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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사 포기하고 청소 알바 택한 30대 여성…이유 알고보니
억대 연봉 회계사, 청소 아르바이트 선택 이유• 1억 연봉의 회계사였던 이윤재씨는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회계사 직업을 포기하고 병원 청소 아르바이트를 선택했습니다.• 회계사 생활의 고된 스트레스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에 지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고자 퇴사를 결정했으며, 현재는 라이프 코칭 사업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경제적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가 더 컸으며, 자신의 경험을 통해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찾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혔습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5/0005136043한국과 일본 내 '빅4' 회계법인에서 7년간 회계사로 근무하다 퇴사한 뒤 병원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30대 여성의 사연이 화제다.24일 유튜브 채널 '나는 사장님' 등에 따르면 대학교 3학년이던 지난 2015년 11월 일본에서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윤재(31)씨는 일본에서 4년, 한국에서 3년간 회계사로 일하다 지난해 10월 퇴사했다.이씨는 "학창시절 때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6년 동안 전교 1등을 했다"며 "원래 회계사라는 직업을 갖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고, 고3 때 어머니가 아프셔서 전문직종을 가지면 어머니가 기뻐하지 않으실까라는 생각에 회계사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다섯 살 때부터 일본에서 생활한 이씨는 "어릴 때부터 특별한 삶을 추구했던 것 같다"며 "그러나 회계법인에 입사한 후에는 내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평범한 회계사 중 한 명이라는 생각에 힘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다만 회계사라는 직업이 워낙 바쁜 탓에 그런 고민을 이어갈 틈도 없이 지내다가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로부터 '윤재는 조금 특별한 삶을 살 줄 알았는데…'는 말을 들은 후 '내가 남들 보기에 전혀 특별한 삶을 살고 있지 않구나'라는 생각에 그때부터 마음이 힘들었다"고 덧붙였다.이씨는 "그 말을 들은 후 아침에 눈을 떴는데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지'라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며 "그때부터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이 특별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그러면서 "회사 입사 전에 썼던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에 관한 일기를 우연히 읽었는데, 아침을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시작하고 밤에는 산책하고 일기를 쓰며 하루를 마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문구가 쓰여 있더라"며 "회계법인 때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승진이 조금이라도 늦춰지거나 회사에서의 평가가 좋지 않으면 그 예민함을 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풀고 후회했다"고 했다.그는 "퇴사 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뒤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됐을 때는 '내 자신이 비참해지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했었는데, 해보니 하나도 비참하지 않고 지금의 삶이 회계사 때보다 훨씬 행복한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 "회계사 때 마지막 연봉이 1억원이었다"며 "퇴사를 앞두고 경제적인 부분이 제일 걱정이었고, 커리어를 포기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는데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면 20~30년 후에 후회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경제적인 불안감을 이긴 것 같다"고 말했다.