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번기를 승리로 마무리한 후 이세돌은 2015년이 자기 바둑인생 후반전의 첫 해가 될 것이라 말했지. 라이벌 구리가 춘란배 우승 이후 칭화대에 입학해 만학도의 길을 걷고 있는 걸 생각해보면, 후반전의 상대는 커제가 될 것 같아. 물론 승리를 장담할 순 없겠지. 이세돌은 커제하고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이'하고도 싸워야 하니깐. 어쩌면 (제발 그렇게 되지 말았으면 싶지만) 몇 번의 뼈아픈 패배를 더 겪은 후, '후배들을 못 당하게 될 나이가 되면, 미련 없이 관두고 세계바둑보급에 나서겠다'는 입버릇처럼 승부의 세계를 아예 떠날 수도 있겠지.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쎈돌이 쉽게 포기하진 않을 것이란 점이야. 다들 지난 명인전 4강 3번기를 기억하려나? 이동훈이 이세돌을 2대0으로 꺾어버려 화제가 되었던. 재림한 돌부처마냥 이동훈은 무표정한 얼굴이었고, 이세돌은 새까만 후배 앞에서 엄청 괴로워했지. (바둑TV가 이세돌의 다양한 표정변화를 정말 잘 잡아놨으니, 못 보신 분들은 유튜브에서 함 찾아보시길.)

이동훈과 이세돌이 다시 만난 건 지난 4월 KB리그 개막전. 이세돌을 언뜻 보기에도 전날 한숨도 못 잔 초췌한 모습이었어. (물론 이세돌 성격상 이동훈의 기보를 연구하거나, 사활문제를 풀면서 밤을 지새진 않았을거야. "잠이 안 오네" → "드라마나 볼까?" → 2배속 재생 → 3배속 재생 → 4배속 재생 → 어느덧 해는 중천에 뜨고 → "아, 피곤하네. 시합 전까지 한숨 자야겠다"였을 듯.) 대국내용도 중반전까진 이동훈에게 끌려가는 모양새. 해설자 왈, "이동훈 선수가 이세돌 선수를 상대하는 법을 알고 있나요?" 그렇지만 결국에는 이리저리 마법을 부린 이세돌의 승리! 10월에 벌어진 KB리그 두 번째 맞대결에서도 이동훈을 가볍게 꺾었고.

앞으로 이동훈이 얼마나 발전할지, 이세돌이 계속 우위를 점할진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지난 4월의 승부는 이세돌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물러날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지. 커제와 이세돌의 대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도 알아. 쉽진 않다는 사실을. 앞으로 몇 번 더 패배하면, "이세돌을 이제 그만 놔주자. 이젠 이동훈이나 신진서가 해줄 때"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지. 그러나 분명한 건, 누가 뭐라든 이세돌은 무지하게 괴로워할 것이고, 이기기 위해 몸부림칠 것이고, 승부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려 밤이 새도록 일일연속극을 볼 것이고, 혼신을 다해 대국에 임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 땅의 이름 없는 애기가들은 여전히 그와 그의 바둑을 아끼고 사랑할 것이라는 사실.

이세돌, 힘내라!!!!!!!







덧. 아놔, 간만에 아재감성 폭발하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