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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가 투표하면 안되는 이유앱에서 작성

ㅇㅇ(106.101) 2022.08.21 12: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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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반국가주의를 비판했다. “나는 기계의 고장을 단순한 오류라 바라본다. 우리가 그 주인으로부터 기계를 탈취한다면, 기계는 우리에게 복무할 것이다. 국가라는 기계에는 결함이 있지만, 적들은 그 기계를 아주 잘 사용한다. 그리고 우리가 기계를 조금만 고친다면, 국가라는 기계는 우리에게도 잘 복무할 것이다.” 버나드 쇼는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 모두에 반대하던 극단적 개량주의 집단인 페이비언 사회주의자였다. 페이비언 협회의 다른 지도자였던 베아트리스 웹과 시드니 웹처럼, 버나드 쇼는 계몽된 관료의 지도를 통한 점진적인 국유화를 통해 완전한 국가사회주의를 쟁취할 것을 추구했다. 페이비언 협회는 영국 노동당의 개량적 사회주의 노선(현재 이 노선은 폐기되었고, 자본주의적 자유주의로 대체되었다.)의 기초를 닦았다. 이들은 러시아 혁명이 대중의 무질서한 행동일 때에는 반대했지만, 혁명이 스탈린주의로 타락한 이래 그들은 러시아 국가의 열정적 지지자가 되었다. 이들은 스탈린이 국가라는 기계를 “조금만 고쳐서” 자애로운 관료들의 손에 두었을 때,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를 보여주었다고 보았다.

이에 나는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바쿠닌 이래 혁명적 아나키스트들은 자본주의의 분쇄 과정에서 국가를 전복하고, 분쇄하고, 근절할 것을 부르짖었다. 1871년의 파리 코뮌 이후, 마르크스도 동일한 결론에 이르러, “노동자 계급은 단순히 기성의 국가 기구를 접수하여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것을 행사할 수는 없다”고 썼다.(『프랑스 내전』, 마르크스&엥겔스) 이 문장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기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문장을 『공산당 선언』의 서문에서 이 문장을 반복한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의 유일한 관점 변화가 드러난 부분이다. 마르크스는 피억압대중의 혁명적 목표는 “더 이상 예전처럼 관료ㆍ군사기구를 한편의 수중에서 다른 편의 수중으로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파괴하는 것”(『쿠겔만에게 마르크스가 보낸 편지』, 레닌 재인용) 이는 노동계급의 다수가 사회주의의 필요를 절감할 때, 무장반란이 일어나 국가를 파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자본주의 체계의 핵심 보조수단이다. 자본가 계급의 지배는 그 부도덕 때문에라도, 파괴되고 대체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명령을 내리고 누군가는 복종하는 체제. 누군가는 지배하고 누군가는 지배당하는 체제. 누군가는 잉여생산물로 살고 누군가는 그 잉여생산물을 고된 노동으로 생산하는 체제. 이 체제는 잘못되었다. 노동자 임금의 고저는 중요하지 않다. 자본주의의 근본적 오류는 빈곤이 아니라 소수의 다수에 대한 지배다.(물론 자본주의가 빈곤을 생산하는 것은 맞지만 말이다.) 자본주의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나 백인종의 유색인종에 대한 지배 등 다른 형태의 지배들을 지지하기도 한다.

나아가, 자본주의 경제는 안정적이지 않다. 이것은 때로는 거품을 창조하다가 어느 때에는 불경기로 향하는 등 경기를 따라 움직인다. 1970년대 이후, 국제경제는 전반적으로 침체했다. 대규모 군사지출이나 환경의 착취, 공적/사적 부채의 증대 등 인공적인 수단을 통해 겨우 또 다른 세계 대공황을 회피하고 있는 와중이다. 하지만 대공황의 위험은 언제나 상존한다. 자본주의는 빈곤한 국가들을 공고하고 균형잡힌 방식으로 산업화하는 데에 있어서도 무능함을 드러내었다.

자본주의 국가들은 세계 전역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냉전이 끝나면서 핵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세계 전역에 퍼져나갔다. 강대국들은 여전히 핵무기 보유를 유지하고 있다. 전세계적이고 문명파괴적인 핵전쟁의 위협은 점증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산업주의는 자연의 균형을 망가트리고, 멸종을 불러오며, 자원을 고갈시키고, 오염을 증가시키며, 지구 온난화를 촉발하고 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자본주의는 위험한 신기술들을 사용하면 새로운 풍요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경제 위기가 생태 위기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위기는 인류 문명 뿐 아니라 그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양적인 축적과 성장, 더 많은 수익을 향한 비합리적인 동력을 가지고 있다. 그 축적과 성장, 수익이 세계와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결과로 다가올지는 신경쓰지 않고 말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국가를 포함한 자본주의 체제는 비도덕적일 뿐 아니라 인류의 위협이기도 하다. 인류가 살아남아 문화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파괴해야 한다.(여기서 이야기하는 도덕적 주장들은 아나키스트적 주장들이다. 마르크스는 도덕적 동기들을 “유토피아적”이라 비판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일반적으로 필요에 의한 동기를 이야기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어려움과 전쟁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지, 환경에 대하여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자본주의에서 국가없는 사회주의로 전환하는 것이 평화적이고 합법적이며 점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좋겠다. 이것이 가능한 것이었다면, 모두는 이 방식을 택할 것이다. 일단 나는 그럴 생각이 있다. 토마스 제퍼슨이 <독립선언서>에서 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이야기한 것처럼 “진실로 인간의 심려는 오랜 역사를 가진 정부를 천박하고도 일시적인 원인으로 변경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인간에게는 악폐를 참을 수 있는 데까지는 참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에 걸친 학대와 착취가 변함없이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고 인민을 절대 전제 정치 밑에 예속시키려는 계획을 분명히 했을 때에는, 이와 같은 정부를 타도하고 미래의 안전을 위해서 새로운 보호자를 마련하는 것은 그들의 권리이며 또한 의무인 것이다.” 폭력혁명은 불확실한 것이고, 그에 수반하는 비용은 “우리의 생명과 재산과 신성한 명예를 걸”어야 할 정도로 거대하다. 하지만 자본가 계급이 지금의 권력을 쟁취한 것 역시 여러 혁명들을 통해서다. 이들은 영국에서 명예혁명을, 미국 독립혁명을, 프랑스 혁명을, 시몬 볼리바르 등에 의한 라틴아메리카 혁명을, 미국 남북전쟁을, 그리고도 더 많은 혁명들을 치루어냈다. 이제 부르주아지는 뻔뻔하게도 혁명이 부도덕하다고 비난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변혁이다. 모든 계급과 국가를 끝내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봉기다.

