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성폭행 가해자로 불리는 박정호 입니다.
저의 진실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1. 저에 대한 처분사유는 2004년 5월 3일 영남루 사건에 포함된 혐의이고,
그 외에는 다른 혐의가 없습니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자료를 보면 2004년 5월 3일 영남루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
제 이름은 없습니다. 저는 이 자료가 누구것인지는 모릅니다.
2. 저는 경남도민체전 참가로 인해 2004년 5월 2일부터 4일까지 김해에 있었습니다.
1차 글에는 5월 3일부터 5일이라고 했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니 5월 2일부터 4일까지 였습니다
댓글에서 선수로 출전한 걸 증명해줄 사람 없냐고 해서 저와 함께 참가했던 많은 학생 선수,코치님을
찾았고 저와 2박 3일 동안 같이 있었다는 것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5월 2일부터 4일까지 김해시에만 있었다는 진술과 녹취는 모두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유튜버와 댓글러들의 공격으로 신변보장이 확인되지 않고 있어 선뜻 나서서
신분을 밝히고 얘기해 줄 수 있는 분은 안계셨습니다.
믿을 만한 방송국이나 기관에서 연락이 오면 모든 자료 제공하겠습니다.
제가 글을 쓰고 난 이후에 테니스,정구,롤러 종목이 비로 순연되었다는 신문기사에 제 말이 거짓말이라는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제가 찾은 신문기사입니다.
비가 와서 경기가 조금 순연됐지만 도민체전은 진행됐다는 기사입니다. 3일자 기사에는 3개 종목이 순연되어18개 종목이 진행되었다고 나와있고 4일자 기사에는 3일에 21개 종목이 진행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경기시간이 조금 늦어진다고 제가 그 사이에 밀양에 다녀올 수 있는 상황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경기일정표도 있고 김해시 선수가 묵는 숙소현황도 나와 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데 테니스 대회에 어떻게 나갔냐는 댓글도 달렸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것 맞습니다. 아버지는 2002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재가하셔서 저는 교동에서 누나, 매형과 함께 거주했습니다.
제가 테니스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그 당시 밀양에 있는 고등학교에 테니스부가 없었습니다.
당시 학교 체육부장 선생님이 운동신경이 좋은 학생들을 선발했고, 저와 친구가 테니스 선수로 추천되어 출전했던겁니다.
학교 친구 아버지의 테니스채를 빌려 코치님한테 3일 정도 강습을 받고 시합에 나갔습니다.
도민체육대회는 엄청난 선수들만 출전하는 그런데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5월 2일 밀양에서 단체버스를 타고 김해로 이동했습니다. 버스 타기전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모두 단체복을 나누어 주어서 단체복을 받고 버스에 탔습니다. 김해 시내에 있는 숙소에 배정 되었고 그방은 온돌방 이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그때 테니스부, 다른종목, 다른 학교 대표 선수들 5명 정도 함께 방을 사용 했습니다.
저는 5월 3일에 친구와 함께 복식으로 테니스 대회에 나갔지만, 잘하지는 못했고, 입상하지 못했습니다.
3일 저녁에는 숙소 근처 식당에서 모두 함께 삼겹살을 먹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5월 4일에는 다른 종목 시합이 있어서 벤치에 앉아 시합을 보면서 응원했습니다.
저는 동료선수들과 함께 5월 4일에 밀양으로 돌아왔습니다.
3. 제가 검찰 조사 받을 때 5월에 도민체전에 테니스 대표로 나갔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학교 체육선생님이나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물어만 보더라도 바로 확인되는 상황이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전혀 조사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체포되고 조사받은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저는 몇몇의 친구와 함께 피해자들을 만나서 한 두 번 본 적은 있지만 그때 얘기하고 놀았던것만 기억나고, 언제 어디서 놀았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제가 피해자에게 성폭행 성추행 폭언 폭행 강간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경찰 조사받기 전까지는 피해자에게 집단 강간, 성폭행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2004년 12월 6일 저녁 7시쯤에 친구집에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 다른 친구가 연락이 와서 집 앞에서 잠시 만나자고 했고, 그때 같이 나가보니 형사와 친구가 함께 있었습니다.
밀양 공설운동장에서 친구들 모두 버스를 타고 울산 남부경찰서로 갔습니다.
그때 피해자를 만나 본 학생들을 전부 모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이미 기자들이 모두 와 있었고, 저는 경찰서 바닥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경찰 조사 받을 때만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조사를 받을 때, 경찰한테 쌍욕도 많이 듣고 뺨도 많이 맞았습니다.
왜 맞았는지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그때 제가 정말 벌벌 떨 정도로 무섭고 힘들었던 것만 기억납니다.
2004년 12월 6일 제가 집에 가지 않고 연락이 되지 않아서 큰누나가 집에서 계속 저를 기다렸고,
12월 7일 아침에 누나가 학교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누나가 엄마에게 연락을 해 울산 남부경찰서로 가라고 했고, 그때 엄마가 울산 남부경찰서로 갔습니다.
