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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여행 동안 들쑤신 규슈.
오무타, 아소 산과 그 지류(야마가, 기쿠치, 히타)는 진짜 시간이 없어서 못 간거지만 미야자키 현은 의도적인 패싱이 맞다. 뚜벅이 난이도가 불가능에 가까운 미야자키 현을 구석구석 가지 못할 바엔 다른 곳을 뚫는게 나았기 때문.
원래 오이타 현 탐험할 때 남큐슈 패스를 들고 있었어서 극적 화해가 이루어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때 못 갔기 때문에 앞으로도 가지 못할 것 같음.
어쩌면 향후 3~5년 정도의 가까운 미래에 미야자키에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운전 좋아하는 친구가 내 무용담에 관심을 보였기 때문...
우시부카에서 나가시마로 가는 페리는 거의 15분이면 운항이 끝난다. 나가시마는 백악기 화석과 죠몬/야요이 시대의 고분이 많은 걸로 유명한 섬이라, 아쉽게도 둘러볼 생각은 없었음. 언젠가 고고학에 관심이 꽂히면 돌아오지 않을까?
이즈미. 올해 10월이 꽤 더웠던 데다가 아직 11월은 초반이라 두루미를 볼 수 있을까 꽤 조마조마했었다. 그래도 벌써 6000마리나 모여 있었어서 재밌게 봤음.
피크를 찍으면 평균적으로 약 10000마리의 두루미가 1km^2 남짓의 논밭에 모여든다고 한다. 참고로 이즈미를 월동지로 삼는 주요 두루미인 흑두루미는 총 개체수가 17000마리 정도라서 이곳에만 종의 60% 정도가 전부 모여드는 수준이라고 함(나머지 30%는 순천만에 모여드는데, 굉장히 최근에 생긴 변화로 2022년에 이즈미에 조류독감이 창궐하면서부터 두루미들이 순천으로 이사하고 있다고 함).
이즈미의 연말 마츠리인 제22회 '구이구이마츠리'를 우연히 마주치기도 했다. 막 에도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적인 마츠리가 없는 동네에서도 나름 활기찬 축제를 벌인다는 걸 알게 됐었음. 술 이상하게 먹던거 때문에 친해진 가족이 가라오케 경연 대회를 우승해서 뭔가 기분 좋았다.
츠나기. 여러가지 문제로 비리비리한 생태의 시골 동네지만, 개인적으로는 소박하게 구경하기 딱 좋았던 곳이었다. 츠나기 미술관 자체도 나름 볼륨 있고 미술관 뒤의 초와간(重盤岩) 정상까지 올라가는 모노레일도 재밌었고, 츠나기 온천도 꽤 퀄리티가 좋았음.
일붕이 픽인 아카사키 해상초등학교. 시간 최적화를 위해 유료 치트인 택시를 사용해 찾아갔다. 물에 떠있는 듯한 모습을 보고 싶으면 학교에 갈 게 아니라 아카사키 지구 읍내나 해상초등학교가 내려다 보이는, 오는 길의 언덕에서 봐야 함. 나는 유료 치트를 쓴 덕분에 택시 기사님이 전망 잘 보이는 곳에 계속 내려줘서 구경 잘했음...
유노코 온천. 사진에 보이는 초거대 료칸 단지는 전부 폐업한 상태지만 사실 사진 반대편에는 정상적인 온천촌이 잘 운영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모로 괴상한 풍경이었음. 온천을 이용해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사시키. 시간 효율 관리할 겸 사시키 성터가 보고 싶어서 가본 곳인데, 알려지지 않은 성치고는 꽤 잘 만들어져 있었음. 축성의 달인 가토 기요마사가 쌓아올린 성답게 올라가기 졷같게 짜증나고 변방 성 주제에 더럽게 컸다. 큰 특징은 없다만 무난하게 좋았던 동네.
참고로 꽤 큰 규모의 사무라이 리인액트먼트 팀이 이곳에 있는 듯하다. 사시키의 초등학교 운동회 개막 행사로도 초대되서 공포탄 발포를 할 정도로 유명 인사들인 듯.
