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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낭인 검객들이 궁중 후원의 늙은 여우를 처단하다

러갤러(122.203) 2024.12.09 23: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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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인 검객들이 궁중 후원의 늙은 여우를 처단하다


 

 

 

거의 1시간 가량 쉬고 있는데, 호리구치(堀口) 등이 뛰어와 장병은 모두가 서대문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속히 가마를 출발시켜야 한다고 보고해왔다. 이에 일행은 바로 자갈이 많은 길을 서둘러 갔다. 처음의 방략서(方略書)에 따르면, 대원군은 남대문을 통해 경성으로 들어가 바로 경복궁으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남대분 안에선 매일 아침에 시장이 서서 혼잡할 뿐더러 서대문으로부터 들어가는 것에 비하면 경성내의 시가를 통과하는 거리가 엄청나게 멀고, 또한 일반의 주의를 끌 우려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예정했던 방략을 바꿔 서대문을 통해 들어가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공덕리에서 경성으로 통하는 길은 두 갈래로 가마가 나간 곳은 남대문 방면으로 통하는 길이었고, 수비대 장병들은 대원군이 서대문으로 통하는 지름길을 택하리란 예상하에 그 중간 지점인 고개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때문에 그 사이 어긋남이 생겨 일행을 초조하게 했던 것이다. 이에 호리구치 등이 말을 달려 군대의 소재를 확인해 이를 보고하였기 때문에 일행은 가마를 호위해가며 남대문 밖에 이르러 다시 성밖을 돌아서 서대문 쪽으로 향했다. 이 때문에 오전 4시에 경복궁으로 들어가려던 예정이 완전히 처져버리게 되었다. 서대문 밖의 한 길이 의주(義州)로 통하는 길과 4거리를 이루고 있는 한성부청(漢城府廳) 앞에 가마가 이르자, 우범선(禹範善)이 인솔한 한국 훈련대 제2대대 장병이 행길의 왼편에 장렬해서 대원군을 맞았다. 일본 수비대의 사관 몇명도 또한 그 속에 끼어서 그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대원군은 가마를 4거리 복판에다 멈추게 하고, 스스로 가마 밖으로 나와 장병에게 일렀다.

 

 

 

"지금, 간신(奸臣)이 궁중에 있어 국왕을 업신여기니 나라의 안위는 그대로 앉아 볼 수 없는 바가 있다. 나는 단연히 일어나 궁중으로 들어가 간사한 무리들[閔氏一派]을 내쫓고, 사직을 반석 위에 놓으려고 한다. 너희들은 모름지기 나의 뜻을 받들어 진력(盡力)하라. 만일에 나의 입궐을 방해하려는 자가 있으면 당장에 이를 베어 없애라."

 

 

 

이 말 앞에 장병들은 다만 숙연할 따름이었다. 대원군의 가마가 서대문 밖에 도착하고도 다른 길목에서 대기중이던 일본 수비대가 오지를 않아 거의 1시간 동안이나 지체하였다. 새벽 별들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먼동이 트려는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 갔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놀란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일행들은 모두 초조해져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간 혹시 궁중에 소문이 전해지지 않겠냐며 가슴을 태웠으나, 수비대가 오지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자, 이윽고 1명의 전령이 말을 달려 일행에게로 와서 얼마 안있어 수비대가 도착한다고 알렸다. 그럭저럭 새벽달은 빛을 잃어가고, 별빛도 희미해지면서 먼동이 트기 시작하는데, 그제서야 겨우 수비대 장병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곧 한국 훈련대와 합류해 전투 준비를 갖추고, 혁낭의 탄환을 끄집어내어 총에다 재었다.

 

이리하여 대원군의 가마를 한 가운데로 해서 일본 수비대가 선봉을 서고, 훈련대는 가마 앞뒤를 호위하며, 최후방엔 또한 일본 수비대가 따랐다. 낭인들은 대부분 가마 옆에서 붙어 갔다. 뜀박질로 서대문으로부터 경성 시가로 들어가 정동(貞洞)의 서쪽 길을 달려서 회상전(會祥殿) 앞을 지나 경복궁 정면의 한 길로 나섰다. 너무 달려서 일행은 모두 숨을 헐떡이고 있었는데, 가마가 경복궁의 정문(正門)인 광화문에 거의 당도할 무렵 삐그덕거리면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때쯤 되어서 동쪽 하늘에 훤하게 먼동이 트기 시작했으나, 아직 사람의 그림자를 제대로 분간할 수는 없었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기 때문에 우람스럽고도 훌륭해 웅장한 기운으로 주위를 굽어보고 있었다. 광화문은 가로 20여간(間)에 높이는 7간이 넘게 대리석으로 쌓아 올렸는데, 정면에다 3개의 대문을 만들었다.

