감탄하고시작된 것이었던 점에서조선이 그렇게 억까를 당할 수준은 아니라는 거지다만 조선이 민본주의 국가였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던 것처럼양민 내에서 계층이동성이 있다곤 하지만천민에 대해서는 사실 말할 게 적어지는 건 사실이야사실 당시 중국에서는 천민 계층의 세습이최소한 법적으로는 사라진 상황이었음에도조선에서는 사대부 계층들이 농장 경영으로 생계를 유지했기에세습 노비 제도를 끝까지 유지했었거든그래서 조선 중기에는 노비 비율이 30%~50%까지 되었다고 할 정도로뭔가 좀 깨는 상황이 벌어지긴 하는데이를 두고 제임스 팔레는 조선은 노예제 사회라고 주장했고(의외긴 하지만) 당시 이영훈씨가 그걸 반박하는 주장을 했었어물론 지금 이영훈씨 스탠스는 많이 달라졌지만 말이야그래서 조선의 노비 제도는 조선의 신분제를 이야기 할 때좋게 이야기하기가 힘든 부분이긴 해다만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조선의 신분제가 문란해져서개나소나 다 호적과 족보를 세탁해버렸거든그래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호적상으론 다 양반가 자손이고족보상으로는 명문가 출신인 참 묘한 나라가 되어버렸어물론 이런 상황이 국가 행정이 막장으로 치닫았다는 거니국가적인 입장에선 재앙이 따로 없었겠지만아무튼 이 과정에서 전 국민이 양반이 되어버리고이 와중에 노비들도 다들 세탁기를 돌려서19세기 후반에 갑오개혁으로 신분제를 공식적으로 철폐할 때쯤이면최소한 호적대장상으로는 이 나라에 상민과 노비가 사실상 없어져 버렸어그래서 국가 입장에서도 과감히 신분제 종식을 선언할 수 있었던 거고아무튼 아까 누가 조선 신분제에 대해 잘못된 내용을 적어서이를 반박한다고 적다가 자괴감이 들어서이렇게 재미없는 글 적어봤어읽어줘서 정말 고맙다!
작성자 : 코드치기귀찮어고정닉
싱글벙글 엥 얼떨결에 대한민국을 키워냈습니다
때는 191x년.어느 부유했던 선비 집안은독립운동을 지원하다 붙잡혀풍비박산 나게 되고어려워진 생계에 모자라다섯 째 아들이 폐병까지 걸리게 됐음.불행 중 다행으로하숙집을 통해 벌어들인 돈과3년이라는 어머니의 지극정성 끝에겨우 병상에서 일어나게 된 아들.아들은 늦게나마 학교를 가려 했지만"음... 나이가 너무 많네요.정원도 꽉 차서 어쩔 수 없어요.입학할 수 없습니다."비록 학교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그의 학구열은 매우 불타올랐고독학을 하고자 결심하며하숙생, 도서관, 친구로부터닥치는 대로 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음.하루에 한 권씩. 천 일 동안.약 3년을 꼬박 책을 읽어 내려가며그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됨."사업을 해야겠다.그게 우리 집안을 먹여 살릴 것이다"그건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책들.특히 카네기 자서전을 보며세우게 된 결심이었음.독학을 통해 중국어와 일본어까지완벽하게 마스터해낸 그는20살이 되던 해에 만주로 넘어가곡창(쌀) 사업을 통해 큰 돈을 벌어들이고이육사를 만나 친해지며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등조국을 위해 힘썼고마침내 광복을 이뤄낸 그 날번창하여 자리 잡았던 사업을단 번에 정리해 버리고는한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음.그렇게 다시 고국의 땅을 밟은 그.비록 광복을 했다고 했지만여전히 대한민국의 땅은 척박했고다시금 사업을 시작하고자 했지만번번히 실패를 맛보는 우울한 나날을 보내게 됨.그러던 어느날.그의 눈에 들어온 한 장면.초라했던 광복 직후 서울의 땅.그 곳에서 늦은 저녁까지작은 촛불에 의지하여아이들을 가르치는 그 모습."그래 이거야!그저 돈만 바라보는 사업이 아닌우리 국민, 우리 민족의 미래인 아이들을가르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업을 하자!!"그는 마지막 사활을 걸며그저 돈이 아닌, 민족을 위한 사업을 시작했고당시 힘들었던 상황에전 국민이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에 착안하여한 가지 마케팅을 구사했으니,"하루 한 갑의 담배값만 투자하십시오!그 돈이면 당신의 자녀들은돈 걱정 없이 배움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이 마케팅을 본 사람들.본인은 힘들었어도자식은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내 자식 만큼은 공부로 성공하여편안한 삶을 누렸으면 하는 마음으로그렇게 거의 전 국민이그의 사업 상품을 구매하기 시작했고마침내 그의 사업은커다란 성공을 이룩하게 된다.그렇게 벌어들인 고액의 돈.그는 이 돈으로 사리사욕을 채우기는 커녕다시금 국민의 교육을 진흥시키겠다며대한민국의 중심이 되는 땅을 매입하여커다란 사옥을 짓고는주변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하나의 큰 서점을 만들었으니이 때 그가 큰 돈을 벌어들인 상품.교육보험하루 한 갑의 담배값으로추후 자녀의 대학 진학까지 자금 보장그리고 대한민국의 중심에 지어져이 상품의 이름을 본떠서 만든그 서점.교보문고교(육)보(험)이 교보문고의 창업주이자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그.대산(大山) 신용호(1917.08.11 ~ 2003.09.19)"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그렇게 지어진 교보문고의 주소는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가 1번지 이며교보문고를 굉장히 사랑했고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으며뛰어난 인재로 성장하길 바랬던 그는언제든 찾아와 편하게 읽어도 좋으니그들을 만류하지 말라며 직원들을 교육시켰고그러한 창업주의 마음을 잊지 않고교보문고는 여전히 고객들이 편안히 독서할 수 있도록5억원에 가까운 테이블을 설치하는 등과거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전 국민의 교육 진흥에 앞장서고 있다.이러한 신용호 창립자의 발자취를 본삼성의 창립자 이병철 회장은상상으로만 해왔던 일을실제로 이뤄줘서 고맙다 며그의 행보를 무척 칭찬했고이러한 행보가 알려지며'보험의 노벨상' 이라고 불리는세계보험대상을 수상받았다고 한다.마지막으로 교보생명은교보문고의 브랜드 파워 덕분에여전히 명실상부한 보험업계 선두주자로 남아있으며신용호 창립자와 같이어려운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재능을 찾아 그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매년 수익의 일부를 큰 액수가 필요한육상•수영•빙상•체조•유도•탁구 등비인기 스포츠 종목에 후원하였고그 결과오늘날 현재이상화 (빙상)심석희 (빙상)박태환 (수영)신유빈 (탁구)등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과 더불어총 450여명의 국가대표를 키워냈으며그들은 다시금 대한민국에게약 200여개의 메달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작성자 : 수인갤러리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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