미나마타. 미나마타병이라는 과거의 상처와 의도된 건지는 몰라도 전반적으로 회백색으로 칠해진 건물이 인상깊은 도시였음.
과거의 상처라고는 했지만 첫 증상이 보이기 시작한 1950년대부터 병으로 인정받아 조치가 취해진 1970년대까지 일대에 광범위하게 퍼지던 공해병이었고, 사실상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아직까지도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과 병에 대한 재활 시설들이 간간히 보인다는 점이, 미나마타 병을 단순한 역사와 법의학의 소재로 보고 있던 내게 현실감을 깨우기도 했음.
당시 문제되었던 가해기업인 신일본질소비료(소위 チッソ)는 현재 일본신질소(JNC)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공장 단지들이 도시에 남아 가동되고 있다는 점이... 아무리 당사가 현재는 미나마타 병에 대한 보상과 교육에 최우선을 다하고 있다고 해도 기묘한 광경이라는 점을 씻어낼 수가 없었음.
애초에 병으로 인정되기까지, 그 뒤로 당사의 가해 책임에 대해 규정되기까지, 그 뒤로는 국가 책임이냐 판결되기까지 격렬하게 저항해온 것도 동일 회사의 지도부이기 때문.
미나마타만에 대한 항해 규제가 풀린 것도 2006년 밖에 되지 않았다보니 근처에는 적나라한 흔적도 남아있는 편이었음. 고농축 폐수은 슬러지가 그대로 바다로 배출되던 하수구가 폐쇄된 채로 보존되어 있는가 하면, 미나마타병 자료관이 있는 미나마타 에코파크 부지 전체가 사실 그 수은 슬러지를 묻기 위해 만든 간척지라던가.
여러모로 미나마타병에 대한 사후처리는 아직 현재진행형이고, 상처로부터 수습할 시간조차 없었다보니, 그 모든게 적나라하게 남아있다는 면이 있었음. 아픈 역사를 잊고 보면 생각보다 예쁜 도시기는 한데... 연민을 숨기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갑자기 여행기가 다크해지긴 했는데 적어도 이번 여행에서 어디를 제일 감명깊게 봤는지는 알겠지??
가고시마. 원래 예정보다 더 길게 지내다 보니 여러가지 애증이 생기게 된 도시인데, 메인 관광지만 둘러보면 꽤 좋은 도시라고 생각함. 근데 조금이라도 창의적인 시도를 해보려 하면 그 단점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걸 깨달음. 저녁에 햇빛이 사쿠라지마에 드리우기 시작하는 그 풍경은 GOAT 맞다...
단점을 꼽아보자면; 버스 회사 5개가 난립하는 개판의 시내/현내 버스 체계, 그렇다고 딱히 뛰어난 건 아닌 철도 체계, 현지인들도 꼽는 놀 거리가 부족하다는 점, 중심지가 크기에 비해 여러 곳으로 불필요하게 찢어져 있다는 점들이 있음.
사이고 다카모리를 지나치게 좋아하다 보니까 메이지 유신을 사이고 영웅 서사의 일부로 만드려다 생기는 괴상한 모순들을 짚어보는 것도 재밌음. 세이난 전쟁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정확히 왜 사이고가 가고시마로 낙향했는지 설명한 곳은 박물관 딱 1곳 밖에 못 봄.
사쿠라지마 남부. 사쿠라지마는 한 이틀 정도로 나눠서 둘러보는게 꽤 좋다고 생각함. 섬이 엄청 큰 것도 있고, 미미하긴 하지만 생태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차이가 있어서 관찰하는 재미가 꽤 있다고 생각함.
일붕이 픽인 온천 나오는 해변은 양붕이들 데리고 갔는데 눈알 뒤집히는거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근데 썰물이 아니라 밀물에 가서 개같이 파낸 구덩이들 금방 사라져서 아쉬웠음... 수질은 그냥 단순한 철분/소금 온천에 온도는 조금 미지근한 30도 언저리?
