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우 기사나ㅏ 보고 가라

ㅇㅇ · 2020.09.05 12:42:03

키움 히어로즈 조상우는 KBO리그 대표 강속구 투수로 통한다. 지난 시즌에는 평균 152.2km/h, 최고 157km/h의 무시무시한 강속구를 뿌렸다. 지난해 리그 평균구속 1위(40이닝 이상 기준). 빅리거 출신 외국인 투수들보다 조상우가 던지는 속구가 훨씬 빨랐다.

하지만 올 시즌엔 패스트볼 구속이 눈에 띄게 줄었다. 9월 5일 기준 조상우는 속구 평균구속 148.6km/h를 기록 중이다. 여전히 리그 6위(40이닝 이상)에 해당하는 강속구지만, 지난해와 비교하면 3.6km/h 정도 스피드가 감소했다. 작년처럼 155, 156, 157km/h를 연거푸 전광판에 찍어대는 광경은 보기 힘들어졌다.

보통 이 정도의 구속 저하는 수술과 재활에서 막 돌아왔거나, 어딘가 몸 상태가 좋지 않은 투수에게서 나타난다. 몸에 이상이 없어도 3~4km/h나 줄어든 스피드로는 타자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기 마련이다. 구속이 뚝 떨어진 투수가 좋은 성적을 내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하지만 조상우는 정반대다. 올 시즌 세이브 단독 1위(25세이브)에 평균자책 1.55로 지난해(ERA 2.66)보다 훨씬 뛰어난 성적을 내고 있다. 지난해 9이닝당 8.75개였던 탈삼진도 올해는 9.96개로 오히려 더 많아졌다. 0.224의 피안타율은 토미 존 수술 복귀 후 가장 좋은 기록이고 피OPS도 0.551로 데뷔 후 최고의 기록을 내고 있다.

‘국내 복귀’ 오승환이 준 깨달음…‘나도 변화구 잘 던질 수 있다’

올 시즌 조상우는 변화구 구사율을 높여 효과를 보고 있다(사진=키움)

조상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사실 올 시즌 조상우의 구속 저하는 의도된 변화에 가깝다. 지난해까지는 그저 더 빠르고 강한 볼을 던지는 데만 치중했다. 아무리 하드웨어가 좋은 조상우라도 계속 155, 156km/h 짜리 공을 던져대면 몸이 버텨내질 못한다. 작년 조상우의 어깨 근육 부상은 시즌 최고구속(157km/h, 평균 156km/h)을 기록한 경기 바로 직후에 찾아왔다. 조상우는 이 부상으로 한 달 이상 자릴 비워야 했다.

“물론 구속이 빠르면 좋지만, 이제는 구속을 더 내려고 의식하지는 않는다.” 9월 4일 대전 한화전을 앞두고 만난 조상우의 말이다. “올해는 제구 쪽에 신경 쓰고 스트라이크를 많이 던지려 한다. 계속 강한 공만 던지다 보면 부상이 올 수도 있다. 아프지 않고 풀시즌 치르는 걸 올 시즌 목표로 잡고 있다.”

강속구를 받쳐줄 새 변화구로 체인지업도 장착했다. 올 시즌 조상우는 데뷔 이후 가장 높은 비율로 체인지업(6.5%)을 던지고 있다. 반면 속구 구사율은 지난해(73.5%)보다 줄어든 70%다. 조상우는 “아직 좀 더 연습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실전에서 쓸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변화구를 작년보다 많이 던지려고 한다”고 밝혔다.

조상우는 속구 회전효율이나 수직 무브먼트가 뛰어난 투수는 아니다. 키움 전력분석팀 관계자는 “투수가 공의 회전력에 변화를 주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조상우로서는 익스텐션과 효과구속을 통해 타자가 느끼는 체감 스피드를 극대화하는 게 효과적인 투구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속구보다 평균 20km/h 느린 체인지업을 던지는 건 합리적인 선택이다.

