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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들와들 북한에도 존재하는 지역감정.JPG
황해도 + 평안도 좋게 말하면 느긋하고 착하고 순박하고 나쁘게 말하면 띨띨하고 어리석음 특히 황해도 = 땡해도양강도개그지 촌동네, 감자 처먹는데 감자도 못생김못생긴 사람보고 양강도 감자 드립침자강도고지식하고 보수적임사기 잘 치고 다님10명이 사기 당하면 7명이 자강도평양다른 지방 전부 멸시함. 평양여자들 죽어도 지방으로 시집 안 감 타지역이 보기엔 미국보다 더 좆같음. 걷는 것도 재수없음함경도(한숨) 상종도 하지 마라뒤통수 잘 친다어라...? "함경도는 절대 요직에 앉히지 마라".....!!! "조선족분들 신안군 섬노예 소문이 흉흉하니 조심합시다" "함경북도와 전라남도가 비슷한 정서입니다"헉!!! 함경도는 어떤 곳일까...
작성자 : ㅇㅇ고정닉
동로마의 입장과 여파
[시리즈] 서쪽 로마 질서의 끝 · 서쪽 로마 질서의 끝 전 글에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고토수복전쟁이 아이러니하게도 고대 로마 질서를 끝냈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이 동로마에게도 명분도 애매한 진정 안좋은 선택이었을까? 이탈리아 파괴는 동로마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을까? 그리고 어째서 그 많은 영토를 홀랑 잃어버린 것일까? 윾스티니아누스 즉위 시점의 유럽이다. 지도에서는 안보이지만 동쪽에 사산도 있다. 여기서 살펴야할것은 고토에 대한 동로마의 인식, 동로마와 동고트의 정치 상황, 동로마의 외교이다. 동로마든 서로마든 지배층은 동 서를 나누어 생각하지 않았다는것은 윾붕이들도 알터이다. 그런 "로마"의 입장에서 보았을때는 서로마 영토의 동고트 서고트 반달 야만 삼둥이는 내 하반신 마비시키고 "난 오른다리고 얜 왼다리고 얜 뀨츄야 우리가 니 새 하반신임" 라고 개소리 하는걸로 보일것이다. 그나마 이탈리아라도 로마화가 착실히 된 테오도리쿠스를 통해 오도아케르를 죽여 이탈리아라도 안정화시켰다만은 동쪽 로마가 정신을 차리고 기를 회복하며 이러한 관계의 필요성도, 테오도리쿠스 사후에도 동고트가 말을 잘들을지는 미지수였다. 이와중에 사산조 친구들도 말타고 칼들고 집들이 시도를 한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롬뽕 최대치로 채운 윾대제(30대)가 즉위한다. 윾대제는 즉위 초부터 자신의 고토 수복 의지를 숨기지 않았는데 그 수단으로 세제 개혁과 세금 인상을 한다. 그렇게 인기가 나락간다. 덤으로 페르시아와의 빤쓰레슬링도 지지부진하며 인기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한술 더떠 전차경주 파벌에서 출발한 정치 집단인 녹색당과 청색당 또한 그의 전제적 성향 세제 개혁을 주도하는 간부들의 부패혐의 윾대제의 반부패 수사 세금 인상 귀족들 입장에서는 불-편한 법률 개혁 등등 다양한 이유로 윾대제를 싫어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녹색당과 청색당의 훌리건 몇놈이 경기중 난동 혐의로 체포된다. 교수형을 선고받았으나 교수대가 부숴져서 집행되지 않았고, 징역으로 감형되나 양당은 한마음으로 이 둘을 풀어줄것을 요구한다. 윾대제는 이것을 거부한다. 이것을 시작으로 시민사회의 분노가 폭발해 폭동이 시작되니, 이것이 바로 니카 폭동이다. 윾대제는 상황에 놀라 이들을 달래려 했지만 폭동은 되려 심해졌고, 니카라는 구호를 외치며 윾대제를 폐위 시키려 한ㄷ "천안문" (인력 -30k) 테오도라의 정신차리라는 설득에 빤쓰런을 멈추고 정신을 차리다 못해 눈을 까뒤집고 3만명을 천안문 해버린다. 이 사건을 길게 서술한것은 윾대제가 이 사건을 빌미삼아 원로원을 숙청함으로서 길들였고 전제정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유스티니아누스의 계획을 추진하는데 생길 마찰이 사라진것이다. 여기에 일련의 개혁을 통해 세금, 정치적 안정, 법률적 안정을 확보한다. 이는 전대 황제들의 개혁과 시너지를 내며 주머니가 터져나갈 정도의 돈을 쑤셔넣어준다. 