페이비언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서서히 투표에서 과반을 장악해갈 것이고, 이로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부 안에서의 권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당은 이렇게 확보한 국가에 대한 통제력을 활용하여 경제의 사회주의 강령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는 “사회주의를 향한 의회적 방법”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이러한 개량주의적 접근이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성공하지 못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선, 투표에서 승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선거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고, 이로부터 이득을 얻는 것은 자본가들이다. 법적인 장애물들도 산적하다. 승자독식이라는 선거의 구조가 그러하다. 미국이야말로 최악의 법적 장애물들을 설계해 둔 곳이다. 선거구는 아주 섬세하게 개리맨더링 되어 현직 의원들은 항상 재선된다. 상원에는 각 주가 그 인구와 무관하게 2명씩의 의원을 보낸다. 이렇게 선거는 왜곡되고, 다수는 결코 변화를 만들 기회를 얻지 못한다. 미국의 대선을 보자. 각 주에서 다수를 차지하지 못하는 의견은 표로 세어지지도 않는다. 상원의원들의 임기는 6년이다. 임기가 종신인 판사들은 또 어떠한가. 더 크지만 선출되지 않는 정부인 대규모 관료제에 대해서는 말하지도 말자.

하지만 소위 사회주의(사민주의) 정당들은 유럽 등지에서 여러 차례 당선된 적이 있으니, 그 사례를 보자. 이들은 결코 모든 권력을 가지지 못한다. 의회와 법원과 관료집단과 군대가 이들을 가로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혹 정부에 대한 통제를 온전히 가진다 해도, 이들은 경제를 통제하지 못한다. 이들은 자본주의 경제를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체제 아래에서 사회주의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만약 정부의 정책이 너무 급진적이라면, 자본가들은 정부에 압력을 넣을 방법을 수도 없이 가지고 있다. 정부가 자본가들의 “신뢰를 잃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자본가들은 그 즉시 “파업”에 들어가 투자를 멈추고 재산을 해외로 보내고 공장을 닫을 것이다. 사회당 행정부가 이를 막기 위해 기업들을 확보할 수는 있지만, 이렇게 되면 그들의 개량주의는 사라지게 된다. 그렇기에 이러한 일이 발생할 경우, 정부는 자본가들에게 항복하고 최소한의 표어로만 존재하던 사회주의를 포기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다음 선거에서 내어쫓길 것이다. 자본가들의 “파업”은 중간계급과 실업자들을 양산하고, 이들의 표는 여당을 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은 반복되고, 반복되고, 반복되어 왔다.

만약 자본가들께서 보시기에 사민주의자들이 너무 급진적이라거나, 자본가님들이 도저히 최소한의 개량조차 견디고 싶지 않으시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렇다면 자본가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그 이익을 포기한다. 그들은 미친놈들이 미친 듯이 타락한 중간계급과 고소득 노동자들의 대중운동을 조직하도록 돕는다. 이렇게 파시스트들이 세력화된다. 이들은 사회주의자들과 조합주의자들에게 테러를 행하고, 거리에서 사회주의자들을 내쫓고, 그 지도자들을 살해할 것이다. 인종적 혐오가 거리를 휩쓸 것이다. 군대는 쿠데타를 일으키라 선동당할 것이다. 선거는 취소될 것이다. 독재정부가 세워질 것이다. 파시스트들과, 혹은 파시스트들의 군대가 정부를 장악한 이후, 좌파들은 공격당하고 살해당할 것이다. 좌파진영이라는 이유로 활동가들은 물론 평범한 노동자들도 피 속에 놓일 것이다. 최악의 폭압이 수년간 몰아친 후, 제한적 민주주의가 재기동될 수도 있을 것이다. 좌파들이 온전히 길들여졌으니 말이다. 이것은 예측 따위가 아니다. 1920년대의 이탈리아, 1930년대의 독일과 스페인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1978년 칠레에서 아옌데 정부에 대해 벌어진 일이고, 중앙 아메리카에서도, 세계 방방곡곡에서 반복되고, 반복되고, 반복된 일이다. 이러한 파시스트 독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와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할 준비가 된 노동자들이, 세계를 탈취하여 노동계급의 자주적 경영을 쟁취하는 것에 있을 뿐이다.

