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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부작 농구시리즈 5> 전주원 농구 20년 돌아보기

농구박사 2005.03.06 00:29:04
조회 645 추천 0 댓글 7




선일여고 무패 연승행진 신화!! 아시안게임 3연속 제패 !! 여자농구 세계 4강!! 현대 창단 첫 우승... 여자 허재, 코트의 미녀, 천재 가드로 불리며 여자 농구를 활화산처럼 뜨겁게 달구던 ‘한국 여자농구의 영원한 HONEY’ 전주원이 은퇴를 결심했다. “은퇴에 대한 미련은 없다”며 “건재할 때 은퇴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전주원의 지나온 농구 인생을 더듬어 본다. ▼...그녀가 최고 가드가 되기까지... 전주원이 농구선수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그녀의 부친은 친구 딸이 농구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꿈이었던 성공한 운동선수의 길을 자기의 딸에게도 걷게 할 생각을 굳혔다. 전은 명일초등학교 5학년 때 서부 교육구청이 주관하는 체육 특기자 테스트에 참여했다. 그 시험은 초등학교 농구선수를 뽑는 것으로 100명의 학생 중에서 12명을 선발하는 시험이었다. 어린시절 우량아였던 전주원에게 운동선수는 어쩌면 가당치 않은 일이기도 했다. 테스트를 마치고 스탠드에서 쉬고 있는 그녀에게 황신철(선일여고 감독)감독이 다가와 귤을 주며 이것저것 물어봤고 그녀는 별 생각 없이 귤을 까먹으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황신철 감독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때 주원이 키가 제일 작았어요. 원래 뽑지 말아야 할 선수였는데 눈이 그렇게 해맑고 또랑또랑할 수 없었어요. ‘아, 저 녀석이 농구시키면 좀 하겠구나’ 싶었던거죠. 농구를 하기 전에 탁구 선수를 하려 했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순발력도 있었기에 주원이를 뽑게 된 겁니다. 처음엔 운동을 잘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어떤 선생님이 봐도 예쁘게 봐 줄 수밖에 없는 선수였기에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죠. 운동을 참 열심히 했거든요.” 전주원의 처음 농구 인생은 그다지 화려하지 못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도 농구를 잘한다고 보긴 어려웠다. 당시 선일여중은 최강으로 꼽혔고, 그녀는 3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주전 선수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열심히 하는 것 외에 또 다른 무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고야 말겠다’는 오기였다. 그리고 그 오기는 조금씩 그녀를 빛나게 만들었다. “고참이라서 배려해 준거지, 그때까지도 그렇게 썩 잘하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학창시절 제가 경기에 뛰었을 때는 한번도 진 적이 없어요. 특히 최고참 이었을 때는 무패 연승 가도만을 달렸었죠.” 당시는 그랬다. 전주원은 대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에 올라오면서 그녀는 많이 변해있었다. 농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제일 작았던 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훌쩍 커서 포인트 가드로서는 제법 큰 키를 갖게된 것이다. 그녀의 키는 당시 173cm까지 컸고 88올림픽 상비군 꿈나무로 뽑힐 수 있었다. 국제대회에서 통할 수 있는 장신이라는 점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그녀의 실력은 일취월장하기 시작했고 전주원이라는 이름을 한국여자 농구사에 알리게 되는 첫 발을 내딛게 된다. 고교에 입학한 전주원은 큰 신장을 바탕으로 농구에 맛을 느끼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1학년 신분으로 청소년대표에 뽑히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이때부터 전의 농구 인생은 탄탄대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3이 된 1990년초 당시 최고액인 현금 1억5천만원을 받고 신생팀 현대산업개발로 스카웃이 확정됐다. 이후 그녀는 더욱 물오른 기량을 선보이게 된다. 그녀가 이끄는 선일여고는 1990년에 열린 6개 대회 모두를 석권하며 27연승이란 금자탑을 쌓았고, 1990년 나고야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도 발군의 기량으로 선보이며 10년 만에 일본을 누르고 우승하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한마디로 스타 탄생을 예고하는 전주곡이 장엄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초고교 급으로 평가받던 전주원은 실업에 와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초년병이었던 1991년 현대산업개발을 준우승까지 끌어올렸고 실업 1년차에 국가대표로 선발되며 이름값을 했다. 그녀에게 유난히 기억나는 대회가 몇 개 있다. 1991년 당시 최강이었던 삼성생명을 현대산업개발이 처음으로 꺾은 일이 그랬고,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금메달도 그랬다. 그러나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대회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올린 4위의 성적과 2002년 현대 하이페리온의 여름리그 우승일 것이다. “언제가 가장 기뻤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국가대표로 출전해서 올림픽에 4위 한 것도 영광스러운 일이었고 2002년 여름리그를 우승한 것도 행복이죠. 하지만 그때 상황으로 본다면 여름리그 우승이 개인적으로는 더 값진 대회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시드니올림픽이 전성기에서 조금 처지는 단계였다면 2002년은 부상에서 복귀하면서 계속 농구를 할 수 있을지 나조차도 의심이 가는 상황에서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했거든요. 