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골밑을 점령한 외국인선수들이 바라보는 한국 빅맨들은 어떨까. 올 시즌 외국인 빅맨들은 프로농구 출범이래 신장면에서나 기량적인 면에서나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동업자이자, 경쟁상대인 한국의 빅맨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무엇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을까? 점프볼이 물어보았다.
서장훈-김주성-현주엽 제외하면 이름 기억 못해
크리스 랭(서울 SK), 주니어 버로(안양 SBS), 네이트 존슨(대구 오리온스) 등 2004-2005 anycall 프로농구에서 활약 중인 대다수 외국인 선수들에게 “서장훈과 김주성, 현주엽을 제외하면 딱히 기억에 남는 빅맨들로는 누가 있는가?”라 물어보면 그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간단하다.
기억에 남는 무언가를 보여준 선수가 없으니 대답을 못하는 것이다. 물론, 외국인 선수들은 그들의 선생님도, 면접관도 아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국내 무대의 골밑을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만큼, 그들을 상대로 몇 점을 올렸는지, 그리고 얼마나 좋은 활약을 펼쳤는지는 현 KBL 빅맨들의 수준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대다수 외국인 선수들은 자기 팀 동료들을 제외하면 다른 선수들은 이름이나 등 번호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딱히 자신이 어떤 규정 지을 만한 스타일이나 그만의 칼라가 없기 때문이다. 크리스 랭은 “한국인 센터들 중에서는 서장훈이 가장 훌륭한 것 같다. 그는 운동능력이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센터가 필요로 하는 것과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적절히 잘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또 힘과 같은 체력적인 면에서도 우리(외국인 선수)들과 부딪혀도 밀리지 않는다. 다른 선수들도 서장훈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서장훈의 슛을 배우라는 말은 아니다. 일단 기본적인 힘이 뒷받침 돼야 밀리지 않고, 파울을 하지 않는 법이다”라 꼬집는다.
이는 서장훈이 했던 말과 일맥상통한다. 서장훈 역시 “요즘에는 센터를 기피한다고들 하는데 어차피 농구에는 센터 역할을 할 선수가 있어야 한다. 포워드 전향은 나중에 키가 자라지 않는다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하면 된다. 포워드라 해서 센터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본적인 것부터 착실히 갖춘 선수들이 나중에 더 잘 되더라”며 조언한 바 있다.
외국인 선수들은 박재헌(서울 SK), 윤영필(안양 SBS), 표필상(인천 전자랜드)도 좋은 센터로 꼽는다.
득점력이나 수비, 그리고 팀에 미치는 영향력은 서장훈이나 김주성에게 덜 미치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서장훈이나 김주성은 “몇 년에 한 번 나오는 인재”나 다름없기에 모두에게 그런 선수가 되길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지 모른다. 여기서는 센터로서 자신의 역할을 갖고 있고, 몫을 해주는 선수를 말한다. 그렇게 보면 박재헌, 윤영필, 표필상은 좋은 센터로 언급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힘과 기본기, 그리고 성실함을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힘과 욕심을 가져라! 앞서 랭이 언급한 것처럼 외국인 선수들은 국내 빅맨들이 가장 부족한 것으로 신장이 아닌 힘을 꼽고 있다. 기자는 지난 12월과 1월, 외국인 선수들에게 “만약 빅맨 전담 코치가 된다면 국내 대학과 프로 빅맨들에게 무엇부터 충고해주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들은 마치 대본을 읽는 것 마냥 한결같은 대답을 했다.
“웨이트부터 기르라고 하고 싶다.”
그들은 리바운드를 잡으려고 자리싸움을 할 때나, 포스트-업 상황에서 서로를 견제할 때, 키보다는 힘에서 밀려 자리를 뺏기고, 그러다 보니 파울을 범해 무기력하게 코트에서 물러나는 경향이 짙다고 지적한다. 힘과 스피드를 두루 갖춘 애런 맥기(부산 KTF) 역시 “한국은 센터들도 놀라울 정도로 슛이 정확하다. 그러나 힘이 없다. 웨이트 트레이닝부터 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고 자밀 왓킨스(원주 TG삼보)는 “상대 높이에 신경 쓰지 말고, 자기 위치를 지킬 생각부터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랭은 “한국 센터들의 약점은 힘이다. 밀어붙이면 밀려난다. 점프슛과 외곽슛이 아무리 좋다한들, 빅맨들에게는 가드를 따라갈 무언가가 부족하다. 역으로 가드 역시 빅맨을 따라갈 무언가가 부족하다. 그건 힘과 무게감이다. 내가 코치라면 웨이트를 중점적으로 일단 더 크고, 강하게 만들 것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센터는 다 똑같다. 골밑에서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능력을 키우지 못한다면 어렵다”며 자신만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버로도 마찬가지. 버로는 농구선수에게 화려함은 두 번째로 생각해볼 문제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비록 점프력이 많이 떨어지고, 느리기까지 하다는 평을 듣고 있지만, 그는 매 경기 더블-더블에 가까운 성적을 기록한다. 일단 센스가 좋아 위치선정에 능하고 힘과 개인기가 좋아 상대를 쉽게 제치고 효율적으로 득점을 올리기 때문이다.