내가 관심을 두었던 첫 번째 선거는 1964년 민주당의 린든 B. 존슨과 공화당의 배리 M. 골드워터 사이의 대통령 선거였다. 이 선거야 말로 극우파의 공화당 장악의 시작을 알렸다. 나는 당시에 아직 투표연령이 아니었지만, 사회주의자들이 존슨을 지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에는 관심을 기울였다. 당시 나는 골드워터는 베트남전쟁의 확전 등의 끔찍한 일을 할 것이기에 존슨을 지지해야 한다는, 더 온건하고 사민주의적인 관점이 옳다고 여겼다. 그리고 마이클 해링턴은 우익과 인종주의자들이 민주당을 떠나 공화당으로 모여들 것이고, 이로써 민주당은 노동조합과 흑인들과 급진주의자들의 정당으로 재창조되는 “정치적 재편”이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존슨은 선거에서 완승했다. 그리고 그는 베트남전쟁을 크게 확전하고, 더 많은 군인들을 파병하고, 북베트남 폭격을 시작했다. 나는 환상에서 깨어났고, 깨달았다. “정치적 재편”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극우파는 분명 공화당을 장악했지만, 민주당은 노동자와 피압제대중의 당이 되기는커녕, 마찬가지로 우선회하여 공화당 바로 좌측에 위치를 잡았다. 나는 존슨의 전쟁선동에 지쳤다. 그 이후 나는 어떠한 주요정당 후보에게도 투표한 적이 없고, 사실상 누구에게도 투표한 적이 없다. 두 번 속을 수는 없었다.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 모두는 혁명적 분파와 개량주의적 분파를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부르주아 국가를 파괴하려 하고, 다른 누군가는 현존 국가 속에서, 혹은 그 근방에서 변화를 추구한다. 이 둘 사이의 차이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조금은 더 개선점을 추구하는 개량주의적 투쟁을 하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다. 혁명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체제 안에서의 개량을 위한 투쟁 역시 지지한다. 이 개량에는 임금의 인상, 단결권의 확보, 차별의 최소화, 시민적 자유의 확보 등이 있을 것이다. 개량은 좋다. 개량을 위한 투쟁은, 그것이 승리하건 아니건 간에, 노동자들에게 혁명의 필요성을 알게 해줄 수 있다. 하지만 혁명주의자들의 전략적 목표는 부르주아 국가의 철거에 있다.

아나키즘 운동 안에도 언제나 개량주의 분파는 존재해왔다.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자칭한 첫 번째 인물인 피에르 조세프 프루동부터 시작하여 1960년대의 가장 저명한 아나키스트 저술가인 폴 굿맨까지 말이다. 이러한 아나키즘은 작은 사회적 변화들의 축적이, 서로와 관계를 맺는 새로운 방식들이, 새로운 사상이, 소규모 기구가 점진적으로 사회를 변혁할 것이라 믿는다. 누군가는 아나키즘이 권위주의 기구에 대한 영속적 저항이자 끝없는 투쟁이라고 바라본다. 이들은 사회는 결코 완전할 수 없고, 인류는 언제나 갈등과 실패와 불완전을 가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옳다. 인간 발전의 한계를 미리 아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증은 새롭고, 전반적으로 더 나은 사회를 구성할 가능성과 부딪히지 않는다. 수세대에 걸쳐 우리는 다양한 사회 체계를 보아 왔다. 계급도 국가도 없던 수렵채집 사회부터 노예제 사회까지, 봉건제부터 자본주의까지 말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회 체계를 추구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 변화가 마지막 변화여야 하는가? 우리가 철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불완전함이 아니다. 우리는 민족국가들이 부르짖는 핵전쟁의 위협이라도 철폐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떠한 아나키스트들은 점진적 변화의 결과로 새로운 사회가 올 것이고, 이 사회는 아나키즘적 코뮌주의 사회와 어느 정도 유사할 것이라 말한다. 이들 중에는 스스로가 혁명주의자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어쨋건 이들은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사회로의 변혁을 꿈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저 고전적 개량주의자일 뿐이다. 이들은 하나의 사회 체계에서 다른 체계로 이행하는 데에 있어 질적인 단절이 필요하지 않다고 바라본다. 이들은 그저 자본가 계급을 우회하려 할 뿐이다. 이들은 국가가 자본주의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국가에 맞설 필요를 부정한다.

자본주의 국가에 적응해버린 아나키즘의 최악의 예시는 1차대전 발발과 함께 드러났다. 그들의 민족국가 정부를 지지했던 마르크스주의 지도자들처럼, 크로포트킨을 포함한 일부 유명한 아나키스트들은 제국주의 전쟁의 협상국을 지지했다.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인 미국의 벤자민 터커 역시 협상국을 지지했다.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들이 건설했던 프랑스의 노동조합 연맹(CGT, 역자 주) 역시 그러했다. 다행스럽게도,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달리 다수의 아나키스트들은 전쟁에 반대했다. 에리코 말라테스타는 크로포트킨 등이 “아나르코-정부주의자”라며 준엄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들은 왜 아나키스트들이 제국주의 국가에 대하여 가장 날카로운 비판을 내어놓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개량주의적 아나키즘 분파의 주요한 경향성은 생산자/소비자 조합과 소규모 코뮌과 같은 대안적 기구를 건설하려 한다. 이러한 기구들을 건설할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개량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은 이를 전략적으로 바라본다. 이들은 조합과 코뮌을 건설하고, 확장하고, 연방을 건설하여 그것이 자본주의와 국가를 대체하도록 하려 한다. 이러한 전략은 프루동이 가장 먼저 제시하였다. 이러한 전략은 선한 국가를 상정하지는 않지만(물론 이들 중 일부는 그것을 상정한다.), 최소한 국가가 중립적이어서 대안기구가 국가를 탈취하는 것을 허용할 것이라고 상정한다. 이들은 국가와 자본주의에 맞서 혁명을 일으키기보다는, 그 둘을 평화롭게 우회하려 한다. 국가 체제를 이용하고자 하는 자들은 항상 그렇다. 프루동 스스로부터가, 인생의 말년에 입법부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했다. 프루동은 지속적으로 권력자, 정치인, 공작들을 만나 그의 열망을 도울 것을 호소하려 했다.

