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비트코인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비트코인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한남중녀..묘족 여자는 마법을 부립니다 배터리형
- 데스노트 L이 그시절 찐따들에게 숭배받던 이유 ㅇㅇ
- [나 홀로 여행기, 일본] 3화 (토요코인 호텔을 소개합니다.) 고래상어냠냠
- 싱글벙글 7년전에 있었던 무고사건 레전드.JPG ㅇㅇ
- [A] 팔다리 숨기고 '새'가 된 중국 청년들…학업·취업 스트레스 풍자 정치마갤용계정
- 자신의 거짓말을 들킨 미국인 ㅇㅇ
- 미국장 근황 Herb
- 어제자 프프장 프장 요약....jpg 퀸지사와
- 클라스가 다른 스리랑카 보석 광산 광부들 ㅇㅇ
- 와들와들 코스피, 닛케이 수직운지. 엔화 떡상 이유 총정리 ㅇㅇ
- 그 해 최고의 컨디션과 기량을 가진 선수가 나가는게 맞아요 ㅇㅇ
- 싱글벙글 하마스랑 레바논은 차원이다른이유 ㅇㅇ
- 싱글벙글 스위스인들이 생각하는 스위스 물가 수인갤러리
- 일본 MZ가 자주 쓰는 줄임말 감돌
- 카페에서 배달 대기 하다가 과자 집어먹은 배달 기사.jpg ㅇㅇ
구일본제국의 구축함 "시라츠유"에 대하여
오늘은 1/700 프라모델을 완성한 기념으로 시라츠유급 구축함에 대해 글을 써보려고함 일단 이녀석은 1933년에 건조되었고 일본 천황이 탑승한 전함인 히메이를 호위하는등 나름 중요한 임무에도 투입됨. 호위 임무는 성공. 태평양 전쟁에도 참가하여 수송선을 호위하는 임무를 주로 맡게됨. 그러다가 과타카날 전역에도 참가해서 이카즈치랑 이카츠키와 함게 미군 구축함 "제인"과 잡역선 "세미놀"을 다구리때림 근데 이새끼들이 전투력이 좆병신이여서 다구리를 깠음에도 제인에게 약간에 피해를 주기만하고 격침에는 실패함ㅋㅋㅂㅅ 한편 제인과 같이 있었던 잡역선 세미놀은 격침됨 그리고 시라츠유는 제 3차 솔로몬 해전에도 참가해서 글 앞부분에서 말한 함선 히에이를 호위하는 임무에 투입됨 근데 이때 히에이 상황이 좀 심각했는데 방향타가 고장난 상황이였음 히에이는 너무 많은 피해를 입은 바람에 결국 시라츠유에게 히에이를 뇌격처분 하라는 명령이 내려옴.....근데 곧 취소되고 시구레(시라츠유 동형함)에게 뇌격명령을 시행하는걸로 됨 근데 시구레가 히에이를 제대로 처리했는지는 모른다고함 그리고 같은년 10월 24일에 구축함 4대와 함께 수송대를 지휘하는 기함이 되는데 갑자기 같이 가던 구축함 하야시오가 미군기의 공습을 받아 대격파되자 시라츠유는 하야시오의 승무원들을 구조한후 하야시오를 포격으로 처리함 작전은 실패. 그리고 11월 28일에 좀 큰일이 생기게됨. 시라츠유는 또 수송작전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B-17의 공습을 처맞고 선체가 반갈될뻔함ㄷㄷㄷ사망자도 6명이나 나오는등 위기였음...그런데 기적적으로 승무원들의 침착한 응급수리와 옆에 있던 마키구모함이 도와줘서 겨우겨우 라바울에 도착함 참고로 그때 라바울은 일본이 점령중이였음 수리 받고있는 시라츠유.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나가사키에서 대수리를 받고 나서 겨우겨우 복귀함 엠프레스 오거스타 만 해전중에 좆되는 회피기동으로 적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는 시라츠유. 참고로 저 뒤에 불타는 애는 센다이임. 센다이는 이 해전에서 침몰됨. 잘 싸우고 있었지만 공격으로 방향타가 맛이 가게되고 사미다레랑 충돌사고가 일어남. 어뢰발사관이 망기지고 4명이 전사하는등 피해가 나름 있었음. 그래도 시라츠유답게 잘 빠져나오게되고 그 후에는 계속 수송작전을 전개하고 있었다고함+(무사시 호위) 1944년 일본은 아호작전을 준비하게 되고 시라츠유도 작전에 참여하게됨. 아호작전에는 대규모의 연료가 필요했고 결국 시라츠유는 3대의 유조선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게됨. 그당시 시라츠유는 작전을 잘 수행하고 있었으나........... 급가동을 너무 심하게 한 나머지 호위하던 유조선 세이요마루와 충돌함. 충돌로 인해서 폭뢰에 불이 붙었고 계속 불은 커져만 갔음. 결국 폭뢰의 연쇄 폭발로 심해에 가라앉게됨 같이 있던 구축함 하마카제가 승무원 구출을 도왔지만 143명만을 구출되고 나머지 104명은 전사하게됨.....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ㅇㅇ고정닉
15세기의 체스 대격변 패치, "여왕의 체스"
