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주행성능, 안전성 등 신차를 구매할 때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전기차는 최우선 순위에서 주행가능거리가 빠질 수 없다. 아직 전기차 보급 과도기인 만큼 충전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으며 충전 시간도 오래 걸려 한번 충전 후 달릴 수 있는 거리가 편의성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국가별로 전기차 주행가능거리 인증 방식이 조금씩 다른데, 인증받은 주행가능거리와 실주행거리의 차이가 큰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내연기관 자동차도 이로 인한 대규모 소송 등 시행착오를 거치며 현재의 공인 연비 인증제도로 자리 잡은 바 있다. 한편 미국 전기차 전문 매체 ‘인사이드 EV(Insdie EVs)’는 미국에서 판매 중인 전기차 35종의 실주행거리를 측정하고 공인 주행가능거리와 비교한 결과를 공개해 관심을 모은다.
글 이정현 기자
1등은 포르쉐 타이칸
꼴찌는 현대 아이오닉 5
인사이드 EV는 각 차량의 배터리 잔량 100%까지 충전한 후 고속도로에서 시속 70마일(약 113km/h)로 방전될 때까지 정속주행하는 방식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는 미국 EPA(환경보호청)의 주행가능거리 측정 방식과 비슷한 조건이었다. 흥미롭게도 전기차 대부분 모델에서 5% 내외의 차이가 발생했다.
2020년형 포르쉐 타이칸 4S는 실주행거리 447.4km를 기록해 EPA 기준 주행가능거리 326.7km보다 36.9% 우세한 결과를 보여 1등에 올랐다. 반면 꼴찌는 놀랍게도 국산차가 차지했다. 2022년형 현대 아이오닉 5 AWD 모델은 실주행거리가 313.8km에 그쳐 EPA 기준 412km에 24%나 못 미치는 결과를 기록했다.
제조사별 차이도 드러났다
포르쉐는 최대 36% 높아
해당 테스트에 따라 제조사별 전기차 주행가능거리의 차이도 함께 드러났다. 포르쉐의 경우 모델에 따라 공인 주행가능거리 대비 17~36% 높은 실주행거리를 기록했다.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 1위인 테슬라는 승용 모델 4종 모두 실주행거리가 공인 주행가능거리보다 10% 낮은 모습을 보였다. 현대차그룹 전기차는 실주행거리가 0.6% 높은 2020년형 현대 아이오닉 EV를 제외한 나머지 4개 모델 모두 공인주행가능거리에 못 미쳤다.
전기차 대부분에서 실주행거리 오차가 크게 나타난 이유는 공인 주행가능거리 측정 방식에 있다. 미국 EPA는 물론이며 유럽의 WLTP, 국내 환경부까지 모두 실제 도로가 아닌 실험실에서 측정을 진행한다. 전기차는 시속 100km 이상 고속주행, 급가속 빈도와 회생제동 강도 및 사용 빈도 등에 따른 변수가 많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나름의 보정식을 반영하지만 실주행거리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해당 매체에서 진행한 테스트는 약 113km/h의 고속 주행만 진행된 만큼 절대적 지표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
국가별 측정 방식은?
미국은 70%만 인정
각 국가의 주행가능거리 측정 기준을 살펴보았다. 유럽은 대표적으로 WLTP(Worldwide Harmonized Light Vehicle Test Procedure)를 사용한다. 총 23km 거리를 평균속도 47km/h, 최고속도 130km/h로 주행하며 고속도로 주행보다 도심 주행에 비중을 둔 구성이다.
미국의 EPA도 고속도로와 도심 주행을 모두 진행하며 배터리 잔량이 완전히 바닥날 때까지 주행하는데 WLTP보다 주행가능거리가 약 10% 정도 낮게 나온다. 이는 외기 온도 등 주행 환경에 관한 변수를 직접 반영하지 않는 만큼 주행한 거리의 70%만 인정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여름에 에어컨을 켜거나 겨울에 히터를 켜면 주행가능거리가 최대 30%가량 감소한다.
환경부는 저온 별도 측정
전 세계에서 가장 가혹해
우리나라의 환경부는 미국 EPA 기준을 참고하되 더욱 가혹한 기준으로 주행가능거리를 측정한다. EPA와 동일한 방법으로 주행 테스를 진행한 후 측정값의 70%에 환경부 자체 보정식 ‘5-사이클’을 대입한다. 여기에는 국내 도로 사정을 고려한 시내 및 고속도로 주행 비율, 급가속 빈도, 에어컨 및 히터 등 공조 장치 가동 상황과 외부 기온 등이 반영된다.
독특한 점은 고온과 저온 주행가능거리를 별도로 산출한다는 것이다. 저온의 경우 히터를 틀고 측정하는데, 이때 주행가능거리가 고온의 70%에 못 미치면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된다. 따라서 전 세계 주행가능거리 인증 체계 가운데 가장 까다롭다는 평가를 받으며 해외 제조사들은 실제 주행거리보다 유독 짧게 나온다고 불만을 표현하기도 한다.
해외 제조사 불평 이어져
규정 개선이 시급하다
해외 완성차 업계의 불만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저온 주행가능거리 측정 시 히터 온도에 별도 기준을 두지 않고 해당 차량에서 가능한 최고 온도로 가동하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 전기차의 경우 히터를 최고 27도까지 틀 수 있지만 테슬라는 27.5도, 쉐보레 볼트 EUV 및 EV는 31도, 메르세데스-EQ, 폭스바겐, BMW 등 독일 전기차들은 32도까지 올릴 수 있다.
실내 온도 1도 차이만으로도 전력 소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국내 수입차 업계 곳곳에서 측정 기준을 평등하게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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