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이번 여행의 가장 큰 난조는 컨디션이었음
7일 월요일까지 내도 되는 기획안을 4일 금요일 새벽까지 끝마치고 잠깐 눈만 붙였을 때는 새벽 2시였고
바로 5시 40분에 눈 떠서 당진으로 출장을 갔으니까 몸이 고장이 안날리가 없지
4일 저녁 출장 보고서 파일을 저장하고 노트북을 덮었을 때 나는 좆됐다는걸 체감했다
머릿속에 대강 짜둔 계획을 떠올렸다
첫날 도쿄와이드패스 발급
조에츠 신칸센으로 에치고유자와 도착
키요츠 협곡 관람
신오쿠보에서 저녁
아.. 이걸 지금 몸상태로 할수 있을까...
결국 에치고유자와를 포기할수는 없었으니 과감하게(?) 신오쿠보를 포기하기로 했다
인천공항 약국에서 타이레놀과 감기약 쌍화탕을 사서 한입에 털어넣고 2터 벤치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근데 아무리 체크인으로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자리가 불편해서 그런가 새벽 3시가 좀 안됐을 때 깨더라
첫날 3시간
둘째날 비슷
좆됐다 ㄹㅇ로
죽더라도 일본땅에서 죽겠다는 생각을 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다 5시 쯤 사람들을 따라서 출국장에 줄을 섬
출국장이 하나만 열려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나도 덩달아 쫄렸는데 다행히 한시간 만에 빠져나올 수 있었고 비행기에 타자마자 창틀에 머리를 대고 잠이 들었다
7시 25분 진에어 탑승
일본 본토 상공에 들어왔을 때 쯤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소란때문에 나도 잠에서 깼는데 우연히 창밖을 바라보니 존나 높은 산맥이 솟아 있었음
머릿속에서 별 생각 다.들더라 나무위키에서 본 항공사고부터 해서 출국할때 정신이 없어서 보험 안들고 갔는데 시발 좆됐다 하는 생각도 들고 ㅋㅋ
다행히 정상궤도 진입해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33살 일붕이 이제 겨우 직장에서 썸타는 여자애 하나 생겼는데 이제와서 세상 하직할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머릿속 잡생각을 지우고 또 잠듬
왼손으로 씀
9시 40분 쯤 나리타 공항 도착
입국심사 - 세관 - jr 동일본 사무실에서 와이드 패스 발급까지 모두 40분만에 끝남
안내봐주시는 분이 영어로 유창하게 말씀해 주시면서 스케줄도 짜 주심
10시 15분 넥스로 도쿄역까지 간 다음 11시 40분 신칸센 토키로 갈아타고 에치고유자와로 가면 1시가 좀 안된다 하심
아다리만 잘 맞으면 하루 4번 다니는 버스(뭔 깡촌 마을버스임?)도 탈수 있었음
플랜이 다 준비됐으니 바로 출발했음
밥은 스킵하고 레드불 한캔 뽑아 원샷 때리고 바로 플랫폼으로 이동함
밥먹으면 잠들어 못내릴 까봐 못먹은 거에 가깝긴 함ㅋㅋ
11시 40분 도쿄역에서 신칸센 토키로 환승
한시간 정도 걸렸고 레드불 한캔 더 마셔 두캔 마심
고등학교 때 읽어본 소설 설국의 모티프로 떠오르는 곳이지만 4월이 넘어서 여길 찾았기에 소설속 그 대목처럼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설국을 만나지는 못 했음
대신 역사 뒷산에 보이는 채 녹지 않은 눈을 보며 소설속의 묘사가 사실이었다는 것을 채감할수 있었음
11월에 왔으면 더 좋았을 듯하는 아쉬움도 함께
한시 10분 버스를 탐
하루 4번 있어서 어떻게든 돌아오는 차 시간표를 알아둬야 함
에치고유자와 역 버스 출발 시간은 다음과 같음
평일 : 07:15 / 13:10 / 15:10 / 17:05
주말 : 10:30 / 13:10 / 15:10 / 17:05
시간이 애매하거나 너무 늦었다면 택시타야 하는데 이정도 거리면 8천엔 거뜬히 넘을듯
버스요금은 500엔
돌아오는 버스 시간표
탈출 했을때 탄 차는 15시 57분차
버스는 마을 입구 큰길가까지만 운행함
진짜 본가 충청도 시골 마을버스랑 다를게 하나도 없음ㅋㅋ
