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서
기계식 키보드 스위치를 윤활하는 원래의 목적은 '팅팅대는 스프링 소리'를 줄이기 위함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공장윤활이 일반화되어버린 요즘에 와서는 사실 원래의 목적은 이미 달성되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공장윤활이 아닌 본인 스스로 윤활을 하는 행위에 대한 목적은
'본인이 원하는 키감이나 소리'를 맞추고자 하는 쪽으로 기울었음.
물론 공장윤활의 퀄리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던가, 공윤의 상태가 영 안좋은(과윤활 등) 스위치의 경우엔 잡소리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잡아주고자 재윤활을 해주는 경우도 여전히 있지만
공장윤활의 기술도 점점 발전해왔기 때문에, 예전처럼 떡공윤이 되어있는 스위치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임.
이를 위해 사람들은 점점 다양한 주도와 점도를 가진 윤활유/그리스를 찾게 되었으며
개인적으론 크라이톡스든 슈퍼루브든 몰리코트든 Nyogel이든
성분만 잘 보고 쓰면 스위치 윤활하는데 있어 성능적으로는 다를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다양한 주도와 점도를 제공하면서도 안정성 등이 탁월한 크라이톡스가 보편적인 윤활유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음.
하지만 세상에는 이러한 일반적인 방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쉽고, 더 저렴하고,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
또라이 선구자들이 있었으니...
오늘의 주제, '왁스로 윤활하면 어떻게 될까? 가 되시겠다.
1. 본
사실 왁스로 윤활을 하는 방법 자체는 이미 예전부터 있어왔던 방법임.
실생활에서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례를 들어보자면, 바지나 상의에 달려있는 지퍼가 잘 움직이지 않을 때
양초로 좀 문질러준 후 다시 움직여보면 다시 정상적으로 풀리고 잠기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지.
그리스나 오일과는 달리, 먼지나 오염에도 강하면서도 (습기가 없어 비교적 잘 달라붙지 않음)
한 번 적용시켜두면 반영구적으로 지속되기 때문에
위 양붕이는 이러한 성질을 이용하여, 오래된 알프스 스위치에 파라핀 왁스를 코팅해주는 모딩방법을 발견해낸거임.
하지만 제목에서부터도 알 수 있다시피, 이 모딩방법은 '윤활'보다는 '복원'에 초점이 맞춰져있는 방법임.
알프스 스위치는 체리에 비해 좀 더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으며, 구조 상 오염이나 이물질에 취약한 편이라
오래 사용하거나 방치된 경우, 스위치 내부로 습기와 먼지가 침투하여 소위 'Binding'이라는 현상을 일으키게 되는데
스위치 스템이 많이 마모됐거나, 이물질이 스위치 표면에 많이 달라붙어서 스템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는 것을 의미함.
그래서 위 영상처럼 해주면, 바인딩 현상이 없어지고 새 스위치처럼 컨디션이 돌아오기 때문에
윤활보다는 복원에 초점이 맞춰져있다고 한거임.
근데 나는 ㅈ또 그런거 모르겠고
그냥 '체리 스위치에 하면 어떨까' 가 궁금했고
궁금한건 못참기 때문에
즉시 실행에 옮기게 됨
위 영상에 준비물이나 방법은 다 나와있기는 하지만, 여기에 글로 다시 적자면
<준비물>
- 신선한 스위치
- '파라핀' 양초 1g. 밀랍양초는 파라핀에 비해 마찰계수도 높고, 가격도 더 비싼데다 찐득찐득 달라붙는 성질이 있어 사용해선 안됨.
나는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2,000원 짜리 향초캔들 썼는데, 1,000원짜리 티캔들도 상관없음. 뭐가 됐든 파라핀 성분이 최대한 높은걸 쓰셈.
- 유리병. 파라핀과 스템이 들어갈 크기면 됨. 이것도 다이소에서 2,000원이면 살 수 있음.
나는 유리병 남는게 없어서 그냥 초음파세척기 그대로 사용함
- 인내심 (가장 중요함)
처음엔 삼신흑을 실험대상으로 하려고 했으나, 이거 손이 좀 가는 작업일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서
필름작을 다시 해줘야하는 삼신흑은 제외하고 SWK 양축을 제물로 삼기로 함.
사실 뭐 귀찮은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고
양축같은 SWK 스위치들은 워낙 날카롭고 하이피치의 사운드를 들려주기 때문에
그리스로 재윤활을 해주게 되면 원본 특성이 많이 지워진다고 해서 그냥 순정상태로 쓰는 것이 권장되는데
순정 상태로 써도 솔직히 뭐 나쁘진 않지만, 가끔 불규칙적으로 '서걱' 하는 소리가 나는 개체들이 있어서
약간 울며 겨자먹기로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그럼 그리스가 아닌 파라핀으로 참교육을 시켜주면 되겠네' 하는
아무 근거없는 생각이나 하는 주인을 만난 죄로 이번 실험 대상에 자원입대 하게 된 것임...
일단 지난번에 이미 이 양축은 공장윤활을 지우고 건식윤활이 되어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파라핀모드에 앞서, 깨끗하게 목욕재계를 시켜주도록 하겠음
Before
스템 슬라이더 부분이 건식 피막으로 덮여있음
세척이 완료된 스템은 어차피 곧 파라핀과 함께 다시 물에 입수할 예정이므로 굳이 건조해줄 이유는 없음
세척이 완료되었으면, 그대로 모아두고 준비해둔 양초를 꺼내주자.
필요한 파라핀 중량은 1g이라고 되어있는데, 나는 전자저울이 없는 관계로 그냥 눈대중으로 잘라내주기로 함
뭐 대충 잘라내줬는데, 딱 봐도 1g이 넘어보인다.
