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벌어진 1억 원 현금 가방 날치기 사건의 용의자가 범행 8개월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그동안 청각 및 언어장애인으로 구성된 전문날치기단과 일반 날치기 조직의 범죄 수법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수사를 진행해 왔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달 18일 서울 용산구의 한 상가에서 용의자 조모 씨(35)를 검거했다고 5일 밝혔다. 경찰은 조 씨의 자백을 끌어내는 데 주력하는 한편 달아난 공범 이모 씨(38)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행방을 쫓고 있다. 조 씨 등은 청각장애인이 아니었다.
이들은 올해 1월 22일 보안업체 직원이 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 현금지급기에 입금하기 위해 들고 가던 돈 가방을 날치기해 달아났다. 경찰은 사건 직후 청각 및 언어장애인 날치기단 전과자들을 주요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수사를 해왔다.
경찰 관계자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오토바이 날치기 사건의 주요 용의자들 중 청각장애인이 적지 않았던 점에 주목해 수도권 일대에서 활동하는 청각장애인 4개 조직을 수사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소리에 대한 공포감이 일반인보다 적어 빠른 속도로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 있는 데다 수화를 통해 먼 거리에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해 범행을 저질러 왔다. 실제 수사 과정에서 서초경찰서는 서울, 경기 지역에서 교회 헌금 등 8억 원을 오토바이로 날치기한 청각장애인 등 날치기 조직원 23명을 잡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용의자가 청각장애인이 아닌 일반인일 가능성도 열어두기로 했다. 범행 수법이 청각장애인 날치기단의 특징과 맞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일반인 날치기 조직과 청각장애인 날치기 조직의 범행 수법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청각장애인들은 주로 3인 1조로 활동하는 반면 일반인은 2인 1조로 헬멧을 착용하고 신원을 철저하게 가린 채 활동한다. 청각장애인들은 ‘포수’(오토바이 운전자)와 ‘치기’(돈을 낚아채는 역할), ‘찍새’(은행 안에서 범행 대상을 고르는 역할) 등 3개 역할로 나눈 뒤 찍새가 지목한 사람을 상대로 재빨리 범행을 마친다. 하지만 포수와 치기로 구성된 일반인 조직은 은행 앞에서 장시간 대기하다 현금을 들고 나오는 사람을 뒤쫓아 가 빼앗는 수법을 주로 쓴다. 터미널 날치기 사건 용의자 두 명은 당시 검은색 상하의를 입은 채 헬멧 등으로 얼굴을 가렸다.
범행 현장 인근 폐쇄회로(CC)TV에 찍힌 범인들의 오토바이에 백미러가 없었던 것도 수사방향을 돌려놓는 계기가 됐다. 뒤에서 오는 차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들은 백미러가 없으면 빠른 속도로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서초서 측은 “고속버스터미널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미제(未濟) 사건들도 덩달아 해결했다”며 “앞으로 도심 일대 오토바이 날치기 일당을 근절하는 데 수사력을 모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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