[시리즈] 체스 옛날 이야기 · 인디언 오프닝과 어느 시골 브라만의 이야기 · 미국체스협회 레이팅 2위를 달성한 살인범의 이야기 · 1000년 전의 이슬람 체스 퍼즐, 만수바(مَنصوبة) · 에반스 갬빗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 · ㅋㅋㅋㅋ 이건 진짜 체스 성유물이네 우리가 즐기는 온라인 게임들은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간격으로 패치가 이루어지고는 한다.그렇다면 체스는 어땠을까?체스의 초기 역사를 살펴보면, 체스는 정말 지독하게 오랜 세월 동안 패치가 없었던 게임임을 알 수 있다.오늘날 인도의 체스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아 알기 어렵지만, 적어도 이슬람 전래 시기(9세기경)부터 15세기까지, 체스는 그 형태를 거의 온전히 유지해온 게임이었다.특히 페르시아 - 아랍 - 유럽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서 거의 동일한 체스가 500년 가까이 플레이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이는 상당 부분 무슬림들의 영향력 때문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이 체스를 페르시아로부터 도입한 뒤 별도의 변형 없이 상당 기간 동안 원형을 유지하며 플레이하였고,이 체스가 그대로 10세기, 11세기경에 유럽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무슬림들이 원작 리스펙에 어찌나 충실했던지, 이들은 대부분의 체스 용어를 번역도 하지 않은 채 페르시아어를 그대로 갖다 쓰고는 했는데,이로 인해 오늘날의 일부 체스 용어들(룩, 체크메이트)은 여전히 페르시아어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이슬람 세계에서는 체스를 거의 변형시키지 않은 반면,유럽인들은 12세기경 일부 마이너 패치를 단행하였는데, 이를테면 이런 패치들이었다.패치 1.유럽 전용 스킨이 추가됩니다.앞으로 코끼리는 비숍, 재상은 퀸의 스킨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물의 성능 변화는 없습니다.)패치 2.폰이 첫 이동에 2칸 이동할 수 있게 됩니다.패치 3.킹과 퀸(재상)은 첫 이동에 기물을 뛰어넘어 두 칸 이동할 수 있습니다. (King's leap)(주로 룩을 킹 옆에 배치한 뒤 다음 수에 킹으로 뛰어넘는 방식으로 활용했고, 이것이 이후 캐슬링으로 발전하였음.)물론, 이것들은 특수룰 수준이었으니 없는 셈 치고 플레이해도 그만이었고,체스는 이때까지만 해도 페르시아와 유럽 사람이 만나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으로 여전히 남아있었다.그러나, 15세기 말,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체스의 1500년 역사상 가장 큰 대규모 패치가 유럽에서 진행되는데...바로 퀸과 비숍의 상향 패치였다.처음에는 그저 로컬룰에 불과했다.폰 정도의 가치 밖에 지니지 않던 쓰레기 기물 퀸과 비숍이 미친듯이 강화되는 개초딩 로컬룰.대각선으로 두 칸씩만 이동할 수 있었던 비숍은 대각선 끝까지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고,대각선으로 한 칸씩만 움직일 수 있던 퀸은 아예 직선과 대각선 끝까지 이동할 수 있는 최강의 능력을 부여받았다.당대 사람들은 이 변형체스를 가리켜 이렇게 불렀다.프랑스어로, "ésches de la dame"스페인어로, "axedrez de la dama"여왕의 체스, 라는 뜻이다.이 변형룰을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ésches de la dame enragée", 미친 여왕의 체스 라고 경멸적으로 칭하기도 했던 모양.이 로컬룰의 정확한 발명자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당대 유럽에서 체스를 플레이한 주요 지역이었던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중 어디 한 곳에서 시작됐다고 추정할 뿐이다.다만, 그 시기는 어느 정도 좁혀질 수 있는데, 1460년들까지의 자료에서는 '여왕의 체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반면,1490년부터 이 새로운 변형 체스에 대한 언급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1470년-1490년 사이 나타났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그런데 이 변형룰은 정말 미친듯한 속도로 퍼져나갔다.새로운 변형룰 '여왕의 체스'를 언급하는 15세기 말, 16세기 초의 문헌들은 전통적 체스와 여왕의 체스를 구분하여 다루고 있는데,16세기 중엽쯤 되면 아예 문헌들이 전통적 체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체스'라는 단어를 '여왕의 체스'를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하기 시작한다.