협동조합과 대안기구들은 좋다. 이것들은 그 구성원들과 공동체에 많은 선을 행할 수 있다. 소비자 협동조합이나 노동조합은 어떠한 기업이건 잘 경영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민주적이고 협동적인 경제의 가능성을 논할 때 훌륭한 근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혁명가들은 전략으로써의 대안기구 이론을 거부한다.

역사적 사례들을 보았을 때 협동조합의 주된 문제는 협동조합이 실패요인이 그 성공에 있다는 점이다. 협동조합이 성과를 거두면 그들은 자본주의의 부차적 형태로 편입된다. 생활협동조합은 건강한 식품을 팔겠지만, 비조합원들에 대한 착취로 그러할 수 있게 된다. 노동자 협동조합이 성과를 거두면, 그 조합원이 되는 데에는 너무 큰 비용이 들게 된다. 협동조합의 오래된 구성원들은 더 큰 이윤을 위해 기업질서에 복무하기를 원할 수도 있다. 다른 형태의 조합들은 그저 자본주의에 섞여든다. 나는 주거 협동조합에서 산다. 이 협동조합은 몇몇 은퇴한 기업가들과 학교 이사장들이 경영한다. 전문 경영인을 고용할 필요는 전혀 없다. 하지만 다른 모든 주거 협동조합과 공동주택들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에 위협을 주지 못한다. 가장 성공적인 아나키즘적 코뮌주의 공동체는 이스라엘의 키부츠 공동농장이다. 키부츠는 자본주의를 위협하기는커녕, 팔레스타인인의 소유를 훔쳐가는 시온주의적 식민주의의 핵심 부품이 되어 왔다.

만약 협동조합과 집단농장과 대안기구들이 자본주의에 위협적인 것이 되면 어떻게 되는가? 자본가들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시장은 국가보다도 더한 자본가의 놀이터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응이 필요하다. 너무 “대안적인” 기구들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도 못하고, 홍보가 허락되지도 않고, 사거나 팔 생산물을 구하지도 못할 것이다. 자본가들은 위협이 충분해지는 순간 협동조합의 사악함에 대하여 떠들어댈 것이다. 대충 협동조합이 자유시장경제를 위협한다고 말하면 되니까 말이다. 국가는 협동조합을 제약하거나, 심지어 불법화하는 법령을 통과시킬 수 있다. 이를테면, 수년 전 대규모 은행들은 신용협동조합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신용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소유하고 있는 비이윤적 은행기구로서 노동조합이나 다른 대중조직들의 후원을 받아왔다. 신용협동조합은 꽤나 잘 굴러갔다. 대자본가들의 은행은 신용협동조합이 세금과 규제로부터 너무 자유롭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신용협동조합을 더 많이 규제하는 법을 원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이는 단지 작은 예시일 뿐이다.

협동조합과 다른 대안 기구들은 여러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자본주의 전복의 전략으로는 작동할 수 없다. 이들은 결코 국가에 대한 대중적이고 직접적인 투쟁을 대체하지 못한다.

아나키즘적 개량주의는 절대적 평화주의와 겹치는 바가 있다. 레오 톨스토이나 폴 굿먼 등의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평화주의를 옹호한 바 있다. 평화주의를 거부하는 것은 폭력을 “지향”한다는 것이 아니다. 99.99%의 인류는 때로는, 불행하게도, 폭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평화주의적 아나키스트들도 그러하다. 오늘날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들은 정치인, 부자, 경찰, 대중을 향한 폭력, 즉 “테러리즘”을 거부한다. 1차 세계대전 전, 19세기 무렵에는 소수의 아나키스트들이 테러리즘의 방법론을 사용하여 몇몇 왕족과 귀족을 죽이기도 했다. 우리 시대에는, 스스로 아나키스트라 정체하고 있는 유나바머가 편지폭탄을 통해 사람들을 날려버리곤 했다.(주로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부자들은 편지를 열어줄 사람을 고용한다.) 이러한 행동은 평범한 사람들을 운동 바깥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이들은 그 반동으로 국가의 압제를 지지하기 시작했다.(9/11 테러 이후 미국에 벌어졌던 일을 생각해보라.) 1891년, 크로포트킨은 아나키스트들의 테러리즘에 대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소회한다. “...혁명을 이루는 것은 이러한 영웅적 행동이 아니다. 혁명은 그 무엇보다도 대중의 운동이다. (...) 수세기간의 역사를 가진 기구들은 수 파운드의 폭탄으로 파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행동의 시간은 지나갔고, 아나키즘적이고 코뮌주의적인 사상이 대중에 침투할 시간이 다가왔다.”( <라 리볼테>1891년 3월호)