그때 그랬어요. 부상에서 복귀한 다음 은퇴해야지 전주원이 이렇게 은퇴하긴 너무 억울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한국여자농구 명승부는 그녀의 손끝에서 시작됐다 얼짱, 얼꽝이라는 말이 생산되면서 미디어는 얼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런 열풍은 비단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었다. 15년 전에도 이름은 달랐지만 미모로 농구계를 평정했던 스타가 있었고 25년 전에도 그런 스타들이 있었다. 15년 전에 그 시대를 풍미했던 20세기 농구계의 얼짱은 다름 아닌 전주원이었다. 전의 학창시절을 가장 잘 아는 선일여고 황신철 감독은 “지금은 나이가 들었지만 그때는 주원이 인기가 최고였죠. 지금 신혜인 열풍 못지 않았어요. 그때도 신문 방송에서 난리가 났었으니까요” 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전주원이 실업에 입문할 무렵 한국 농구는 새로운 르네상스시대를 만났고 농구는 최절정기에 달해 있었다. 13개 팀이 겨루는 여자팀의 게임은 언제나 박진감이 넘쳤고 어느 팀에나 한 가닥 하는 가드들이 즐비하던 시대였다. 그 속에서 전주원은 투쟁을 통해 살아남았고 빼어난 미모, 타 가드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신장을 이용해 코트를 지배했다. 최고 인기를 누리던 전주원에게도 슬럼프가 있었고 농구를 포기하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1993년 11월 29일자 신문에 전주원에 대한 기사를 인용하면 ‘전주원(22.현대산업개발)이 화려한 변신에 성공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띈다. 「국내여자 가드중 최장신(1m76)에다 시야가 넓고 두뇌회전이 빨라 ‘천재가드’란 칭송을 받으면서도 소극적인 경기운영과 득점력 빈곤으로 다소 실망을 안겨줬던 전주원. 그러나 실업입문 3년째를 맞는 93~94 농구대잔치선 야생마와 같은 투지를 지닌 '파이터 전주원'으로서 다시 코트를 휘젓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가능성은 보였으나 프로 3년차가 되서야 모두가 인정하는 선수가 됐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22살에 농구에 눈을 떴다는 평가가 옳겠다. 3년차가 되기 전까지 전주원의 마음고생은 그만큼 컸을 법하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나는 처음에는 운동을 잘 못했던 사람’이라고 자신을 평가했다. 지금의 정상의 자리에 서있기에 전주원의 농구인생이 평탄하게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그녀 역시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부상에 시달리는 등 큰 시련을 겪었다. 1994년 초 오른쪽 무릎 부상을 당했었고 1995년에는 족저근막염으로 고생했다. 그리고 2001년에는 큰 무릎 수술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 조차 불투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때마다 오기를 갖고 ‘다시 해보자’는 마음으로 각오를 새로이하고 다시 일어섰다. 국가대표 초년병 시절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한 농구인은 “전주원이 실업 1년차부터 국가대표에 뽑히다 보니 많이 힘들어했다. 당시만 해도 하늘같은 고참 언니들이 즐비했었고 다들 운동을 잘했으니 코치들에게는 연차도 짧은 주원이가 눈에 찰리 없었다. 더구나 얼굴이 예쁘다고 매스컴에서는 전주원만 찍으려 드니 언니들이 기분이 안 나쁠 수 있었겠나”며 당시 분위기를 회상했다. 또 다른 농구인은 “그때 주원이가 국가대표 생활이 힘들어서 농구를 그만두려고 까지 생각했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만약 이때 그녀가 농구를 포기했다면 일반인의 삶을 살았을 것이고 농구계는 유망한 농구 선수 한 명을 잃은 것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전주원은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살렸고 어려움은 이겨냈다. 참아야 할 땐 참았고, 돌아가야 할 땐 돌아갔다. 이것이 그녀의 방식이었고 지금의 전주원을 있게 한 비결이다. ▲...프로필 1972년 11월 15일 | 176cm | A형 | 포인트 가드 전주원은 명일초등학교 5학년에 처음 농구를 시작하여 선일여중-선일여고를 거쳐 현대에 입단했다. 91년 농구대잔치 신인상을 수상한 이후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활약했고 2002 WKBL 여름리그에서는 현대팀을 창단 첫 우승으로 이끌며 MVP의 영예를 안았다. 1991년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올해 은퇴시까지 13년간 대표팀에서 뛰었으며 한국여자농구의 아시안게임 3연속 제패와 2000년 시드니올림픽 4강 달성에 크게 기여했다. ▲...국내대회 1991년도 농구대잔치 신인상 수상 91/93/94/95/96/97/98년도 농구대잔치 베스트 5 선정 93년 농구대잔치 우수선수 94/95년 농구대잔치 수비 5걸 선정 96년 농구대잔치 어시스트상 수상 96년 3월 스포츠조선 빅스포츠대상 여자최고인기스타상 98년 스포츠서울 아마추어 미스휠라상(인기상) 98년 WKBL 여름리그 스틸상/우수수비상 98년 11월 농구대잔치 수비상 99년 여름리그 BEST5 어시스트상 수상 2000년 겨울리그 우수선수상/어시스트상/자유투상/우수수비상/베스트5 2002년 WKBL 여름리그 우승! 2003년 여름리그 어시스트상/2라운드 MVP/베스트5/2000득점상/모범선수상 ▲...국제대회 1988년 청소년 대표 1991년 국가대표 1992년 ABC대회 대표/프레올림픽 참가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금메달 리스트 1995년 abc대회 대표/준우승/3점슛상 수상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국가대표 1997년 abc대회 우승 1997년 동아시아대회 우승 1998년 세계선수권 대표 1998년 아시안게임 동메달 리스트 1999년 ABC대회 우승/MVP 수상 2000년 시드니 올림픽 4위/올림픽 사상 첫 트리플더블 기록 2003년 아테네 올림픽 예선 겸 ABC대회 3위 [월간 점프볼 2004년 3월호 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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