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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좋아했던 창기병들
[시리즈] 울란 시리즈 · 좌충우돌 폴란드 기병들을 만난 나폴레옹 프랑스 제국 근위대의 한축을 담당했던 제1 폴란드 창기병연대(1er Régiment de Chevau-Légers Lanciers Polonais)는 1807년에 탄생했다. 창기병은 대방진-대기병 돌격에 특화되어 있는 병과였지만 기병창이 높은 숙력도를 요구할 정도로 다루기 어려운 무기였다. 폴란드 기병들은 그런 기병창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유럽 최강의 창기병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1809년 스페인 전역의 소모시에라(somosierra)에서 그들이 보여준 기병돌격은 황제에게 폴란드인들이 얼마나 용맹한지 각인 시켜줬다. 본래 제국 근위대 말단인 청년근위대 소속이었던 폴란드 기병들은 이 활약 덕분에 중견근위대를 건너 뛰고 단번에 고참 근위대로 승격했다. (주: 한국에도 많이 알려졌을 정도로 유명한 일화라서 패스함.)본래 나폴레옹은 창기병의 효용성을 의심했었다. 그가 보기에 기병의 근접무장은 기병도 하나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폴란드 창기병대 지휘관이었던 크라신스키 대령(Col. Wincenty Krasiński)은 창설 초기부터 줄곧 기병창을 정식지급 해달라고 지속적으로 보고서를 올렸다. 바그람 전투가 끝난 1809년, 빈에 입성해있던 나폴레옹은 마침내 질렸는지 기병창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 증명 해보라며 크라신스키 대령을 당시 사령부로 쓰고 있던 쇤부른 궁전(Schloss Schönbrunn)으로 호출했다. 나폴레옹은 궁전 연병장에서 창기병이 검기병에 비해 근접전에서 얼마나 버티는지 보겠다며 대련을 명령했다. 상대편은 같은 근위대 소속인 황후의 용기병대(Regiment de Dragons de l’Imperatice) 3명이었다. 크라신스키 대령은 자신과 같이 온 빅토르 로만 중사(Sgt Victor Roman)를 내보냈다.용기병들은 기병도를 들었고 로만 중사는 창을 들었다. 리치가 긴 창이 불리한 대결이었지만 로만 중사는 황제가 보는 앞에서 단 몇합만에 용기병 2명을 낙마 시켰고 마지막 1명은 기병도를 빼앗아 무장해제 시켜버렸다. 화려한 마상창술을 직관한 황제는 단번에 설득되어 버렸고 기병창을 정식 보급품으로 지정하였다.1809년, 황제가 바그람에서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하고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 루이즈(Marie-Louise von Österreich)와 정략결혼을 맺었다. 나폴레옹은 콩피에뉴(Compiègne)에서 마리 루이즈와 처음 만났고 1810년 4월에 공식적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축하연은 5월까지 3주간 계속됐다. 황제는 합스부르크 출신의 어린 신부를 배려(?)하여 신혼여행지로 플랑드르 지방을 골랐다. 합스부르크의 오래된 영지이기도 했고, 마침 그 해 네덜란드 왕국이 프랑스 제국에 합병되기도 했기에 친정을 할 겸 고른 것이었다. 황제 부부는 약 1년동안 벨기에와 네덜란드 일대를 돌아다니며 신혼을 만끽했다. 나폴레옹은 이 신혼여행의 경호병력으로 직접 폴란드 창기병 연대를 지명했다. 길쭉하고 네모난 모자(Rogatywka)를 300명의 창기병들이 호위하는 황제의 행렬은 가는 곳마다 구경거리가 됐다. .