“테러리즘”에 대한 거부는 평화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혁명의 시기라 해도 비폭력적 수단이 유효할 때가 있다. 파업투쟁 중 노동을 중단하거나, 다른 편의 군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선전”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비폭력의 한계는 분명하다. 비폭력은 갈등이 제한적일 때에는 작동할 수 있다. 간디가 영국을 인도 바깥으로 몰아낸 것은, 영국이 독립 인도에 영국 자본을 계속 투자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봉합이 불가능한 갈등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결국 끝까지 투쟁하여야 한다. 자본가들이 노동계급에 대한 지배를 지속하거나, 노동계급이 이를 뒤집거나, 중간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비폭력은 나치와 같이 무자비한 적들에게는 유효하지 않다. 비폭력 시위대를 죽이고 죽이고 죽일 준비가 되어있는 적들은, 비폭력운동을 언제라도 때려부술 수 있다. 1950년대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고, 이 투쟁은 결국 무장봉기로 이어졌다. 코소보인들은 세르비아에 대한 비폭력투쟁을 수년간 시작했고, 마찬가지의 결과만을 낳았다. 마틴 루터 킹의 운동이 미국 지배계급의 개입과 보호 없이 남부의 백인 권력에 마주했다면, 유혈사태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폭력운동은 보통 전국단위, 혹은 세계단위의 뉴스를 이용하여 자기 이야기를 퍼트린다. 그리고 충분히 억압적인 체제라면, 비폭력투쟁에 대한 뉴스를 막는 것은 어렵지 않다.

비폭력 역시 폭력이라는 배경에 기반하고 있다. 영국이 간디의 비폭력운동을 탄압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이 2차 세계대전을 치루며 약해졌기 때문이다. 일본군이 영국군을 압박하였기 때문이다. 영국 제국주의자들은 간디가 실패한다면 폭력적인 민족해방투쟁을 마주해야 함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것 보다는 인도 국민회의와 거래하는 것이 나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틴 루터 킹의 민권 운동 역시 말콤X로 상징되는 대규모 폭력의 위협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북부 게토들의 반란(혹은, 소위 폭동)에서 현실로 드러났고, 차별금지법의 제정으로 이어졌다. 민권법이 제정되었다 하더라도, 그 법은 정부가, 법원과 경찰과 같은 국가폭력을 이용하여 유지하는 것이다. 비폭력은 폭력이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혁명주의자였다. 하지만 개량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단초는 마르크스의 이론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마르크스는 독일의 신문 편집장으로서, 프러시아 국가와 무해한 자유주의자들에 맞서 가장 철저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 십자군이었다. 마르크스가 혁명적 사회주의자(마르크스주의자)가 되기 전에도 그러했고, 그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영국에서 의회 민주주의의 확장을 꾀하던 노동운동이었던 차티스트 운동의 지도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전략은 급진적으로 민주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를 쟁취하는 것이었다.(당시 유럽의 준봉건주의적이고 전제주의-관료주의적이던 체제를 생각하면, 이 쟁취를 위해서도 혁명들이 필요했을 것이기는 하다.) 이러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에서, 노동자들은 그들의 민주적 권리를 이용하여 대표를 선출하고, 그 대표들이 (공산당선언 2장 마지막 부분에 나온 것과 같은)사회주의 강령을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공산당선언』은 “노동자 혁명의 첫걸음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 계급으로 끌어올리는 것과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이라 적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국가, 즉 지배 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고 있는 바, 사멸할 국가는, 이 국가인 것이다.

1871년의 파리 코뮌에서 마르크스는 파리의 노동자들이 정치적 구조를 재조직하기 위해 무엇을 하였는지를 보았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배웠다.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이 72일간 무엇을 하였는가를 통하여 국가와 혁명에 관한 더 깊은 이해를 도출해내었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더 깊이 다루도록 하겠다.) 그는 사회주의를 투표로 얻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회주의를 향한 의회적 방법”따위는 없다. 가장 민주적인 자본주의 국가라 해도 결국 타도되어 코뮌적 구조로 대체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 새로운 깨달음을 바탕으로 그의 정치를 재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마르크스는 현존 국가 안에서의 작업을 더욱 강조했다. 그는 국제노동자협의회(1인터내셔널)이 모든 국가에서 노동자정당을 건설하고 선거에 출마할 것을 제안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파리 코뮌에서 노동자들이 정치권력을 확보할 필요성을 실증하였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은 자신만의 정당을 만들어 모든 부르주아 정당으로부터 결별해야만 했다. 노동계급은 이 당으로 조직되어 선거에 출마함으로서 권력을 노릴 수 있을 것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71년 8월의 인터내셔널 런던대회에서 “정치적 행동과 노동계급”이라는 결의안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9년 뒤, 마르크스는 프랑스 노동자 정당의 창당에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냈다. “집단적 수용은 오직 자주적 정당으로 조직된 생산자 계급(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행동으로만 가능하다. (...) 그렇기에 보편선거권은 지금까지의 사기 도구에서 해방의 도구로 변화할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주의적 노동자들은 조직과 투쟁의 수단으로 선거에 참여할 것을 결정했다. (...)” 이 강령은 아나키스트들의 반대를 누르고 채택되었다. 아나키스트들은 단지 노동자들의 사회주의 정당이 선거를 조직과 투쟁의 수단으로 사용할 것을 결정하였다고 해서 선거가 부르주아적 사기의 수단을 넘어선 해방의 도구가 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선거주의 전략의 성격과 조직적 문제에 대한 갈등을 제쳐두더라도, 선거주의 전략은 마르크스와 아나키스트들 간의 주된 정치적 갈등이 되었다. 마르크스는 아나키스트들이 선거를 통한 노동자들의 집권과 문제제기의 중요성을 무시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나키스트들을 “정치적 무관심주의자”들이라고 비난했다.

