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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글) 히틀러는 어떻게 정권을 장악했나 -2-
https://m.dcinside.com/board/newconservativeparty/4452403?headid=350 정성글) 히틀러는 어떻게 정권을 장악했나 -1- - 새로운보수당 마이너 갤러리아돌프 히틀러 하면 대중적인 이미지는 ‘민주주의의 결함’, ‘민주적으로 선출된 독재자’라는 것이다.지금도 한국의 여러 TV 교양 프로그램에선 이런 시각을 가지고 대중들에게 이 사실을 전파하며, 그 이전 바이마르 공화국m.dcinside.com우리는 이전까지 파펜의 계획에 따라 히틀러가 ‘얼굴마담’으로 총리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원래대로라면’ 히틀러는 아무 영향력 없이 부총리 파펜 이하 관료들에게 휘둘려야 했다. 그런데 왜 역사의 수레바퀴가 히틀러를 권력자로 안내했을까?총리로 취임한 히틀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언론통폐합이었다. 그는 친공산당, 친사민당 언론을 정간하고 공산당의 집회를 원천봉쇄하는 명령을 발표했다.당연히 공산당, 사민당 지지자들은 언론 탄압을 중단하라며 곳곳에서 시위를 일으켰는데, 히틀러는 자신을 따르던 나치당 돌격대(SA)를 보조경찰로 집어넣어 탄압을 강화했다. 돌격대에게 공산당원을 향한 발포 허가도 내려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민당, 공산당 지지자들의 반발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 형국에서 갑자기 독일 국회의사당이 방화되는 사건이 발생한다.현재까지 진범이 누군지 모르는 이 사건은 히틀러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주었다.당시에도 국회의사당 방화에 대해 독일 사회에서 이런저런 말이 돌아다녔지만, 히틀러는 이것이 공산당원의 소행이라 주장하였다. 사람들은 방화 혐의로 체포된 공산당원 마리누스 판 데르 루페가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으나, 히틀러 내각의 결론은 그러했다.히틀러는 사건 이후 ‘국민과 국가의 보호를 위한 긴급명령’을 통해 정부의 자의적 판단 하에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게 만들었다. 총선을 4일 앞둔 1933년 3월 1일에는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베를린에서 1,500명의 공산당원과 국회의원들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이러한 상황에서 선거가 치러지니 정상적일 리가 없었다. 1933년 3월 4일, 공산당원 50명이 나치 돌격대와 충돌해 사망하던 혼란 속에 치러진 총선 결과 나치가 득표율 43.9%를 얻어 1당이 된다.그런데 우리는 득표율에 시선을 둘 필요가 있다. 그냥 보면 나치가 1당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가운데서도 나치의 득표율이 50%가 안 되었다는 것이다.아무리 공산당원들을 체포하고, 탄압하고, 죽여대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해도 나치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에게 그다지 동의 받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다가 3월 24일, 독일 국회에선 이른바 ‘전권위임법’ 표결을 앞두고 논란이 증폭되었다.전권위임법은 입법권을 국회가 아니라 히틀러 내각이 가져가는 것을 핵심 골자로 하고 있었다. 이 법이 통과되면 히틀러가 위헌이든 합헌이든 법률을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었고, 외국과의 조약도 국회 동의 없이 체결할 수 있었다.히틀러는 법안 표결을 앞두고 "이 법은 4년간만 유효할 것... 4년만 주면 독일을 바꿔놓겠다"고 말하며 가결을 종용했다.당시 규정에 따르면 국회 재적의원의 2/3 이상 출석, 출석의원의 2/3 이상 찬성으로 법안이 가결될 수 있었다. 당시 재적의원은 647명, 히틀러에 적대적이었던 사민-공산당 의원들은 201명으로 사민-공산당이 손잡고 15명의 의원만 설득해 국회에 출석하지만 않아도 통과될 수 없었다.그런데 히틀러는 여기에 부칙을 달았다. '정당한 사유 없이 무단으로 출석하지 않은 의원은 출석해서 기권표를 던진 것으로 판정하겠다'는 유권 해석을 시도한 것이다.결국 전권위임법은 '찬성(기권 포함) 444, 반대 94'로 통과된다.전권위임법이 통과되자마자 사민당은 불법으로 규정되었다. 이제 국내의 반대 세력을 일소한 히틀러는 당 내부까지 정리하려 했다.당시 나치의 정치깡패인 돌격대는 반나치 인사들에게 테러를 가하는 등 폭력 행위로 인해 민중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였다. 이미 정권을 장악한 히틀러는 자신에 대한 시선을 바꿀 겸 하여 쓸모없어진 돌격대를 숙청할 생각이었다.돌격대 수장인 에른스트 룀은 눈치 없이 히틀러에게 ‘돌격대를 정규군으로 편입하자’는 제안을 하게 되며 히틀러의 신임을 잃는다. 거기에 더해 히틀러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려던 파펜이 자신의 뜻대로 정국이 흘러가지 않자 1934년 6월 연설에서 ‘무근본 이기주의 품위없는 거짓말쟁이‘ 등의 발언을 하며 나치를 저격했다.히틀러는 파펜의 연설 2주 뒤인 6월 30일, 군부와 손잡고 보수 세력 내 자신의 경쟁자들을 대거 숙청하는 ’장검의 밤‘을 일으켰다. 