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슈퍼맨이 돌아왔다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슈퍼맨이 돌아왔다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싱글벙글 어제 차량 돌진사고.gif ㅇㅇ
- 변호사가 말하는 여성판 N번방 사건 jpg 야갤러
- 싱글벙글 혼란한 사이 선진국 별 투자이민 비용을 알아보자 ㅇㅇ
- 김호중 술자리 동석 연예인 곧 조사... 콘서트 '강행' 정치마갤용계정
- 혼자 이탈리아 시골에 간 한국인.jpg ㅇㅇ
- 이자 20% 아반떼 풀 할부남 근황...JPG 포흐애액
- 개통령 강형욱 논란 떳다...jpg ㅎㅎ
- 직구 금지 보류 기사 기레기 낚시질이다 ㅇㅇ
- 임플란트 수술 의료사고 근황 ㅇㅇ[1.227]
- 범인을 꼭 알아내겠습니다.라는 약속을 16년 뒤 지켜낸 형사.jpg ㅇㅇ
- 위기의 '밥상 물가'...이번엔 마늘까지 '말썽' ㅇㅇ
- 그새 ㅈ같은 만화만들었네 ㅋㅋ+(속보) 직구 금지, 사실상 철회 긴뭉성
- 전학생의 XXX를 먹고 싶어하는 여고생..! manhwa 니소라스
- 中, 시속 133km 강풍 강타... 밥 먹다가 날아간 남성들 난징대파티
- 미국에서 할렘같은 흑인 빈민가가 생긴 이유.jpg ㅇㅇ
정성글) 히틀러는 어떻게 정권을 장악했나 -2-
https://m.dcinside.com/board/newconservativeparty/4452403?headid=350 정성글) 히틀러는 어떻게 정권을 장악했나 -1- - 새로운보수당 마이너 갤러리아돌프 히틀러 하면 대중적인 이미지는 ‘민주주의의 결함’, ‘민주적으로 선출된 독재자’라는 것이다.지금도 한국의 여러 TV 교양 프로그램에선 이런 시각을 가지고 대중들에게 이 사실을 전파하며, 그 이전 바이마르 공화국m.dcinside.com우리는 이전까지 파펜의 계획에 따라 히틀러가 ‘얼굴마담’으로 총리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원래대로라면’ 히틀러는 아무 영향력 없이 부총리 파펜 이하 관료들에게 휘둘려야 했다. 그런데 왜 역사의 수레바퀴가 히틀러를 권력자로 안내했을까?총리로 취임한 히틀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언론통폐합이었다. 그는 친공산당, 친사민당 언론을 정간하고 공산당의 집회를 원천봉쇄하는 명령을 발표했다.당연히 공산당, 사민당 지지자들은 언론 탄압을 중단하라며 곳곳에서 시위를 일으켰는데, 히틀러는 자신을 따르던 나치당 돌격대(SA)를 보조경찰로 집어넣어 탄압을 강화했다. 돌격대에게 공산당원을 향한 발포 허가도 내려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민당, 공산당 지지자들의 반발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 형국에서 갑자기 독일 국회의사당이 방화되는 사건이 발생한다.현재까지 진범이 누군지 모르는 이 사건은 히틀러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주었다.당시에도 국회의사당 방화에 대해 독일 사회에서 이런저런 말이 돌아다녔지만, 히틀러는 이것이 공산당원의 소행이라 주장하였다. 사람들은 방화 혐의로 체포된 공산당원 마리누스 판 데르 루페가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으나, 히틀러 내각의 결론은 그러했다.히틀러는 사건 이후 ‘국민과 국가의 보호를 위한 긴급명령’을 통해 정부의 자의적 판단 하에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게 만들었다. 총선을 4일 앞둔 1933년 3월 1일에는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베를린에서 1,500명의 공산당원과 국회의원들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이러한 상황에서 선거가 치러지니 정상적일 리가 없었다. 1933년 3월 4일, 공산당원 50명이 나치 돌격대와 충돌해 사망하던 혼란 속에 치러진 총선 결과 나치가 득표율 43.9%를 얻어 1당이 된다.그런데 우리는 득표율에 시선을 둘 필요가 있다. 그냥 보면 나치가 1당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가운데서도 나치의 득표율이 50%가 안 되었다는 것이다.