아나키스트들 역시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본주의 국가에 항복했고, 선거운동과 그 당선이 운동을 부패하게 만드는 효과를 무시한다고 비난했다. 선출의원들은 더 나은 생활조건과 부자 앞에서 손바닥을 비비는 것에 익숙해진다. 단지 선거에 출마하기만 한다고 해도, 정당들은 그 과정에서 국가를 운영하고 자본주의 경제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정책들을 제시해야 한다. 결국 이들은 부르주아 정치인들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평화의 시기에,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혁명적이지 않다. 그들의 표는 곧 그들의 개량주의적 의식의 총체와 같다. 엥겔스의 말년 동안 활동했던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 윌리엄 모리스 등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러한 반선거주의에 동의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유럽 각지에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정적이라 할 수 있는 개량주의자들과 효과적으로 동맹했다. 마르크스와 그 지지자들은 혁명을 위한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고자 하였고, 그 동맹세력은 혁명을 예방하기 위하여 그 정당을 건설하고자 한 것이다.

나는 대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선거 전략이 무엇이었는가를 모르겠다. 마르크스는 가끔씩, 영국이나 미국 등의 일부 국가에서는 노동자 정당이 평화롭게 권력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과연 그렇게 되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것이 “노예소유주들의 반란”이 이에 뒤따를 것이라 예견함으로서 이 주장들을 보조했다. 그는 링컨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를 이야기한다. 노예소유주들은 투표를 수인하지 않고 봉기했다. 그들은 우수한 장교들을 가지고 있었고, 정부를 전복하고 미국을 분열시키고자 했다. 피튀기고 쓰라린 내전이 뒤이었다. 마르크스는 산업화된 세계 대부분에서(당시의 기준으로 이는 유럽을 의미한다.) 푝력혁명이 아마도 필연적일 것이라 바라본다. 자본가들은 평화롭고 민주적인 변화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잘 모르겠는 것은, 대체 마르크스가 어떻게 선거에서의 승리가 혁명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엥겔스는 노동자들은 유산계급으로부터 독립된 당으로 조직되는 만큼 그 정치적 준비 정도를 드러낼 수 있다고 적었다. “보통선거권은 노동계급의 성숙 정도를 보여주는 징표이다. 보통선거권이라는 온도계가 노동자들의 비등점을 가리킬 바로 그때, 노동자들과 자본가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는 부적당해보인다. 반면, 엥겔스는 선거가 국가와 경제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한다.(선거는 대중의 의견의 지표 “이상이 될 수 없다”) 반면.... 그리고 또 무슨 ‘반면’인가?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적 선거주의에 대한 1세기 이상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 증거는 반선거주의자들이 옳다는 것을 드러낸다. 독일 등지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들이 혁명적이고 마르크스주의적이라고 주장한 당을 건설했다.(영국 노동당은 그렇지 않다. 이 당은 단 한 순간도 스스로가 혁명적이라거나 마르크스주의적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말은 번지르르했다. 이들은 다수의 정치인들을 의회로 보냈고, 평범한 노동자보다 훨씬 잘 사는 당 관료들의 관료제를 건설했으며, 그 아래에서 노동조합 내 관료주의를 건설했다. 이들은 기관지를 펴내고 노동자들을 위한 대중모임들을 후원했다. 이것들이 어떻게 혁명적 변혁을 이끌 수 있는지는 그다지 고려되지 않았다. 이들은, 언젠가 자본주의 경제는 공황에 빠질 것이고, 노동자들이 “끓는점”에 도달하면, 그때 혁명이 오리라 믿었다. 언젠가는 말이다. 많은 관료들은 이것이 일상활동과는 무관하다고 여겼다. 한때 엥겔스의 가까운 동료였던 에두아르드 베른슈타인을 필두로 한 공개적 개량주의 경향이 등장했다. 베른슈타인은 사회주의의 최종목표를 포기하고, 일상적 이익을 위한 제한적 투쟁을 진행하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1914년, 유럽 전역과 세계 각처에서 제국주의 전쟁이 발발한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지에서, 한때 서로를 동지라 불렀던 사회주의 정당들이 서로에 대한 전쟁에 찬성하기 시작했다. 많은 좌파들(이를테면 블라디미르 일리이치 레닌)은 이 상황에 크게 충격 받았다. 전쟁을 비판했던 사회주의자들도 있었지만, 일부 극좌파들을 제외하면, 이들 역시 찬전파 형제자매들을 비난하지 못했다.

전쟁 이후, 주요 사민주의자들은 러시아 혁명을 방해하고,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지에서 발발한 혁명을 무너트리고자 했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지도부는 군대와 동맹하여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 다른 많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을 살해했다. 전간기를 거쳐가면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나치를 포함한 파시스트들의 발흥을 막지 못했다.(독일과 스페인에서 사민주의자들이 파시즘과의 투쟁에서 어떻게 실패했는가는 이후에 논하도록 하겠다.

) 2차 세계대전 이후 사민주의자들은 냉전기 미제국주의의 완전한 지지자가 되었다. 아직도 그들은 새로운 사회 체계를 향한 어떠한 주장도 내어놓고 있지 않다. 그들 안에 남아있는 “사회주의” 혹은 “노동”은, 오직 그 이름뿐이다. 이들은 정중앙의 약간 왼쪽에 존재하는 자본주의 정당들일 뿐이다.

