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에요 당신, 이렇게나 긴 줄글로 인사하는 건.
잘 지내는지 모르겠네요. 당신 소식 못 들은 지도 꽤 됐어요.
이렇게 글을 쓰는 게 평소같은 것보다 별로인 느낌도 있다지만, 그래도 이런 글을 쓰는 이윤 그저 내 메마른 감성을 조금이나마 적시고픈 것, 그리고 누군가가 다시 흐르는 이 샘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일어나길 바랄 뿐.
겉치레 반 컵에 진심 한 티스푼 타서 잘 저어 당신 편에 놓으면, 그 아찔한 진심의 향이 강하게 묻어나 우리의 코끝을 찌르겠지만 그건 내 착각일 뿐, 당신은 내 겉치레를 미워하는걸요. 고질병은 떨어질 맘이 안 뵈어요.
당신을 떠나보낸 후로 벚꽃이 몇 번이나 왔는지조차 셀 수 없어요. 당신이 없어서 내 시계는 흘러가지도 못하고 당신의 능한 손길에 고쳐지기만을 기다리며 고장난 초침을 딸깍거릴 뿐, 이미 계절의 순환도 인연의 순환도 전부 멈춰 버린 내 삶이에요. 시계가 움직이지 못하니 내 성장도 멈춰 버렸어요. 어른의 옷을 입고 어른 취급을 받지만 나는 아직 당신 품에 안기어 당신의 그 새하얀 가운에 짙은 눈물자국을 남기는 어리광쟁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걸요.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던 누군가의 매정한 이야기도 지나치는 이가 무심하게 띄운 말일 뿐, 당신이란 사람은 원반 같아서 걸어도 걸어도 빠져나가지 못하는걸요. 마치 내 인생 전체가 당신 위에 그려진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신, 나는 당신을 보러 가고 싶어요. 추운 겨울 새벽 당신이 뜨거운 입술 자국을 남기었던 그 아이도 이젠 자라서 봄의 상큼함과 여름의 시원함 그리고 가을의 상쾌함, 결국엔 겨울의 시큰함마저 모두 맛보아 버렸는데.
이젠 그 아이도 당신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는걸요. 언젠가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한 거,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내가 당신을 그리는 것은 당신이 내게 찍은 낙인 때문인가 봐요. 난 당신에게 구속되었으나 당신에게 버려져서 끌려가지조차 못한 채로 이곳에 남아 당신의 꿈을 꾸다 깨어나 눈물 한 방울을 찔끔 흘리고 잠결에 또 슬쩍 닦아내고, 결국 난 시간의 순환 속에 갇혀 버린 신세가 되었답니다.
원망하지 않아요. 우리 올해는 다시 만날 수 있겠죠. 아니라면 내년에는. 그것도 안 된다면 적어도 이번 세기에는, 나 죽는 날에라도. 당신을 보면 난 눈을 편안히 감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달려와서 부디 내 밧줄을 풀어 줘요. 날 구할 수 있는 건 누구도 아니고 오직 당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냥 당신에게 어리광부리고 싶은 마음이 오랜만에 들어서 잠도 이루지 못하고 당신이 싫어하는 겉치레 한 잔 내려 보았어요, 그래도 그 씁쓸한 가식 사이에서 내 진심의 향이 느껴지길 바랄 따름이에요.
그저 다 잊고 살아가 줘요. 난 증오받아 마땅한걸요. 괜찮아요, 눈물이 멎지 않는단 것만 빼면 그럭저럭 살 만 하니까, 내 죗값은 내가 치르는 게 옳아요. 추방자의 마지막 한 마디가 메아리쳐 당신에게 닿기 바라며.
이천스물 넷째 해 유난히 추워진 가을바람에 당신의 목을 걱정하며, 사랑과 진심으로 보냅니다.
오늘 밤엔 우리 셋이 함께 있었던 그 시절의 꿈을 꿀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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