조상우의 변화구 구사율 증가엔 KBO리그로 돌아온 ‘끝판왕’ 오승환의 영향도 있다. 조상우는 “오승환 선배 경기를 챙겨 보는데,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며 “내가 신인일 때는 거의 빠른 볼 위주로 던지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지금은 변화구도 던지고, 그 변화구가 다 좋더라”고 했다.

조상우는 “변화구를 던져야겠다는 생각은 프로 2년 차 때부터 했다. 그때는 속구와 슬라이더 두 가지 공밖에 없었다. 그런데 구종을 늘리려고 해도 잘되지 않았다”며 “오승환 선배가 던지는 걸 보면서 ‘아, 연습을 많이 하면 변화구도 늘릴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체인지업 장착은 조상우의 몇 안 되는 약점인 좌타자 승부에도 도움이 된다. 지난해까지 조상우는 좌타자를 상대하는 데 애를 먹었다. 2018시즌 우타자 상대론 피OPS 0.492로 강했지만 좌타자에겐 0.884에 그쳤고, 지난해도 우타자 상대 0.507에 비해 좌타자 성적(0.749)이 좋지 않았다.

올해 조상우는 좌타자 상대 12.4%의 비율로 체인지업을 던진다. 특히 2스트라이크 이후와 투수 카운트에서 체인지업 구사율이 높다. 로케이션에도 변화를 줬다. 조상우는 “작년까지는 좌타자 상대로 거의 바깥쪽 승부를 했다. 올해는 몸쪽도 던지고, 슬라이더도 던지고 있다. 작년보다 좋아진 것 같다”고 밝혔다.

올 시즌 조상우의 좌타자 상대 피OPS는 0.583으로 우타자 상대(0.534)와 큰 차이 없는 수준이다. 피안타율은 0.213으로 오히려 우타자 상대(0.241)보다 좋은 기록을 내고 있다.

“세이브 기록보다 팀 1위…부상 없이 시즌 완주가 목표”

리그 최고의 마무리로 우뚝 선 조상우(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투수 전문가 손혁 감독과 브랜든 나이트 투수코치의 세심한 배려도 조상우가 더 좋은 피칭을 하는 데 큰 힘이 된다. 지난해 조상우는 세이브 상황이 아닌 6, 7회 클러치 상황에 자주 마운드에 올랐다.

올해는 철저하게 9회 세이브 상황에만 등판한다. 8회에 올라와 4아웃 이상 세이브를 기록한 경기는 단 2경기뿐. 6회와 7회엔 아예 등판 기록 자체가 없다. 조상우는 “사실 작년보다는 지금이 좀 더 편하긴 하다. 등판하는 상황이 마지막으로 정해져 있고, 주자 없는 상황에 주로 나간다”고 했다.

조상우의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연투로 등판하기 어려울 땐 베테랑 김상수가 올라와 마무리 짐을 나눠 진다. 조상우는 “한동안 좀 힘들긴 했는데, 감독님이 며칠 쉬게 해주셔서 괜찮아졌다. 잘 쉬었다”며 “그 사이 상수형이 너무 잘 던져줘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고 밝혔다.

세이브 단독 1위를 달리고 있지만 개인 타이틀에 대한 욕심은 없다는 조상우다. “세이브 개수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세이브를 하면 좋지만, 상황이 와야 올릴 수 있는 게 세이브다. 저는 더그아웃에서 열심히 응원하다가, 상황이 되면 올라가서 던진다. 그냥 열심히 던지다 보니 25세이브를 거둘 수 있었다.” 조상우의 말이다.

조상우의 진짜 목표는 따로 있다. 그는 “팀이 1위를 했으면 하는 욕심은 항상 갖고 있다. 개인 타이틀보다 팀의 1위 욕심이 크다”며 “올해는 부상 없이 끝까지 던지고 싶다. 아프지 않고 풀시즌을 소화하는 게 목표”라고 힘줘 말했다. 부상 없이 시즌을 완주하면, 개인 성적도 팀 성적도 자연히 따라올 거라는 조상우의 생각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과한 ‘와일드 씽’ 조상우에게서 이제는 안정감과 성숙함이 느껴진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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