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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기 영화와 최근(?) 영화의 차이점 (헐리우드 한정) (2부)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nouvellevague&no=1518657&s_type=search_name&s_keyword=ddd&page=1 고전기 영화와 최근(?) 영화의 차이점 (헐리우드 한정) - 누벨바그 마이너 갤러리 고전기 헐리우드(1925~1950년대 까지)와 그 이후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형태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이 관계는 클래식 음악과 현대 대중음악의 관계와 유사한 면이 있다. 클래식 음악을 즐기려면 음의 관계를 구조gall.dcinside.com 위 게시글에서 보인 공연처럼 사람들이 많은 광경을 극적으로 보이려면 그 공연의 부분적인 모습을 강조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만약 공연하는 모습을 스포츠 중계처럼, 충실(?)하게 담는다면 공연하는 사람들의 위치나 정보야 알 수 있지만 극적 효과는 매우 떨어진다. 그래서 영화에서 무대 공연을 담을 때는 무수히 많은 세부적인 장면을 넣는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고전기 헐리우드와 최근 헐리우드의 큰 차이점이 있다. 고전기에서는 비록 세부적인 장면을 보이더라도, 관람자가 그 파편적인 장면이 무대의 어떤 공간에 있는 것인지 생각하도록 유도하면서 공연의 전반적인 상황이 어떤지 추리를 하도록 유도한다. 위 게시글의 공연에서는 관람자가 마릴린 먼로를 비롯한 사람들이 무대 공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향하는지에 대한 것을 계속 지각하게 되도록 유도되면서, 관람자가 다음 장면은 이렇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거나 예상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면서도 관람자의 그런 기대를 벗어난 장면을 보이면서 관람자에게 장면간의 극적인 변화를 체감하게 한다. 그러나 고전기 이후의 영화(무대 공연의)에서 보이는 세부적인 장면들은 그러한 면이 거의 없다. 대체로 세부적인 장면들은 공연 모습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자극적인 것들이 많다. "chicago"(2002) 의 all that jazz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자 https://youtu.be/ANjL7iREbhE 이 공연에서 보인 캐서린 제타존스의 퍼포먼스는 영화 역사상 최고의 퍼포먼스라고 해도 결코 과찬이 아닐 것이다, 동작의 다이나믹함과 그야말로 미의 화신이라고도 해도 될 정도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분출되는 표정들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너무나 황홀하다. 위 게시글에서 언급한 마릴린 먼로의 퍼포먼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캐서린의 이 위대한 모습을 관람자가 음미하도록 유도하는 것보다는 어떤 자극성에 의존하여 그 모습이 그저 휘발만 되도록 그치게 한다.. 다음 짤을 보자 이 짤에서는 캐서린과 주변 인물들의 공간적 역학 관계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앞서 분석했던 하워드 혹스의 "gentlemen prefer blondes"의 공연에서는 마릴린 먼로와 주변 인물들의 공간적 역학 관계가 밀접하게 연결됐다. 그래서 어떤 방점을 찍는 주요 장면의 극적 효과가 매우 크다. 이 짤에서 방점을 찍을 만한 주요 장면은 캐서린이 남자를 팔로 살며시 껴안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장면 자체만 보면 멋지지만 문제는 앞 게시글에서 분석했던 마릴린의 먼로의 모습을 방점 찍게 만드는,이 장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뒷받침할만한 어떠한 맥락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 두 장면을 비교해보자. 캐서린의 모습이 보이기 바로 전의 장면을 보자. 이 어두운 장면에서는 캐서린의 존재를 지각할만한 약간의 실마리조차 없다. 그래서 두 번째 장면이 그 자체로는 멋지기는 하지만 앞의 장면과 맥락이 없기에 마치 갑툭튀한 느낌을 받는다. 따라서 극적 효과가 떨어진다. 물론 이 짤을 자세히 살펴보면 누워있는 캐서린이 이 모습을 보이기 위해 다리를 올려 어떤 포즈를 시도하려는 준비(?) 동작이 보인다. 하지만 이런 포즈와 맥락이 없는 장면들이 엮이면서 캐서린의 동작아 보이는 것이 제대로 강조되지 않는다. 