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난 세상에서 할아버지를 제일 사랑하지만
자꾸 명작이랍시고 보여준 예쁘기만한 영화랑
교과서에서나 나올법한 고루한 말들만 믿다가
따돌림 당했어 나,
혹시나 피곤에 찌든 할아버지가
나 때문에 더 피곤해할까봐
말 못하고 속앓이만 하는게 너무 답답해서
종종 할아버지한테 투정부렸던거
이해해 줄 수 있지?
할아버지,
난 세상에서 할아버지를 제일 사랑하지만
친구들이랑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
애네랑 있으면 배우는 것도,경험하는 것도 많고
무엇보다 진짜 즐거워
근데 집에만 오면 숨이 턱하고 막혀,
할아버지가 매일 허리에 붙이던 파스 냄새랑
매일 아침 끓이고 가는 된장찌개
허구한날 못챙겨줘서 미안하다는 말,
못챙긴만큼 걱정된다며 하는 잔소리,
이런 것들이 너무 짜증나서
할아버지한테 종종 소리친 거
이해해 줄 수 있지?
할아버지,
난 세상에서 할아버지를 제일 사랑하지만
인간관계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함께 웃고 있어도 실은 너무 고독해
내가 얘네를 생각하는 것만큼
얘네는 날 생각 안하나봐
요즘은 내가 배려하고 맞춰출수록 날 무시하더니깐?
남들한테는 자연스러운게 나한테는 왜 이렇게 어려운건지...
이렇게 매일 매일이 너무 비참하고 속상해서
할아버지한테 종종 화풀이 하는거
이해해줄 수 있지?

"할아버지는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사랑할테니깐"
"할아버지는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미워하지 않을테니깐"
"할아버지는 언제나 내 곁에 있을테니깐"

"그러니까 괜찮아"라는 계산이 내 마음 기저에 분명히 존재했다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