사쿠라지마 동부. 아리무라에서 쿠로카미까지 양붕이들 데리고 걸어갔음. 매장 토리이가 사실 우리가 아는 그 유명한 것 외에도 하나가 더 있다는 건 이번 탐사에서 알게 됐음. 사쿠라지마의 가장 신생(1914년)인 쇼와 화구의 바로 밑에 있는 지역이라 첫 분화 당시 피해가 가장 컸고, 이 때문에 인구도 가장 희박한 곳이다. 강이며 마을이며 길이며 화산재가 잔뜩 쌓인 풍경이 인상깊었던 곳.
참고로 분화 때문에 섬이었던 사쿠라지마가 오스미 반도랑 이어지기는 했는데 육지 쪽이 절벽이라 섬 부분이랑 고도 차이가 꽤 나서 되게 부자연스럽게 붙어있었음...
그리고 동부에서 북부로 가려면 동북부의 고멘초를 지나야 하는데, 사람도 거의 안 살고 도로도 좁은데 지형이 무지막지하게 험한 곳이라 얌전히 버스를 타는 걸 추천한다. 시라하마(북부)와 쿠로카미(동부)를 잇는 시영버스는 좀 있는 편이라서 걷는 것보다는 나음.
사쿠라지마 북부. 이쪽 방면은 분화가 활발한 면이 아니고, 바람도 대부분 남쪽으로 불어서 피해가 크지 않아온 덕분에 전통적으로 북부는 숲, 농지, 마을로 가득 차있음. 그래서 이쪽은 인문적인 면모가 있어, 사쓰마 가문의 별채, 토속 신앙의 흔적, 특이한 신사들과 폐불훼석의 폐허가 많이 남아있다.
뚱뚱한 모양으로 유명한 사쿠라지마의 특산물인 사쿠라지마 무밭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수확시기는 겨울로, 이때쯤 가면 뚱뚱해진 무의 머릿부분이 땅에 올라온 것도 볼 수 있음.
개인적으로 북부는 아코(피쿠스 수페르바)가 해안을 따라 잔뜩 자라 하늘을 덮는 풍경이 정말 마음에 들었음.
이부스키. 원래 이부스키 일대는 교통이 좀 막막했어서 안 갈 생각도 했는데 양붕이 데리고 로컬 집 갔다가 대화를 트게 된 할아버지에게 얼떨결에 야키니쿠 파티에 초대되면서 가게 됐다.
강한 바람, 울퉁불퉁한 평지, 해안 군데군데에 우뚝 솟은 오름이 몹시 제주도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었음. 내 방식대로 여행한 건 아니라서 구석구석 보지 못한 건 아쉽지만 그래도 좋은 추억을 남겨서 너무 좋았다.
할아버지가 차로 나가사키바나와 최남단 역인 니시오야마 역을 보여주셨다. 어딜 가든 보이는 가이몬 산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느껴지는 지역이었음. 후시메 해안 일대의 온천들은 전부 내년까지 휴업인 건 아쉽긴 했음.
사쓰마센다이. 이부스키를 같이 다닌 양붕이와 니시오야마역에서 기차를 잘못내려 헬프친 홍콩붕이를 데리고 사무라이 갑옷 공방을 보러 갔었음. 갑옷을 착용하는 코스도 있긴한데 5000엔 ~ 8000엔이라서 삼진 에바로 기각당함. 특산물인 센다이 맥주는 꼭 먹어봐라...
여기에도 천주당 터가 있어서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긴 했는데 다같이 하는 일정에 넣기엔 좀 거시기해서 못 봤음... 언젠가 코시키지마에 가게 되면은 그때 꼭 봐야지?
가고시마시 남부에는 아마미노사토라는 곳이 있다. 아마미 사람들을 데려와 명주 공방을 차리고, 아마미 군도의 남국을 테마로 정원을 조성한 단지인데, 짧은 구경으로는 나쁘지 않았음. 이때까진 아마미 군도 여행의 선행학습이라는 명목으로 갔었다...
아마미오시마의 특산품이라면 단연 오시마츠무기(명주)가 으뜸이리고 함. 막 명주를 진흙에 뚜들기고 담갔다 뺐다가한 뒤에 일일히 실을 세기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져서 굉장히 섬세하고 부드러운데 튼튼하기까지 하다고 한다. 옷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거진 다 알고 있을 정도(내가 물어보고 다님)로 유명한 전통 옷감인 듯함. 중고 제품은 싼 편인데 오시마츠무기로 만든 진퉁 신제품들은 가격이 엄청나다고 한다.
