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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덤가에서 소녀가 본 여인

털진드기(124.55) 2022.02.12 10:32:09
조회 27 추천 0 댓글 0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여인의 왜소한 어깨는 동그라니 피어있는 할미꽃처럼 초라했다

흙속에 묻힌 육신을 차마 떠나지 못해 가슴에 안은 그 여인은 슬픔에 겨워 그를 마음에 묻지도 못 하였다

이제는 환갑이 다 된 나이의 여인의 머리칼은 어느새 희게 새치가 곳곳에 돋아 있었다

예순년의 고개를 넘어와 이제는 묻어둘 마음도, 몸도 남아있지 않은 그녀에게

또다른 누군가를 묻어달라는 하늘의 청은 가혹했다

떨어지는 눈물 방울이 홍수가 되어 그녀의 무덤가는 오랜 장마였다

쓸려가는 흙을 손으로 모두어 애써 묻어두려 해도 그치지 않는 눈물은 이제는 누군갈 묻을 수도 없다 하여 애타는 청을 반려하였다

작고 나약한 여인의 육체는 이 하얀 새치만이 남았을진데, 그런 작은 몸으로 어찌하여 그의 고통을 짊어지려 하였을까

짊어져도 짊어져도 고통 뿐이었던 그의 지옥같은 마음은 그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이었는데

어리석은 여인의 몸으로 하늘에 뜻에 맞선 것은 무지한 반항이었을까

이제는 살점이 썩어 문드러지고 백골이 되어갈 그의 육신이 쉬고있는 언덕배기엔 덧없이 이름 모를 하얀 야생화들이 피어 방긋방긋 웃고 있는데

이 예쁜 꽃들의 싱그러움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은 폭풍우 한 가운데 놓인 여인의 마음 뿐이었다

햇살이 밝게 내리쬐는 무덤가에는 하얀 야생화 몇 송이가 피어있고 그 곁에서 눈물 흘리는 노파의 하얀 새치는 햇살에 비치어 반짝 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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