아무리 공산당원들을 체포하고, 탄압하고, 죽여대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해도 나치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에게 그다지 동의 받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다가 3월 24일, 독일 국회에선 이른바 ‘전권위임법’ 표결을 앞두고 논란이 증폭되었다.전권위임법은 입법권을 국회가 아니라 히틀러 내각이 가져가는 것을 핵심 골자로 하고 있었다. 이 법이 통과되면 히틀러가 위헌이든 합헌이든 법률을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었고, 외국과의 조약도 국회 동의 없이 체결할 수 있었다.히틀러는 법안 표결을 앞두고 "이 법은 4년간만 유효할 것... 4년만 주면 독일을 바꿔놓겠다"고 말하며 가결을 종용했다.당시 규정에 따르면 국회 재적의원의 2/3 이상 출석, 출석의원의 2/3 이상 찬성으로 법안이 가결될 수 있었다. 당시 재적의원은 647명, 히틀러에 적대적이었던 사민-공산당 의원들은 201명으로 사민-공산당이 손잡고 15명의 의원만 설득해 국회에 출석하지만 않아도 통과될 수 없었다.그런데 히틀러는 여기에 부칙을 달았다. '정당한 사유 없이 무단으로 출석하지 않은 의원은 출석해서 기권표를 던진 것으로 판정하겠다'는 유권 해석을 시도한 것이다.결국 전권위임법은 '찬성(기권 포함) 444, 반대 94'로 통과된다.전권위임법이 통과되자마자 사민당은 불법으로 규정되었다. 이제 국내의 반대 세력을 일소한 히틀러는 당 내부까지 정리하려 했다.당시 나치의 정치깡패인 돌격대는 반나치 인사들에게 테러를 가하는 등 폭력 행위로 인해 민중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였다. 이미 정권을 장악한 히틀러는 자신에 대한 시선을 바꿀 겸 하여 쓸모없어진 돌격대를 숙청할 생각이었다.돌격대 수장인 에른스트 룀은 눈치 없이 히틀러에게 ‘돌격대를 정규군으로 편입하자’는 제안을 하게 되며 히틀러의 신임을 잃는다. 거기에 더해 히틀러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려던 파펜이 자신의 뜻대로 정국이 흘러가지 않자 1934년 6월 연설에서 ‘무근본 이기주의 품위없는 거짓말쟁이‘ 등의 발언을 하며 나치를 저격했다.히틀러는 파펜의 연설 2주 뒤인 6월 30일, 군부와 손잡고 보수 세력 내 자신의 경쟁자들을 대거 숙청하는 ’장검의 밤‘을 일으켰다. 그간 정부와 상호불가침의 관계였던 군부 장성들은 돌격대가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할 것이라 판단되자 바로 히틀러와 손잡고 에른스트 룀을 포함, 9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죽였다.장검의 밤 한 달 뒤에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사망했다. 힌덴부르크는 자신의 고향 노이데크에 매장되길 바랐지만, 히틀러는 이를 무시하고 타넨베르크 전투 전적지에서 장례식을 치르며 독일인들에게 자신이 힌덴부르크의 후계자임을 보여주려 했다.힌덴부르크 사망 후 히틀러는 분리되어있던 대통령과 총리직을 합치는 법안을 발의했고, 각종 조작과 위협 속에 90%에 달하는 지지율로 이 법이 통과되며 히틀러는 절대 권력자가 되었다.우리는 히틀러의 집권을 통해 여러가지를 알 수 있다. 그간 국내 교양서적, 방송에 소개된 대로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와 선동만으로 권력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히틀러는 기존 독일 보수 세력이 좌파의 약진에 공포를 느끼고 앞세운 ‘인형’이었고, 공포분위기 속에 치러진 1933년 총선에서도 과반 득표를 달성하지 못했다.히틀러의 정권 장악 과정에서 사민당과 공산당은(효율적인 견제와 반나치 투쟁을 했는지는 둘째치고) 나치에 명백히 반대했고, 파펜을 비롯해 기존 보수세력들은 통제되지 않는 히틀러에게 반발심을 느꼈다.어쩌면 한국에서 소개되는 히틀러의 이미지는 ‘선거’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민주주의 사회라도 정치적 야합과 권모술수 앞에 제도와 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걸 히틀러는 증명해보였다.- dc official App