 

중문(中門)은 국왕폐하의 출입문으로 평소엔 열지 않았으며, 좌우의 양문(兩門)을 관인(官人)들의 출입문으로 삼고 있었다. 이 문의 석벽(石壁) 위엔 장대한 고루(高樓)가 세워져 그 장엄함이 비록 쇠퇴해가는 반(半) 망국(亡國)이라 할지라도, 아직은 왕궁의 위엄을 우람스럽게 드러내고 있었다. 광화문 양쪽으로부터 뻗어나간 성벽은 높이가 5간 남짓해 멀리 경복궁의 사방을 감싸고, 왕궁 뒤에 있는 삼각산을 두르고 있었다. 야간에 광화문의 철문(鐵門)은 굳게 닫혀져 있었기 때문에 대원군의 가마가 서대문 밖에 머무르고 있을 동안에 먼저 수명의 일본 경관을 파견해서 문을 열도록 하였다. 일본 경관들은 광화문에 당도하자, 밤새 비상용으로 준비해 두었던 긴 사다리를 문 왼쪽의 성벽에다 걸고, 이를 타고 벽 위에 올라 다시 긴 밧줄을 석벽 안으로 드리워 놓았으며, 이를 타고 문 안으로 내려섰다.

 

이렇게 해서 정문의 내부로 들어가 보니, 경비하는 총순(總巡)과 순검, 병사들이 깜짝 놀라 한 사람도 저항하지 않고 다투어 도망쳐버렸다. 마침내, 굳게 닫혔던 왕궁의 철문도 이렇게 아무런 장애없이 열 수 있었던 것이다. 대원군의 가마는 일본 수비대와 한국 훈련대, 그리고 낭인 일당 30여명의 호위를 받으면서 광화문을 들어섰다. 이를 계기로 의기를 돋구운 일행은 문득 함성을 지르면서 돌진했다. 병사들은 총검을 총대에 꽂고, 낭인들은 시퍼렇게 날이 선 일본도(日本刀)를 빼어들었다. 바야흐로 수라장의 막이 열리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가마가 광화문에 들어와 한 30간을 치달려 두번째 소문(小門, 근정문)을 통과하려는 무렵, 뒷편에서 요란한 총성이 일어나면서 전투는 먼저 광화문 밖에서 벌어졌다. 우리 일행은 이 문밖의 전투에 개의치 않고, 그대로 궁중을 향해서 돌진해 들어갔다.

 

그러는데, 앞에서도 또한 총성이 들려왔다. 앞뒤의 총성이 고요 속에서 잠자고 있던 구중 궁궐에 메아리쳐 일시에 살기가 가득찬 광경으로 뒤바뀌면서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애초에 궁중에 들어서면 우리들의 전방에 있을 시위대와 충돌하게 될 것이고, 이 시위대를 돌파하지 않으면 목적했던 내전(內殿)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은 미리 짐작한 바이지만, 뒷편에서 일어난 총성은 어떠한 영문에서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행이 서대문 밖에서 수비대가 오기를 기다려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사이 소식이 궁중에 전해져 궁중에선 우리의 계획을 거꾸로 이용하려고, 우리를 광화문 안으로 끌어들여 전후 양편에서 협공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앞뒤로 적을 맞은 것으로 각오는 했지만, 어차피 목적지로 빨리 당도하는게 상책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광화문의 문루 유지(遺址), 중앙청 청사가 준공된 1927년에 이축시켰으나, 한국전쟁 도중 전소당했다.낭인단 일행이 이 육중한 석축 관문을 돌파해 궐내로 진입하면서 여우 사냥의 살육극도 개시되었다.

 

 

 

 

달빛이 교교(皎皎)히 흘러내리는 한밤중에 우거진 수양버들의 그늘에다 가마를 멈추게 하고, 대원군이 우리들에게 궁중으로 들어가는 행동에 대해 여러가지 분부를 내렸을 때처럼 심장이 녹아들 정도로 엄숙하고, 또 장쾌한 기분에 잠겼던 일은 없었다. 그 위에 오카모토 류노스케의 통역하는 목소리가 낭랑하고도 힘있는 것이었다. 이때, 우리들은 너나할 것 없이 꼭 소설 가운데의 주인공들이 되어버렸다. 나중에 법정에 나아가 예심 판사로부터 심문을 받을 때, 그 당시 오카모토의 명령이 어떠한 것이었냐고 귀찮게 파고 들었으나, 나는 지금 적은 것처럼 진술하였다. 판사는 오카모토가 '여우[狐]는 베어버려라'고 명령하지 않았냐고 몇번이나 캐묻고 했는데, 혹 그런 말이 섞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때의 정경(情景)은 말보다도 상상으로 느껴지는 것이 오히려 여운이 있어서 나을 것이다.

