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일인자 논쟁이 뜨겁습니다.
제가 커제랑 대국해봐서 아는데 정말 셉니다.
그 때는 커제가 포스를 내뿜기 전이었는데도 저는 완패했습니다.
개인적 예상이지만 커제가 천하통일을 할 듯 합니다.

과거 국내 일인자들의 위상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세계대회가 활성화된 이후 이창호 이세돌 두 사범님의 기록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아마 많은 팬분들께서 외국기사를 무찌르는 두 사범님들의 모습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시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국내 일인자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이같은 일인자의 위상과 책임, 의무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저는 바둑이 좋아서 프로가 되었고
그 자체를 사랑해서 지하철, 화장실에서도 사활을 풉니다.
제가 특출난 재능을 타고났다고는 생각되지 않구요
그저 좋아하는 마음에 열심히 하다보니 웬만큼의 성적도 나온 듯 합니다.

저는 랭킹 일위가 아니어도 충분히 바둑을 사랑할 수 있고
굳이 국내 일인자가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외국기사와의 번기승부에 좋지 못한 것은
제 실력이 약해서 그런 것일 뿐입니다.

저에게는 포부와 야망, 성취욕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저 바둑리그 1지명으로서의 안정된 수입과
가끔 운이 좋다면 국내 타이틀 두어개 정도 갖고
세계대회에 출전해 많은 기사들과 기량을 겨루는 것...
그런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가끔 팬분들의 기대가 부담스러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랭킹 일위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국내 일인자로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은 반성합니다만
솔직히 제 승부 결과는 팬분들과 무관한 것 아닙니까?
응씨배 준우승 당시 저는 단지 졌나보다..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팬여러분들이 더욱 분개하시길래 약간 의외였습니다.
이제 당연히 이기는 상대는 없습니다.
누구에게도 질 수 있는 것이 바둑인데다 최근 흐름은 더욱 치열합니다.
조금만 아량을 베풀어 저를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