다만 이씨는 "청소를 직업으로 골랐다기보다는 라이프 코칭을 하고 싶어 그 사업을 준비하려고 퇴사한 것"이라며 "거기서 안정적인 수익이 창출될 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기회가 온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병원 아르바이트와 라이프 코치로서의 삶을 병행하며 지내고 있다.그는 "퇴사를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당시에는 세상이 회색 필터가 걸쳐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세상이 뽀송뽀송해 보이는 느낌이다.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에는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고 사회가 기대하는 모습대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뭔지 모르고 그런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만의 삶을 찾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일제시대 조선반도 출신 에이스 파일럿들..jpg
최명하 경상북도 구미 출생이고 일본육군 항공사관학교 3기 (육사기수로는 52기)로 일본육군 항공대중에서 전설로 알려진 제64전대 일명 가토 하야부사 전대에서 근무했을 뿐 아니라 군신으로 알려진 전대장 가토 다데오의 윙맨 파일럿으로 참전했다. 1942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팔렘방 전투에서 대공포에 격추되었고 네덜란드군과 권총으로 전투를 하다가 포로가 되지 않기위해 자결하였다. 사후 육군대위 추서, 야스쿠니 안장되었다. 이근석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소년비행병 2기 출신으로 항공 오장으로 군생활을 시작했다.전설적인 64전대에서도 근무해서 일중전쟁, 노몬한 전투에도 참전했고 18기를 격추했다. 이미 이 시기부터 육군항공대의 스타파일럿이었다. 남방전선에서 영국군 전투기 5기를 격추하여 총 격추기록은 23기 에이스이다. 해방후 한국육군 소위로 임관하고 공군이 창설되고 공군대령이 되었다. F51 전투기 인수요원으로 일본에서 전투기을 몰고 왔으나 1950년 7월 4일 북괴군 전차을 폭격하다가 대공포에 맞고 격추되어 사망했다. 지인태 일본육군 항공사관학교 1기 (육사기수로는 50기)로 전라북도 옥구 출생으로 군산중학교에서 공부를 잘해 사관학교에 진학했고 항공장교로 임관했다. 당시에는 조선언론에 자주 나오는 유명인사였고 1939년 노몬한 전투에서 전사했다. 조선인 육사출신중 첫 전사자. 정찰작전을 하다가 소련군 전투기에 격추되어 전사한 것으로 보이며 당시 22세였고 전사후 대위로 추서되었다. 김정렬 일본 육군 소위로 임관, 태평양 전쟁 개전당시 참전한 조선인 장교 셋중 하나였으며 필리핀 공격때에도 미군 전투기와 교전했다.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필리핀 전투와 인도네시아 팔렘방 전역, 일본 본토방공전 등 수많은 전투를 겪은 베테랑 파일럿이자 지휘관이었다. 당시 최신기인 Ki-61도 운용하며 영미상대로 싸우다가 돌아왔다. 광복후 초대 공군참모총장에다 주미대사, 국방장관, 국무총리도 하다가 92년 9월 7일 74세로 사망했다. 텍스 힐 조선,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난 미국 에이스 파일럿. 미국인 선교사 아들로 태어났는데 물론 태어나기만 거기서 태어났고 텍사스에 살아서 '텍스'라는 별명이 붙은 것. 플라잉 타이거즈 소속으로 태평양, 중국전선등에서 참전하며 총 18대를 격추했다. 이후 텍사스 주방위군에서 복무하다 준장으로 은퇴함 이후 2007년 10월 11일 심부전으로 92세에 사망했다. 노용우 경기도 수원 출신의 가미카제 특공대원, 경성법학전문대학 (현 서울대 법대) 재학 도중 육군 특별조종견습사관에 지원했다. 육군 특별조종견습사관 시험은 경성과 도쿄에서 1·2차로 나눠 치를 만큼 매우 어렵고 까다로웠다. 합격 후 비행 훈련을 받고 1944년 10월1일 정식 소위로 임관했다. 1945년 5월 29일 이날 오전 8시 B-29 편대의 기습 통보를 받고 출격했다. 시즈오카현 가와네초 부근에서 B-29 대부대와 조우한 노용우의 비행기는 적기의 공격으로 날개가 꺾인 상태에서 M. R. 클라크 주니어 중위가 조종하는 B-29를 몸체로 들이받아 격추시켰다. 칸노 나오시 조선, 평안도 용구(현재의 평양 인근)에서 태어난 일본제국 에이스 파일럿. 물론 조선인은 아니고 일본인 아버지가 경찰서장으로 조선반도에 부임하면서 출신만 조선반도임 대단히 호전적인 성격에다 군기위반 상습범, 자신의 병기들을 맨날 부숴먹어서 파괴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지속적으로 가미카제 특공대에 지원했지만 에이스 파일럿인지라 족족 상부에서 거절당했고, B-24의 꼬리날개를 자신의 제로센 날개로 베어서 격추한적도 있었다. 지휘관을 뜻하는 노란리본을 달고 다녀서 미군이 옐로우 파이터라고 불렀다고 한다. 총 격추수는 72대. 1945년 8월 1일 가고시마 인근 해역서 사망했다. 비행만화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의 모티브가 됨 한국인도 일본제국의 일원으로 인정받아 당당하게 2차대전에서 활약했는데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숨기지 말자 - dc official App
작성자 : leeloo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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