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애갤에 장문글을 쓸 때는 경어를 쓰진 않았는데, 쓰다보니 경어를 사용하는 편이 서술하기에 편하기에 경어를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본문 시작.
파고든다면 오히려 우로부치 겐의 사이코-패스 같은 작품이 적절하나, 마이너의 정점을 달리는 우리 아키라 선생의 사사미양@노력하지 않아 라는 작품은 파고들기엔 어딘가 나사가 풀린 듯한 작품이 되지요.
아키라 선생의 작품들을 무슨 전문 비평가마냥 각잡고 분석을 하거나 파고들면 오히려 과대해석이 될 수도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아키라 작은 작중에서 사회 현상이나 일상에 대한 풍자나 비꼼 등이 거의 없는 스타일입니다. 따라서 진지하게 파고들다간 부정적인 과대해석을 초래해 결국 자기 무덤을 파고들게 되는, 작품의 잘못된 해석을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래저래 아키라는 작품 속에서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빈도가 낮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돌아보게 하는 장치를 자주 설치하는(니시오 이신 등)편은 아닌지라, 아무리 속뜻을 담고 있는 것 같은 장면을 연출해도 사실 그 안은 텅 비어있다... 는 그런 느낌이라고 받아들이면 되겠습니다. 사사미양@노력하지 않아 는 그 대표적인 예이지요. 작중 일본의 구기신화, 히키코모리, 근친혼, 이기주의,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등 많은 떡밥이 등장합니다만 작가인 아키라는 이것들을 주제로 삼아 이 소설을 쓴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설정일 뿐이고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는 메세지는 아닌 것이지요.
이렇게 파고들 만한 주제들이 사실은 무대장식인 것 뿐이라 파고들기엔 나사가 풀린 작품이라고 설명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사사미양@노력하지 않아 를 감상할 때는 어떤 자세로 임하는 것이 적절할까요.
너무 멀리 돌아갈 필요도 없습니다. 쓸데없이 무대장식의 재질이나 재원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의 배우를 감상하며 즐기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합니다. 사사미양@노력하지 않아 는 그런 작품입니다. 가볍게 즐기면서 빠져드는 것. 이러한 과정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작가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을 겁니다.
일본의 옛말에 모노노아와레 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직접 느낌으로써 만물의 마음을 맛보고 그 만물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분별하여 아는 것. 즉 사물의 마음 또는 사물의 비애와 슬픔을 아는 것을 모노노아와레 라고 합니다. 사사미양@노력하지 않아 는 이 모노노아와레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되겠고, 작가 본인도 이를 의도했을 거라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아키라 선생이 사사미양@노력하지 않아 라는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것..
한 가지로 추려내긴 힘들 듯하나 아마 가장 유력한 것은 모노노아와레를 엮은 '이해'가 아닐까 싶습니다. 작중 주인공인 츠쿠요미 사사미와 그 주변인물들만 봐도 쉽게 추측해낼 수 있죠. 오빠인 카미오미, 신적 존재인 야가미 세 자매, 적대적인 모습을 보인 어머니 쥬쥬마저도 사사미양을 위해 이해하며 서로 방식은 다를지언정 열심히 노력합니다. 사사미 또한 이를 이해하고 노력하죠. 이렇게 평온한 자기 방에 틀어박히는 걸 그만두고 용기를 내어 노력할 수밖에 없는 사사미양을 비꼬아 사사미양@노력하지 않아 라는 제목이 되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사사미양@노력하지 않아 는 근친혼이라든지 이기주의라든지 희생이라든지 이런 장식에 눈을 둘 것이 아니라, 츠쿠요미 카미오미나 야가미 세 자매 등이 사사미양을 이해하는 것처럼 츠쿠요미 사사미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고 동화하여 그들이 펼쳐나가는 이야기를 즐기는 것이 포인트인 작품이라고 저는 그렇게 평가합니다.
그러나, 아키라 특유의 슈ㅡ르함 덕분에 대중적으로는 굉장히 마이너한 작품이 되고 말았지요. 즉 취향을 무진장 심하게 타는 작품인지라 누구나가 공감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작품이긴 합니다.
그래도 취향에 맞는 사람한테는 정말로 가치가 높은 재밌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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