 

남대문 밖에서와 또한 공덕리의 고개 위에서 쉬면서 일본 수비대 장병들을 기다리는 동안에 겪은 추위는 대단했다. 우리들은 부근 민가에서 짚을 징발하여 화톳불을 피우고 있는데, 대원군은 가마 안에서 연성 기침을 하고 있었다. 노인이기 때문에 그랬으리라. 화톳불을 쬐고 있자니 낭인들이 찬 일본도가 불빛에 비쳐 번쩍거리고, 얼굴엔 살기가 가득차 어떻게 보면 산적(山賊)의 무리들이 어느 토호(土豪)의 집을 털러 들어가는 꼬락서니 같기도 했다. 우리가 서대문 밖에까지 뛰어갔을 때엔 이미 한국의 훈련대가 길가에 늘어서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어떠한 심정으로 이 새벽의 사변(事變)을 맞고 있을까 상상해 보았으나, 그들은 조용히 줄지어 서있을 뿐 서로 말이 안 통하고, 얼굴도 알아볼 도리가 없어 그저 '무지한 한국 병사가 가엾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점점 먼동이 터오고, 사람들은 모여드는데 수비대는 오지 않았다. 한결같이 조바심을 내고 있는중에 이윽고 그들이 다른 길에서 나타났다. 이날 밤에 이렇게 길이 어긋나 거사에 참가 못한 낭인들도 있었다. 고바야시 마고이치로(小林孫一郞)도 그 한 사람으로 니이로(新納)라는 해군 소좌의 집에 몸을 붙이고 있던 그는 외출했다가 이번 일의 연락을 직접 받지 못했다. 밤이 깊은 연후에야 돌아와서 소식을 듣고는 <오사카 마이니치(大阪每日)>의 통신원 나카지마 시바노스케(中島司馬之助)와 함께 둘이서 성밖으로 나가 공덕리로부터 오는 일행을 기다리고자 새벽녘까지 길옆에 잠복해 있었다. 이들은 근방의 지리에 소상했기 때문에 공덕리에서 오는 길이라면 우리 일행이 택한 남대문으로의 길보다는 수비대가 대기중이던 가까운 길로 나오리라 짐작하고, 그쪽 길에서 기다렸다.

 

그랬기 때문에 두 사람은 끝내 합류하지 못한 채 추위에 견디다 못해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 안가서 경복궁 쪽에서 총성이 일어나 사태가 벌어진 줄은 알았으나, 결국 참가하진 못했던 것이다. 드디어 장교가 병사들에게 전투 준비의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은 혁낭에서 탄환을 꺼내어 총에다 재었고, 이렇게 곧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 생각을 하니 용기가 치솟아 일종의 표현하기 어려운 흥분된 감정이 끓어 올랐다. 우리들은 한국 병사들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 병사들을 앞뒤로 배치해서 나아가기로 했다. 나는 이 무렵 각기병을 앓고 있었고, 게다가 전날 밤부터 용산으로, 공덕리로 많은 길을 걸었기 때문에 광화문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을 때엔 다리가 거의 말을 듣지도 않는 지경이 되버렸다. 이 무거운 다리를 끌고 병사들과 함께 뜀박질로 경복궁에 쳐들어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서대문으로부터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까지의 거리가 또한 꽤나 멀었다.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거의 쓰러질 지경이 되면서 간신히 일행에서 처지지 않고 따라가긴 했으나, 그때의 괴로웠던 일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광화문을 들어서자 일행의 대부분은 뛰면서도 칼을 빼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광화문 밖에서 일어난 총성을 들었던 것과 때를 같이해 '와아!!'하고 일제히 함성을 올렸다. 처참한 새벽의 정경 속에서 살기가 온통 경복궁을 에워쌌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광화문 밖에서 일어났던 총성은 궁중 시위대의 계획적인 협공은 아니었고, 민비(閔妃)가 태산처럼 믿었던 한국 훈련대 연대장 홍계훈(洪啓薰, 임오년 당시 왕비를 구출한 이래 총애를 받아왔다)이 인솔한 훈련대의 일부와 일본 수비대 및 대원군에게 속했던 훈련대의 일부가 서로 총격전을 벌였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잠깐 얘기가 되돌아가지만, 일찍이 한국 훈련대는 일본 사관에 의해 교련을 받았으나, 점차로 궁중의 계교에 넘어가 그쪽 편으로 기울어져 간부엔 궁중파의 인물이 배치되었다. 위로는 형세에 따라 처신을 잘한다고 알려졌던 안경수(安駉壽)가 군부대신이 되었고, 민비의 총애를 받아 대단한 신임을 얻고 있었던 홍계훈이 연대장의 직책에 있었다. 홍계훈은 다시 그 부하인 제1대대장에도 민비파의 인물들을 배치시켜 단지 경골파(硬骨派)로 알려진 우범선만이 제2대대장의 지위를 보전해 고립무원의 처지에 있었다. 이날 밤, 우범선이 사면이 모두가 정적(政敵)인 속에서 그의 부하인 제2대대를 빼내어서 대원군이 궁중에 들어오는데 그 선구의 역할을 했다는데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고심이 있었으리라. 우범선은 [전날인] 7일 밤, 야외 연습을 핑계로 실탄을 병사들에게 분배하고, 병영을 나섰다.