이 짤에서 첫 장면의 어두운 장면 (캐서린의 포즈가 나오기 바로 전의 장면)말고도 맥락이 없는 장면들을 보자. 이 장면들은 누워있는 캐서린이 다리를 올려 포즈를 취하는 것과 아무런 맥락이 없다. 그냥 피곤(?)한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한마디로 이 짤에서 보이는 이미지들은 캐서린의 포즈를 돋보이기 위한 어떤 정돈 된 이미지들이 아니다. 이 공연의 전반적인 인물들의 움직임을 보면, 롭 마샬 감독은 어떤 동작을 극적으로 보이기 위한 연결에 대해서 심사숙고한 흔적이 없다. 다음 짤을 보자. 이 짤에서는 이 공연에서 몇 안 되는, 세부적인 동작으로 동작의 전체적인 모습을 연결하는 광경이 나온다. 그런데 이 세부적인 동작의 장면은 캐서린의 변화하는 동작에 별 기여를 못한다. 다음 장면들을 보자. 두 번째 장면을 보면 캐서린이 남자 어깨 위에 올려진 모습이 보이는데 조명 때문에 캐서린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남자의 뒷모습은 어떤 포즈인지 확실하게 보이는데 반해, 캐서린의 모습은 불투명하다. 언뜻 보면 캐서린은 엎드린 모습인 것도 같다. 사실, 이 장면을 자세히 보면 캐서린의 얼굴이 보인다. 그러나 어두운 조명으로 인해 캐서린의 얼굴을 비롯한 상반신이 불투명하게 보이기에, 대체 '캐서린이 어떤 동작을 취할까'와 같은 실마리를 주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캐서린의 동작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남자 어깨 위에 올려진, 자신의 몸이 회전하는 동작을 보이기 위해서다. 캐서린은 남자 어깨의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여 역동성을 제공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습을 극적으로 연결해야 할 두 번째 장면이 그 기능을 못하면서 그 효과가 떨어진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캐서린 자체가 불투명하게 보이기에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 그러면 최소한, 캐서린이 회전하는 공간적 역학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장면을 세부적인 연결로 사용하면서 마지막 장면에서 캐서린이 회전하는 모습이 마치 갑툭튀하게 느껴진다. 이 공연에서도 공간적 역학 관계가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피상적 수준이다. 다음 짤을 보자. 캐서린이 왼쪽/오른쪽을 쳐다보는 관계를 샷/리버스 샷으로 보인다. 캐서린이 오른쪽을 쳐다볼 때를 봐라. 왼쪽을 쳐다보는 앞의 장면과 반대 각도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연결은 무대공연 중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연결이다. 인물의 동작을 반대방향으로 교차해 보이면서 어떤 단조로움을 깨기 위한 기능에 그친다. 다음 짤을 보자. 이 짤을 보면 이 공연이 어떤 연출을 추구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캐서린과 인물들이 전체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관람석에서 보이고 단조로움을 깨기 위해 인물들의 화려(?)하게 보이는 세부적인 움직임을 끼워 넣는다. 그래서 인물들의 세부적인 장면에서 보이는 움직임이 전체적으로 보이는 인물들의 움직임과 따로 논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이 공연에서도 약간의 통일적인 연결이 나오기는 한다. 다음 짤을 보자 짤의 마지막 부분에서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주변 댄서들이 몸을 뒤흔드는 모습이 빠른 템포로 반복된다. 그러나 이런 연결은 앞의 게시글에서 언급했던 인물들의 동작을 계속 환기하고 추리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관람자는 이 짤에서 보이는 장면간의 연결 구조를 크게 생각할 필요가 없기에 이 짤의 자극성은 마치 증기가 휘발하는 것처럼 빠르게 사라진다. 이 공연에서 진짜 구조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무대 공연에서 보이는 동작이 아니라 서사다. 다음 짤을 보자 르네 젤위거의 표정만 봐도, 주인공이 댄서가 되고 싶다는 심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데 굳이 저런 변환을 하면서 두 인물을 긴밀하게 엮는다. 다음 짤을 보자 이 짤에서는 먼저 짤처럼 이야기(직접적인)에 대한 연결은 없지만 팔을 들어올리는 동작을 연속적으로 보이면서 두 인물을 엮는다 이런 식으로 연결을 하면 가뜩이나 어두운 배경에 가려진 백댄서들의 비중이 더욱 적어진다. 이것은 현대 헐리우드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낭비라고 할 수 있다. 화면에서 충분히 활용하지도 않을 백댄서들을 저렇게 열심히 추게 했으니 말이다. 이런 식의 연출은 댄서들에게, 일단 열심히 춤을 추는 것을 시켜보고. 나중에 그 중에서 쓸만하게 보이는 장면을 골라서 주요 인물의 모습과 (대충) 어울리도록 엮어 관람자에게 그저 현란(?)한 눈요기를 제공할 뿐이다. 장면 간의 관계를 심사숙고 하기보다는 얼추 그럴 듯하게 연결만 하면 되고, 관람자를 붙드는 것은 저런 휘발성 강한 자극적인 것에 의존하는 것이 오늘날 헐리우드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작성자 : ddd고정닉