경찰은 엄마에게 저에게 혐의가 없다고 얘기하여, 당시 엄마와 누나는 제가 경찰 참고조사를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찰은 엄마에게 저에대해 조사를 더 해야하니 먼저 집으로 돌아가라고 얘기하였고 엄마는 조금 진정한 다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경찰은 조사를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과 유치장에 들어가는 학생으로 나누었는데, 저는 처음에 집으로 돌아가는 부류에 속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조사했던 경찰이 아닌 다른 경찰이 갑자기 유치장에 들어가는 학생 중 한명을 불러내 집으로 돌아가는 부류에 넣고 저를 유치장에 들어가는 학생 부류에 넣었고, 이걸 몇 번 반복하다가 결국 유치장에 들어가는 학생 부류에 넣었습니다.
그 경찰이 왜 그렇게 했는지 지금도 알지 못합니다.
4. 그 이후 1호 3호 처분을 받았습니다.
법원 재판 같은 걸 받았고, 그때 1호 3호 처분을 받았습니다. 당시 제가 왜 처분을 받는지, 1호와 3호 처분이 무엇인지도 얘기해주지 않았습니다. 주변 어른들은 여론이 좋지 않다. 그냥 가만히 있어라. 그래야 빨리 끝난다고만 얘기를 했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무섭고 두려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 밀양 성폭행 사건이 언급될 때마다 억울했지만, 저에게도 이 사건은 기억하기도 싫은 아픈 과거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들춰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생각하기도 싫었습니다.
사람들은 진실에 집중하기보다는 44명이라는 숫자에 집중했기 때문에 저의 진실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가 받은 판결문은 없습니다.
검찰이 부산지방법원 가정지원장에게 소년보호사건으로 송치한 서류만 있습니다.
저는 이번 일로 제 사건을 확인했는데 거기에 1호 3호 처분이 적혀 있고,
위에서 보여드린 저에 대한 처분 사유가 적혀 있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20년 동안 벗어나려고 했던 제 과거에 대해 진실 밝히기를 해야 하는데, 처분사유를 확인하는 순간 정말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해명하는게 막막하고 이미 20년이 지나버린 지금 제가 뭘 할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유튜버들의 근거 없는 루머에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더 막막합니다.
유튜버들은 제가 처분을 받은 사실만 공개하면서 저를 비난할 뿐이고,
제가 어떤 사유로 처분을 받았는지는 공개하거나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저에 대하여 얘기해 줄 수 있는 증인들이 있지만 본인들이 지켜야 할 가정이 있어, 막무가내로 비난을 받는게 두렵다고 합니다. 신변보호가 되는 정식절차를 통해서는 증언을 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5. 그 당시 가정형편상 변호사를 선임해서 이의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저희 집은 밀양에서 카센터를 운영했는데 97년도에 IMF로 부도가 났고, 아버지는 98년도에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오랜 병원생활로 저희 집의 형편은 더 안좋아졌고, 아버지는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02년 7월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이후에 어머니는 재가를 하셨고, 저는 이 사건 당시 누나 매형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밀양에 변호사도 한 두명 정도 밖에 없었고, 아는 변호사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지금이랑 상황이 많이 달랐습니다.
지금 찾아보니 국선변호사 국선보조인을 둬야 한다고 하는데 이건 2007년도에 생긴 겁니다.
저때는 그런게 없었습니다. 정말 억울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저에 대한 혐의가 뭔지 친구들에 대한 혐의가 뭔지도 구체적으로 잘 몰랐습니다.
6. 그런데 최근 유튜버를 통해 신상이 공개되고 협박을 받고 있습니다.
유튜버가 가족들 신상 공개하겠다고 하면서 메일로 연락하라고 해서 연락달라고 해서 메일보낸다는 메일을 보냈는데, 영상 공개사죄문을 보내달라 안보내면 누나들을 공개하겠다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메일에는 누나들 전화번호와 가게가 나와 있었고 누나들의 사진에는 조카들의 운동회 사진과 졸업식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걸 보는 순간 저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저는 하지도 않은 일로 공개사죄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서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저와 저희 가족들을 조롱하고 협박하는 메일을 다시 받았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7. 저 포함 가족들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고 SNS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쌍욕이 적힌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저와 가족들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해촉처리 되었고 누나들은 가게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살아갈길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너무 가난하고 무지해서 보호처분 받고 이의를 안한 게, 과거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애써 잊고 살려고 노력한게, 이렇게까지 저와 가족들을 힘들게 할지는 몰랐습니다. 댓글에서는 왜 재심청구 안하냐고 합니다. 재심청구 알아봤습니다. 소년보호사건은 재심청구 규정이 없다고 합니다. 재심청구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8. 지금까지 억울해도 참고 있었지만 진실을 밝히려고, 이렇게 다시 긴 글을 썼습니다. 언론이나 검증된 기관을 통해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진실을 밝히고 싶습니다.
9. 위에 적은 내용과 첨부한 자료들은 절대 위조나 거짓 없음을 맹세합니다.
저희 이 억울함을 단 한분이라도 진심으로 들여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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