 

실탄을 휴대한 야외 연습이란 실로 기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조희연(趙羲淵)도 또한 일본 공사관 서기관 스기무라(杉村)의 방문을 받아 형세가 위급해진 것을 알았고, 7일 밤에는 직접 거사의 통지를 받았다. 그는 일전에 군부대신을 지냈던 관계로 곧 훈련대 제1대대 장교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궁중에서 꾀하는 훈련대의 해산이 날로 박두했으며, 이로 인해 위험이 눈앞에 닥쳐왔음을 토설하고, 대원군의 입궐을 돕는 게 그들에게 얼마나 이로운가를 설득했다. 훈련대 장교들도 위기가 절박한 정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희연의 권유에 따라 병사를 이끌고 건춘문(建春門) 밖에서 대기해 궁중으로부터 민비파가 도주해오는 것을 저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훈련대의 장교들은 원래 확고한 결심을 한 것은 아니었고, 다만 의혹이 짙은 태도로 형세가 돌아가는 것을 관망한데 불과했다.

 

- by 을미사변 당시 거사 결행에 동참했던 고바야카와 히데오(小早川秀雄)가 사변의 정황을 회고하며

석양의 노을을 머금은 근정전 일대 정원, 고려조 후기의 경천사 불탑과 조화를 이룬 기묘한 광경이다.사변 당시 낭인들은 근정전 동측 회랑으로부터 진격하면서 샛길을 가로질러 건청궁까지 박두했다.

 

가장 큰 낙(樂)은 적을 골라내어 모든 것을 준비해 철저히 복수하고 난 다음, 가서 잠자는 것이다."

- by 소비에트 강철의 대원수

 

 

 

 

이러한 훈련대 장병의 동정이 어찌 궁중의 주의를 끌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겠는가? 홍계훈은 밤중에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 곧 군부대신 안경수에게로 달려갔다. 이미 8일 새벽 3시, 안경수는 곤한 잠에 취했으나, 홍계훈의 급보를 받고 청천의 벽력처럼 놀라 허둥지둥 의관을 정제하여 입궐할 채비를 차리면서 홍계훈으로 하여금 훈련대 병사를 데려오도록 했다. 홍계훈은 건춘문 밖으로 달려가 간신히 그중의 1개 중개를 설득해 안경수의 집으로 되돌아가니, 마침 안경수가 가마를 타고 경복궁으로 향하던 참이라 함께 광화문으로 해서 궁중에 들어가려고 나섰다. 군부대신 안경수의 집은 경복궁 동북쪽의 성벽 밖에 있었기 때문에 광화문으로 가려면 왕궁의 담장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지름길이 되지만, 담장의 동남쪽에 있는 망루[동십자각] 부근엔 일본 수비대의 일부가 주둔하고 있었다.

 

그래서 안경수와 홍계훈은 할 수 없이 우회하여 시가를 통해 탁지부청(度支部廳) 옆으로부터 광화문 앞으로 통하는 길로 나섰다. 탁지부청은 광화문에서 두어 정(町) 남짓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무렵이 되자, 새벽별은 점차 희미해져 가고, 동녘 하늘에 서서히 먼동이 터오기 시작했으나, 아직 박명(薄明)의 어둠 속에 싸여서 원거리의 것은 분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안경수와 홍계훈은 마침내 광화문 앞에 이르러 그곳에서 한 덩어리의 병사가 가마 하나를 호위하면서 급한 걸음으로 광화문에 접근해가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은 필시 훈련대가 궁중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것이라 직감했으리라. 그들은 목청을 크게 돋구며 '군부대신이 여기 있다. 연대장도 여기에 있다. 장병들은 함부로 궁중을 범하지 말라'고 호령했다. 안경수와 홍계훈은 그렇게 스스로 외치면서 병사들에게도 외치게 하였다.