점묘파에 대한 분석
점묘법이번에 약지 인격 나온 기념으로 점묘파에 대해 분석해볼까 함. 점묘파라는 약지 구성원들이 예술가를 자칭하는걸 보면 미술 좀 관심 있는 사람들은 바로 생각나는게 점묘법일거임. 점묘법이 뭐냐고 물으면 이름 그대로 일일이 점을 찍어서 그림을 만드는 화법을 말함. 현대로 치면 일종의 도트 노가다로 보면 됨. 물론 도트 노가다 보면 이쁘기는 해도 효율적이지는 않기에 '엥 저거 어따 씀?' 이라고 묻는다면 몇 가지 용도가 있음. 현대 기준으로는 프린터, 모니터, 카메라 필름과 센서 등에서 사용함. 과학적 원리까지는 뭐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픽셀(점)이 세밀할수록 더 정확한 해상도로 그림이 박제가 된다는 듯 하다. 근대로 기준으로 보자면 생물학이 태동할 시기 여러 생물들을 그림으로 기록할 때 사용한 화법이라 함. 그냥 인쇄해도 되는데 굳이 점묘법으로 기록한 이유는 점묘법으로 표현한 그림이 명암을 효율적으로 나타내 대상을 입체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생물을 더 자세하게 관찰하고 분석하고 또한 이 생물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최대한 자세하게 외관을 엄밀하게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다 함. '엥 왜 사진기 안 쓰고 굳이 점묘법으로 그림 인쇄함?'이라고 묻는다면 근대 산업혁명 시기의 사진기는 현대 기준 매우 불편한 기계임. 당시에는 사진 찍는데 30분 이상이 걸린다거나 찍어도 빠른 동작을 못 찍는다거나 동작을 찍어도 사진기가 무거워서 여기저기 들고다니기 힘들다거나 사진기 들고 가도 사진을 찍어낼 지지체 - 지지체는 쉽게 말하면 필름 같은 거임. 필름 위에 사진 기록되는거 생각하면 됨 - 가 은판, 종이, 유리 이따구임. 사진은 감광액이라는 빛에 반응하는 액체를 이용해 사진 찍는데 종이는 액체가 닿으면 번지니 흐릿하게 나오고 은판이랑 유리는 깨지기 쉬운 지지체라 들고 다니다가 깨지기 일쑤였음. 아무튼 사진이 불편했던 시절 나가서 생물을 찍는게 힘드니 그림을 썼고 최대한 정확힌 묘사를 위해 점묘법을 썼다 생각하면 됨. 조르주 쇠라그럼 이 점묘법의 창시자는 누구일까? 바로 조르주 쇠라이다. 쇠라가 누구냐 묻는다면 현대 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사조로 인상주의가 애기되는데 그 인상주의 중 후기 인상주의 작가라 생각하면 됨.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인상주의랑 후기 인상주의는 뭐가 다르냐고? 우선 인상주의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면 후기 인상파와 뭐가 다른지 이해가 잘 될거임. 인상주의 자체는 근대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던 유럽에서 시작됐음. 여기서 산업혁명의 결실로 사진이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한 것을 눈여겨봐야 함. 기존의 에술이란 말 그대로 현실의 대상을 최대한 비슷하게 모방하는게 기본이었고 이를 잘할수록 아름다움 에술이라 칭해졌음. 근데 사진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현실 그 자체를 찍을 수 있게 됨. 물론 아직 불편한 점은 많지만 통제된 상황 하에서 사진은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었으니 대상을 정확하게 그리고 모방하는걸 예술의 기준과 의의가 되어야 하냐는 문제제기가 시작됨. 여기서 인상주의는 사진으로 찍은 세계로는 담아낼 수 없는 시각 이외의 여러 감각들을 담아내는 걸 돌파구로 삼음. 인상주의를 현대 미술의 시작으로 부르는 이유도 화가의 주관, 더 나아가 개성을 표현하는 길을 인상주의가 열었기 때문임. 인상주의의 대표 화가 중 한 명인 모네의 수련 그림을 보면 현실의 수련과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음. 