“예전의 서장훈이나 현주엽이 어땠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보기에 그들은 국내 선수들의 롤 모델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테크닉이나 슈팅이 아니다. 힘이다. 골밑은 늘 피지컬(physical)하다. 우리도 늘 피지컬하다. 그것을 견뎌낼 수 있는 선수가 돼야 한다. 서장훈과 현주엽은 그것을 잘 해낸다. 웨이트를 키워서 쉽게 나가떨어지지 않는 그런 근력을 갖춰야 한다. 포스트업? 드리블? 덩크슛? 그건 나중 문제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근성이다. 한번 지면 계속 진다. 단순히 2쿼터에만 뛴다 해도 절대지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팀 플레이를 위해 골 밑에 나서야 한다. 그런 면에서 윤영필, 표필상 등도 이미 충분히 훌륭한 선수다.” 버로의 말이다.
어찌 보면 한국 농구계에 문제점을 갖고 온 주범(?)들에게 그 해답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들 역시 이곳이 직장이며, 동업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장에서라도 ‘경쟁’은 존재한다. 날이 갈수록 더 나은 레벨의 센터들이 올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국내 빅맨들은 충고를 받아들이고, 선배 농구인들은 그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좀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영화의 스크린쿼터 같은 제도적 장치든, 단발성이 아닌 꾸준하고 체계적인 빅맨 캠프 같은 배려와 관심이든 말이다.
외국인 코치들이 바라본 국내 빅맨들
현재 프로에 갓 입문한 빅맨들이나, 앞으로 프로에 데뷔할 빅맨들은 훗날 포스트 서장훈 시대, 즉 지금 골밑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빅맨들이 은퇴를 목전에 두거나, 코트를 떠날 시기에 올라설 재목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더 보호받고, 더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다.
빅맨들과 달리 외국인 코치들은 힘 외에도 다른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준다. NBA와 CBA에서 감독을 지낸 바 있는 모리스 맥혼(서울 SK)은 6피트 6인치(198cm), 6피트 7인치(201cm) 밖에 되지 않는 선수들이 골밑을 맡아야 하는 한국 농구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프로에 오면 포지션을 바꿀 수밖에 없는 현실도 말이다.
그러나 그런 그도 “키가 작다고 해서 센터가 해야 할 역할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 강조한다. “비록 2쿼터 제한적인 시간만을 뛰는 선수들도 있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키가 작다고 해서 센터가 할 역할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좋은 득점력을 갖고 있지 않는 이상, 센터라면 볼 욕심을 버려야 한다. 볼이 없을 때도 원활하게 움직이면서 스크린을 걸어주고, 박스-아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 면에 있어 한국 센터들의 기본기가 약간 부족한 것 같다.”
미국 하부리그에서 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 릭 로스 전주 KCC 코치나 트레버 그리슨 서울 삼성 코치들의 의견도 대개 일맥상통한다. 특히 로스 코치는 실전 감각과 경험이 부족한 것을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꼽는다. “기량적인 면에서는 포스트-업이 전혀 없다는 것이 아쉽다. 시도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서장훈이나 현주엽을 빼면 자신감이 부족해 보인다. 그들이 성장할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슈팅이 더 발전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인사이드에서 피지컬하게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 다음에 볼 다루는 법을 익혀야 한다. 볼 핸들링은 센터에게 더 중요하다. 그게 약하다는 것을 간파 당하면 상대는 계속해서 더블팀을 붙일 것이고 실수를 유발할테니 말이다. 내가 만약 빅맨 코치가 된다면, 그런 기본적인 기술부터 다시 훈련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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