1차 세계대전 동안, 레닌과 다른 사회주의자들은 사민주의가 실패했음을 깨달았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에서 혁명적 정신을 되살려, 다시 시작하고자 했다. 레닌의 볼셰비키가 러시아 제국의 권력을 확보한 이후, 레닌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창설하여 세계 각처에 지부(당)을 건설하고자 했다. 코민테른에 가맹하고자 하는 당에게는 그 유명한 21개 조항을 준수해야 했다. 하나는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레닌은 선거가 평화롭고 합법적인 사회변혁을 가져올 것이라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선거에 출마하는 것이 공산당의 혁명적 선전을 위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 믿었다. 만약 당선되어 의원으로 활동한다면, 이는 정치 선동을 위한 더 나은 장을 제공할 것이었다. 공산당의 후보들은 계속해서 외쳐야 했다. “혁명이 필요하다! 노동계급의 혁명만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레닌은 선거에서 공산주의자들이 개량주의 정당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동시에 지지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최소한 당대에, 사민주의정당들은 스스로가 사회주의자라고 자처하고는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공산주의자들은 대중주의적 개량주의자들을 지지하여, 그들이 사회주의적 공약을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내어야 했다. 레닌은 공산주의자들이 사민주의자들을 지지하는 것은 “밧줄이 목매달린 자를 지지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한때 아나키스트였던 이들을 포함한 절대 다수의 혁명적 경향의 활동가들이 코민테른에 매료되었다. 최초에 이 공산주의자들은 선거를 이용하자는 레닌의 의지에 반대했다. 레닌과(트로츠키 등 그의 볼셰비키 동료들)이 초기 공산주의 운동의 우파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려지지 않았다. 레닌은 좌파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유명한 문건,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을 펴냈다. 이 논쟁에서 의회와 선거 참여에 관한 문제는 기존 노동조합에의 (비판적)참여의 문제와 혼재되어 제시되었다. 이 문건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같은 맥락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는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비판적)지지여부였다. 이 문제들을 동일선상에서 바라볼 필요는 없다. 나는 노동조합에 참여하는 것이나, 제국주의에 맞서 억압민족의 자기결정권을 지지하는 것에 참여하는 것에 있어서는 레닌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선거에 있어서는 틀렸지만 말이다. 어쨌든 레닌은 코민테른에서 벌어진 논쟁에서 완승했다. 이후 일부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인터내셔널에서 분열하여 다른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문제는 러시아 공산당이 건설한 일당독재(당-국가)에 대한 반대였다.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당과 국가가 아닌 평의회(소비에트)가 노동자 지배의 기저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평의회 공산주의자라 불리기 시작했다.

공산당의 선거 역사는 사민주의자들의 그것만큼이나 암울하다. 단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공산당은 스탈린 치하 러시아 관료제의 대외정책에서의 이득을 위해 조종되었다는 것이라 하겠다. 이것을 제외하면, 공산당은 선거 과정에서 부패했다. 혁명이 머지않았다고 여겨지던 잠시간, 당은 혁명적 메시지를 확산시키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평화의 시기에, 당 지도부는 그 시기에 적응한다. 당은 유권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실질적 개량 정책을 내어놓는다. 그러는 동안 전업 공산당 정치인들과 사무국이 등장한다. 그리고 소련의 최종 붕괴와 함께 공산당들 역시 자기 결정권 속으로 내던져졌다. 공산당들 모두는 소위 혼합경제라 불리는 개량주의 강령을 채택했다. 이는 자본주의의 유지보수일 뿐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저 새로운 사회민주주의자일 뿐이다.

프루동 이래, 선거라는 방법론을 시도해본 아나키스트들은 간헐적으로 등장했다. 저명한 아나키스트 저술가인 머레이 북친은 아나키즘에 가치있는 기여를 한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아나키즘과 생태주의 이론을 접합시키는 데에 있어 아주 큰 기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친은 “자유의지주의적 지방자치주의”라 불리는 강령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이 방법론의 핵심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선거에 출마하여 지역 공동체를 직접 민주주의로 운영되는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으로 바꾸어내는 것이다. 이는 미국에서 연방주의가 여전히 유효하고, 그 느슨한 연방 속에서 혁명이 없는 급진적이면서도 평화로운 변화가 가능하리라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자유의지주의적 지방자치주의에 입각한 선거전술이 끔찍하게 실패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 시도가 이루어졌던 마을과 도시 정부는 여전히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일원이고, 국가를 구성하고 있다. 지방정부가 행하는 것 중 너무 급진적인 것이 있다면, 상위 정부와 법원은 언제고 그것을 뒤집을 수 있다. 지역 자본가들은 언제고 공동체로부터 철수하여 지역 경제를 파괴할 것이다. 지자체는 법정관리에 들어갈 것이고 말이다.(뉴욕 주가 뉴욕 시의 예산 과정을 압수한 것을 보라.)

간단히 말해서, 이 모든 선거 전략들은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단순히 기성의 국가 기구를 접수하여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것을 행사”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혁명적 아나키스트들이 이야기해온 것처럼, 선거라는 방법론은 제대로 작동해본 역사가 없다. 모든 선거가 유용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고,(이를테면 국민투표 같은 경우는 유용할 수 있다.) 혁명적 아나키스트들이 전술적 필요를 위해 선거에 출마하면 안된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선거주의를 전략으로 두는 것은 오류라는 것이다.(미국의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미국 좌파들은 민주당을 지지해왔다. 그리고 민주당은 미국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전쟁예산, 인종주의의 두 번째 기수로 존재해왔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모든 시도는 그저 역겨울 뿐이다.)

개량주의자들은 반선거주의가 실제로 반란을 일으켜내지 못하는 이상 아무것도 남길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반선거주의는 혁명의 준비가 되기 전까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개선할 수 없다.