이렇게 '여왕의 체스'는 유럽 체스의 주요 세계, 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를 50년 만에 휩쓸고, 16세기 중엽부터는 영국·독일 등 체스 세계의 변방에도 전파되기 시작한다.말하자면 우르프 모드가 너무 인기를 끈 나머지, 아예 소환사의 협곡을 대체해버린 격이다.이는 매우 오랜 세월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던 게임 치고는 너무나도 빠른 변화 속도였는데,특히 당대의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게임사에서 알아서 패치를 진행하고 패치노트를 올리면 뚝딱인 오늘날의 온라인게임들과는 달리,15세기에는 중앙집권적으로 패치를 진행할 방도가 없었다.FIDE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떤 미친 사람이 나서서 전 유럽에 패치노트를 뿌려댈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지역간 교류가 오늘날처럼 쉬웠던 것도 아니고.그런데 이 근본없는 로컬룰이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퍼져나갈 수가 있었을까?당연한 결론이지만,이는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체스보다 여왕의 체스를 더 재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원래, 체스는 끔찍하게 느린 게임이었다.노패치 기준의 체스 1.0 바닐라를 상상해보자.폰은 한칸씩 찔끔찔끔 움직이고, 비숍은 적을 치려면 한세월을 뛰어가야 하며, 퀸은 사실상 수비 전용 기물이다.그때나 지금이나 룩은 폰 장벽에 막혀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한참 걸리는 기물.그나마 날렵하게 뛰어다닌다고 할만한 기물이 나이트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놈이 괜히 혼자 말을 타고 다녔던 것이 아니다.)심지어 폰을 끝까지 밀어 승급을 시킨다 해도, 이 당시 폰은 똥쓰레기 기물인 퀸으로만 변신할 수 있었다.이 때문에 당시의 체스는 한참동안 서로 폰 구조를 쌓아올리다가 기물들이 한꺼번에 맞붙기 시작하는 형태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으며,게임 속도도 매우 느렸고 무승부 비율도 현재보다 훨씬 높았다.체크메이트도 몹시 힘들었는데, 비숍과 퀸 없이 체크메이트를 내야 한다고 상상해보면 된다.이 때문에, 대부분의 게임은 체크메이트 이외의 별개 승리조건인 bare king으로 판가름 났는데,이는 킹을 제외한 상대방의 기물을 한마리도 남기지 않고 전멸시켜 승리하는 것이다.당연히 그 과정은 몹시 지루하고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앞서 언급한 12세기 유럽에서의 부분적인 룰 개정, 즉 폰의 2칸 이동과 king's leap는 당대 유럽인들이 원하고 있었던 게임의 변화 방향을 분명하게 보여준다.유럽인들은 줄곧 더 빠른 게임, 더 빠른 체스를 원하고 있었고, 새롭게 등장한 '여왕의 체스'는 그들의 수요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주었던 것이다.여왕의 체스는 체스 메타에 극명한 변화를 가져왔다.제일 쓸모 없는 기물이었던 비숍과 퀸이 전장에서 가장 공격적인 기물들로 돌변했다.오늘날의 체스에서 가장 빠르게 상대 진영에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이 두 기물이 추가되면서,체스는 훨씬 더 빠르고, 더 공격적이고, 더 정교한 플레이가 요구되는 게임으로 급격하게 변화하였다.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무엇이었냐면...바로, 스콜라메이트다.새롭게 변화한 두 기물 '퀸'과 '비숍'에 의해 단 4수만에 가능해진 체크메이트.스콜라메이트는 여왕의 체스를 다루는 초기 문헌들에서부터 매우 빠르게 주목을 모았다.여왕의 체스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텍스트 중 하나인 Le Jeu des esches de la dame moralisé(15세기 말 저술 추정)는 벌써부터 스콜라메이트에 대해 언급하며, 놀라워하고 있다."비숍에 의해 보호를 받는 퀸에 의해 4번째 차례에 킹이 메이트 당할 수 있다... 설령 킹이 자기 진영에 있더라도."오늘날에는 너무나도 당연해진 양학원툴의 스콜라메이트가, 당시로서는, 공격적이고 스피디한 새로운 체스의 탄생을 보여주는, 오늘날 '여왕의 체스'의 역사적인 상징이었던 것이다.
작성자 : 김첨G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