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랩을 좋아한다.

출근하면 바로 베이스가 쿵쿵 울리는 붐뱁이라는 장르의 랩을 자동으로 돌려놓는다.

괴물같은 실무능력이 있다고 하는 8년 경력의 선배는 누군가와 함께 음악을 즐기고 싶어한다.

저번에는 여직원에게 랩 얘기를 하다가 들어주지 않아 우울증에 빠졌다고 한다.

늘 음악을 튼다. 누군가 뭘 하건 말건. 내가 교대 특이사항 파악을 할 때는 더더욱 크게.

기전실 베짱이일까? 그는 사실 시설관리따위보다 음악을 하고 싶은 게 아닌가?

가끔 관리과장이 순찰 돌 때 쌍욕하며 노래끄라고 할 때 찌그러지는 모습은 달팽이가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애처롭다.

그는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늘 음악을 즐기고 있다.

"그런거 왜 하냐? 실제로 만져봐야 잘 하는 거야."

역시 실무 괴물답게 기가막힌 자신감이다.

필경 음악으로 릴렉스를 한 두뇌로 문제 해결을 자신감있게 해 나가기 때문인 것이리라.

이곳에서 있던 2년간 단 한 건의 사고도 용납하지 않았다고 한다.

눈을 치우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하는 그의 실력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눈에 보이는 자격증따위 없이 문제 해결을 척척 하고는 뒤돌아 유유히 아디오스를 외치는 시추에이션을 좋아한다.

이건 내가 출근 후 2주가 되지 않아 생긴 하나의 에피소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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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해 있던 공장 하나에서 호출이 왔다. 용돈벌이 퀘스트다.

크레인 동작 문제였다. 구슬땀 맺힌 어린 여자애가 심각한 듯이 이것저것 설명한다. 작업용 멜빵바지께로 땀으로 다젖을 정도로 한참 뛰어다녔겠지.

그는 듣자마자 대답했다.

"예 쉬워요."

그는 사실 PLC에도 정통한가? 지레짐작으로 그를 병신취급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하긴, 8년의 짬은 무시할 수 없다.

(주)XX실업 생산주임과 나는 그에게 큰 기대를 가졌다.

"몇살예요?" "스물둘이요." "스물둘에 주임이에요?"

나는 이동 중 랩좋아하는 인디아나 존스의 모험담을 들으며 더 큰 기대를 품고 드디어 배울 것이 생겼구나 싶어 들떴다.

이윽고 문제를 봤지만,

"엇, 크랜(크레인) 스위치 고장 아니었어요?"

이 븅신.

시퀀스 동작에러라고 5분간 설명했었던 생산주임은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표정이 썩어버렸다.

늘상 하던대로 매뉴얼 스위치 풀어서 재연결할 생각이었겠지.

"전기과장님 안계세요?" 이를 갈면서 말하는 생산주임과,

"이런 건 저흰 소장님이 하는데요?" 자신은 당연히 못한다는 듯이 말하는 선배.

본인이 소장이라고 부르란다고 대외직급을 소장으로 소개한다. 그의 귀여운 부분이겠지.

"과장님 오전에 설비처 나가셨어요. 오후에나 들어오세요"

나는 오전 특이사항을 떠올려 말했다.

"아, 그랬지."

그는 혼잣말을 하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손사래 치며 뒤로 돌아선다. 아디오스를 할 시간인 것이다. 비록 문제 해결은 안됐지만.

잽싸게 튀었다. 나도 물러나야 했다. 잘 모르는 분야고.

"PLC 메인 좀 볼 수 있을까요?"

나서서 하는 것은 안 좋아하지만, 땀범벅에 거무튀튀 기름때 묻은 얼굴을 보니 딱해서 내가 고칠 수 있으면 덤벼보겠다고 말을 걸었다.

대학 수강때 썼던 XG5000 프로그램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게다가 미쓰비시 PLC는 대중적이니까.

대충 리셋을 하면 안되고,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동작 순서를 들으면 어느 부분이 크레인인지 알 수 있으므로, 순서도를 우선적으로 파악했고, 출력이 0인 것을 확인한 후에 크레인 릴레이가 접불인 것을 본 후로는 당장 필요 없는 릴레이를 떼서 기레파시로 대강 교체해주었다.

정말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받으면서 5만원과 쌕쌕쥬스를 받았다.

안주셔도 된다는 말은 안했다.

힘들긴 했으니까.

내가 화장실에서 30분을 죽치고 있었다고 생각한 선배는 빨리빨리 다니라고 한소리 했다.

"너 오래 일하려면 생리현상부터 컨트롤 해야돼. 내가 언제까지 뒤치다꺼리 해야되냐?"

"죄송합니다."

전화 한통 받아줬나보다. 정말 고맙다.

"아까 그거 고쳐줄 수 있었는데 애가 말을 바꾸잖아. 짜증나서 안고쳐줬어."

역시 대단한 선배다. 배울 점이 많다.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점심포함 쉬는시간 1시간+낮잠 2시간.

그의 주간근무는 9 to 6가 아니다. 그는 하루에 6시간 유튜브를 즐기며 12만원을 받는 고급 인력이다.

그렇다.

그는 '무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