큰길가에서 협곡 입구로 내려가는 시간은 넉넉잡아 30분정도 걸리니 시간 분배 잘 해야함
사실 이곳에 오는 주 관광 코스가 스키장이나 온천이랑 묶어 료칸에서 하룻밤 자는 스타일이라 시간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굳이 버스에 목메일 필요는 없음
30분 정도 걸어(2.2km) 협곡 입구 터널 도착
입장료는 1000엔인데 비수기라 그런가 800엔만 받았음
터널 막다른 끝 전망대로 가는 거리는 700미터 정도 되고 3곳인가 있는 중간 전망대를 기점으로 내부 조명이 바뀌는데
아마 2전망대 3전망대 방향, 노란색에서 빨간 조명으로 바뀌는 부분인가에선 뭔 컨셉을 좆같이 잡았는지 음산한 소리 나더라
마지막 전망대 끝에서 찍은 물에 비치는 협곡의 모습
터널 700미터를 다시 돌아가 마그넷과 엽서를 하나씩 사고 또 다시 산길을 걸어 큰길로 올라감
먹은건 없고 잠도 제때 못자고 기운은 쫙빠지지만 어쩌겠는가 여기서 투덜대 봤자 버스만 놓칠 뿐인데
행군간에 군가한다 군가는 푸른 소나무
이 강산을 내가 지키노라 당신의 그 충정...
ㄹㅇ 군가부르며 걸어감ㅋㅋ
길가다 본 진짜 뜬금없는 표지
저거 메뉴 사진이 끝임
좌판이나 푸드트럭이 있는것도 아니고 길 노견엔 앞서 보여준 것처럼 1미터 넘는 눈만 쌓여있음
뒤에도 딱히 가게 상호같은건 못 봄
어디로 오세요 하는 화살표나 가게까지 몇미터 라는 거리도 없음
뭐지
암튼 여기서 군가를 전선을 간다로 바꿔 부름
마을 입구 가게에서 먹은 니쿠우동
1380엔
포도맛 환타는 일본 올때마다 뽑아먹은 거고 가게 앞에서 뽑았다고 하니 먹어도 된다고 하심ㅋㅋ
다시 3시 57분 버스를 타고 에치고유자와 역에 도착함
오미야게나 사케 시음 같이 둘러볼 곳은 많았는데 아쉽게도 지금 몸상태로 술마셨다간 좆될거 같아서 스킵하고 박카스 짝퉁을 뽑아 마시고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림
플랫폼에 들어서는 신칸센 타니가와
이걸로 도쿄 와이드패스는 뽕 뽑음
돈키호테에서 파브론이랑 이브퀵 사서 섞어먹고 자려고 했는데
직원의 유혹에 넘어가 면세 처리 하고 말았고
비닐봉다리에 봉인돼 그림의 떡이 되어 버림
도쿄역 앞 게이큐 호텔(좆만함)에 체크인하고
9시 반부터 아침 6시까지 쳐 자다가 일어나서 글씀
패스 15000
포카리 180
레드불 220 × 2
버스 500
입장료 800
기념품 엽서 1150
물140
엽서 150
환타 140
니쿠 우동 1380
버스 500
짭카스 180
충전 3000
돈키호테 5020
총 28750
- 도쿄 뇌절 2일차 - 영원한 쾌락자 영웅 이봉창
간만에 늦잠을 쳐 자고(글올리고 세탁기 돌리고 또 잠) 아침 9시쯤 일어나 히비야 전철로 갈아타고 도쿄 국제 포럼 앞 골동품 벼룩시장을 둘러보았다
근데 내가 찾는건 없음ㅋㅋ 개같이 실패
내친김에 도쿄 모노레일로 갈아타고 오이 벼룩시장도 가봤지만 역시 ^실패^
하 쓰바거 난 도쿄에 왜 왔지
확 씨바 혀깨물고 뒤지고 싶네
라는 생각을 할 때쯤 순간 아주 오래전 도쿄 일정을 짤 때 킵해둔 곳인 이치가야 형무소 터가 생각났다
이곳이 어디냐면 히로히토 일왕을 겨냥해 폭탄을 투탄한 한인애국단 소속 이봉창 의사가 향년 32세로 순국한 곳임
야마노테선과 도에이 전철 신주쿠선으로 갈아타 아케보노바시에서 내렸음
1번 출구로 나와서 큰길을 쭉 따라 올라가면 놀이터 하나가 나오는데, 여기가 바로 이치가야 형무소(현 도쿄구치소)가 있던 자리이다
요초마치 어린이 놀이터
사실 저 뒷편을 구글지도로 보면
요런식으로 구획이 두부 자르듯 정확하게 나뉘어져 있는 모습을 볼수 있는데 보통 이런 곳은 교도소나 병영 등 넓은 부지가 있던 곳을 택지로 재개발하면서 계획적으로 나눈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주로 교도소 이전(전라북도 전주시 진북동, 대전 중구 목중로 등)하고 택지로 재개발한 곳을 카카오맵으로 찾아보면 저렇게 유독 필지가 반듯한 모습을 볼수 있음
여길 찾아가면서 바로 아래 세븐일레븐에서 참이슬(청포도맛)을 한병 샀음
드릴수 있는게 참이슬 뿐이라는 게 좀 씁쓸하지만...
