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알밤온 가보면 서류배달 꽃배달 어쩌구 하는 게 있을끼다. 말 그대로 갑에게 받아서 을에게 물건을 주면 된다. 주로 업체에서 법무사 같은 데로 서류 보내고 그런 게 많은 편이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긴 한데 그렇다고 뭐 보너스가 나오거나 그런 건 없뜸. 갑에게건 을에게건 받은 돈은 고스란히 내 거다. 업체로서는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10%를 선입금 받는다. 10만원 기준으로 3만원 단위.

보증금 때문에 한 때 악명이 높았던 직종이긴 한데, 상호를 밝히긴 좀 그렇고, 아무튼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보증금 10만원 개념이라기보단 수수료 3만원 개념이다. 뭐 보증금 시스템을 해 본 적은 없으니 둘이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초기 부담금은 좀 적다. 그리고 위험하거나 사기 비슷한 건 아니다.

사실 이 지하철 퀵이 \'보증금은 10만원이나 뜯어가고 하루 일하니 2만원도 안 남는다\'라는 게 사람들이 말하는 불만 사항인데, 뭐 나는 앞서 말했듯 보증금을 낸 적은 없으니까. 위와 같은 클레임이 나오는 게 \'일이 안 들어와서\'인지 \'지가 못해서\'인지는 잘은 모르겠다만, 적어도 나는 일거리가 부족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짓거리는 어지간히 아쉬운 상황, 이를테면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 만큼 절박한 상황이 아닌 사람이 하기에는 좀 일하기가 나쁘다.

나의 경우에는 오늘 5탕을 뛰어서 토탈 3만9천을 지갑에 넣었다. 8시 반에 나가서 집에 오니 8시 반이다. 괜히 버스 타서 길 막혀서 삽질한 거 제외해도 시급이 4천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직업은 차비, 밥값, 전화비, 암튼 현장에서 드는 돈 전부 자기 부담이다. 전철-버스-전철-버스의 환승 서커스를 하지 않고 그냥 전철-전철-전철로 이동하면 하루 차비가 1만원을 우습게 넘긴다. 한 마디로 존나 남는 거 없다.

이 일이 그냥 괜찮은 건, 오나전 자율출퇴근 시스템이라는 거. 그냥 일 나가기 싫거나 뭔 일 있으면 출근통보만 안 하면 된다. 출근 안 한다고 쪼거나 그런 거 없다. 아침 한 건 하고 그냥 퇴근통보 하고 집에 가도 되고, 볼 일 보다가 6시쯤에 출근통보하고 한 건 하고 집에 가도 된다.

일도 그닥 머리가 아픈 건 아니어서 물건 받고 송장 대강 작성하고(사실 필요없다는 곳도 많음) 돈 받고 가서 주면 땡. 어지간히 늦지 않으면 클레임 들어오는 일도 아니고 물건 분실하지만 않으면 된다. 어떤 정신빠진 놈들이 그러는지는 몰라도 나는 분실한 적 없다.

아무튼 이건 노동에 비해 존나 힘든 일이다. 나는 조만간 이사 가느라 진득하게 구할 수 있는 알바도 없고 해서 일 못 구한 날에는 나가서 신나게 뛰고 오는데, 아무튼 평생직장으로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적어도 일 구할 동안 할 짓거리 더럽게 업슨 새퀴들은 노느니 이거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그야말로 잉여들에게 있어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냥 들고 갖다 주면 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