하지만 뭐... 어차피 그리스나 오일처럼 과윤활될 껀덕지는 없으니 괜찮을 것 같음.
근데 이렇게 조각들을 잘라내놓고 나니까, 이거 어째 생긴게...
YEAH SMOKE WEED EVERYDAY
FUXK POPO BETTER GET GOIN
파라핀의 녹는 점은 성분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충 65도 정도면 다 녹는 수준이니
이제 따뜻한 물을 준비해주자
이런 온도계 달린 주전자 하나 구비해두면 좋음
난 작업하는 환경이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져있는 곳이었어서 한 80도까지 가열했는데, 각자 환경에 맞춰 알아서 가열하셈
원래는 유리병에 다 때려박고 흔들어줘야하지만
나는 남는 유리병이 따로 없기도 하고, 어차피 초음파세척기라는게 진동을 주는 거니까
내 오른손 보다는 그냥 기계를 믿기로 했음
초음파 세척기 없으면 걍 유리병에 다 때려박고 흔들어주면 됨.
그러면 이렇게 물에 파라핀이 녹아드는 모습을 볼 수 있음
압력밥솥 취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10분 돌려줌. 솔직히 그 이하로 돌려도 될 거 같긴 해.
4분 지난 후에 어떻게 되어가나 궁금해서 열어봤는데 색깔이 우윳빛으로 변했음.
이게 파라핀 입자가 아주 고운 상태를 유지하면서 용해되지 않고 물에 담겨져있는 상태인데, 이걸 '현택액'이라 부름. 영어로는 Suspension
아무튼 이 상태가 되면, 저 입자들이 스템에 달라붙을 준비가 되었다는 상태라는 말임.
이 상태 그대로 남은 시간 6분동안 유지해줬음.
궁금해서 한 번 만져봤는데 손에 바로 파라핀이 달라붙음
성능 확실하구만!
초음파세척기 작동이 끝난 후, 지체없이 바로 건져서 물에 린스해줌
주의할 점은, 물의 온도가 떨어지면 현탁액이 그대로 굳어버려서 스템이 함유된 양초가 되어버리는 수가 있으므로
손으로 흔들던 초음파세척기를 이용하던 끝나면 시간끌지 말고 바로 건져서 세척해줘야 함
린스해준 후에 확대해서 보면 물방울이 잘 맺혀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음
파라핀이 표면에 고루 묻었다는 의미겠지?
대충 물기를 털어내고, 이제 건조시켜주면 되는데
여기서도 주의할 점이 있음
뭉친 상태 그대로 냅두면 즈그들끼리 달라붙기 때문에
귀찮더라도 이렇게 뭉친 애들을 떼어내줘야 함
이건 뭐 스템 러브버그도 아니고, 좀 징그럽네
일일히 다 떼어내준 다음 말리면 됨
요즘같은 날씨엔 창가에 두면 금방 마르기는 하는데, 하필 이거 작업할 때 비가 내려서 습도가 높은 상태라
그냥 에어컨 틀고 실내에서 건조시켜줌
분리해서 큰 물방울 묻어있는거 대충 털어주고 저렇게 키친타올 위에 올려주면 한 4-5시간이면 다 마름
스템이 마를 동안, 파라핀으로 뒤덮여버린 초음파세척기를 닦아줬음.
존나 미끄럽고 잘 닦이지도 않아서 애 좀 먹음. 걍 PB1 넣어주고 15분 돌린 다음 칫솔가지고 박박 닦아냄
스템이 전부 건조된 이후 모습. 여기서부터 좀 문제가 있었는데...
위에서 눈대중으로 대충 파라핀을 때려박았던게 아무래도 양이 좀 많았던 모양임.
일부 스템의 양 슬라이더 부위에 파라핀이 좀 두껍게 덮힌 애들도 있고
스템폴 쪽에 동그랗게 링 모양으로 파라핀이 달라붙은 애들도 있었고...
이런 애들을 그대로 결합시키면, 결합이 안되거나 파라핀이 갈려서 지랄날게 눈에 보이듯 선했기 때문에
존나 귀찮지만, 핀셋이랑 미세면봉을 이용해서 눈에 보이는 파라핀 덩어리들을 제거해줌. 진짜 이 작업이 존나 귀찮고 시간도 오래걸렸음.
특히 스템폴 부분을 중점적으로 제거해줌. 바치린데 파라핀이 스템홀에 들어가서 짓뭉개지면 진짜 개노답이니까...
아무튼 이 좆같이 지루하고 짜증나는 고된 반복작업을 90번 마쳤다. 꼬박 하루 걸렸네.
아무튼 다 됐으니, 이제 성능 시험 해봐야겠지?
그럼 이제 타건해봅시다
몽타주
알루보강 샌드위치마운트
SWK 양축 (파라핀모드)
노폼
[몽키타입]
음...
뭐 일단 매끄러운거 OK
피치도 기존 양축의 하이피치 잘 유지가 되어줌. OK
근데
나도 살면서 과윤활 조져본 스위치가 적지는 않지만
지금 얘처럼 쩝쩝이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음..
무슨 장판 들러붙는 소리가 나네 시발 ㅋㅋㅋㅋ
쩝쩝이 정도가 아니라, 진짜 '쩌억! 쩌억!' 들러붙는 소리가 남.
다 그런건 아니고 일부 개체에서 발생하는데, 아무래도 파라핀이 유독 많이 들러붙은 개체인거 같음
뭐 파라핀이니까 마찰이 계속 가해지면 점점 얇아지겠지만...
진짜 도저히 못참겠음. 이건 아니야
2. 결
애미
알프스에나 하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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