작성자 : ㅇㅇ고정닉
서유리 전남편 입장 떳다 ㅋㅋ 폭로전 가보자
- 관련게시물 : 전남편과의 결혼생활이 하우스메이트 같았다는 서유리.jpg출처https://m.entertain.naver.com/now/article/144/0000962581방송인 서유리와 이혼 조정 절차를 밟고 있는 최병길 PD가 직접 입장을 밝혔다.최병길 PD는 19일 오전 뉴스1과 전화화에서 "SNS 계정에 (서유리와 이혼 관련) 댓글이 계속 달려서 대응을 안 하면 일이 계속 커질 것 같았다"라고 입장을 전한 이유를 설명했다.최 PD는 경제적인 문제를 이유로 서유리가 먼저 이혼을 제시했으며, 금전적인 피해는 자신이 더 많이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오는 6월 3일 조정 절차를 끝내고 합의 이혼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면서, 서유리의 방송 출연에 대해 '언론 플레이'라며 유감을 표했다.이번 인터뷰에서 최병길 PD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서유리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고 한 이유에 대해 "사실은 이혼이 주가 아니고 경제적인 문제가 생겨서 그쪽(서유리)에서 이혼을 덜컥 제시했다"라며 "경제적인 문제는 그분의 아파트 전세를 빼주는 과정에서 (내가) 빚을 많이 졌다, 제 아파트를 판 돈으로 (서유리 아파트의) 전세금을 내줬는데 저에게 돈을 뜯긴 것처럼 이야기해서 억울한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최병길 PD는 "서유리 씨 집은 전세를 주고 있었는데 세입자가 나가서 전세금 돌려주는 과정에서 돈이 부족해서 (제가) 사채도 쓰고 차도 팔고 집도 팔았다"라며 "그 친구(서유리)가 아파트를 날렸다고 하는데, 정작 아파트를 날린 것은 저다"라고 밝혔다. 이어 "본인이 피해를 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분은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라며 "저는 이런 것들로 인해 일도 안 들어오는 상황이지만, 이번 일과 관련해 (기사들을) 잘 찾아보지 않았는데 (댓글들을 보니) 어느 순간 제가 나쁜 사람이 돼있더라"라고 전했다.최병길 PD는 서유리가 생활비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선 "그 친구는 살림을 하지 않아서 생활비를 줄 게 없다"라며 "각자 (돈으로) 따로 살았고 제가 더 지출한 게 많다, 아파트 대출금, 관리비도 공과금도 제가 내고 있었다"라고 했다.최병길 PD는 자신이 창고 살이를 하고 있다고 한 것과 관련해선 "집 판 돈을 대부분 주지 않으면 안 나가겠다고 해서 그 돈을 줬더니 원룸 보증금 할 500만 원도 없어서 공동으로 쓰던 창고에 한 달 동안 기거를 했다"라며 "지금은 부모님 집에 얹혀살고 있다, 저는 아파트도 날리고 차도 날렸는데 아무것도 날린 게 없는 자기(서유리)가 금전적으로 피해를 본 것처럼 이야기해서 기분이 안 좋다, 정작 피해는 제가 당했는데 기분 나쁘다"라고 강조했다.최병길 PD는 향후 이혼 과정에 대해선 "6월 3일에 조정 절차를 마무리하는데, 저는 제가 많이 양보하는 조건으로 합의 이혼을 하려한다"라면서도 "그런데 이런 식으로 서유리 씨가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앞서 최 PD는 이날 오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참고만 있으려니, 내 앞길을 계속 가로막네"라며 "싸움을 시작하고 싶지 않지만, 내 상황이 너무 좋지 않으니 최소한의 방어는 하려 한다"라며 사진 한 장을 게재했다.사진 속에는 그가 다른 SNS에 심정을 토로한 글이 담겼다. 최 PD는 "본인 집 전세금 빼주려고 사채까지 쓰고 결국 내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니 덜컥 이혼 얘기에 내 집 판 돈을 거의 다 주지 않으면 이사 안 나간다고 협박까지 한 삶이 계속 피해자 코스프레라니"라며 "결국 나는 오피스텔 보증금도 없어서 창고 살이를 했는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야말로 빙산의 일각인데, 작품이고 뭐고 진흙탕 싸움을 해보자는 건가"라고 했다.