 

그러나, 대원군을 호위한 일본 수비대와 훈련대의 장병들이 그렇다고 어찌 '군부대신', '연대장' 운운하는 말에 기가 죽을 수 있는가? 이에 이르러 적과 우리쪽 양편으로 갈라진 서로의 병사들은 일본 장교의 지휘하에 당장에 총구를 열었던 것이다. 탄환은 먼동이 트는 새벽 하늘을 뚫고 불꽃처럼 튀었으며, 총성은 인왕(仁旺) ・삼각산(三角山) 등에 울려서 곤히 잠들고 있었던 경성 시민들의 잠을 깨웠다. 10여분 동안 서로 총격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에 걷혀가는 어스름 속에서 적편의 장병들이 이쪽에 일본 수비대가 참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적편은 중과부적인데다, 일본 수비대까지 끼어있는 것을 보고 사기가 떨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쪽 훈련대 및 일본 수비대의 병사들도 거사의 내력을 모르고 있었던데다, 갑자기 실전까지 벌이게 되면서 이 역시 꽁무니를 뺄 도리밖에 없었다.

 

이것을 본 일본 수비대 장교는 사기가 죽은 병사의 행동을 꾸짖어 제각기 칼날을 내두르면서 적중으로 뛰어 들었다. 이 백병전 속에 홍계훈은 칼에 맞아 쓰러졌고, 안경수는 겨우 몸을 빼어 위기를 모면했다. 대원군의 가마를 호위해 궁중으로 들어간 낭인들과 장병들의 일단이 광화문 앞의 충성을 등 뒤에 들으면서도 바로 근정전 앞으로 나서려고 할 무렵, 앞쪽에서 다시 총성이 일어나 궁중의 정적을 깨뜨렸다. 그래도 일단은 다만 후궁(後宮)을 향해서 치달았다. 가옥이 사방을 둘러싼 근정전의 큰 건물 뒷편에다 가마를 멈추고, 전방에 진로가 열리는 것을 기다렸다. 그러다 1개 소대의 일본 병사에게 가마를 지키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목적지를 향해서 돌진했다. 이 일대엔 빈 집이 늘어서고, 지경(地境)이 어지간히 넓어서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을 못하는 형편이었다.

 

왼쪽으로 꺾여서 오른쪽 방향으로 돌아 후궁을 향해 몇 마장쯤 들어가니, 겨우 벽돌의 담벼락이 남북으로 뻗어있고 한 가운데에 문루가 마련되어 있으며, 오른쪽으로 소나무가 우거진 조그마한 등성이[鹿山]가 있는 곳으로 나섰다. 이것이야말로 건청궁(乾淸宮)의 외곽이었다. 바로 이때, 총성이 또 한 바탕 돌담의 안쪽에서 일어났다. 광화문에서 국왕의 편전(便殿)인 건청궁으로 들어가는데엔 두 갈래의 통로가 있었다. 낭인 일행이 선택한 길은 샛길로 근정전 뒤에서 오른쪽으로 통하는 길이었으며, 본도(本道)로는 일본 수비대와 한국 훈련대의 장병들이 들어갔는데, 이는 근정전 왼쪽으로 통해 있었다. 그런데 궁중을 지키고 있던 시위대 장병들은 대개가 본도 길에서 진을 치고 저항했기 때문에 이쪽 길로 갔던 수비대와 훈련대는 수십분이나 총격전을 벌이며 양측에 수명의 희생자를 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투를 조금도 예기치 못했고, 준비도 부족했던 궁중 시위대들은 마침내 도망치기 시작했다. 총검을 버리고, 제복을 벗어 던지고, 혹은 궁중에서 봉사하는 궁인(宮人)으로 변장하는 등 수백의 병사가 삽시간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길에는 제복과 제모(制帽)이며, 총검이 어지럽게 버려져 있고, 어느 한 사람 내습한 적과 싸워 충절에 죽고자하는 자는 없었다. 이씨(李氏)가 나라를 세운지 5백년, 비록 쇠잔했다고는 하지만 군신(君臣)의 은의(恩義)는 보존되어도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위병이 난을 피해 다투어 도망하고, 왕거(王居)를 외인(外人)의 난폭한대로 버려둔다는 것은 충절의 마음이 이미 없어졌다 해야 할 것이다. 낭인 일행이 석벽(石壁) 안쪽에서 총성이 일어났다고 들은 건 결국, 본도에 있어서의 시위대와의 충돌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낭인단의 호위를 받은 대원군이 입궐 직후에 잠시 대기했던 옛 강녕전(康寧殿) 일대의 유지(遺止) 주위의 전각과 행랑은 일제 초기에 철거되어 경회루로 통하는 도로와 불탑 전시장이 들어섰다.

