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머리숱이 없긴 했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탈모셨으니까

그런데 군대 가기 직전에 내가 두피에 피부병이 약하게 있었는데

이게 군대 입대 후 너무 심해져서 밤에 자면서 계속 손으로 머리를 긁었다.

자고 일어나면 항상 베개에는 피범벅... 머리카락도 엄청 빠져있고...

그 때 까지는 잘 몰랐는데 어느 순간 거울이 양쪽에 있는 곳에 서서 내 정수리를 보았는데

이건 뭐 50대 아저씨처럼 완전 대머리... 제대 하고 나서 병원을 다니면서 별 치료를 다 해봤다.

두피에 주사도 겁나 맞아보고 좋다는 거 다 먹어보고... 돈, 시간 많이도 투자하고 마음 고생도 엄청했었다...

제대하고 내 나이 꼴랑 24살인데 머리 벗겨진 거 보면 완전 40대 후반 아저씨가 따로 없음.

그러다 결국 아는 분 소개로 두피 뭐시기 가서 검사해봤더니 모낭이 없더랜다.

머리 긁으면서 그 안에 살점 나가 떨어질정도로 긁어대서 모낭이 다 죽었댔나 뭐래나

여하튼 그래서 지금 기술로는 방법이 없다고 했음. 머리를 심기에도 범위가 너무 넓어서

심을 수도 없고... 내가 키 185에 손바닥도 큰 편인데 내 손바닥만하게 정수리가 텅 비어 있음...

어쨋든 당시에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고 진짜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지만 자살할까 라는 생각도 가졌던 거 같다.

머리가 날 수가 없다는 얘기 듣고 엄뉘 앞에서 엉엉 울었었는데...

어쨋든 하이모에서 가발 처음 사서 착용하고 다닌지가 어느새 6년째다.

초반에는 극도로 민감해서 누가 내 머리 근처에 손만 가져가도 혹은 길가다 바람만 좀 불어도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가발인 게 들킬까봐... 그나마 키라도 커서 좀 덜하긴 했던 거 같은데...

완전 트라우마였다. 우리 가족 외에는 어디 가서 가발 벗지도 않고 몇 날 몇 일 계속 써야 되는 경우도 있었고...

근데 진짜 심리적인 게 큰 거 같다. 전여친 덕분에 많이 해소가 됐음. 전여친이랑 사귀고 200일쯤 되었을 때

진지하게 고백할 게 있다며 분위기를 잡고 가발 얘기를 꺼냈다. 여자친구가 헤어지자는 말을 할 지도 모른다는 각오까지 하고 꺼냈다.

그런데 오히려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그게 뭐?" 라고 얘길해주면서 받아주었다.

자기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탈모인데 그게 뭐 큰 흉이냐고 어차피 나중에 벗겨질 머리 좀 일찍 벗겨진 셈 치지 뭐. 라고 쿨하게 말해줘서

너무 고마웠고 그 순간 이후로 트라우마였던 게 좀 나아져서 사람들이 혹여나 물어보면

네, 가발이에요 라고 말한 적도 많았다.

물론 자랑거리는 아니기에 내가 혼자 떠벌리고 다니진 않았지만 누군가가 머리 좀 이상하다? 이런식으로 물어보면

아, 네 가발이에요 ㅎㅎㅎ 하고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뭐 난 지금 만족하고 사는 거 같다. 어차피 머리숱 없어서 늙어보였던 거 아싸리 왕창 빠져서

가발 쓰고 다녀서 그런가 20대 초반보다 더 젊어보인다는 말도 많이 듣고...

올해 30이 되었지만 즐겁게 살고 있다. 다만 하이모 가격이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