그 외에 첨언하면 인상주의는 사진이 찍은 정지한 세계가 아닌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포착하고 이 흐트러지고 모이는 빛의 움직임, 즉 변화 자체를 그리려 했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인상주의에 대한 비판도 여기서 파생되는데 말 그대로 현실과는 너무 다른 작가 개인의 주관이 너무 들어간 그림이라는 거임.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게 인상주의는 세계의 측면 중 정확한 모방이 아닌 세계의 변화하는 모습을 감각으로서 그림에 담는 시도이기에 변화라는 세계의 모습을 그렸다고 생각함. 아무튼 당시에는 인상주의의 주관성에 대해 말이 나오고 있었고 이러한 인상주의의 한계로 인식되던 주관성을 합리성, 과학성, 체계성, 정확성으로 극복하려던 화파가 신인상주의임. 그리고 그 신인상주의의 대표적인 화가가 위에서 점묘법 만든 조르주 쇠라이다. 글을 읽다보면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가 결이 좀 다른게 느껴질건데 실제로 모네는 쇠라를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함. 모든 인상주의 화가들이 쇠라를 인정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논쟁거리긴 했음. 쇠라의 대표작 그럼 쇠라가 점묘법으로 그린 대표적인 작품은 뭐가 있을까? 대표적으로 2가지 그림이 있음.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이 그림 그릴 때 여러 과학적인 접근방식으로 그렸다고 함. 빛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위해 광학이론과 색채이론 같은걸 참고했다 함. 이 중 색의 삼원색(초록,빨강,노랑)으로 색채를 환원했다고 하는데 쉽게 말하면 그림에 점 하나 찍을 때 삼원색 중 하나를 배정한 후 이들을 무수히 배열하고 조합해 다른 색으로 보이게 만드는 거임. 점들이 서로 섞인건 아니지만 바로 눈앞에서 그림을 감상하는게 아니면 점들의 색이 섞인 것처럼 보여서 원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보인다고 보면 됨. 이번에 나온 약지 인격들 공격 모션의 색깔이 삼원색인건 이걸 의식하고 만든게 아닌가 싶음. 그 외에도 그림의 체계성을 잡으려 고대부터 가장 완벽하다고 말해지던 황금비율을 쓰기도 함. 황금비율은 주로 고대 그리스 신전이나 조각상, 근대 이전의 여러 명화들에서 사용한 고전적 비율이고 이러한 비율을 사용한 건 쇠라가 안정성을 지닌 그림을 추구한 걸로 해석할 수 있다. 신인상주의(점묘화)의 한계이렇게 도트 노가다꾼 쇠라가 인상주의 극복하겠다고 온갖 똥꼬쇼를 치지만 인상주의를 극복하려 지닌 합리성, 과학성, 체계성, 정확성, 안정성 등의 정적인 특징들은 신인상주의 화풍이 극도로 정적이고 경직되고 기계적이고 생동감을 결여한, 마치 조각상을 보는 듯한 건조한 느낌을 줌. 이러한 예술로서의 신인상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게 쇠라가 만든 예술적 기법은 현대 과학기계인 모니터, 프린터, 카메라 등에서 대상을 더 정확히 포착하기 위해 사용되어짐. 근대에서조차도 생물학이라는 과학에서 생물을 엄밀히 묘사하고 교재에 그림을 박제하기 위해 사용되어짐. 점묘파에 대한 추측 이러한 신인상주의의 특징과 한계점을 점묘파가 지니지 않을까 추측해보며 이들이 비록 도시에서는 범죄집단으로 취급되나 굉장히 도시적인 예술을 하고 있는 도시의 구성원이 아닐까 생각해보긴 함. 이후에 점묘파 계통의 인물이 나온다면 점묘 자체가 일일이 점을 찍는 행위이니 관통공격 계통으로 나올 것 같고 모니터, 프린터, 카메라와 관련해 무언가를 굉장히 선명하고 정확한 해상도로 대상을 포착하려 고집하는 인물이 나오거나 그리스적인 석상이나 건축물, 근대 생물학에 모티프를 둔 변치 않는 것의 아름다움을 말하며 박제와 조각에 능한 인물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봄. 쇠라의 작품과 림버스 세계관 그 외에 림버스 세계관과 관련하여 쇠라의 대표작을 해석할 수 있다고 봄. 그랑자트와 아스니에르의 배경이 산업화된 도시인 파리의 근교 센느강 주변에서 도시인들이 휴일을 만끽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그림이라는 것도 눈여겨볼만한 점이다. 이 그림을 보면 인물들이 어딘가 건조하고 생동감을 결여한, 경직된 몸짓이나 표정을 지니며 휴식을 취하고 있음. 이를 림버스와 연관시켜 해석해보면 도시가 생명을 시들게 함에도 도시 속 부르주아, 노동자, 관료, 빈민 등 도시 속 수많은 구성원들은 말라감에도 도시가 주는 달콤한 혜택에 홀려 점점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도시에 종속되며 이내 도시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의 무미건조한 표정이 아닐까 싶다.
작성자 : estevan980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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