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첫공 보고 사흘만에 다시 동베르 세번째 공연을 보고 왔는데,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긴 하지만 지난번보단 한결 능숙해지고 정리되어서 난 만족하고 보고 왔음.

일단 첫공에서는 돌부리씬 이전까지 연기가...뭐랄까, 처음 왜 베르테르랑 같이 나오는 질투녀 두 사람 연기같은 톤이었고(이 언니들은 일부러 그렇게 과장되게 연기하고 대사를 치는 건지, 아니면 연기를 못해서 그러는 건지 좀 궁금해지고 있...힘 좀 빼도 될 거 같은데-) 그래서 객석이 엄청 웃어댔는데, 오늘은 한결 과장됨이 빠지고 정리가 되어서 오디세이아 읽기 전에 애들이 같이 놀자고 하는 씬에서 너무 좋아하는 티가 나니까 웃음소리가 좀 나고 그 다음 롯데 앞에서 혼자 컨프롱(..이라고 말하고 보니 좀;)하는 씬에서 많이들 웃은 거 외엔 별로 웃음코드는 없었던 듯.

지난번에 비해 롯데가 꽃 꺾으러 갔을 때 알베르트가 들으면 깜짝 놀라겠네요-하고 말하는 씬에서 그래도 좀 들은 티는 내고(...지난번에는 들은 티도 안 나서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게냐;;싶었..), 첫부분에서 모지리끼-_-가 많이 빠지니 참으로 훤칠하고 샤방하고 사랑스러운 청년이라, 마리가 "잘생겼다-"하는데 절로 동감이- 그래서 헉 내가 일케 벨텔이 너무 괜찮아보이면 또 롯데 너 왜 안 따라가니- 하면서 극에 이입이 안 되는 거 아냐? 싶었는데 오늘도 나를 납득시켜준 상현알베르트에게 다시 감사를.

돌부리씬은 여전히 좋긴 했는데, 나한텐 지난번 첫공 돌부리씬이 임팩트가 워낙 커서 거기선 그냥 담담하게 봤고, 첫공에서는 눈물은 전혀 안 났는데 오늘 뜻밖의 역습을 당한 건 흰셔츠 씬(..이라고 맘대로 작명;). 키스씬도 순결한 키스, 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느낌이었고 그 다음의 대사를 워낙 절절하게 쳐서, 베르테르가 왜 죽어야만 하는지, 그리고 전동석이 보여주고 싶은 베르테르가 뭔지 거기에서 확 이입이 되더라. 그녀의 키스 한 번으로, 그 키스를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이제 나는, 그리고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그 정서, 좀 오글거리게 표현하자면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함, 이 보여서 거기서 눈물이 뚝 떨어져서 스스로도 놀랬네. 무대 위의 베르테르만 때문이 아니라, 과거 언젠가는 내게도 있었던 그 순수와 열정, 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그 마음-이 생각나서 그 장면이 참 슬프더라. 왜 베르테르가 영원히 '젊은' 베르테르여야 하는지도 새삼 이해가 되었달까.   

지우롯데도 지난번보단 한결 좋아져서 연기 부분은 좋았는데, 본인도 고백한 바지만 이 언니가 얼굴이랑 몸매에 비해서 몸을 참 못 쓰.....댄스씬이 참으로 힘들어 보여서 속으로 좀 웃었네. 그리고 새삼 베르테르 넘버가 남배우들한테는 유리하고 여배우들한텐 불리한가 싶은게, 고음이 많고 그게 거칠고 버겁게 들려서 그게 좀 아쉽더라. 아선롯데가 고음은 더 깔끔하게 올린다는 말을 들어서 얼빠본능-_-으로 지우롯데만 잡아놨는데 아선롯데도 봐야하나 고민될 정도. 뭐 넘버가 아쉬운 것 외에는 지우 롯데 특유의 그 씩씩한 느낌도 좋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우산을 받쳐주는 서글서글한 친절함이 어울려서 본인은 전혀 어장관리가 아니었음에도 베르테르가 사랑에 빠지는 것도 납득...(게다가 그 최강비쥬얼;) 그래서 내가 오늘 제일 엄마미소 띄고 본 건 롯데, 마리, 한스랑 베르테르가 같이 오디세이아를 읽는 씬이었는데, 완전 예쁜 가족같더라고. 근데 묘하게 지우롯데랑 동베르가 생김이 비스무레해서 롯데 부부랑 동생들-이라기보다는 그림처럼 예쁜 4남매-.- 같더라는. 근데 한스랑 마리는 원캐스트인거 같은데 혹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언더는 준비되어 있나 내가 다 걱정되더라;;  

상현 알베르트는 여전히 포스 가득 쩌렁쩌렁. 1막 노래부터 이쪽이 유니버셜 지붕 날릴 기세. 좀 재미는 없어도 너어무 안정감있는 어른 남자라, 그리고 롯데가 흔들린 걸 알면서도 본인의 롯데에 대한 마음이 너무 확고해서 그걸 다 감싸줄 수 있을 정도의 어른이라 역시 내게 극을 납득시켰고. 결국 롯데와 알베르트는 땅에 발을 디딘 사람들이고, 베르테르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던 거지.

오승준카인즈랑 서주희오르카가 처음 보는 캐스트였는데, 난 승준카인즈에 만족. 현준카인즈에 비해서 순박한 데가 있어서 역이랑도 잘 어울리고, 딕션이랑 가사 들리는게 참 월등하더라. 그렇다고 또 노래를 아주 잘 하는 건 아닌데도 묘하게 동베르랑은 음색도 어울리고 목소리가 서로 아주 잘 섞여들여서 베르테르랑 카인즈 듀엣이 참 좋았고.

그에 비해 주희오르카는 좀 아쉽...연보라 오르카가 고음에서 좀 많이 버거워하길래 주희오르카 쪽은 노래가 좀 더 나았으면 했는데 비슷-_-;; 이번 오르카 둘 다 연기는 나쁘지 않지만 2010년 최나래 오르카 노래 참 잘했는데 그립..ㅠ.ㅠ 여자 앙상블 중에서 엘리 앙상블이었던 정영아씨가 중간중간 솔로를 하는데 어어찌나 짜랑짜랑 우렁찬지, 언니가 넘 어려서 오르카 못하는게 아쉬붜요 ㅠ.ㅠ 하고 좀 울었네. 이번 베르테르는 전반적으로 여자캐릭터들 노래가 좀 아쉬운 듯.

음향은 전반적으로 좀 볼륨을 올렸고 한결 나은 거 같은데, 그 와중에 동베르는 다른 배역들보다 좀 마이크를 낮춰 놓은 거 같았지만 뭐 그게 전혀 문제되는 거 같진 않고...전동석이 얼어붙은 발길, 을 첫사랑의 달콤한 그림자가 조금은 남아있으면서도 저렇게 애잔하게 부를 줄은 몰랐는데 그 넘버를 제대로 소화해줘서 참 귀가 호강하는 기분이라, 그거만으로도 이 극의 내 만족도는 많이 올라가는 듯.

아무튼 진보하고 있는 동베르고, 나도 다음 관극은 나름 제법 텀이 있어서 그 동안 또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 전체 톤은 분명히 비극인데도 첫사랑 이야기는 이야기라 가슴 속 어딘가 몽실몽실 포근포근한 느낌이 드는 극이라, 이 가을에 보니 참 좋다,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