가고시마 시는 중심지인 중부에서 북부와 남부의 접근성이 유별나게 떨어지는 편이다. JR만 있지 버스도 제대로 없어서 거의 근교로 봐도 될 정도로 끊어져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중부 밖은 분위기 차이가 꽤 큰 편이었음. 사진은 지겐지 공원이라는 곳으로 폐불훼석 때 파괴된 절터인데, 거의 정글 수준인 것치고는 접근성이 꽤 좋아서 한번 가보는 걸 추천함.
지겐지 공원까지가 가고시마 시내교통의 남방 한계선이라고 보면 된다. 사카노우에부터는 무슨 코뮤버스가 굴러다님...
치란. 아마미오시마로 가려는 일정이 태풍 4개 동시 발생으로 결항되어서 갈 곳이 없어서 가봤다. 차로 유명하고 고산지대라서 꽤 운치있었음. 그리고 고원이다보니 당연히 일본군의 비행장으로 쓰였었고, 그 까닭에 이곳엔 치란 특공회관이 자리잡고 있다. 딱히 길게 코멘트는 안하겠지만 전국의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보러 온다는게 조큼 거시기하긴 했음... 박물관이 붐빌 정도로 진짜 많았다.
치란에서 제일 인상깊었던 건 바로 수력 카라쿠리. 공연은 여름에 하고 매년 새로운 작품으로 전시된다는데, 비시즌인데다가 비오는 날인데도 관람을 한게 운이 좋았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음. 평소에는 닫혀있는 걸로 보임.
마치 작품 속 우라시마가 용궁에 초대됐듯이, 이 작품을 발견한 나도 다른 세계로 초대된 듯한 몽환적인 기분이 들던 순간이었음.
가고시마 수족관. 고래상어도 있고 해파리도 있고 군소가 엄청 많이 전시된 곳! ...치란 특공회관에서 걔네 입장권이랑 묶은 할인권을 팔길래 가봤다. 생각보다 볼륨이 커서 재밌게 구경했음. 공연시간에 맞추면 입장만 해도 바로 돌고래들을 구경할 수 있음.
여기서 한가지 배워간 게 있는데, 사쿠라지마 화산의 본체인 초화산 아이라 칼데라의 만은 화산활동이 엄청 활발해서 심해에 열수분출공이 많다고 함. 기본적으로 만인데다가 심해 생태계가 조성되는 기준에선 수심이 그렇게 깊지도 않아서 심해 생태계를 연구하기 편한 곳으로 취급받는다고 한다.
가고시마에도 키리시탄 묘지는 존재한다. 나가사키에서 카쿠레키리시탄들이 프랑스인들에 의해 '발견'됐을 때는 아직 천주교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메이지 정부가 공동체를 찢어서 유배를 보냈었는데,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어 나가사키로 복귀하기 전에 죽어버린 신자 53명을 위해 조성했던 묘지라고 함.
센간엔에서 다른? 어쩌면 사시키에서 봤던 그 사무라이 리인액트먼트 팀의 사격술 시범도 구경하며 도쿠노시마에 갈 때까지 시간을 떼웠다. 이 사람들은 진짜 군대처럼 사격술 자체는 꾸준히 훈련하지 싶음. 일제 사격할 때 병졸들마다 짬바의 차이가 조금씩 보였거든...
사진에 나온 저 대구경 총포는 근데 반동이 엄청 센지 발포하고 나서 바로 뒤로 엎어지더라. 소리도 무지 컸음.
그렇게 드디어 도쿠노시마행 페리를 타나 했는데... 아뿔싸!
가고시마→아마미오시마→도쿠노시마(결항각)→오키노에라부지마(결항각)→요론지마(결항각)→오키나와(북부, 결항각)→오키나와가 되버리면 어떡하라는 거에요...
기상 상황(강풍)에 따라 항구에 상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공지와 맞닥뜨린 일붕이는 과연 유연하게 대처해내거나, 날씨에 도전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어제 묻혀서 재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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