하지만 노동계급과 피억압대중의 삶에 있어 대부분의 개선은 비선거적 투쟁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를테면, 30년대 미국에서 노동자들은 대규모 노동쟁의들에 참여했고, 실업자들을 조직하고, 노조를 결성하고, 대규모 파업에 나섰으며, 공장을 점거하고,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조합주의자들은 구사대, 백골단, 경찰, 군대와의 격렬한 전투를 이어갔다. 그 결과로 이들은 단결권을 얻었고, 기업과 정부로부터 얻어야할 것들을 얻어냈다. 오늘날 노동조합이 취약해진 것은 이러한 투쟁적 대중행동 노선을 포기하고 로비에 전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노동조합에 대한 분명한 지지를 표명한 최초의 사회주의 사상가는 마르크스였다. 당시 프루동은 노동조합과 파업을 혐오했다.)

대중적 급진화의 파고는 50년대 후반에 다시금 몰아쳤고, 7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이 급진화는 짐 크로우법이 통과되고, 남부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합법적으로 격리되면서 시작되었다. 이 법은 대중의 비폭력적인 “시민불복종”(혹은, 그저 위법행위라고도 한다.)을 불러일으켰다. 북부의 도시에서는 “폭동”이 일어났다. 그 결과로, 법적 격리는 철폐되었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투표권이 인정되었으며, 차별금지법과 차별시정조치가 법제화되었다.

그러던 중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전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공개적 병역거부와 비공식적 병역회피, 대중집회, 대학 캠퍼스 점거와 파업, 시위 대오의 폭력과 군경의 더 큰 폭력, 탈영, 항명, 프래깅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베트남 민족주의자들이 미군과 그 꼭두각시(남베트남)에 대하여 가한 군사적 압력도 있었다.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징병은 종말점을 맞이했다. 미군은 철수해야 했다. 대통령 녹취록이 공개된 지금에 와서야, 우리는 닉슨이 북베트남에 핵무기를 투하하려 했지만, 이를 시행하였을 경우 그것이 캠퍼스에 미칠 영향이 두려워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닉슨이 옳았다. 우리는 백악관을 무너트렸을 것이다.

당대의 반란적 운동 중에는 LGBT 해방운동 역시 있었다. 이 운동은 뉴욕시 크리스토퍼가의 한 바에서의 반란으로 시작을 알렸다. 트렌스젠더와 게이 매춘부들(가장 무시되는 이들)은 경찰의 폭력에 맞받아쳤고, 전국적 운동을 촉발했다. 이후 ACT-UP 동지들을 비롯한 여러 동지들이 에이즈환자에 대한 진료거부에 맞선 아나키스트적인 직접행동을 진행했다.

여성해방운동 역시 등장했다. 반인종주의와 반전운동을 통해 경험을 쌓은 많은 여성 활동가들이 이 운동에 몸담았다. 이들은 운동사회 속에서조차 2등시민이 되어버리는 것에 대하여 환멸을 느끼고 평등한 조직을 건설하고자 했다. 시위와 집회, 의식화그룹들이 주요한 역할을 맡았다.

노동계급투쟁 역시 확대되었다.(그리고 이것은 당대를 바라볼 때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주요 산업에서의 비공인파업들이 몰아쳤다. 이 파업들은 주로 흑인 노동자들이 주도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우편노동자들의 파업이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은 정부주도 고용과 건강보험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것에도 흑인노동자들이 포함되게 만들 수 있었다.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한 것이, 아프리카계 미국인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멤피스에 있을 때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사람은 참으로 많다. 물론 이 투쟁들에서 합법적인 선거운동들이 한 역할도 분명히 있다. 정치인들이 분노한 인민들의 앞으로 달려와 그들의 지도자라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결국 이러한 배신은 성공했고, 운동은 붕괴했다.

국가를 파괴하고 자본주의를 무너트리는 혁명적 계획은 단지 장기적 목표로 그치지 않는다. 대중투쟁이 극단적이고 투쟁적이며 권위를 무시하고 비타협적인 분노를 표출할 때, 즉 최대한 혁명적일 때, 지배계급은 그제야 개량을 허용한다.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친절하고 길들여진 합법적 야당 따위는 그들에게 압력을 가할 수 없다. 지배계급은 그저 무시할 뿐이다. 소규모의 혁명적 전위집단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급진적인 대규모 운동은 그 누구도 얻지 못할 만큼을 얻어낼 것이다.

이것이 노동계급이 혁명주의적이어야 할 마지막 이유다. 우리의 적들은 노동자들이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노동자들은 인종주의적이고, 성차별적이며, 애국적이고, 종교적으로 근본주의적이다. 이들에게 노동자들은 자기보다 낮은 이들을 업신여기고, 더 나은 이들을 선망한다. 이들에게 노동자들은 상류계급에 편입되고자 하는 무의미한 열망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강력한 지도자가 그들을 구원해줄 것을 열망한다. 그리고 아마 많은 부분이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다른 계급보다 더 인종주의적이고 성차별주의적이며 애국적이거나 하다는 근거는 없다. 그렇기에 여기에서 문제가 도출된다. 노동계급이 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진정한 적들에 대항한 투쟁이다.

“한 인민이나 계급이 스스로 주인됨에 걸맞아지게끔 하는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오직 투쟁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오직 민주적 권력을 위한 투쟁을 통해서만, 그들은 스스로 학습한다. 그들은 투쟁을 통해서만 그 힘을 다룰 수 있을만큼의 수준으로 스스로를 향상시킨다. 그 어떠한 계급에게도, 다른 길은 열려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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