황제는 어린 마리 루이즈가 여행 중간중간 지루해할 것을 염려하여 여러가지 볼거리를 제공하라고 명령했다. 폴란드 기병들은 이 엔터테인먼트 제공에 동원됐다. 그들은 황후 앞에서 퍼레이드를 하거나, 마상 무술 시범을 보이는 등 그야말로 광대노릇을 해야했다. 하지만 수년간의 전역으로 지쳐있던 폴란드 기병들에게 이 여행은 꿀맛 같은 휴가나 마찬가지였다하지만 모든 폴란드 기병들이 휴가를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프랑스군 40만명이 투입된 스페인 전역은 병력 빨아먹는 블랙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소모가 심했다. 나폴레옹도 남는 병력은 전부 이베리아로 보내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제1 창기병 연대 병력의 절반도 스페인으로 가서 현지 게릴라들과 영국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야 했다. 스페인인들은 긴창을 꼬나들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달리며 자신들을 사냥하는 폴란드인들을 보고선 지옥에서 올라온 피카도르(Picadores del Infierno)라고 불렀다. 영국군도 폴란드 창기병들에게 여러번 털리자 이에 깊은 인상을 받아 훗날 창기병을 정식 편성했을 정도였다.여행기간 동안 황제는 폴란드 창기병들을 보고 무언가 느낀게 있었는지, 1810년 구 네덜란드 왕실 근위대 소속 기병들을 제국 근위대로 합병하는 행사에서 이들에게 앞으로 창으로 무장할 것을 지시하고 제2 창기병 연대(2e régiment de chevau-légers lanciers de la Garde impériale)라는 부대명을 하사했다. 이들은 상하의 빨간색 깔맞춤의 제복을 입어서 붉은 창기병대(Lanciers rouge)라고 불렸다. 다만 이들은 본래 후사르 병과였던 탓에 창을 다루는데 매우 어설펐고 참전 경험도 없어서 근위대 치고는 전투력이 떨어졌다. 폴란드 기병들도 이들이 진짜배기 창기병이 아니라며 은근히 무시하고 다녔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이들은 폴란드 창기병들처럼 실전에 투입되진 않고 베르사유 궁전 경비 서는게 전부였다는 점이다. 붉은 창기병대는 눈에 확 띄는 시뻘건 제복 덕분에 수많은 프랑스인들에게 신기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아오모리시 여행 마지막(스압)
[시리즈] 아오모리 여행 · 잠안와서 쓰는 아오모리현 하치노헤 여행 (스압) · 아오모리,히로사키 여행(스압) · 아오모리 여행 3,4일차(스압) · 후기까진 아니지만 오이라세계류 아 계속 삭제 재업 죄송합니다 글 조금이라도 잘 써보려고 수정하는데 계속 뒷부분 싹다 날아가네 아오모리역 주변인 신마치 사진을 안 올린 것 같아서 다른날 사진이지만 일단 올리고 5일차 시작 이날 비는 오고 아무 계획도 없어서 일단 역으로 감 전날 밤인가 새벽부터 삿포로는 첫눈 소식있어서 혹시 기대했지만 어림도 없지 비만 겁나 옴 아우가 지하의 시장 건물 지하에 시장이 있음 여긴 아오모리 라멘먹으러 옴 라멘먹고 뭐할까 고민하다가 비 그치는것 같아서 버스타고 성지순례옴 버스타자마자 다시 비오기 시작 도착하니 잠깐 비80 눈20으로 바뀌다가 우박으로 바뀌고 난리였음 결국 비로 마무리 잠깐 갔다와서 다시 아오모리역 근처 시골의 노력이 보이는 장면 모든 관광스팟이 모여있음 할거 없어서 이제서야 네부타의집 보러감 아오모리여행 준비하기 전까지 네부타는 존재조차 몰랐고 와서도 별 흥미는 없었는데 막상보니 엉청 거대해서 