최 PD와 서유리는 지난 2019년 결혼식을 생략한 후 혼인신고를 하고 법적인 부부가 됐다. 하지만 최근 두 사람은 파경 소식을 알렸으며, 서유리는 MBN '속풀이쇼 동치미'와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등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혼 심정을 토로했다.최 PD는 올해 7부작 U+모파일tv 드라마 '타로'를 선보일 예정이다. '타로'는 한순간의 선택으로 뒤틀린 타로카드의 저주에 갇힌 운명 미스터리 옴니버스 드라마로, 최 PD와 서유리가 이혼 전 호흡을 맞춘 마지막 드라마로 알려졌다.- "병원에 입원해도 연락 한통 없어"서유리, 이혼 하게 된 이유 밝히자 모두 오열서유리 온라인커뮤니티/채널A 성우 겸 배우 서유리가 최근 이혼 후의 심경과 결혼 생활 동안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지난 4월, 5년간의 결혼 생활을 마친 그녀는 "현재 이혼 조정 중이다. 너무 행복하고, 너무 좋다.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며 이혼 소식을 전하면서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이혼 결심의 계기채널A 2024년 5월 16일 방송된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서유리는 이혼을 결심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를 밝혔습니다. 그녀는 "1년 좀 안 돼서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며, 결혼 초기부터 불협화음이 있었음을 토로했습니다. 이어 "3년은 죽도록 싸운다고 주변에서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고치길 바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하며, 남편을 이해하려 노력했던 시간들을 회상했습니다.채널A 서유리는 "5년을 살았는데 가족이라는 느낌이 아니었다"며, "저희는 경제권이 따로 있었다. 5년 동안 생활비를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독립성이 오히려 부부 사이의 거리를 벌린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었습니다. 그녀는 또한 "요리를 집에서 거의 안 했다. 누가 사고 누가 사고"라며 번갈아가며 결제했던 일상을 설명하며, 이는 일반적인 부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갈등과 외로움채널A 서유리는 결혼 생활 중 겪은 외로움과 갈등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보통 기브앤테이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전혀 안 되는 느낌이었다"며 부부 간의 상호작용 부족을 지적했습니다. 특히, "연애할 때는 안 그랬다. 나중에는 병원에 입원해도 연락도 없고 계속 아프고 그랬는데 연락도 없고 그래서 그때 '아 이거는 아니다' 생각했다"고 말하며 결혼 생활의 힘든 점들을 고백했습니다.이혼 후의 새로운 시작에 대해 서유리는 "재산은 그동안 쪽쪽 빨렸지만, 남은 재산이 있고, 앞으로 돈을 벌 거고, 능력이 있다. 괜찮지 않냐?"며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또한, "결혼은 못해도 아이를 낳고 싶다. 빨리 애를 낳고 싶다. 그런데 수술한 지 얼마 안 돼서 난자 채취는 나중에 해야 된다"고 엄마가 되고 싶은 바람을 표현했습니다.▶ 김태리, '숏컷 변신'으로 보기만 해도 미소 짓게 만드는 비주얼 화제▶ UFC 304 대진표 확정, 에드워즈 VS 무하마드의 웰터급 타이틀 재대결 주목▶ 2NE1, '데뷔 15주년 기념' 완전체 사진 공개▶ 미자, 과거 다이어트 경험 공유로 건강한 삶의 중요성 강조 "살 빼다 응급실 실려갔다"▶ 에스파 컴백 지연, '엠카운트다운' 촬영장 화재 발생
작성자 : ㅇㅇ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