 

 

 

 

그러나, 샛길을 택했던 낭인 일행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군대들보다도 앞질러 건청궁에 도달하였다. 석벽의 중앙에 마련된 중문(中門)으로 들어서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2개의 소문(小門)을 넘어서면 국왕의 편전인 건청궁의 앞뜰에 이르게 된다. 구중 궁궐은 깊고도 깊은 곳이라 하지만, 견고한 성문은 군대의 갑작스런 침입으로 깨졌고, 궁전의 내부는 낭인에게 유린되어 쇠퇴하는 왕국의 말로라고는 하지만 그 처량함이 이보다 더함이 있으랴. 건청궁에 봉시(奉侍)중이던 환관은 새벽녘에 총성이 성내(城內)에서 일어난 것을 듣고 깜짝 놀라고 있는데, 뒤이어 낭인의 일단이 침입해 들어오자 어찌할 바 모르고 당황할 따름이었다. 전상(殿上)의 한국인은 대경실색했다. 이때, 국왕은 한 방안의 복판에 섰고, 시신(侍臣) 수명이 주위에서 모시며 국왕폐하임을 손을 들어 알고 있었다.

 

낭인들은 그분이 국왕임을 알자 경의를 표하고, 감히 전내(殿內)로 올라가는 자가 없었다. 그 오른쪽의 방이 곧 민비(閔妃)의 거실로 수명의 나인[宮女]들이 방안에서 엎치락 뒷치락하고 있었으며, 궁내대신 이경직(李耕稙)도 그 안에 있어서 민비를 옹위하고 있었으나, 민비는 바로 이 방안에서 시퍼런 칼날 아래 붕어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경직은 방 밖으로 뛰어나가다 육혈포(六穴砲)에 허벅다리를 맞아 쓰러지면서 다시 오른쪽 어깨에다 칼날을 맞고 마당으로 나동그라져 버렸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양복을 착용하고 칼든 곤봉을 찬 한국 사람이 낭인 가운데 끼어 이 참살을 자행했다고도 한다. 이 참변이 벌어진 전날 밤, 궁중에선 민씨 일족의 준영(俊英) 민영준(閔泳駿)이 궁중에 등용된 것을 축하해서 성대한 연회가 베풀어졌었다[낭인단도 같은 시각 파성관에서 출정식을 겸한 술판을 가졌다].

 

궁내대신 이경직과 농상공부 협판(協辦) 정병하(鄭秉夏)도 이 연회에 배석했다가 밤이 깊어서 자리를 거둔 후 함께 궁중에서 잤다. 왕비는 연회 풍류에 지쳐 깊이 잠들었기 때문에 난을 피할 겨를이 없었고, 이경직도 궁중에서 자고 있었다가 두 사람 모두 칼날 아래 비명의 죽음을 당한 것이다. 전상전하(殿上殿下)에 칼날이 번뜩이고, 마당 안팎을 병사와 낭인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마침 백인(白人) 한 사람이 건청궁 전하에 서서 이 소란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궁중에 초빙되어 있던 어용기사인 러시아인 사바틴(Sabatin)이라는 사람이었다. 사바틴 외에도 궁중 시위대의 훈련을 맡았던 미국인 다이(Dye) 장군도 종복 1명을 데리고 건청궁 뜰의 통로에서 이 혼란을 목격하면서 일본 낭인들을 만날 때마다 모자를 벗고 경례하여 백발이 성성한 노안에 미소를 띠우며 아첨하고 있었다.

 

이들 두 사람은 국왕의 거실에서 불과 3~40간(間)의 거리에 굉장한 양관(洋館, 觀文閣)을 세우고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란이 일어나자, 바로 나와 이 변란(變亂)을 실지로 목격했던 것이다. 그들 두 사람의 증언은 훗날 국제간의 분규에 유력한 자료가 되었다. 건청궁은 사방이 거의 5리(里) 가량이나 되는 경복궁의 가장 후방에 있어서 성벽으로 둘러싸인 앞마당엔 많은 전각이 즐비한데, 한 가운데에 있는 한 채[長安堂]를 국왕과 왕비의 편전으로 쓰고 있었다. 남향으로 세워진 편전은 동서로 길게 뻗어 몇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때, 왕비는 건청궁의 가장 동쪽 끝에 있는 한국식의 미닫이를 동남의 양측에다 달아놓은 방[坤寧閤] 안에 있었다. 낭인의 칼에 맞아 쓰러진 장소도 바로 이 방이었다. 그로부터 서쪽으로 향해서도 많은 방이 있는데, 국왕은 왕비의 [행각을 마주한] 옆방에 있었다.

