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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프로스트에 봄은 오는가 (상)

ㅇㄹㅇㄹ(36.38) 2022.02.10 16:54:52
조회 727 추천 13 댓글 5

달동네 - 나무위키


'20사토시입니다.'




포장마차에 앉은 순이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린 말이었다. 




종업원은 미동도 않는 손님에게 재차 qr코드를 들이밀었다. 


"손님. 소주 두병에 두부김치 하나 흑우두루치기까지 총 20사토시입니다." 




허공을 바라보던 순이아버지는 헛웃음을 짓더니 나지막히 내뱉었다. 


"이건 바프지갑이 아니지않은가..?" 




"손님 그 지갑은 이미 상폐되었습니다. 저희가게는 비트만 받아요." 




"으따 누구마음대로 비트만 받는당까? 비트는 중앙화코인이라 화폐로 쓸 수가 없당께!!" 




그게 순이아버지의 마지막 외침이었다. 




순이아버지는 이윽고 들이닥친 경찰과 포장마차 가드들에게 먼지나도록 두들겨맞고 외마디 비명만 내지를뿐이었다. 




'윽.. 윽.. 윽..' 




바이프로스트시티에선 이런 사건이 끊이질 않았으니


다른자리에 앉은 손님들은 그 혁명의 외침마저 한 낯 소음으로 치부할뿐이었다.. 


한참을 두들겨맞다가 의식을 차린 순이아버지는 더러운 흑돼지 여물통에서 정신을 차렸다. 


'나쁜놈의 새끼들...' 


의미없는 읊조림을 내뱉으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순이아버지는 가족이 있는 바이프로스트시티 시내를 향해 걷기시작했다. 




개짖는 소리. 


여자의 울음소리.


깜빡이는 가로등. 


낡은 보일러가 뿜는 매캐한 연기. 




이곳이 최고의 홀더들이 모인 판자촌의 모습이다. 




이름하여 바프간후드


2055년. 


언젠가는 강남건물주가 되겠다던 그 포부들은 이제 녹슨 슬레이트 지붕아래에서 숨죽여 사는 인생으로 치환되었다. 


' 쏴아아아. '


터덜터덜 걸어가는 순이아버지 등 위로 소나기가 쏟아진다. 


"젠장.." 

급하게 업비트를 켠 순이아버지는 급등하는 옵저버와 썬더코인을 보며 헛웃음을 짓는다. 


"아직도 날씨매매법이 통하다니.. 가치투자를 해야할거 아니야"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급등하는 코인을 비웃을 뿐이다. 


구멍난 창호지 위에 물에 적신 성인잡지로 덕지덕지 구멍을 막은 미닫이문이 열린다


'드르륵' 


"오셨어요." 


순이어머니는 남편의 몰골을 보고도 내색도 하지않는다. 


"아빠 내일 학교가는데 크레파스 사야해요" 


"얼마냐" 


순이아버지는 이제 딸의 유년기마저 자판을 두들기는 지경이었다. 


"3사토시에요"




그 말을 듣자 순이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낸다


"그럴 돈이 어디있어!!! 그냥 학교가서 친구꺼 빌려써" 




"하지만 아버지..." 




'짜악-' 


이것이 순이아버지가 자신의 딸을 처음 때린 사건이다. 


순이는 그 뺨을 맞고 낡은 헬로키티 이불위로 자빠진다. 


'으아아앙-' 


온 집안에 울려퍼지는 딸아이의 울음소리. 


창문 밖에서 들이치는 소나기가 딸아이 머리 위에 들이치고.. 


이보다 더 한 밑바닥이 있을까. 


'당신 미쳤어!!!' 


순이 어머니가 악을 쓰며 남편에게 덤비고 둘은 방바닥에 엉겨붙어서 서로 물어뜯고 햘퀴어가며 싸운다. 


한참을 울던 순이는 훌쩍이며 자기 이불 위에 돌아눕는다. 


산발머리에 멍투성이 얼굴이 된 순이어머니는 순이를 흔들어 깨운다. 


"아가야. 빗물을 닦고 자야지. 감기들까 어미가 걱정되잖니" 


순이는 한마디도 하지않고 돌아누워있었다. 


'아이고오-' 


순이어머니는 서러움의 울음을 터뜨린다. 




순이아버지가 집에 오는 길에 들은 여자의 울음소리도 이런식으로 흘러나오게 된걸까. 




순이아버지는 집 밖에 나가 슬레이트 지붕아래 담배불을 붙인다. 


"젠장할 여편네같으니.. 3사토시면 바프가 30만개야.. 홀딩하는걸 팔아서 애새끼 크레파스나 사주라는거야... 누구덕에 밥먹고 사는줄도 모르고.. "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순이아버지 발을 적신다. 


"씨발.. 이 집구석은 담배필 공간도 좁아터졌구만" 


'탁 탁 -' 


담배를 털고 집에 들어간 순이아버지는


집 모서리에 기대어앉아서 잠든 아내와 딸을 본다. 




"니들 나중에는 나한테 고마워할거여.. 바프가 떡상만 하면 이런고생도 다 끝이니께.. "


푸른 새벽빛이 비추어지고


그 빛이 잔뜩 부어오른 순이의 오른쪽 뺨


순이 어머니의 멍자국과 부르튼 손


순이 아버지의 부스스한 머리와 구멍난 양말을 비춘다. 


주섬주섬 채비를 한 순이아버지는 잠든 아내와 딸을 뒤로하고  일터로 간다. 


새벽 6시.


오전 9시까지 단 3시간.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까. 


순이아버지에게 아침의 시간은 너무 더디게 가는 것이었다. 


