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디덜러스(그리고 아마도 작가인 제임스)는 민족주의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고 천주교 학교를 다님으로써 민족주의와 절대적이어야 할 믿음이 조각처럼 뼈에 새겨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다. 이에 따라 스스로도 느끼는 양면적이고 혼란스러운(민족과 고향을 사랑하지만 민족주의자는 영혼 없는 사람 같고, 하느님의 대한 믿음과 경외, 두려움이 있지만 그에 거부감을 느끼고 반발하려고 하는) 자신의 영혼을 직면하고 극복하고자(사회와 자기 비판을 이겨 내고 일관성을 갖추고자) 결심하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 이 젋은 예술가의 초상이다.
양면적인 자신에 대한 고찰이라는 소재는 현재 자신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과도 같기에 매우 흥미로웠으나, 이야기가 그에 대한 자신의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아니라 극복의 결심을 도출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라 개인적으로 김빠지는 느낌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또한 이야기의 구조가 초반부터 명확한 메시지를 던지고 반복해서 서술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유도하는 형식이 아니라, 수필처럼 디덜러스의 이야기를 나열하는 형식이라 읽기 지루했다. 다만 전적으로 후자의 형식은 아니며, 정말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 전체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것은 바로 제임스 조이스만의 능글맞은 문체로, 집중해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은밀한 반어법(호흡이 길어서 눈치채기 힘들다)을 계속해서 구사하는 것이다. 그나마 반어법임을 눈치채기 쉽고 짧은 문단으로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아놀 신부가 화를 내는 것은 죄일까. 아니면, 아이들이 게으를 때는 불끈 화를 내서라도 공부를 열심히 하게 할 수 있다면 화를 내도 괜찮은 걸까. 그것도 아니면, 화를 내고 있지 않으나 겉으로만 그런 척하는 걸까. 아놀 신부는 성직자이고, 성직자라면 무엇이 죄인지 안다. 그리고 그런 이상 그는 죄를 짓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화를 내도 괜찮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가 어쩌다 한 번의 실수로 죄를 짓는다면, 고해성사의 자리에 가기 위해 그는 무엇을 어떻게 할까. 아마도 가는 교감 선생님께 가서 고해성사를 하겠지. 그리고 만일 교감 선생님이 죄를 지으면 교장 선생님께 가서 고해성사를 하겠지. 그리고 교장 선생님이 죄를 지으면 그때는 관구장을 찾아가게 되겠지. 관구장이 죄를 지으면 예수회의 총장을 찾게 되겠지. 그것이 이른바 위계질서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가 그들은 모두 유능한 사람들이라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만일 그들이 예수회의 신부가 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모두 이 세상에서 아주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예수회의 신부가 되지 않았다면 아놀 신부와 패디 배럿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그것이 그는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된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려웠다.>
이러한 문체와 메시지 전달 방식 하나를 본 것 만으로도 값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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