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놈들이 분별없이 마구 성곽을 헐며

퇴락할 데로 퇴락한 전주 풍남문.

녹두장군 전봉준도 그 문 지나 푸른 혁명 부르짖던 호남의 첫 관문. 호남제일성.



그 문 앞 온 나라 백성들 먹여살리던, 전라도 피땀같은 쌀들이 모두 모여들던

전주 남문시장. 60년대 초까지 지방 유일의 도매 시장이 열리던 호남 제일의 시장.

지금은 맛이 변한 그 시장 그 시절의 칼칼한 순대국밥. 조점례 남문 피순대.

하루에 따악 삼백 그릇만. 지방 순시 온 대통령 박정희에게 욕 퍼붓던

욕쟁이 할매의 콩나물 국밥이 있는 도시.

주머니 가벼운 이 도시의 수많은 문인들 그 국밥집 이름을 삼백집으로 명명.


돈푼깨나 만지던 시골 지주들이

집 사서 식모붙여 아이들 유학보내던 그 도시.

그 동네 이름. 전주한옥마을 교동, 풍남동



상고라도 우습게 보지마라. 그 시절 상고는 지역 수재들이 모여들던 곳.

그 상고 전주상고.

그 상고의 국어선생. \'꽃덤불\',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의 시인 신석정.



교과서에서 한번 쯤 보았을 시조 시인 \'난초\'의 주인공 가람 이병기 선생.

청년 이병기가 대학 교수로 청춘을 다 바쳤던 그 대학이 있는 도시.



광주가 그림이라면  전주는 글씨.

그 전주 글씨의 대가. 강암 송성용이 온종일 먹갈며 글씨 쓰던 그 도시.

싸구려 여인숙에도 반드시 그림 한폭은 걸려있는 예술의 도시.

하여 어딜가나 묵향 자욱한 도시. 나라 안에 이름난 수 많은 \'글쟁이\'와 \'환쟁이\'들과 소리꾼들의 도시. 그 이름 전주.



박경리의 \'토지\'와 비견되는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고향, 뼈 묻힌 곳.

\'원미동 사람들\', 영화 은행나무침대의 원작소설 \'천년의 사랑\'의 작가 양귀자가 서점을 하는 그 곳. 그 서점, 홍지서림.

정읍 출신 시골소녀가 버스를 타고 나와 큰 서점에서 책을 고르던 그 도시.

그 소녀의 이름.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를 동경하던 고창 소녀. 문학의 꿈을 품고 유학을 왔던 그 도시.

그녀의 이름, 작가 은희경.

\'전라도 실핏줄\' 같은 섬진강을 사랑하는 그가 술 한잔 기울이며 삶을 논하는 도시. 그 시인 김용택.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경북 예천 시골 청년, 이 곳에 취해 이 곳에 터를 잡다. \'연탄재 시인\' 안도현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고 말수 적던 효자동 안경가게 둘째.

아시아를 휘어잡은 요정이 되다.

그 소녀의 이름, 소녀시대 태연.


그리고...

너무 빨리 떠나가버린 배우 장진영이 그토록 사랑하던 고향.

남몰래 연인과 함께 간간이 찾던 호남 최초의 서양식 건물, 전동성당.

미처 다 꽃 피우지 못한 여배우의 회한이 스민 곳.

별이 되어버린 그 여배우 지금도 그리워 할,

그 이름,   전. 주.



ps. 말로만 들었던 우리집 윗층 누나. 할아버지 친구 분 따님.
     추석 때 설 때 모자 푹 눌러쓰시고 엘레베이터 올라가곤 하셨죠. 
     멀리서 뵈고 체면차린다고 인사도 한번 못드렸네요.
     그 곳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않으시길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짤방은 풍남문, 신석정 시인의 마지막 수업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