 

거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응접실[集玉齋]이 있고, 잇대어 많은 행랑집이 건청궁을 둘러싸고 있었다. 건청궁의 풍취(風趣)를 살펴보면 내부의 장치가 청미(淸美)한 맛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호화풍려(豪華風麗)한 그림자는 조금도 없었다. 전아(典雅)한 액자가 벽에 걸리고, 웅혼한 필치(筆致)의 글씨가 기둥 머리에 붙혀져 오히려 한적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더구나, 궁전의 초석은 높이 석자 정도이고, 돌층대가 몇단으로 놓여진데다가 가옥이 기는 것 같은 단층들이기 때문에 마치 유서있는 고찰(古刹)에나 들어온 느낌이어서 자연히 사람을 압박해 들어오는 왕실의 위엄 같은 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낭인의 일행이 먼저 궁전에 들이닥쳤고, 수비대 ・훈련대의 장병이 이에 뒤따랐다. 우리들은 이미 궁중 시위대를 완전히 물리쳤기 때문에 대원군의 가마는 안심하고, 건청궁으로 들어섰다.

 

대원군은 이내 가마로부터 나와 전상에 올라 국왕을 알현하고, 사변의 연유를 상주(上奏)하였다. 국왕이 이제부터 처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문하니, 대원군은 예정된 계획에 따라 답했다. 즉, 궁중과 내각과의 구별을 엄격히 하여 궁중은 결코 국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궁내대신과 협판을 경질해서 국왕의 친형이자 대원군을 따라 궁중에 들어온 이재면(李載冕)을 궁내대신, 김종한(金宗漢)을 협판에 임명할 것, 다시 미우라(三浦) 공사의 참궁(參宮)을 지체없이 실현하도록 할 것 등등 만사를 예정대로 밀고 나갔다. 이렇게하여 급사(給仕)가 일본 공사관으로 달려갔으며, 한편 [전날 민영준이 내정되었던] 궁내대신의 경질도 깜짝할 사이 실행되었다. 이로부터 대원군은 국왕을 몸소 모시면서 보좌하고, 궁중의 경비는 훈련대의 병대가 맡기로 하여 '비상 수단[여우 사냥]'의 목적은 완전히 달성되었다.

 

낭인 일행은 삼삼오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경복궁을 나왔는데, 이때가 오전 8시경이었다. 광화문을 나서니 다수의 한국인들이 꼭두 새벽의 총성에 놀라 사변의 발생을 알고 문앞의 한 길이 메어지듯 모여 있었다. 종루(鐘樓, 鐘閣)와 동대문통(東大門通), 남대문통(南大門通) 같은 곳에선 경복궁 앞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들끓어 광화문 앞의 광장은 수만명의 구경꾼들로 내리 덮여졌다. 이때에 러시아 공사와 미국 공사가 사변의 보고를 듣고 함께 궁중으로 들어갔다. 낭인 일행 가운데 먼저 경복궁을 나온 자는 이들을 종루 부근에서 보았고, 늦게 나온 자는 경복궁 안에서 두 공사를 만났다. 이번 사건이 국제 관계의 문제가 되고 나서 두 공사가 일본인이 관계했다는 것을 주장해 끝까지 우겨댄데엔 이러한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비상 수단'의 목적은 이상과 같이 해서 달성은 되었다.

 

[중략]

거사의 배경 무대인 건청궁 터, 을미사변 당시 편전이 자리잡았던 장소엔 총독부 미술관이 입주했다. 여우 사냥의 목표를 달성한 낭인단은 시신을 우측의 녹산으로 가져가 소각해버리고, 철수하였다.

 

 

 

 

그날 아침, 궁중의 혼란스런 정경을 지금 이곳에 소상히 옮기지 못하는 것이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어쨌든 우리는 후궁으로 돌진했다. 도중에 시위대의 발포로 약간 뒷걸음질을 쳤고, 다소 겁을 먹기도 했으나, 결국 대단한 장애를 겪음이 없이 국왕이 계시는 건청궁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내가 건청궁 앞마당에 이르렀을 때엔 미닫이로 둘러싸인 방 안에서 여인의 비단 쪽을 찟어버린 듯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등골이 오싹해지도록 처참하게 들려왔다. 그곳엔 병사며, 낭인들이 종횡으로 뛰어다녔고, 미닫이를 열어젖힌 옆방엔 안색이 새파래진 국왕이 환관 10여명의 옹위를 받고 앉아 계셨다. 얼마 안 있어 백의를 입은 부인 10여명이 산 사람의 몰골이라고는 도무지 없이 부들부들 떨면서 밀려 나왔다. 그중엔 선혈(鮮血)의 핏발을 받아 얼굴에까지 핏방울이 튄 기품있는 연소한 여인도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이 귀부인은 왕태자의 비(妃)였다고 한다. 이때에, 누군가가 왕비는 몸을 빼어내 숨어버렸다는 말을 퍼뜨렸다. 왕비를 놓쳐선 안된다고 누구나 손마다 무기를 들고 사방에 즐비한 하고많은 빈 방들을 샅샅이 뒤졌다. 개중엔 시위대가 버리고 간 총을 주워다 그것으로 닫힌 문짝을 때려 부수고 있는 자도 있었으며,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가서 찾고 있는 자도 있었다. 누구나가 혈안이 되어서 우왕좌왕, 이곳 저곳을 찾았으나 아무도 발견을 못했다. 이 살기등등한 분위기 속에서 여러가지 희극이 벌어졌다. 선혈을 뒤집어쓴 귀부인을 붙잡은 채로 칼날을 그 가슴에 겨누면서 '왕비가 있는 곳을 대어라. 대지 않으면 너를 죽여버리겠다!'고 일본어로 다그쳐대는 자가 있었다. 한국의 궁중 귀부인이 어떻게 일본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저 '아이고!' 하면서 소리만 내지를 뿐이었다.

