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용서해주세요. ‘넌 아빠에게 당했다’고 저를 세뇌시켰던 ‘할아버지’의 말에 저도 모르게 그만….”

지난 14일 오후 춘천지검 영월지청의 한 조사실. 자신을 수년간 성폭행했다며 경찰관인 친아버지를 거짓 고소했다가 자작극이었음을 실토한 A(18)양은 아버지 B(45)씨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친딸을 성폭행한 인면수심의 아버지로 몰려 동료들의 손에 3월24일 구속, 결국 1주일만에 풀려났지만 해직과 복직을 반복하며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던 B씨는 차마 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B씨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딸을 성 노리개로 삼고 그것도 모자라 딸의 손으로 자신을 거짓 고소하도록 조종했던 무속인 이모(56)씨에 대한 증오심이었다. 순진한 아이를 처참히 짓밟고 한 가정을 산산조각 내버린 이씨는 2년 전 이혼한 아내(41)의 정부였다. 그런 이씨를 A양은 너무도 다정하게 ‘할아버지’라 불렀다.

검찰 관계자는 “A양은 도박과 외도를 일삼았던 아버지와 부부싸움이 잦았던 가정에서 자라면서 애정결핍 상태였고 3년 전 어머니의 소개로 알게 된 이씨가 마치 아버지처럼 자신을 보호해주면서 이씨를 ‘할아버지’라 부를 정도로 따르게 됐다”며 “이씨는 A양에게 ‘부족한 기를 채워주겠다’는 명목으로 신체적 접촉을 시도했고 강원 일대를 수개월간 함께 여행하며 A양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해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긴 어렵지만 이는 이른바 ’차일드 그루밍(child grooming)’이라 하여 폐쇄적인 상황에 놓이거나 정신적으로 미약한 미성년자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친밀감을 쌓은 뒤 정신적으로 종속시켜 범죄 대상자로 삼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수차례에 걸쳐 A양을 성폭행하고 합의금을 받아낼 목적으로 A양을 사주해 3월15일 B씨를 허위 고소한 혐의(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위반 등)로 이씨를 구속기소했다고 20일 밝혔다. A양은 무고혐의로 기소돼 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됐다. (문화일보 4월4일자 6면 참조) 또한 경찰청은 지난 15일 부실수사 책임을 물어 이 사건을 수사했던 강원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계 소속 경찰관 4명을 징계조치했다.

윤정아기자 jay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