건축과 도시]세월에 밀린 폐공장 '건물 속 건물'로 부활하다

순이 아버지의 일터는 2020년대 코인으로 큰 돈을 잃은 밑바닥들이 인생의 마지막 기회를 좇아오는 그 곳이다. 


'바프인력소'


이곳에서 일어나는 대화는 그야말로 가관이다. 


한 때는 사장, 대표, 억따리시드였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는 인간들이 


초췌한 용모와 진동하는 술냄새를 풍기며 금이간 액정 너머의 요동치는 차트를 보며 논쟁을 이어간다. 


"여기가 바닥이지 3800k가 말이 된다고 생각혀?" 


"아이고 2800k까지는 열려있다니까 그러네" 


"아니 그럼 네 마누라 빤쓰까지 팔아서 풀매수 하면 될거아녀!" 




"뭐라고 했어 이놈새끼야!" 




이 곳의 싸움은 항상 이렇게 시작된다. 




당장 내일 먹을 쌀도 구하기 힘든 인간들이 세계 경제니 추세니 focm이니 온갖 주워들은 어려운 용어들로 저 의미없는 파동에 선을 죽죽 그어가며 의미를 부여하는 토론의 장.


허나 늘 그 끝은 싸움질이었던 것이다. 


'섹터5 작업 시작 5분 전' 


감정없는 ai의 목소리가 이 혼란을 잠재운다. 


순이 아버지가 일하는 공장의 업무는 간단하다. 


원자로 연료봉을 운반하고 포장하는 공장. 


반인륜적이고 살인적인 업무내용과 강도지만


이 사회의 누구도 바프간시티에게 관심을 주지않기에 비싼 로봇을 대체해 값싸고 충실한 인력으로 효율적인 공장운영이 가능한 것이다. 


피폭을 막기위해 신형 장비를 싸매어보지만 대부분 직원들이 후유증으로 그만두고 죽어나간다. 


그리고 그 죽은 직원의 자리는 자연스럽게 굶주린 그들의 자식들이 대체하게된다. 


"씨발-" 


작업중 들리는 소리의 절반이 이런소리이다. 


점심시간. 


바프 물타기를 위해 신장 하나를 팔아넘기고 바프간시티까지 쫓기듯 들어온 박씨 아저씨가 쓰러져 일어나지못했다. 


직원들은 숟가락을 입에 문 채로 그 사체를 소각로에 던져넣는다. 


타들어가는 육신을 보며 저 비루한 몸뚱이도 부자가 되기위해 바프를 사고 또 인생을 태웠을텐데. 


그 결말이 공장 소각로라니. 


매일같이 있는 일에 아무도 동요하지않고 잡담을 시작한다. 


"바프가 또 소각을 한다는데..." 


"이번에 나온  p2e는 진또뱌기같당게.." 


"삼성동사는 호재꾼이 해준말이여.. 이번엔 진짜로 바낸에 간댜.." 




수십년째 저런 말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어째서인가. 


무얼 위해서 사는가. 




순이아버지는 하루종일 한마디도 하지않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머리가 빠지고 코피가 난들 신경쓰이지않았다. 

무엇이 이들을 괴물로 만들었는가. 


퇴근 후 술집으로 향하는 순이아버지를 붙잡은건 낡은 문방구였다. 


어젯밤 어린 딸의 뺨을 올려붙인게 미안해서일까. 


"뭐 사달라는 소리도 안하던 년이..." 


'딸랑 딸랑' 


"어서오세요" 


검은 터번을 둘러쓴 '바프간문방구'의 주인이 순이아버지를 반긴다. 


"크레파스 하나 주소" 


"3사토시입니다. 애기 사주려구요? 그림을 좋아하나보네.." 


문방구 주인이 싸구려 크레파스의 먼지를 탁 탁 털어낸다. 


"그거말고 색깔 많은걸로 주쇼 우리 애 생일이니께" 


사실 순이아버지는 순이의 생일을 모른다. 


왜 이런 말을 덧붙인걸까.. 




그것은 아마 아버지로써 딸아이에게 처음 선물이란것을 하는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기 위해서일것이다. 


그는 집으로 향하며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옳게된 아비인가.. 항상 나만 생각한게 아닌가..  고집만 부려온 삶에 후회뿐이구나..' 


그러다 눈에 띈 낡아빠진 미술학원 앞 쓰래기봉투를 터뜨려 크레파스 쪼가리며 연필, 지우갸조각 등을 찾아 비닐봉지에 쑤셔넣는다. 


그렇게 걷다보니 집에 도착한 순이아버지는 이걸 어떻게 줘야하나 한참을 서서 고민했다. 


'드르륵' 


낡은 미닫이 문을 열고 검은 봉투를 던지며 나지막히 얘기한다. 


"순아 크레파스다 갖고놀아라" 




그러고는 문 밖에 쪼그려앉아 담배에 불을 붙인다. 


낡은 미닫이 문 너머로 딸년의 웃음소리와 환호성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소리를 들으며 담배를 피자니 뜨거운 눈물이 담배불을 연신 꺼트리는 것이다. 


"씨발.. 씨발..." 


후회섞인 읊조림만 나왔다. 


그렇게 눈물을 닦은 순이아버지는 대차게 문을 열고 들어가 순이를 안아준다. 


"아버지가 그동안 미안혔다.. 이제 필요한거 있으면 말만혀.. 말만.. 아부지가 어떻게 해서든 다 해줄테니께.."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순이는 연신 담배냄새 난다며 깔깔대며 웃는다. 


달그락거리는 순이어머니의 설거지소리에도 그녀의 눈물훔치는 소리는 감추어지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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