 

마침 그때, 시위대의 연대장인 현흥택(玄興澤)이 군복을 입은 채 다만 허리에 찬 칼만을 버리고 겁에 질린 걸음으로 나타났다. 어찌 이를 그대로 놓칠쏘냐?! 낭인들의 철권(鐵券)이 그에게 마구 내리 쏟아졌다. 그러나, 현흥택은 겨우 숨을 건져 도망하여 러시아 공사관으로 숨어버렸다. 재수 좋은 사나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고 있는 사이 [곤녕합] 방안에 쓰러져 있는 부인이 민비라고 하는 사실이 누군가로부터 퍼뜨려졌다. 나는 직접 방안으로 들어가 그 쓰러져 있는 부인을 보았다. 이 부인은 아직 침소에서 나온 그대로였는지, 상체엔 짧은 속적삼을 입었을 뿐이고, 허리로부터 아래로는 백색 속옷을 입고 있었으나, 무릎으로부터 그 아래는 흰 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잘 보니, 가냘픈 몸매에 유순하게 생긴 얼굴과 하얀 살결은 아무리 보아도 스물 대여섯살로 밖에는 보이질 않았다.

 

죽었다기보단 인형을 눕혀 놓은 것 같은 모양으로 아릅답게 영원한 잠이 들어 있었다. 가냘픈 손으로 8도(八道)를 움직여 군호(群豪)를 조종했던 민비, 그 사람의 유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이다. 웅혼(雄魂)은 가서 돌아오지 않고, 방안엔 유해를 지키는 단 한 명의 그림자도 없었다. 실로 처참을 극한 광경이었다. 민왕비(閔王妃)의 치명상은 이마 위에 교차된 2개의 칼날 자국에 있었던 모양이다. 누가 어떻게 손을 내리쳤을까? 오전 8시경이 되어서 모두들 제각기 들고 있었던 일본도(日本刀)를 담요에다 말아싸고, 나와 식자생(植字生) 두 사람의 것은 쿠마베(隈部)라고 하는 장한(壯漢)한테 지워서 광화문을 나왔다. 문을 나서니, 구경을 나온 한국인들이 문전(門前) 한 길에 구름처럼 모여서 놀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며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꼬락서니며 몸가짐들이 괴상망측해서 그들의 의혹을 안 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무엇인가 수근거리고 있었다. 운집한 한국 사람들의 사이를 지나 종로 근방에 왔을 때, 러시아 공사와 미국 공사가 함께 가마를 잇대어 궁중에 들어가는 것과 마주쳤다. 두 공사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쓸쓸한 웃음을 띠면서 우리들을 쳐다봤는데, 뒤쳐져서 궁중을 나온 자들은 경회루 부근에서 두 공사를 만났다고 한다. 그들이 훗날 강경한 항의를 해온 것도 무리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무렵, 각기병을 앓고 있었던 나는 궁중에서 일본인 거류지까지의 꽤나 먼 거리를 돌아가는데 다리를 옮기기에도 진땀을 뺄만큼 고통을 받았다. 나는 마쓰무라(松村)와 한 패가 되어 그의 어깨에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겨우 돌아왔고, 도착하자마자 자리에 드러누워 간밤 이래의 피로를 풀었다.

 

- by 을미사변 당시 거사 결행에 동참했던 고바야카와 히데오(小早川秀雄)가 사변의 정황을 회고하며 경회루 입구의 전경, 조선시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역대 권력자들의 연회장으로 활용된 명소다. 사변 직후 낭인단 가운데 뒤늦게 철수중이던 후발대가 이곳에서 외국 공사들과 추가로 조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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