그간 정부와 상호불가침의 관계였던 군부 장성들은 돌격대가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할 것이라 판단되자 바로 히틀러와 손잡고 에른스트 룀을 포함, 9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죽였다.장검의 밤 한 달 뒤에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사망했다. 힌덴부르크는 자신의 고향 노이데크에 매장되길 바랐지만, 히틀러는 이를 무시하고 타넨베르크 전투 전적지에서 장례식을 치르며 독일인들에게 자신이 힌덴부르크의 후계자임을 보여주려 했다.힌덴부르크 사망 후 히틀러는 분리되어있던 대통령과 총리직을 합치는 법안을 발의했고, 각종 조작과 위협 속에 90%에 달하는 지지율로 이 법이 통과되며 히틀러는 절대 권력자가 되었다.우리는 히틀러의 집권을 통해 여러가지를 알 수 있다. 그간 국내 교양서적, 방송에 소개된 대로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와 선동만으로 권력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히틀러는 기존 독일 보수 세력이 좌파의 약진에 공포를 느끼고 앞세운 ‘인형’이었고, 공포분위기 속에 치러진 1933년 총선에서도 과반 득표를 달성하지 못했다.히틀러의 정권 장악 과정에서 사민당과 공산당은(효율적인 견제와 반나치 투쟁을 했는지는 둘째치고) 나치에 명백히 반대했고, 파펜을 비롯해 기존 보수세력들은 통제되지 않는 히틀러에게 반발심을 느꼈다.어쩌면 한국에서 소개되는 히틀러의 이미지는 ‘선거’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민주주의 사회라도 정치적 야합과 권모술수 앞에 제도와 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걸 히틀러는 증명해보였다.- dc official App
작성자 : ㅇㅇ고정닉
日, 건설회사에서 불법 아동노동 적발... 11세 소년에게 굴착기 운전
일본 아이치현 도카이시에 위치한 히무로 건설사의 작업장 건설사답게 위험한 기계들이 정신없이 작동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에 대한 제보가 들어왔다고 함 올해 2월의 어느 날 아동(당시 11세)이 굴착기를 운전하고 있는 모습이 목격된 것 이 사실이 알려지며 히무로건설 대표 히무로 유(46)와 공사부장 오가와 나오토(38)는 노동기준법 위반 혐의로 즉시 체포됨 이후 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는데 히무로 용의자는 건설사 대표일뿐만 아니라 도카이 시내에 있는 아동 자립지원 시설인 이키쥬쿠(粋塾)의 대표이기도 했던 것 히무로 용의자 등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시설에 입소해 있던 11세 아동에게 공사장에서 굴착기를 운전하게 하는 등 강제노동을 시켜왔던 것... 이들은 11세 아동 외에도 15세 미만의 소년 3명 등에게도 폐자재를 정리하게 하거나 트럭 하역작업을 하도록 시키는 등 개인 사업에 동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음 근처에서 일하던 남성은 초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이 공구를 나르거나 삽을 들고 일을 하는 등 노동현장에 투입된 모습을 목격했다고 함 아이들은 진흙투성이가 된 옷을 입고 다녔다는데 얼마나 굴린 것일까... 히무로 용의자가 대표로 있던 이키쥬쿠는 히키코모리나 등교거부 학생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일종의 기숙사인데 올해 3월 기준 소년소녀 약 20명이 입소해있었다고 함 이번 사건에 대해 히무로 대표는 용의를 인정하고 있지만 오가와 부장은 유압 굴삭기 등의 운전을 지시한 적은 없다며 용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함 경찰은 이들이 아동들에게 일상적으로 노동을 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추가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라고 함 제3세계에서나 있을법한 아동 강제 노동이 21세기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다라... 그것도 자기들이 보호하겠다고 시설에 입소시킨 취약계층 아동들을 본인 소유의 다른 사업장에 데려가서 강제노동을 시켰다는 점이 더 악질적인듯 댓글에서 언급하는 토츠카 요트스쿨은 등교 거부 아이나 비행청소년 등을 갱생하겠다고 강제합숙 시키는 시설이었는데 거기서 3년간 아동들이 여러명 죽어서 논란이 된 사건임 복통을 호소하는 아이들을 때려죽이거나 굶겨죽였고 몇명은 바다에 빠뜨려 행방불명이 되게 만드는 등 말도 안되는 일들을 벌였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집유로 끝났고 대표인 토츠카(위 사진의 노인)가 징역 6년에 처해지는 게 고작이었던 황당한 사건임 심지어 토츠카 히로시는 현재도 별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함 요트스쿨이 위치한 곳이 아이치현이었기 때문에 언급한 것 같음 아동노동은 국제적으로 금지되는 행위임 정상적인 국가라면 법으로 전부 금지하고 있고 한국도 마찬가지임 혹시라도 저놈들을 옹호하는 인간들이 있다면 정신 차려라 좀
작성자 : 난징대파티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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