그래도 바다건너 일본 땅에서 고국술을 구할수 있다는 데에 만족하면서...
별거 없다
부모랑 아이들이 놀고 있는데 너희 일붕이들이 함부로 눈길 줬다간 페도로 몰릴게 뻔하니 그냥 시선은 정면을 보고 여기서 계단 하나를 내려가면
정확한 명칭은 형사자 위령탑
구글에는 東京監獄市ヶ谷刑務所刑死者慰霊塔 로 치면 나오는데 골목 찾기가 은근 까다로우니 저 놀이터 치고 들어가는게 편함
지난 1964년 일본 변협이 세웠다고 함
의사 이봉창 선생 영전에 한잔
그는 대한제국이 마지막 황혼이 남아있던 1900년 한성에서 태어나 1932년 도쿄 이치가야 형무소 형장의 이슬로 순국하기까지 30여년의 시간을 살면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고 있음
한때는 총독부 철도국에 취직해 조역(역무원)으로 근무하다 승진을 거쳐 배차담당자로까지 올라갔으나
일본인은 금방금방 직급과 호봉이 오르는 반면 조134선456인의 인사적체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철도국을 사직했다
식민지 조134선456인과 '내지' 일본인의 처우가 갈리는 상황에서 그가 처음으로 선택한 길은 '동경'이었고 1925년 일본 오사카부로 건너가 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기노시타 쇼조(木下昌藏)라는 일본 이름으로 개명하게 된다
그러던 중 1928년 일본 히로히토의 즉위식을 구경하고자 교토에 들렀던 이봉창은 불심검문에서 한글 편지가 나왔다는 이유로 연행되어 즉위식이 끝날 때까지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되었고
여기서 첫번째 선택인 동경을 접고 두번째 선택인 조134선456인의 자주권을 위한 투쟁을 선택했다
그렇게 그는 상하이로 건너가 임정과 접촉하고...
살아 생전 모던보이로 '인생의 목적인 쾌락'을 '대강' 누린 그는 영원한 쾌락을 꿈꾸며 한때 동경했던 히로히토 일왕의 행렬에 폭탄을 던진다

만약 그가 평범한 2등 국민으로 남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1900년생이었으니 평균 수명을 생각해보면 1960년대 70년대까지 살다가 유명을 달리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에서 장삼이사 한 사람으로 스쳐지나갔을 그는 영원한 모던보이로 우리의 기억속에 남아있다
왜 그를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씁쓸한 것일까
세상을 등질 때 그의 나이가 지금의 나와 동갑이어서였을까
한때는 여기가 쓰레기 분리수거장 바로 앞이어서 세인을 씁쓸하게 했는데 다행히 내가 갔을 때는 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 슬슬 벤치에서 일어나 다시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서 떠오른 뜬금없는 구절 하나를 잠깐 비틀어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거리의 인파속으로 몸을 숨겼다
당신의 쾌락은 영원하고 당신의 이름은 불멸이라고.....
아 이제 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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