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조로 한 번 보고 솔직히 실망했거든.
배종옥씨 연기 잘하는거 알지만, 연옥이라는 옷에는 안 맞았다 생각했어.
극 내내 떽떽거리고 이유없이 신경질만 내는 히스테리컬한 여자로만 보였고,
그 안에 인생의 굴곡은 평면적으로만 느껴졌지. 그냥 배종옥의 연기를 감상하고 온 기분 뿐이었어.
조재현씨도 마찬가지... 그냥 자연 조재현... 김수로씨가 어떤 역을 해도 김수로만 보이는 것 처럼...
그래도 극 자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 극을 같이 끌어가는 조연분들이 너무 좋았어서
한 번 보고 말까 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정 페어로 한 번 더 잡았어.

와.. 극 초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너무 후회했어.
진작에 정-정으로 돌걸... 왜 그 생각을 못하고 한 번만 보고 여태까지 안보다가 이제서야 보나 싶었어.

정연옥과 서정민, 그리고 서이경

극단적인 구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쿨한 섹스파트너이자 아이를 가진 동반자 개념의 남-녀가 얼마나 있겠냐 반문할 수도 있어.
그렇지만 소통의 단절, 파편화된 관계가 정말 잘 보일 수 있었던거라고 난 받아들였어.

비겁한거 알면서도 도망치기만 하기에 급급하고 되려 여자에게 표현 안한 네 잘못이야 하고 떼밀던 남자
그런 남자를 비겁하다고 여기면서도 자기 감정에게 정말 비겁하게 등돌리고 애써 외면했던 여자
결국 각자 다 같은 곳을 바라봤으면서, 한 발짝씩만 서로 다가가기만 했었어도 되었던 건데
서로 한발짝씩 멀어지고 멀어지면서도 시선은 한 곳만을 바라봤던 거지...
각자의 눈, 마음, 모든 걸 보기만 했어. 안아주려고 하지도 않았어.
늘 상황탓만 했었고, 늘 상대방의 이기심만 탓했어.
그 가운데 딸인 이경은 그들에게 부대껴서 늘 뒷전이었지.
아빠를 아저씨라 부르고, 엄마보고 죽어서 잘됐다고 조소하지만 실은 그녀도 굉장히 아프고 속상한거야
애써 그걸 감추고 감정적으로 날이 서있던거지... 고슴도치마냥...

그런 비정상적인 가족구성원들을 뒤로하고 늘 자기만을 위해 살았던 연옥씨는
위암을 발견했고, 비로소 죽음이라는 주제를 생각하게 되었지.
늘 전쟁터를 고집하고 위험 분쟁지역을 넘나들었어도 자각하지 못했던 상황과 내면의 감정과 마주하게 된거지.

때마침 딸 이경의 문제로 어쩔줄 몰라하고 고민하던 정민의 목요일 토론 제안은
실은 매우 기쁜 일상이었을거야... 정민씨에게도 마찬가지였겠지. 처음엔 의무처럼, 하지만 나중에는
각자의 본모습을 다시 보게 되고 파리에서처럼 서로를 더이상 기만하지 않게 되었지...

파편화된 가족들의 생각을 적나라하게 보고 온 것만 같아.
넥스트 투 노말때도 그랬어. 실은 우리 가족, 내가 마주한 실제 상황과 너무 비슷해서 더 와닿았던거 같아
극 중반부터는 눈물이 줄줄 나더라. 저렇게 악지르고 생떼부리는 연옥씨랑 능글능글한 가면으로
상처 안 받으려고 뒷걸음질만 치는 정민씨에게서 우리 가족을 봤어 나를 봤고...

아 ㅋㅋ 횡설수설 두서없는 후기다 ㅋㅋ
아무튼 결론은 정-정 페어는 옳았어. 이제 바로 막내리고 지방공연 돌텐데
한 번쯤 다른 개럴들도 보라고 부족하게나마 갤영업글 써봐 ㅎㅎ...

정재은씨는 진짜 믿고 볼 배우가 되었고...
정웅인씨는 진짜... 잔뼈가 굵었어. 어찌보면 조재현씨보다 덜 인위적이었던 것 같아...
나중에 위암이야 라는 연옥의 말에 묘하게 입가부터 변해가던 모습 못 잊어. 애써 개그처럼 암드립을 치지만
의자에 앉을 때 믿을 수 없다는 미묘한 표정 정말...
그리고 젊은 정민 역으로 나오는 나경민씨는 진짜.... 와... 정말 오래오래 다른 작품에서도 만나겠다 싶었어.

정말 어딘가에 서정민씨랑 정연옥씨가 그리고 이경이랑 바보같이 굼뜨지만 정민씨와는 다른 이경의 남자친구가
투닥거리면서 살아있을 것만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