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선 테이커가 도전자 포지션으로 나선 것 자체가 실로 오랜만이다

제일 최근에 테이커가 도전하는 형태로 나온게 레매 27에서 자기 실신시킨 삼치에게 1년 후 레매 28에서 도전하겠다고 나선 건데 이 땐 삼치를 쥐어패거나 하는 것도 없이 걍 지 머리 스스로 자르는 걸로 결의를 다지기만 했음

즉 당시 선역인 삼치를 패는 연출이 없어서 오히려 지금같은 이질감은 없었지

2.

2004년 데드맨 기믹 리턴 이후 악역을 상대로 정정당당하게 압도하는 선수를 저격하고 깽판친 게 2004년 6월 아주 짧게 악역했을 때 시나랑 RVD를 공격한 경우를 제외하면 전무하다

근데 이건 월드 챔피언쉽도 아니고 PPV도 아니고 걍 단순히 스맥다운에서 열린 태그팀 매치였음 (시나 & RVD vs. 부커티 & 듀프리)

테이커가 선역을 저격하고 (레스너가 배그에서 경기 양상만 놓고 보면 선역 포지션이라 봐도 무방하니) 방해해서 악역이 타이틀이 지키는 경우는 지금 기믹으로 리턴한 후 11년 중 이번이 최초라는 소리

3.

다른 요소 떼어놓고 이번 배그 엔딩만 보면 완벽히 레스너가 선역 / 테이커가 악역 포지션이었음

이번 엔딩을 요약하자면 '과거에 자신을 정정당당하게 꺾은 상대에게 앙금을 품고 그 상대가 타이틀을 따낼 결정적인 순간에 졸렬하게 방해함으로서 대립 재개'인데, 누가 봐도 그 난입한 사람이 악역으로밖에 보일 수 없지

근데 그 다른 요소가 너무 큰 변수임. 20년이 넘는 언더테이커의 커리어가 총망라된 레슬매니아 21연승을 브록 레스너가 꺾었다는 것. 그래서 테이커를 마냥 악역으로 볼래야 볼 수가 없게 됨

근데 재밌게도 레스너의 최근 행보도 거의 선역이다. 아무리 악하게 봐줘도 트위너 정도? 

(레스너 기준으로 보면 테이커도 사실 비열한 술수없이 하나 없이 깨끗하게 꺾은 거고, 자기 타이틀 비열하게 뺏어간 세스에게 재경기 권한 받아내고 정정당당하게 자기 힘으로 계속 밀어부친 거거든. 그 대립 과정도 레스너가 어쏘리티라는 악역 집단을 쓸어버리는 선역 포지션이었고)

냉정하게 보자면 자기 연승 깨진 거에 대한 열폭이지만 마냥 열폭이라기엔 그 연승에 20년이 넘는 위대한 가치가 쌓여 있었는데 그걸 깨버린 레스너에게 분노하지 않는게 이상한 테이커와, 비겁한 짓 하나 없이 싸울 때 싸우고 이길 거 이긴 레스너의,

누굴 선역이라고도, 악역이라고도 보기 힘든 각자의 자존심을 걸고 싸우는 형태가 된 것 같아 뭔가 레매 30 때 대립보단 좀 더 재미는 있어진 거 같음

매우 긍정적으로 보면 말이지...

이게 테이커가 월드 타이틀에 완전히 손 놓기 시작한 2010년 이후로 레스너에게 연승 깨진 2014년까지 4년동안 레슬매니아 연승을 도전받는 왕권에만 머물러 있다가

갑자기 비 레슬매니아 시즌에, 지극히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비열한 악역도 아닌 놈하고, 공교롭게도 동생인 케인이 레스너에 의해 부상입자마자 대립을 전개한다는게 너무 너무 오랜만이라 감회가 새로운 거 같음

매우 긍정적으로 보면 말이지...

걍 시청률 존나게 떨어지니까 궁여지책으로 테이커 데려왔는데 써먹을 명분이 레스너에게 복수밖에 없으니 배그 메인 좆같이 만들어서라도 섬슬 시즌 몰빵하는거긴 한데

이런 요소들이 감회를 새롭게 만들어준 거 같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