박력있더라 사진스팟같았던 사과랑 핫코다마루 핫코다마루 보러감 입장권 네부타의 집이랑 세트로 팔던데 이것도 네부타의 집 갔다와서 할거 없어서 간거라 따로냄 내부는 무슨 세이칸연락선 역사같은걸로 시작하는데 일본어 읽을 줄은 몰라서 대충 봄 핫코다마루 안에서 본 아스팜 지하에 열차들도 있고 엔진인가 발전기인가 기계장치들 저녁은 싸구려 스파게티가 땡겨서 아오모리시에 딱 하나 존재하는 아오모리역의 사이제리아 그것도 생긴지 1년도 안된것같음 혼자 가라오케 조지고 돌아옴 보이면 일단 찍는 아스팜 5일차 끝 남들 1일차에 하는걸 이제서야 함 그리고 이 날 문득 깨달았음 아오모리역 근처가 메인스트리트가 아니구나 하는 사실을 프렌차이즈들이 거의 없음 맥도날드조차 없음 https://gall.dcinside.com/m/nokanto/465027 6일차 오이라세계류 당시에 썼던 글로 대충 넘어감 버스타고 가는 길에 핫코다산에 쌓여있는 눈을 봐서 좋았고 자전거타고 오이라세계류 보고 토와다호까지 돌아가는 길엔 이미 많이 녹음 오이라세는 아오모리오면 하루 박을만 함 어차피 볼게 없으니깐 전에 썼던 역근처 중국집 고반켄에서 오무라이스 포장해서 저녁먹음 양도 많고 딱 내가 원했던 옛날 오무라이스맛 포장하고 나가는데 구석에서 일하시던 주인할머니가 맛있게 먹으라고 해주심 전에 왔던거 기억하신듯 6일차 끝 7일차 산나이마루야마 유적이랑 현립 미술관 갈까하다가 관심없는 분야라 5일차에 깨달은 진짜 아오모리를 보기 위해서 걸어다님 아오모리센트럴파크 거기에 있는 어쩌구저쩌구 아레나 여기서 더내려가면 나오는 여기를 부르는 명칭은 모르겠지만 프렌차이즈나 대형마트 다 여기 있었음 영화관도 이쪽 점심먹으러 중국집 마파두부랑 스부타 도쿄에서 먹었던 얼얼한 마파두부를 먹고싶었는데 이름은 본격 사천마파두부였지만 얼얼한 맛은 없었음 스부타는 첨먹어봤는데 탕수육보다 단맛은 없고 신맛은 더나고 갠적으론 탕수육이 더 취향이었음 다 먹고 또 걸어서 이번에 새로 오픈하는 쇼핑몰 시나시나 예전엔 이토요 였다고함 아직 정식오픈은 아니고 이때는 내부도 어수선하고 간판도 제대로 안달려있었음 아오모리시에 단 하나 존재하는 코메다커피 이것이 아오모리 1,2층 제대로 전부 제대로 되어있는게 없어서 바로 푸드코드 구경 베스킨라빈스도있고 하나마루우동도 있고 아오모리시에 2갠가 3개 존재하는 맥도날드중 하나가 여기 아오모리 사람들 다 여기있었음 시나시나 바로 옆에도 이것저것 돈키호테있고 서브웨이있고 유니클로도있고 돈키호테 근처에 있는 빠칭코 이날이 토요일이라 그런지 차 겁나많음 아오모리 남자들 다 여기있었음 시간 남아서 걸어서 성지순례 가사로 언급된 곳이라 5일차에 갔던곳이나 여기 둘 중 하나는 정답 그리고 여기서도 보이는 아스팜 돌아가는길 아오모리 돌아다니다보면 자주 보이는거 다시 메인스트리트로 돌아와서 갬성 뒤져버리는 맥도날드 간판 저녁은 스시로 먹고나와서 사진 한방 버스타고 신마치로 돌아옴 마지막날 밤의 아스팜 아오모리 끝 아오모리에 7일이나 있었지만 여행1,2주차때 더위에 너무 고생해서 체력도 딸리고 4시반이면 어두워지니 나가긴 귀찮고 해서 기간에 비해 별로 본 것도 없지만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사는 곳이라 그냥 걸어만 다녀도 좋았음 이렇게 정리하면서 보니 아쉬움도 많네 뭘 더봤어야 했는데 뭘 더먹어봤어야 했는데 이런 아쉬움보다 내가 보고 느꼈던 아오모리 거리를 사진에 전혀 담아 내지 못했다는 아쉬움 아오모리시는 이걸로 끝났지만 아직 1편이나 2편 더 남아있음 이 여행기를 쓰게된 이유 무츠 - dc official App
작성자 : 카라시카레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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