그 돈을 사산의 새로운 샤한샤인 호스로 1세의 주머니에도 조금 꽂아주어 동쪽국경은 안정된다. 차라리 동고트에 그 돈 주고 사산을 팰수는 없냐고 할수 있는데, 객관적으로 몇세기를 로마와 빤쓰레슬링 하던 제국 패기vs방금 태어난 로마물 좀 먹은 정치 개판이어 언제 내 통수 칠지 모를 게선족 왕국 패기 누구라도 게선족을 팰것이다. 즉, 동로마의 고토 수복은 말이 "동" 로마지 사실 로마의 후계인 국가가 앞으로 어쩔지도 모르는 동고트족을 정벌한것이고, 그 정벌은 굉장히 안정된 정치 경제적 상황 속에서 진행했다는 것이다. 동고트의 정치 또한, 테오도리쿠스가 살아있을때와는 달리 더이상 동로마에 숙이는 그런 정치가 아니었다. 장녀인 아말라순타는 유스티니아누스와 우호적인 밀서를 주고 받는등,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노력했지만, 이는 동고트 귀족들의 분노를 샀고 공동왕이던 테우히다드는 아말라순타를 체포하고 목욕중 암살한다. 이 암살에 테오도라가 명분을 위해 테우히다드를 부추겼다는 의혹이 있다. 아무튼 테우히다드는 동로마와 친하던 그녀의 죽음을 순화하여 윾대제에게 전하려 했지만, 보낸 사절들은 오히려 그녀의 죽음을 진실대로 털어놓으며 CS하나를 선물해준다. 크킹으로 따지자면 주장자가 제발로 기어들어온 꼴이고, 윾으로 따지자면 이벤트 떠서 전지역 영클 하나 통째로 떨어진거다. 이렇듯 동고트는 테오도리크 사후 은근히 동로마와 거리를 두려 했다. 정복 이후 시점으로 가서, 과연 이탈리아 반도의 초토화를 동로마군이 주력으로 했냐고 물으면 아니다. 전 글에서도 적었지만, 동로마가 시작한 전쟁이 초토화의 원인은 맞지만, 그 파괴의 진행은 토틸라의 파괴적이던 동고트군, 동고트 왕국의 멸망을 목적으로 한 동로마군, 그리고 이후 롬바르드족의 침공까지 모든 사건이 맞물린 결과였다. 재건 또한 특히 체제적 잔재가 재건되지 않은것이었지, 정복 이후 총독이 된 나르세스는 쥐어짠 세금으로 인프라는 어떻게든 복구했다. 그렇게 확보한 영토는 고토 완전 수복의 발판이 될 터였고, 그럴만한 경제도 있었으며, 정치적 군사적 안정도 확보 되었었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동로마로서는 잠재적인 적 처단+고토수복의 발판이라는 최선의 선택을 최대의 결과로 낸것이 사실이다. 명분 또한 고토 수복+칼케돈 억압하는 반달 척결+우호 인물을 처형한 잠재적 적국으로 충분했다. 전 글에서 설명했듯 그것이 설령 서로마 지역에서의 고대 로마라는 의식의 사실상 끝을 고했다 하더라도, 남아있는 동쪽의 고대 로마가 건재하다는것을 증명했을 뿐만 아니라 정복이 아니더라도 세제 개혁과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이라는 업적은 위대한 것이다. 그러나 왜 동로마는 몇대 안지나서 저 발판들을 홀랑 상실해버린 것일까? 우선 윾대제 말기부터 역병이 돌아서 재정이 박살난다. 한술 더떠서 사산과의 평협이 끝난다. 그 틈에 롬바르드가 쳐들어온다. 그렇게 억까를 마주한 후임 유스티누스 2세는 이윽고 벌어진 정치 암투로 장군, 관료들이 갈려나가고 황제도 갈려 나가고 심지어 호스로 2세의 정복으로 레반트와 아에깁투스 속주를 잃지만 이라클리오스대에 이르러 수복하고 호스로 2세를 사로잡고 처형해 사산도 처음으로 임종 직전으로 만들며 성십자가도 탈환하였다. 이때까지는 이탈리아의 속주들과 이베리아의 속주, 아프리카의 속주를 유지할수ㅇ 이라클리오스의 치세 후기, 이슬람이 흥하며 영토를 대거 상실하게 되고, 그의 치세동안에 라틴어에서 그리스어로 행정 언어를 바뀌며 문화적으로 동쪽 로마는 비로소 고대 로마에서 중세 로마로 나아가게 된다. 얼마지 않아 8세기 초에는 이탈리아의 일부 영토를 제외하고는 모든 영토를 상실하고 이윽고 롬바르드족의 공격과 로마의 교황과의 관계 악화는 라벤나 총독부의 붕괴와 로마의 이탈, 동서 교회의 대분열을 야기하였으며, 그 롬바르드족은 프랑크의 왕의 손에 멸망해 교황으로부터 대관받은 프랑크 왕의 서쪽 로마의 이름을 내건 새로운 제국의 탄생을 알리고 점차 봉건제가 확산되며 중세가 시작된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HabsBurger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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